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희야’ 정주리 감독.

데뷔작을 들고, 세계 최고 권위의 칸 영화제를 간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그것도 경쟁부문 못지않게 주요 섹션인 주목할 만한 시선이다. 영화를 완성하기에도 급급한 신인 감독의 칸 여행기는 누가 보더라도 놀랄 만하다. 이 놀랄 만한 일을 만든 이는 바로 ‘도희야’의 정주리 감독이다. 산학협동 프로젝트 최종에서 떨어진 게, 그래서 제작자 이창동을 만난 게 그녀의 운명을 이렇게 바꿔 놓았고, 단숨에 세계가 주목한 감독이 됐다. 그야말로 어디선가 갑자기 툭 튀어나온 셈이다. 칸 영화제를 즐기고(?) 돌아온 정주리 감독을 만나 영화 이야기를 나눴다.

Q. 칸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무슨 경험을 했는지 궁금하다. 언론을 통해 전해진 것 말고, 직접 경험하고, 느꼈던 점을 듣고 싶다.
정주리 감독 :
실감이 안 났던 게 가장 큰 것 같다. 그리고 칸 공식 상영 전에 반드시 감독과 함께 화면 및 사운드 체크를 하는데 그때 이미 놀랐다, 하하. 우리 스태프만 가서 체크하는데 이렇게 좋을 수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본 상영 때는 프랑스에 보낸 DCP(Digital Cinema Package, 디지털 마스터링 된 상영용 영화 파일)를 끝까지 확인 못 하고 보냈던 거라 끝까지 문제없이 상영되는지가 가장 신경 쓰였다. 그러다 상영 후엔 또 많이 놀랐다. 기립 박수가 나오는데 어안이 벙벙했다. 2층에서도 박수를 보내고. 새론이는 울고 있고, 하하. 전혀 모르는 관객들을 만나는 건 처음인데 잘 봐준 것 같아서 좋았다. 외신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굉장히 다양하고 깊이 있게 영화를 본 것 같았다. 외신 인터뷰를 하면서 또 놀랬다. 그렇게 놀람의 연속이었다, 하하.

Q. 국내에 전해진 소식만 봤을 땐, 칸에서 반응이 다소 엇갈렸던 것 같다. 그 지점은 무엇이었나.
정주리 감독 :
칸 영화제 기간 발행되는 데일리를 보니까 영화마다 별점이 있더라. 우리 영화도 0점을 준 곳도 있었는데 그런 분들은 인터뷰를 안 하니까. 하하. 그런 차원에서 비판적으로 봤던 시각은 직접 접하지 못했다.

Q. 국내 언론 및 평단의 반응과 칸에서의 반응은 다르지 않았을까 싶은데.
정주리 감독 :
가장 크게 놀랐던 건 인물들 중심으로 훨씬 더 깊게 질문한다는 거다. 또 이게 진짜로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이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많았다. 그때마다 100% 허구고, 그 인물들의 상황을 극적으로 구성하면서 조합된 요소라고 말했다. 한국에선 그런 질문은 하지 않으니까, 하하. 이런 반응도 있었다. 해외에 소개되는 국내 영화들이 주로 그런 편인지 잘 모르겠지만, 한국 영화 전반에 걸쳐 있는 폭력적인 소재에 관해 물어 보더라.

Q. 첫 데뷔작으로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다녀온 건 대단한 일이다. 처음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호기 어린 마음에 이런 생각하곤 했을 텐데.
정주리 감독 :
사실은 데뷔하기까지 지난한 시간이 있었다. 막연히 영화감독이 돼야겠다고 생각한 대학 학부 때부터 치면 오랜 시간 그 기회에 목말랐고, 제발 만들어서 개봉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게 목전에 있는 목표였다. 이 영화도 CJ와 영상원의 산학협력 프로젝트였는데 최종 선택에서 떨어졌을 때 그 막막함은 상당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가장 컸던 것 같다. 다행히 운 좋게 제작에 들어가고, 촬영하면서도 극장에 걸릴 수 있을지 전전긍긍했다. 완성될 즈음 칸 영화제 출품 시기와 겹쳤고, 제작사에서 출품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것만으로도 너무 부담스러웠다. 안 되면 얼마나 실망할까 싶었는데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돼서 놀랐다.


Q. 주목할 만한 시선도 시상이 있는 부분이다. 수상에 대한 기대는 정말 전혀 안 했나. 어차피 누군가는 받을 상인데 욕심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정주리 감독 :
가기 전에는 어차피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된 작품 중에 한 작품이 받는 거니까 단순히 N분의 1 정도의 기대는 했다. 그런데 막상 가서는 아니다 싶었다, 하하. 소개되는 다른 영화들의 면면을 보니 이 섹션에 어울리는 영화들이 많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상에 대한 기대는 자연스럽게 놓게 됐다. 또 공식 초청된 작품들의 감독, 제작사가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때 내 테이블에 ‘파티 걸’을 연출한 3명의 감독이 같이 자리했다. 그 작품이 상도 받았는데, 어쨌든 그 사람들만 봐도 뭔가 다른 세계였다, 하하.

