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으로도 연기하는 배우”라는 표현은 흔한 호들갑이 아니다. 정말로 영화 ‘역린’에서는 현빈의 등이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그것이 연기가 아니고 무엇일까.

‘역린’은 개봉 전 홍보 단계에서부터 현빈의 탄탄한 등근육을 내세웠다. 그의 등근육이 부각된 티저영상은 공개 이후, 순식간에 주목을 받았다. 비슷한 시기 티저영상을 공개하며 홍보에 박차를 가하려는 영화들이 모두 그 시기를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당시만 해도 등근육이 있는 조선의 왕이라고 하니, 지극히 판타지스러운 존재로 다가올 밖이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이 열린 ‘역린’ 속 정조(현빈)의 등은 확실히 중요했다. 판타지보다는 오히려 생존에 가까웠다. 영화에서는 정조가 등을 돌리고 걸어가며 먹먹히 대사를 뱉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그 순간 그의 등은 주로 쓸쓸하고 나약해보이며 때로는 슬프기까지 하다. 하지만 바로 그 쓸쓸한 등에 정조는 탄탄한 근육을 감춰두고 살았다. 반전의 등이 곧 정조였다.



모두가 나약하다 여긴 왕,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강했다. 속으로 분노를 품은, 그러나 그 분노의 정도와 방향을 정확히 조절할 줄 아는 영리하고도 치밀한 왕의 성정을 연기하는 배우 현빈을 보고 있으면, 그가 지난 3년의 휴식기동안 연기에 대한 갈망과 고민이 얼마나 컸었나 짐작이 간다.

영화가 시작되는 오전 3시 존현각, 아직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왕의 발성은 억눌러져 있다. 삼키듯 뱉어낸다. 오후 3시 왕이 어떻게 변화되었을지 기대가 걸어진다. 그 변화의 폭은 그러나 그리 크지 않다. 조금씩 조금씩 마치 ‘역린’ 속 정조가 그러했듯, 현빈 역시 변화의 보폭을 최대한으로 줄였다. 그래도 분명 정성들인 끝에 변화는 있다. 그가 뱉어내는 말들은 점점 단호해지고, 눈빛 또한 점점 날카로워진다.

그러니 ‘역린’의 현빈은, 현빈의 정조는 절제다. 절제는 늘 과잉보다 더 많은 연구와 고민을 담고 있다. 오랜 휴식시간 갈증이 심했을 법한데, 과욕없이 이뤄낸 그의 성과는 박수를 받을 만 하다.



현빈의 연기 인생에 있어 이 ‘역린’이라는 영화는 참으로 특별한 필모그래피로 남을 것이다. 그간 보여줬던 연기 중 가장 절제된 연기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를 스타 반열에 오르게 해준 히트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이나 신드롬의 주인공으로 부상시킨 ‘시크릿가든’과는 결감이 다르다. 그렇다고 ‘만추’ 속 은근한 매력과도 또 다르다. 영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의 슬픔을 묵묵히 삼켰던 연기와도 비슷한 듯 다르다. ‘역린’의 정조, 현빈의 정조는 그의 전작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여주는데 성공했다. 이 배우가 3년 만에 컴백에 자신의 ‘터닝포인트’를 들고와줘서 참 반갑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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