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c44bf091cedcc1b39ea51253e12085
eac44bf091cedcc1b39ea51253e12085
40년 넘게 앞만 보며 질주하던 길 위에 한 아이가 불쑥 뛰어들었다. 피해갈 수 있는 기회는 많았다. 하지만 오혜원(김희애)은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그 아이에게서 자신이 잊고 살았던 젊음을, 차마 몰랐던 따스한 온기를 발견했으니까. 그 아이, 이선재(유아인)를 만나면서 정물 같았던 여자의 얼굴에 비로소 꽃이 피었다.

희망 따윈 바라지도 않았다. 하루하루 견디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여자가 나타났다. 아름답고, 우아하고, 가진 것 많은 여자. 하지만 피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 오혜원에게서 살아가고 싶은 이유를 발견했으니까. 거친 남자의 세상에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 여자’ 오혜원과 ‘그 남자’ 이선재의 사랑을 ‘불륜’이라 말한다. 미화될 수 없는 사랑이다. 그래서 더욱 아픈지 모른다. 화제의 드라마 ‘밀회’ 속 두 남녀의 아슬아슬한 사랑. 그들만큼이나 심장 쪼그라들게 했던 영화 속 밀회의 순간들을 되돌려봤다.

1. ‘언페이스풀’ Unfaithful, 2002
언페이스풀
언페이스풀


그 여자 40대 주부 코니 섬너(다이안 레인) 그 남자 자유분방한 20대 폴 마텔(올리비에 마르티네즈)
줄거리 가정적인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들을 둔 코니 섬너. 어느 날 맨해튼으로 쇼핑을 나갔던 코니는 강풍을 피하려다 폴이라는 젊은 프랑스 남자를 알게 되고 그에게 빠져든다.
밀회의 매개물 육체. ‘나인 하프 위크’ ‘위험한 정사’ ‘은밀한 유혹’에서 관능의 영상미를 보여줬던 애드리안 라인의 작품답게 영화는 욕망에 빠진 두 남녀의 육체를 탐하는데 거침이 없다. 이 영화에서 남녀의 육체는 사랑이고, 사랑은 곧 육체를 의미한다. 코니의 쭉 뻗은 다리를 집요하게 응시하는 카메라는, 눈의 에로티시즘을 한껏 자극한다.
결정적 밀회 강렬한 섹스 신이 적지 않게 등장하는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오랜 여운을 남기는 것은 다이안 레인의 미세한 표정이다. 폴과 첫 번째 정사를 나눈 뒤, 집으로 기는 기차 안에서 코니는 뜨거웠던 남자와의 섹스를 회상하며 사시나무 떨듯 전율한다. 뜨거운 욕망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웃다가, 그런 자신을 책망하며 죄의식에 괴로워하는 코니. 화장실로 달려가 몸에 남은 젊은 남자의 흔적을 화장지로 정신없이 닦아내지만 이미 그녀의 세계는 달려진 후다. 뻔한 치정극에 머무를 뻔한 이 영화가 끊임없이 회자되는 것은 여자의 심리를 너무나 잘 파악해 낸 연출과, 다이엔 레인의 연기 덕분이다.
그녀의남편 에드워드. 당대의 로맨틱가이 리처드 기어를 데려다가 바람 난 아내를 둔 남편을 시키다니… 의아해 하려는 찰나, 영화는 중반 이후 에드워드에게 집중하면서 스릴러로 급회전한다. 믿었던 아내의 불륜을 눈치 챈 에드워드는 결국 손에 피를 묻히고 만다.
교훈 불륜의 끝은 불행의 시작이다.