Q. 영화의 배경이기도 한 여수가 고향인 걸로 알고 있다. 극장에서 영화를 접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언제부터 감독의 꿈을 꾸게 된 건가.
정주리 감독 :
생각해보면, 중학교 때 아버지가 비디오를 쌓아놓고 보셨다. 몰래 본 것인지, 식구들이 잔 다음에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밤에 비디오 보는 모습을 늘 봤던 것 같다. 그러면서 아빠가 없을 때 비디오를 보게 됐다. 그러면서 처음 영화를 접했던 것 같다. 또 로드쇼, 스크린 등 영화 잡지들을 보면서 할리우드 배우들 브로마이드를 모으고 했다. 그리고 중학생 때로 기억하는데 당시 보면 안 되는 영화인 ‘데미지’를 극장에서 봤던 것 같다. 그땐 표를 한번 끊어서 들어가면 계속 볼 수 있었는데 ‘데미지’를 3번 연달아 봤던 기억이 매우 크게 남아 있다. 고등학교 땐 당시 유행했던 왕가위 작품들을 보면서 나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가졌다. 옛날 일기장을 보니 고2 올라가는 그 해 2월에 ‘나는 영화감독이 돼야겠다’는 글이 맨 첫 장에 적혀 있었다. 물론 구체적으로 영화감독이 돼야겠다 싶었으면 연극영화과를 진학했을 텐데 그렇게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하하. 그래도 막연히 영상매체 쪽으로 일하고 싶다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당시 막 생겨난 성균관대 영상학부를 진학했다.

Q. 그럼 대학을 나와서 다시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한 건가. 감독 데뷔까지 많은 일이 있었나 보다.
정주리 감독 :
동기들보다 늦게 졸업을 한 편이다. 중간에 제적, 재입학 과정이 있기도 했고. 대학에서 다양하게 배우다 보니 영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근데 당시 영상학과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분야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끼리 소모임 만들어서 캠코더 등으로 영화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수업은 빠졌고, 결국 제작 당했다. 다시 재입학하고 나서는 서양철학을 복수전공으로 선택했고, 그쪽으로 공부를 더 많이 했다. 그러다가 졸업했고, 취직 준비를 했다. 언론 고시도 준비했는데 그건 적성에 맞지 않더라. 하하.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영화 만드는 걸 본격적으로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고, 진학을 결심했다. 그때가 25~26세 정도였다.


Q. ‘도희야’의 시작은 무엇이었나.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 같다. 여러 이야기의 조각이 하나로 뭉쳐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이다.
정주리 감독 :
그렇진 않다. 어떻게 보면, 세 인물이 나와 비슷할 수 있다. 극 중 이름은 실제로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져온 거다. 그렇다고 그 인물에서 영감 받은 건 아니다. 그동안 단편 작업만 하다가 장편 이야기를 처음 쓰면서 예전부터 마음속에 있었던 고양이와 주인 이야기를 꺼낸 거다. 학부 다닐 때는 그 이야기 그대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기도 했다. 그 정도로 내내 마음속에 있던 거다.
(참고, 감독이 말한 고양이와 주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주인의 사랑을 받던 고양이는 새 고양이에게만 관심을 두는 주인의 마음을 돌리고자 한다. 그래서 관심받고 싶은 마음에 고양이는 쥐를 잡아 주인의 구두 안에 두지만, 주인은 고양이가 해코지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 날 고양이는 껍질을 벗긴, 빨갛게 피 흘리는 쥐를 갖다 놓는다. 이는 관심을 가져달라는 고양이의 애절한 메시지였다.)

Q. 고양이와 주인의 이야기, 그 무엇이 감독의 마음을 그렇게 부여잡은 건가.
정주리 감독 :
계속해서 마음에 남았던 이유는 그 상황이 이해는 되는데, 너무 큰 괴리가 있는 거다. 그게 너무 슬픈 일인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그 주인이 고양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그래서 고양이가 도희가 됐고, 빨갛게 피 흘리는 쥐를 구두에 집어넣는 고양이의 행동이 도희의 마지막 선택과 행동이 된 거다. 그리고 그 아이를 이해하고, 서로 위로가 될 수 있는 인물로 영남을 만들었다. 그리고 용하는 도희의 행동을 이끌어 애는 필연적인 인물로 탄생했고. 세 인물의 구도는 고양이 이야기에서부터 형성될 때 구축됐다. 그 때 아이의 이름을 도희라고 짓고, 제목을 ‘도희야’로 했던 것 같다. 나머지 구체적인 상황들은 후에 다듬어진 것 같다.

