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자신의 색깔이 너무 강해 가만히 있어도 도드라져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같은 언어를 쓰는데도 서로 의사 소통이 되지 않고 같은 뜻을 갖고 있는 말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들리게 하는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개성이 강한 이들을 경계한다. 둥글둥글 어울리지 않고 혼자서 튀는 걸 절대로 용납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 탓이다.
학교나 직장에서도 ‘튀는 사람’들은 차가운 눈초리를 받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생각이나 말을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고 거부감부터 드러낸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귀를 열어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소통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는데 너무 빨리 마음의 문을 닫는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각박하기 때문이리라.
연예인들은 흔히 말하는 ‘끼’로 똘똘 뭉쳐 있기에 누구보다 개성이 특출난 존재다.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경험해보지 못하고 극히 제한적인 만남만 갖기에 대중과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 입을 닫고 있으면 대중과 소통을 거부한다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고 입을 열면 유명인이기 때문에 모든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딜레마에 항상 직면한다.
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다. 자기 일을 잘하면 되는 것이다. 배우는 연기를 잘하면 되고 가수는 노래를 잘하면 된다. 회사원은 일을 잘하면 되고 학생은 공부를 잘하면 된다.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확실히 일을 잘하면 그 누구도 그를 욕하지 못한다. 심지어 귀담아듣지 않던 그의 말들을 경청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럴 때마다 오랫동안 그를 봐온 나로서는 안타까움이 밀려든다. 그 글들을 자세히 읽어보면 이 세상만사를 통달한 듯한 어조로 이야기하지만 그 이면에 대중과 소통하고 싶은 예민하고 외로운 소년의 목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사실 유아인은 대중이 알고 있는 이미지와 실제 모습의 간극은 좀 크다. 난 유아인을 20대 초반부터 봐왔다.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약간의 ‘똘끼’ 넘치는 소년 때부터 자아가 커지면서 약간의 ‘허세’가 생긴 20대 초반, 배우로서 인간적으로 성장해간 20대 중반. 예쁘장한 귀여운 소년이 멋진 남자가 되고 좋은 배우가 돼가는 과정을 지켜봤다. 밑바닥부터 한 계단씩 올라가며 배우로서 자신의 모습을 조각해가는 모습에 항상 응원을 보냈다.
많은 사람들은 다소 거친 화법 때문에 그가 스타 의식이 넘치고 버릇 없고 거만할 것이라 예상한다. 다소 자아가 강하고 고집이 있는 건 맞다. 소년의 ‘똘끼’도 약간 남아 있다. 그러나 막상 만나보면 정말 예의 바르고 친절하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괜찮은 청년’이다. 연기에 대한 순수한 열정은 신인 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1~2년에 한번 작품 홍보를 위해 만날 때마다 난 항상 유아인에게 애정 어린 잔소리를 늘어놓곤 한다. 다른 배우들은 웃으면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게 역력한데 유아인은 툴툴 거리면서도 항상 들어준다. 지난 해 영화 ‘깡철이’ 개봉을 앞두고 만났을 때 잔소리를 계속 하니 유아인이 “아빠 앞에 끌려간 느낌이 이건가 보다”고 말해 함께 크게 웃은 적이 있다.
사실 지난달 ‘밀회’ 제작발표회에서도 잔소리를 좀 할 작정이었다. 제작 발표회 며칠 전 SNS상에서 ‘날 것’ 그대로의 언어로 다시 한번 논란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전날 밤 집에서 종이에 할 말을 적고 외우며 간곡하게 “제발 SNS를 멀리 하면 안되냐”고 말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이날 제작발표회에서 ‘밀회’ 하이라이트 동영상을 보며 생각을 바꿨다. 유아인의 소름끼치는 연기력이 내 경솔한 말문을 막았다. 미리 입수한 대본을 읽을 때 잘할 걸 알았지만 그렇게까지 잘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29세 배우 유아인은 없었고 극중 난생 처음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 감격스러워하는 20세 이선재가 살아 숨쉬고 있었다. 대본 지문 하나까지도 완벽히 형상화해내는 그의 연기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눈빛 하나, 손짓 하나도 완벽히 이선재로 빙의되는 그의 모습은 비록 짧은 영상이었지만 진한 감동을 안겨줬다. 제작발표회가 끝난 후 대기실로 찾아간 난 “너무 잘했다. 수고해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배우는 연기로 모든 걸 말한다’는 말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실수에서 배우고 성장해간다. 10년간 내가 지켜본 유아인은 좌충우돌하면서도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배우로서나 인간적으로서나 꾸준히 성장해왔다. 또한 먼 곳에 위치한 스타가 되기보다 항상 대중과 가까이 가는 방법을 고민하며 다가서려 노력해왔다. 접근하는 방식이 다른 이들과 약간 차이가 있고 투박(?)할 따름이다. 대중이 좀더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준다면 정말 좋은 배우의 탄생을 목격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든다.
글. 최재욱 대중문화평론가 fatdeer69@gmail.com
사진제공.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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