Q. 또 ‘한국영화 위기론’이 대두됐다.
한국영화 누적관객 1억명 돌파, 역대 최대 관객수, 역대 최고 극장 매출 앞에서 모두가 샴페인을 터뜨렸다. 연관 관객수 3억 돌파를 논하는 글도 나왔다. 한국영화의 전성기가 영원할 것처럼 호황을 외쳤다. 그게 불과 6개월 전 일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한국영화 위기를 논하는 글들이 신문에, 인터넷 포털에, 잡지에 또 등장했다. 여기저기에서 곡소리가 들린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이 위기론에는 실체는 무엇인가. 허남웅, 전종혁 영화평론가,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만든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를 통해 그 원인을 진단해 봤다.
허남웅: 언제나 위기 아니었나?(웃음)
전종혁: 위기는 아니라고 본다. 숨고르기중이랄까.
원동연: 위기론은 늘 있었지만, 이번 위기론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
Q. 사실 한국영화 위기, 라는 말이 관습적 수사가 된 지 오래다. 그래서 이번에 대두된 위기론에 대해 느끼는 바가 다른 것 같은데, 자세한 생각을 듣고 싶다.
허남웅: 상업 영화와 예술영화 사이의 균형이 점점 무너지고 있다. 마케팅 신조어인 ‘아트버스터’(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예술영화)라는 것도 말이 좋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개 메이저에서 소화하는 영화들이다. 가령 한국에서 다양성 영화로 소개된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나 스파이크 존즈의 ‘그녀’ 같은 경우, 자본이 적게 들어간 독립영화가 아니다. 한국에서 마니아층을 형성한 감독의 작품이기에 다양성 영화로 받아들여진 것인데, 그런 작품들이 다양성 영화 상영관까지 잡아먹어버리면서, 진짜 한국 독립영화들은 설 자리가 없어져 버렸다. 그들의 공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 자체가 왜곡 된 건 사실이다.
전종혁: 지금 위기론이 나오는 이유가 상반기 한국 영화 설적 때문인 것 같은데, 작년과 비교해서 떨어진 것이지, 재작년과 비교하면 비슷한 수준이다. 7, 8월에 나오는 한국영화들이 잘되면 이런 위기론은 들어갈 거라고 본다.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영화의 흥행 수치가 아니라, 질적 수준이다. 지금 한국영화는 하향평준화 된 부분이 없지 않다.
원동연: 공급 과잉이 문제다. 영화계 전체를 조정하는 기능이 상실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번 여름만 해도 ‘군도’ ‘명량’ ‘해적’ ‘해무’ 대형영화가 일주일 간격으로 쏟아진다. 물리적으로 이 영화들을 소화할 수 있는 시장이 안 된다. 이 중, 두 영화는 굉장히 큰 피를 볼 거다. 이런 대형영화들이 피를 본다는 것은, 영화 시장엔 치명적이다. 수익률은 저하될 테고, 시장은 심리적으로 위축 될 거다. 민감한 금융 자본들은 빠져 나갈 게 자명하고. 결국 자기 살 깎아먹기를 하고 있는 거다. 공급과잉이 초례한 또 하나의 문제는 질적 저하다. 특정 영화를 거론하지는 않겠지만, 올해 관객과 소통하지 못했던 영화들은 장르가 문제가 아니라 완성도의 문제였다.
Q 왜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불나방처럼 동시에 달려들까.
원동연: 일단 4대배급사가 모두 자기들은 안 죽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또 하나는 극장이 없는 쇼박스와 NEW가 ‘CJ계열의 CGV와 롯데그룹 계열의 롯데시네마가 자사 영화를 봐 줄 여력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러니까 쇼박스와 NEW가 극장상황을 체크해 보니, ‘CGV와 롯데시네마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어! 자기네들 영화에 어드벤티지를 줄 상황이 아니야! 그러니 우리가 들어가도 막을 수 없어!’라고 판단을 한 거다. 그건 대형극장 체인을 가지고 있는 CJ와 롯데 입장에게는 굉장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쇼박스와 NEW가 “우린 극장이 없어도, 너희 안 무서워”라고 하는 거나 다름없는 거니까. 아마 ‘군도’(쇼박스)나 ‘해무’(NEW) 입장에서는, ‘명량’(CJ)과 ‘해적’(롯데)이 아주 세다고 판단했다면 여름 시장에 안 들어왔을 거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을 안 하는 거지.
일주일 간격으로 개봉하는 대작영화들
Q. 한국영화의 위기를 논할 때 ‘기획력 부재’, ‘스타권력 남용’, ‘제작비 상승’, ‘대작 강박증’, ‘대기업의 영화에 대한 이해 부재’ 등이 자주 거론된다. 이 중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무엇인가.전종혁: 영화에 대한 대기업의 이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이해는 하고 있는데, 고치려고 하지 않는 것이 진짜 문제다. 롯데도 그렇고 CJ도 그렇고, 다수를 만족시킬 수 있는 안전한 영화만 고르려는 성향이 강하다. 축구로 치면 지지 않는 수비형 경기만 하고 있으니, 터지는 영화 없이 애매해진 부분이 있다. 창작자의 창의력 부재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사실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나 피디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고민을 많이 한다. 뻔한 걸 만들고 싶어 하는 창작자는 없다. 하지만 투자사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그들로서는 쉽지 않다. 누구는 별을 만들어가고 누구는 세모를 가지고 가도, 투자사들의 입맛에 맞게 잘리다보니 비슷하게 동그라미가 나오는 실정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뭐의 아류’ ‘뭐의 비슷한 영화’ 만이 양산된다. 결국 투자 배급사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안 그러면 제자리걸음이다.