Q. 이창동 감독과는 어떻게 함께 하게 됐나.
정주리 감독 :
이창동 감독님이 한예종 교수이기도 하고, 앞서 얘기했던 CJ와 영상원의 산학협력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지도교수 역할을 하셨다. 처음 트리트먼트에서 시나리오 개발하는 과정을 쭉 지켜보신 거다. 최종 심사도 하셨는데 결국엔 다른 작품이 선정된 거다. 그 작품이 완성되면 ‘아! 그럴만하다’고 생각하게 될 거다. 여하튼 떨어진 거였는데 전체적인 과정을 지켜보시면서 아마 아쉬운 게 있었던 것 같다. 최종 발표 후 불러서 ‘작은 이야기지만, 의미 있는 영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기회에서는 안 됐지만, 자체적으로 만들어도 되지 않겠느냐’며 제안해 주셨다. 그렇게 지금까지 오게 됐다.

Q. 첫 연출인데 이창동 감독의 존재는 든든하면서도 굉장한 부담이었겠다. 물론 배두나 씨는 텐아시아와 인터뷰에서 부드럽지만, 자기가 원하는 걸 다 가져가는 사람이라고 하더라.
정주리 감독 :
남들은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데 사실 굉장히 둔한 스타일이어서 잘 못 느꼈던 것 같다, 하하. 사실 배두나, 김새론, 송새벽 등 이런 배우들과 첫 연출작을 한다는 것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부담 자체에 둔한 편이었던 것 같다. 그냥 충실하게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간 것 같다. 또 제작자 이창동은 이 작품 때문에 처음 만난 게 아니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굉장히 든든한 버팀목이자 정말 필요할 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존재였다. 정말 힘들 때 조언을 구할 수 있는 분이다. 가끔 현장에 오실 땐 부담스럽긴 했지만. 하하. 한편으로는 가끔 오셔서 계실 때 다른 스태프나 배우들 역시 또 다른 든든함을 느낀다는 거다. 무엇보다 가장 큰 도움은 편집을 하면서다. 배두나 씨 말처럼, 하고 싶은 거 다 찍었다. 2시간 분량의 이야기를 전체적인 호흡으로 만들고 가다듬는 게 너무 힘들었다. 글 쓰고, 만들 때는 모든 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꼭 그래서만은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어떻게 하면 좋은 호흡을 찾을 수 있나, 장편이 지녀야 하는 리듬이 무엇인지 이번에 많은 도움이 됐다.


Q. 배두나, 김새론, 송새벽 등 유명 배우들의 참여도 주목할 만하다.
정주리 감독 :
시나리오를 마음에 들어 한 것도 분명 큰 이유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 영화를 이창동이 제작한다는 거에서 오는 믿음인 것 같다. 배우들은 뭐라 할지 모르겠지만, 분명 신인 감독이기 때문에 뭔가 의심스러운 것도 있을 거다. 더욱이 쉬운 이야기도 아니고. 그럼에도 마음을 먹을 수 있었던 건 제작사와 제작자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막상 만나서 깊이 이야기를 하면서 고민이나 의구심을 떨쳤던 것 같다.

Q. 배두나 송새벽 등과 동갑으로 알고 있다. 또 피디, 스태프 등 현장에 동갑내기가 많았다고 들었다. 편할 수도 있지만, 동갑내기가 많다 보면 다소 어수선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정주리 감독 :
이 영화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 때문에 다들 모였지만, 예산이 적은 영화다. 당연히 스태프도 거대하게 꾸릴 수 없었고, 서울에서 계속 찍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 조건 자체가 동갑내기가 많았든 적었든 끈끈하게 모일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와중에 같은 또래들이 모여 있어 동지애, 전우애 등이 생겨나지만, 아옹다옹도 있다. 다행인 건 다들 조금만 좋은 조건이었다면 덜 힘들 텐데 하는 마음인 거지, 애초 이 로케이션을 왜 가야 하나 등의 불만은 없었다. 만약 그런 데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면 나도 힘들었을 거고, 어느 지점에선 와해가 생겼을 텐데 그에 대한 원초적인 합의가 있었던 것 같다. 자칫 모래알 조직이 될 수도 있는데 우리끼리 잘 만들어갈 수 있었던 게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두나 씨의 존재가 큰 역할을 했다. 늘 같이 현장에 있으면서 중심축을 담당했다. 당시엔 매니저도 없어서 혼자 차 가지고 내려와서 거의 스태프처럼 생활했다. 또 힘든 내색 안 하고, 지칠 때 북돋아 주고. 두나 씨가 옆에 있다는 게 가장 큰 동지를 만난 느낌이었다. 훌륭한 사람 같다.