2. ‘정사’1998

정사
정사


그 여자 39세 주부 서현(이미숙) 그 남자 우인 (이정재)
줄거리 지루하지만 안온한 삶에 나름 만족하며 살아가던 여자의 삶이 우인을 만나면서 흔들린다. 문제는 우인이 동생의 약혼자라는 사실! 피해갈 수 없다. 이것은 불륜 이상의 불륜이야!!!
밀회의 매개물 행복. 마흔을 앞둔 여자의 심리는 어떨까. 이제 여자로서는 매력이 없나… 푸석해져가는 얼굴이 신경 쓰일 때 즈음, 그 아이가 나타났다. 그리고 묻는다. “행복하십니까?” 우인을 만나면서 회색 같았던 서현의 공간에 환한 조명이 하나 탁 켜진다. 그 조명은 정사(情事)에서 극에 달한다.
결정적 밀회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제사를 지내는 시간. 서현은 집을 빠져나와 우인이 있는 오락실로 향한다. 불 꺼진 오락실에서 나누는 정사는 에로틱하지만 슬프고, 애절하지만 처연하다. ‘최고의 정사신’ 설문조사 때마다 호출되는 장면.
(안판)석테일 이전에 (이재)용테일이 있다 아무리 미화해도 불륜은 불륜이다. 다만, 어떤 식으로 요리하느냐에 따라 관객들의 인내심이 달라질 뿐. 그런 점에서 이재용 감독은 관객 마음 훔치기의 귀재다. 그의 연출은 성(性)스럽지만 결코 상스럽지 않다. 카메라는 고요히 흐르고, 잔잔한 음악이 귀를 적시며, 이미지가 드라마를 추월하지 않는다. 단아하고 섬세한 이재용 스타일은 불륜을 미화한다는 일부의 지적에도 불구, 오랜 시간 사랑받았다.
젊은 남자 이정재.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것이, 설득력 있게 느껴지게 할 만큼 매력적인 남자.

3. ‘아이 엠 러브’ Io sono l’amore, 2009

아이엠러브
아이엠러브


그 여자 이태리 상류가문의 마님, 엠마(탈다 스윈튼) 그 남자 20대 요리사 안토니오(에도아르도 가브리엘리니)
줄거리 상류가문으로 시집 온 러시아 출신 엠마는 남들이 보기엔 현대판 신데렐라나 다름없다. 그러나 아들의 친구 안토니오가 만들어 준 음식을 맛본 순간, 잊고 있었던 생의 감각이 일제히 봉기하다.
밀회의 매개물 요리. 침대 없는 베드신으로 유명한 ‘밀회’의 아성에 도전하는 사물베드신이 이 영화에도 존재한다. 안토니오가 만들어 준 새우를 입에 넣는 순간, 연극처럼 모든 빛이 꺼지더니 조명은 오로지 엠마 만을 비춘다. 하얀 접시 위에 흘러내리는 빨간 새우, 웅장한 음악, 음식을 음미하는 엠마의 입술과 목덜미를 클로즈업하는 카메라, 그리고 요리를 통해 안토니오를 느끼는 엠마. ‘밀회’의 그 유명한 단어 ‘피아노가즘(피아노+오르가즘)’을 빌려 설명하자면, ‘요리가즘’쯤 되지 않을까.
결정적 밀회 아들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만 보면 막장드라마다. 하지만 ‘아이 엠 러브’의 핵심에 자리한 건, 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중년여성의 자아 찾기다. 베니스영화제가 이 영화에 환호한 이유 역시, 불륜치정드라마를 훌쩍 뛰어넘는 우아한 형식미와 섬뜩한 통찰을 엿봤기 때문이다.
수제명품 불륜에 품격이 어디 있으랴만, ‘아이 엠 러브’는 비상한 구석이 있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이태리 장인이 한 컷 한 컷 정성 들인 수제 명품.

4. ‘두 번째 사랑’ Never Forever, 2006

두번째 사랑
두번째 사랑


그 여자 성공한 한인2세 변호사의 아내 소피(베라 파미가) 그 남자 가난한 한국인 불법체류자 지하(하정우)
줄거리 불임 때문이 고민인 소피는 우연히 만난 지하에게, 매번 300달러, 임신하면 3만 달러를 주겠다는 은밀한 제안을 한다. 처음엔 애정이 배제된 섹스였다. 하지만 사랑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고 했던가. 서로의 아픔을 알아가면서 감정이 싹튼다.
밀회의 매개물 지하의 방. 은밀한 거래가 이루어지던 허름한 지하의 방은 두 사람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변해간다. 커튼이 달리고, 침대엔 낡은 담요 대신 푸른 색 시트가 깔리며, 방 한편에 샛노란 꽃들이 놓인다.
결정적 밀회 “담요가 낡아서 보푸라기가 일어났네요.” 주인 없는 지하의 방에 들어 온 소피는 침대 위에 깔린 담요를 보고 흠칫 놀란다. 여자가 스치듯 한 사소한 말을 기억해 뒀다가 선물하는 지하라는 남자. 잠이 든 여자에게 다가가 한국말로 “사랑해도”라고 속삭이는 로맨티스트이기도 하다.
부부 클리닉? 외피만보면, 신파도 이런 신파가 없다. 하지만 같은 신파라도 인물의 심리를 다루는 방법에 따라, 배우들의 연기에 따라 달리 읽히는 것이 영화다. ‘두번째 사랑’은 김진아 감독의 세밀한 연출과 배우들의 열연과 영화 ‘피아노’ 작곡가로 유명한 마이클 니만의 음악이 만나 깊은 여운을 남긴다.
하정우 먹방 있기 없기?

