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것은 말 그대로 축제였다. 영화인들은 수상 유무를 떠나 파티에 온 듯 시상식을 즐겼다. 지난해 11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폴 워커와 2월 사망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을 애도하는 시간에는 모두가 마음으로 울었다. 원로 영화인이 무대에 오를 때면 기립박수로 맞았다. 가수들이 축하무대를 펼칠 때는 어깨를 들썩였다. 이곳에서는 ‘렛잇고’를 부르던 이디나 멘젤의 ‘음이탈’도 큰 문제가 안 됐다. 왜? 다시 말하지만 이곳은 실력을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라 축제였으니까. 소녀시대가 생소한 신곡을 들고 나오더라도 다들 일어나서 박수를 쳐줄 기세였다.(소녀시대가 대종상 축하공연에서 ‘굴욕’ 논란을 겪은 게 2010년이다.) 그런 그들의 축제를 지켜보며 내내 생각했다. ‘아, 부럽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여러모로 우리의 영화 시상식들을 뒤돌아보게 했다. 한국 영화계를 대표한다는 시상식들은 왜 저런 게 안 될까. 경직된 표정, 인색한 박수, 수상자로 호명해도 자리에 없는 후보들, 썰렁한 객석, 유머가 거세된 상투적인 멘트들, 공동수상?대리수상?특별수상….(무슨 수상에 수식어가 이리 많아?) 그 뿐인가. 시상을 하러 나온 배우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홍보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이상한 무대. 수상 소감 시간이 지인 호명 시간으로 둔갑하는 희한한 풍경. 배우들에게서 마음을 후벼팔 만한 소감을 듣는다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오죽하면 황정민의 ‘밥상 소감’이 지금도 회자될까. 그게 언제 적 소감인데!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복잡하게 얽혀있겠지만, 그래도 그 중 하나를 꼽으라면 권위를 갖춘 시상식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86년 전통의 아카데미 역사와 비교하면 되겠냐고? 된다. 대종상이 벌써 50회를 넘었다. 청룡영화상도 어느새 35회를 향하고 있다. 아카데미에 비해 짧긴 하지만 충분히 권위를 획득할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국내 시상식들은 금품수수, 나눠먹기, 공평성 결여 등의 논란을 끌어안으며 권위를 땅바닥으로 흘려보냈다.
자신들만의 색깔이 없는 것도 큰 문제다. 몰아주기를 해서 욕을 먹으면 다음 해에는 안전하게 나눠 주기를 한다. 너무 안전한 선택이 아니냐고 하면 그 다음해에는 어김없이 몰아주기를 했다가 기어코 욕을 먹는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언론에 휘둘리고 사심에 흔들리다 보니 권위가 자리 잡을리 만무하다. 시상식의 권위가 없으니 배우들 사이에서도 꼭 참석할 필요가 있냐는 인식이 팽배하다. 배우가 참석하지 않는 시상식은 당연히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힘을 잃은 시상식은 다시 또 권위가 떨어진다. 권위 없는 시상식은 배우들의 불참으로 이어진다. 결국은 악순환이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피자 이벤트만큼이나 이슈가 됐던 것은 ‘셀카’다. 무대와 객석을 오가던 사회자 드제너러스는 시상식 중반 배우들에게 셀카를 찍자고 제안했다. 배우들은 적극적으로 웃으며 화답했다. 대본에 없는 즉흥적인 상황연출이었다. 브래드 피트, 안젤리나 졸리, 메릴 스트립, 제니퍼 로렌스, 자레드 레토, 브레들리 쿠퍼 등이 함께 한 이 사진은 드제너러스 트위터를 통해 발 빠르게 전 세계로 확산됐고, 트위터 사상 가장 많은 리트윗 신기록을 기록했다. 과연 우리는 포토월 앞에서 한껏 폼 잡고 선 배우들의 모습이 아닌, ‘굴욕샷’에 대한 부담은 잠시 벗어두고 신나게 축제를 즐기는 배우들의 모습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자아도취와 특권의식은 여전하고, 감동도 재미도 없는 심심한 수상소감은 끝날 줄 모른다. 대본에 의지한 연출된 쇼를 지켜보기란 얼마나 김빠지는 일인가.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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