Q. 배두나 씨 역시 ‘의지하는 척은 안 했지만, 감독에게 심적으로 많이 의지했다. 나 역시 힘이 되려고 노력했다’는 말을 했다.
정주리 감독 :
두나 씨가 영남이 돼서 연기할 때 정말 기가 막히게 잘하더라.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들을, 반드시 영남이 지녀야 하는 것들을 이렇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싶었다. 곳곳에서 감탄했다. 다만 두나 씨에게 이런 것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했다. 그게 지금 아쉽다. 배두나란 배우에 대해 느끼는 것들, 늘 동지가 되어준 데에 대한 것들을 충분히 표현 못 했던 게 미안하다. 촬영 들어가기 전날 순천에서 준비할 때, 두나 씨가 혼자 차를 몰고 내려왔다. 그리고 영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날 특별히 뭔가 통했다 싶게 이야기를 많이 했다. 속마음도 이야기하고. 그때 영남은 너무나 외로운 인물이지만, 그 인물을 연기하는 배두나는 외롭게 하지 않겠다, 연출자로서 늘 옆에 있겠다고 했는데 촬영 끝나갈 때 즈음 생각해보니 너무 외롭게 한 게 아닌가 싶다.

Q. 도희와 영남의 관계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괴물’은 결국 어른들이 무심코 지나쳐서 만들어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정주리 감독 : 마지막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괴물’이 될 아이를 어른이 품어서 괴물이 되지 않도록 하는 쪽으로 볼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영남이 겪을 풍파도 있을 거다. 더 큰 오해와 편견 속에 위험을 무릎 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둘이 연인으로 발전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어쩌면 마을에 영남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용하는 도희의 미래다. 아니면 훗날 극 중 도희 할머니인 점순이처럼 될 수도 있다. 그게 한편으론 평범할 수 있는데 영남이 왔고, 영남으로 인해 도희가 변하게 되는 거다. 도희도 영남을 구하기 위해 한 행동 때문에 ‘괴물 같다’는 말을 듣게 된다. 주인이 고양이를 끝내 이해할 수 없는 채로 끝났다면, 우리의 인물들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영남이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것 같아서 응원하는 마음이 있다. 도희 역시 영남 때문에 혼자가 아닌 둘이 함께할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 있는 것 같다.


Q.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잘 전달된 것 같나. 학교폭력, 동성애, 불법체류자 등 여러 가지로 해석되는 것 같다. 그중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
정주리 감독 :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냐는 평가가 많은데 사실 그렇게까지 생각 못 했던 게 사실이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볼 수 있다는 건 충분히 알겠다. 나로서는 그런 것들을 다 다루려고 했다면, 이런 방식으로 만들진 않았을 것 같다.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불법체류자 노동자 이야기도 어디까지나 마을 사람 중 하나처럼 그렸던 거다. 그 문제를 다루려고 했다면, 다르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초기 버전에는 50대 50으로 있기도 했는데, 불법체류자 부분을 계속 빼 나갔다. 배경이 바닷가 마을이다 보니 그에 익숙한 현실, 이야기를 만들다 보니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필연적인 전개였는데, 보기에는 각각의 이슈들을 욕심 많게 다루려고 한 게 된 것 같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한 마을의 현실성을 다뤘다고 생각한다.

Q. 스스로 돌아봤을 때 처음이어서 부족했던 게 있을까. 다음 연출할 때 이런 점은 고쳐야겠다 싶은 점이 있었다면.
정주리 감독 : 결국 편집이다.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하면서도 늘 전체를 본다고 생각했는데, 최종적으로 만들어지기까지 더 깊이 고민해야만 했다. 그런 것을 뼈저리게 느낀 것 같다. 이런 것들을 잘 알고 컨트롤을 했다면, 좀 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면 현장에서 뭔가 더 여지가 생길 것 같다. 이번엔 준비했던 거 소화하기 바빴던 것 같다. 촬영 전에 콘티를 만드는데, 어마어마한 콘티 분량을 이창동 감독님이 보더니 ‘이렇게 빠듯하게 해놓으면 현장에서 뭔가 생겨나는 걸 놓칠 수 있다. 그게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인데’라고 했다. 그때는 거장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거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란 걸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준비하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Q. 차기작이 궁금한 감독이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정주리 감독 :
아직 구체적인 프로젝트라고 할 만한 건 없다. 고양이와 주인 이야기처럼, 그런 정도의 단초가 되는 건 있다. 그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쓸 것 같다. 이제 막 성인이 되는, 소녀와 숙녀 사이에 있는 여자와 중년의 여자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인물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처럼, 이제 쓸 이야기도 그런 류의 감정을 다루지 않을까 싶다. 그런 욕망은 단편 영화를 만들 때부터 있었던 것 같다. 뭔가 단순한 상황이 아니라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가 생각될 수 있는 것들, 그런 걸로 이야기를 만들게 될 것 같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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