원동연: 기획력이다. 크리에이티브는 상의하면 상의할수록 무뎌진다. 대기업이 영화 산업에 들어오면서 크리에이티브를 계량화 시키려는 노력들을 많이 했다. 계량화가 제작비 합리화라든지 기술적인 면에서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창작자들에게는 치명적이다. 하루빨리 창작자들을 자유롭게 하는 대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허남웅: 작가에 대한 처우가 가장 큰 문제 아닐까 싶다. 작가도 그렇고 스태프들에 대한 처우도 그렇고, 기본적인 것들이 탄탄하지 못하니까, 조금만 삐꺽대도 위기론이 튀어나온다.
Q. 한국영화 르네상스로 불리던 2000년대 초반에도 작가 처우가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허남웅: 좋지는 않았지만 그때는 영화들이 모험을 했고, 모험을 통해 창의력 있는 작품들은 많이 나왔었다. 그런데 대기업들이 들어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큰돈 받아서 큰돈을 벌어야 하는 대기업들은 모험을 하기보다는, 기존 성공했던 것들을 답습해서 변형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런 영화가 잘 됐었군, 비슷하게 만들어 보자’ 식인 거다. 실제로 대기업 안에, 성공한 해외 영화를 한국식으로 바꾸는 전담 부서가 따로 있다고 들었다.그런 환경에서는 결국 비슷한 영화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또 그런 영화들이 성공을 하다 보니, 이젠 짝퉁 영화들을 노골적으로 생산하는 실정이고.
Q.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의 성장을 이끈 것은, 봉준호 박찬욱과 같은, 새로운 감각을 지닌 감독들이었다. 현재 상황에서는 재능 있는 감독들이 나오기 힘들다고 보나.
허남웅: 힘들지 않을까. 모 대기업의 경우, 40대 이상의 감독은 자기네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아예 안 쓰려고 한다고 들었다. 박찬욱 봉준호 이런 감독은 제외겠지만. 고용 감독을 쓰는 경우도 많은데, 모두가 고용감독이 됐을 때 창의력이 흐려질 위험이 있다. 그랬을 때 창의력 있는 영화를 기대할 수 있는 곳이 독립영화인데, 그쪽도 너무 우울하고 내적인 이야기로만 침전하니까 관객들이 호감을 못 얻는 실정이다. 괜찮은 독립영화가 나왔다 싶으면 아트버스터 영화들 때문에 상영기회를 못 얻는 경우가 허다하고. ‘한공주’의 경우가 예외적인데, 사실 ‘한공주’도 해외에서 수상을 하고 CGV 무비꼴라주가 밀어주니까 흥행이 가능했다. 요즘에는 독립영화도 무비콜라주나 씨네큐브가 안 밀어주면 개봉 자체가 힘들다.
전종혁: 배급사마다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어떤 것은 안정적으로 가도, 어떤 것은 과감하게 도전하면서 자기 색을 유지하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거다. 그런 면에서 ‘끝까지 간다’를 배급한 쇼박스는 약간 칭찬해 주고 싶은 게, 그네들은 적어도 자기네가 액션과 스릴러에서는 강점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도전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면서 망하는 영화도 나오지만, ‘끝까지 간다’ 같은 다소 독특한 영화도 나오는 거지. 물론 ‘끝까지 간다’라고 해서 감독이 쇼박스 입맛을 완전히 배제하고 본인이 원하는 걸 만든 것은 아닐 거다. 이 영화가 2009년에 영진위 상금을 받고 들어간 작품인데, 13고까지 시나리오를 수정하고서야 지금 나왔다. 중간 협상 과정이 길었다는 의미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이전 4고 정도의 시나리오로 돌아가서 나온 결과물이라는 거다. 쇼박스의 입맛이 담기긴 했어도 어느 정도 감독이 원하는 바가 드러난 영화인 셈이다. 다행히 그걸 관객이 이해를 해준 덕분에 흥행까지 한발 더 나갔고 말이다.
제 2의 봉준호, 박찬욱은 나올 수 있을까
Q. 재능 있는 신인 감독 찾기가 어렵다는 얘기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눈여겨보는 감독이 있다면.원동연: 곧 개봉하는‘좋은 친구들’의 이도윤 감독. 신인 감독임에도 정확한 샷을 구사할 줄 한다. 자기가 어떤 영화를 하고 싶은지 정확히 알고 들어온 감독 같았다. 작년에 ‘더 테러 라이브’를 만든 김병우 감독도 눈여겨보는 중이다. 이 두 친구는 앞으로 많이 커 나가지 않을까 싶다.