5.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The Reader, 2008

The Reader
The Reader


그 여자 36세 전차 검표원 한나 슈미츠(케이트 윈슬렛) 그 남자 15세 소년 마이클(데이빗 크로스/랄프 파인즈)
줄거리 1958년, 독일. 길에서 구토를 하고 있는 소년을 지나가던 여인이 집까지 바래다준다. 소년은 완치 후 감사를 표하러 여인을 찾아간다. 그렇게 두 사람의 은밀한 관계가 시작된다. 그러던 어느 날 한나는 말없이 떠나고 소년은 이유를 모른 채 버림받는다. 8년 후 법대생이 된 마이클은 나치 전범 재판을 참관했다가 피고인 신분의 한나를 발견한다.
밀회의 매개물 책. 소년이 키스를 하려하자 여자가 말한다. “그 전에 먼저 내게 책을 읽어줘야 해!” 이후 책읽기는 이들이 성관계를 갖기 전 행하는 하나의 의식이 되고, 육체적 관계는 정신적 교감으로 발전한다.
결정적 밀회 한나는 왜 책읽기에 집착할까. 여기엔 비밀이 있다. 한나가 사실은 책을 잃지 못하는 문맹이라는 것. 자신이 문맹인 것을 밝히기 싫은 이 자존심 강한 여자는, 유대인 수용소 학살과 관련된 보고서를 자신이 썼다는 누명을 쓰고도 함구한다.(문맹인 여자가 어찌 보고서를 쓰겠는가!) 그런 한나의 진실을 아는 유일한 한 사람 마이클. 그는 한나가 지키고자 했던 자존심을 위해 침묵한다. 이후 마이클은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한나에게 책을 읽어 녹음한 테이프를 감옥으로 보내기 시작한다. 10대 소년과 30대 여인의 ‘에로틱한 밀회’는 그렇게 ‘역사적 밀회’로 이어진다.
추천노래 남자의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

6. ‘도쿄타워’ Tokyo Tower, 2004

도쿄타워
도쿄타워


그 여자 셀렉트샵의 오너이자 유명 CF기획자의 아내인 40세 시후미(구로키 히토미) 그 남자 21세 미대생 토오루(오카다 준이치)
줄거리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시후미는 아들의 친구이자 평범한 대학생인 토오루와 3년째 비밀 열애 중이다.
밀회의 매개물 선재에게 리흐테르가 있다면, 토오루에겐 라흐마니노프가 있다. 선재에게 혜원이 삶의 전부라면, 토오루에겐 시후미가 그렇다. 토오루는 시후미가 좋아하는 것들, 다시 말해 라흐마니노프를 듣고 그레이엄 그린을 읽으면서 세상을 느낀다.
결정적 밀회 오후 4시. “네가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겠지”라고 어린 왕자가 말했던가. 토오루에게 4시는 그런 시간이다. 그녀의 전화가 걸려오는 시간, 금기가 깨지는 순간, 욕망이 고개를 드는 순간.
밀회잘 알려졌다시피 김희애 유아인 주연의 ‘밀회’는 ‘도쿄타워’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품이다. ‘밀회’가 그렇듯 ‘도쿄타워’ 역시 권태와 공허함에 찌든 상류층 여자들의 내면을 깊숙이 바라다 본다.
해피엔딩? 세상 모든 유부남들, 긴장하시라! ‘밀회’가 ‘도쿄타워’처럼 흐른다면 혜원은 선재의 세계로 용기를 내어 뚜벅뚜벅 걸어들어 갈 것이다. 남편과 이혼을 하고 파리 유학 중인 토오루를 찾아간 시후미 처럼. 과연 선재와 오혜원의 사랑은 어디로 흐를까.
명대사 “사랑이란 하는 게 아니라 빠지는 것이다”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 영화 스틸

[나도 한마디!][텐아시아 뉴스스탠드 바로가기]
[EVENT] 뮤지컬, 연극, 영화등 텐아시아 독자를 위해 준비한 다양한 이벤트!! 클릭!
[EVENT] 와우, 비투비의 봄날 5월 구매 고객 이벤트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