허남웅: 글쎄. 나홍진 감독 이후로 끊기지 않았나 싶다. 재능 있는 감독이 없는 것은 아닌데, 파워풀한 기대치를 주는 감독이 없다. 이것이 아랫세대들의 특징인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윗세대들은 배가 고파도 예술을 하겠다는 야망이 컸다. 그런데 요즘 세대들은 생계에 대해서 먼저 생각을 하다 보니, 야심 있게 뭔가를 한다기보다는 일단 대기업에 호감을 사서 그곳에서 뭔가를 하겠다는 게 있다. 가령 조성희 감독의 경우 ‘남매의 집’이나 ‘짐승의 끝’은 굉장히 강렬했다. 그런데 대기업에 들어가서 만든 ‘늑대소년’의 경우 예상한 것과는 다르게 가 버린 부분이 있다. 허정 감독의 ‘숨바꼭질’도 좋기는 한데, 그의 이전 단편 영화들을 생각하면 조금은 아쉽고.
전종혁: 조성희 감독의 경우 의견이 약간 다르다. 내가 보기엔 그래도 신인 감독 중에서는 자기가 원하는 영화를 만들면서 흥행까지 성공한 상당히 잘 된 케이스라고 본다. 조성희 감독이 ‘늑대소년’에서 변질됐다고 보는 시각이 있지만, 그 영화를 자세히 뜯어보면 감독이 좋아하는 코드와 취향이 모두 녹아있다. 다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달달하다보니 다르게 느껴질 뿐이다. 결국 기존 센 이미지의 조성희를 원하는 것은 평론가들의 욕망인 것 같고, 중요한 것은 감독의 욕망이 무엇인가인데, 조성희 감독 자체가 ‘늑대소년’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들었다. 대기업이 “이렇게 고쳐라” 해서 나온 결과물이라면 문제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거다. 물론 차기작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원동연: 재능 있는 독립영화 감독들이 상업영화 필드로 많이 넘어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대기업 입장에서 전혀 검증받지 못한 감독에게 큰돈을 투자한다는 건 쉽지 않다. 독립영화에서 자기 색깔을 드러낸 감독들을 기용하는 것이 대기업 입장에서는 하나의 방법인 셈이다. 감독이 대기업 안에서 기존 자신의 색깔을 유지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어쨌든 ‘블랙스완’을 만든 감독(대런 아로노프스키)이 ‘노아’(감독 색깔이 강한 블록버스터)도 만들지 않았나. 그리고 솔직히 독립영화를 하다가 기회가 되면 상업영화로 넘어오려고 하지, 독립영화만 고집하는 감독은 없다고 본다.
Q 지금의 한국영화계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허남웅: ‘모래성’이다. 영화가 사양산업이 됐을 때, 대기업들이 과연 지키려고 할까. 거기는 영화 부서만 없애면 끝이다. 결국 끊는 냄비 같은 거다.
전종혁: ‘팥빙수’다. 위에 팥만 떠먹으면 밑에 얼음만 남아서 맛이 없어진다. 왕창 비벼버리면 비율이 또 무너지고. 결국 적당한 조율을 찾는 것이 관건인데, 다행이도 그런 조율이 자연스럽게 된 부분들이 있다. 가령 천만 영화들을 살펴보면 대개, 투자사들로부터 외면 받다가 힘들게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기대하지 못한 영화들이 성공한 것인데, 그런 변수들이 나와 줘서 이 산업이 유지된 부분이 없지 않다. 그래서 좋은 의미로도 팥빙수인 것 같고, 나쁜 의미로도 팥빙수인 것 같다. 사실은 위험한 거지. 우리는 알짜배기가 위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거기에서 결판이 나는 것은 아니니까.
원동연: ‘아노미(anomie), 대 혼란기’다.
Q. 혼란기, 빨리 극복해 낼까.
전종혁: 개인적으로는 한국영화가 지금 이 정도인 것도 엄청나다고 생각한다. 2006년 거품이 왔을 때, 영화 산업이 굉장히 크게 붕괴됐었다. 그런데 또 금방 회복을 했다. 그게 한국영화/한국 사람의 매력인 것 같은데, 거품도 심하지만 극복도 상당히 빨리 해 낸다. 아마 이런 시행착오는 계속 반복될 거다. 오를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는 법이니까. 그러니 그걸 위기라고 볼 것 까지는 없을 것 같고, 그냥 산업이 순환하는 거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원동연: 이 혼란이 오래 갈 거라고는 보지 않는다. 영화 시장이라는 것이 금방금방 움직이기 때문에 자정작용이 분명 이뤄진다. 실제로, 최근 만난 투자사들도 모두 이 위기를 공감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벌써 그런 자정작용에 돌입했다고 보는데, 이젠 아무 영화나 쉽게 만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래서 크게 우려하지는 않는다. 대신 제작을 하고자 했던 후배들이 제작하기가 더 어려워지겠지. 옥석을 훨씬 더 가릴 테니까. 사실, 그게 필요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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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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