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들’ ‘별그대’, 그가 연기의 맛을 알게 되자 대중도 함께 행복해졌다

누군가 한 분야에 10년 넘게 종사한다면 베테랑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하지만 연기란 분야에서는 아무리 세월이 오래 돼도 장인이라는 소리를 듣기 쉽지 않다. 연기자적인 감각과 소위 말하는 끼가 없이는 진정한 연기의 눈을 뜰 수 없기 때문이다. 눈을 뜨지 못하면 어느 정도 연출의 도움을 받아 흉내를 낼 수 있겠지만 대중의 감성을 건드릴 수가 없다. 이제는 전국민이 대중문화평론가인 시대다. 아무한테나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다.

최근 안방극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는 SBS 수목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이하 별그대, 극본 박지은, 연출 장태유)의 여주인공 전지현은 분명 베테랑이다. 대중의 마음을 쥐락펴락 움직이는 능력을 지닌 진정한 스타다. 대중이 자신의 어떤 부분에 매력을 느끼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그 매력을 극대화할 줄 아는 프로다. 사실 아직은 모든 역할을 다 소화해낼 줄 아는 연기파 배우는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매력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을 확실히 아는 대한민국 최고의 매력녀다.



요즘 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은 수목요일 밤이면 ‘별그대’를 보면서 전지현과 다시 사랑에 빠지는 중이다. 전지현이 맡은 전국민적인 톱스타 천송이가 400년 된 외계인 도민준(김수현)과 티격태격 사랑을 키워가는 모습에 가슴 설레고 있다. 아무리 라면 먹고 얼굴이 팅팅 부었다며 소파에서 이상한 체조를 해도, ‘목화’와 ‘모카’를 구분하지 못해도 전지현이기에 용서가 된다. 매순간 다른 샷으로 잡히는 물이 오른 미모에 탄성을 연발하고 있다.

사실 나도 많은 사람처럼 변심한 적이 있다. 2012년 최동훈 감독의 영화 ‘도둑들’이 나오기 전까지 한동안 전지현이 얼마나 매력적인 배우인 건 잊고 지냈다. 예쁘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있었을 뿐. 실패작들과 수많은 CF의 홍수에 이미지가 너무 소비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지현은 배우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최 감독의 조련 하에 다시 태어났다. 아무리 걸쭉한 욕을 쏟아내고 나쁜 짓을 해도 건강한 섹시함과 거부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으로 관객을 매혹시켰다. 영화 결말 부산 건물 수도관에서 머리를 감는 장면에서 탄성을 안 지른 이는 드물 것이다.

전지현은 14년 만의 드라마 출연작 ‘별그대’에서도 특유의 사랑스러운 연기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별그대’의 천송이는 박지은 작가가 전지현을 위해 만들어준 맞춤 배역. 톡톡 튀면서 엉뚱하고, 백치미가 넘치지만 귀여운 천송이의 모습은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통해 형성된 전지현 전매특허 이미지에 대한 패러디다. 영화 ‘노팅힐’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자신과 비슷한 이미지의 톱스타를 연기한 것과 마찬가지 경우라 할까. 전지현은 이런 캐릭터를 망가짐을 불사하면서 천연덕스럽게 소화해내 찬사를 받고 있다.



지난 주 방송된 천송이의 운전 장면은 수많은 시청자들을 열광시켰다. 전지현이 운전대를 잡고 능청스럽게 “우리 언니 만송이 내 동생 백송이”라며 정형돈의 랩을 패러디하는 모습에 대중은 포복절도하며 ‘연기에 물이 올랐다’는 찬사를 쏟아냈다.

일부에서는 기존의 작품과 CF 속 모습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지적한다. 일리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나는 이제 자기 옷을 확실히 찾았다고 말하고 싶다.

좋은 배우란 두 종류가 있다. 한 우물을 깊게 파는 배우와 깊으면서도 넓게 파는 배우. 연기파 배우 전도연 김윤석 송강호 등이 깊으면서도 넓게 파는 배우라면 이에 반해 전지현은 한 우물을 깊게 파는 스타일이다. 한 우물만 깊게 판다는 게 결코 떨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른 성격의 배우일 따름이다. 모두가 전도연, 송강호일 필요는 없다.

전지현도 한때 연기폭을 넓히기 위해 다양한 도전을 시도했다. 하지만 자기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기에 반응도 좋지 않았다. 이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을 찾아 입고 스펙트럼도 차츰차츰 넓혀가는 중이다. 의도적인 시행착오를 다시 겪을 필요는 없다. 꾸준히 한길을 간다면 세월이 모든 걸 해결해줄 것이다.



사실 난 10여년 넘게 연예기자로서 전지현의 연기행로를 쭉 지켜봤다. 최근 다시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본인이 연기를 하면서 무척 즐거워하게 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CF의 여왕’으로 군림할 때 그의 모습은 왠지 연기를 즐기기보다 숙제를 하듯이 열심히 노력만 하는 모습이었다. 결혼을 통해 안정감을 갖고 연기자로서 정체성을 찾으면서 연기의 맛을 알게 된 것이다. 배우로서 만개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에 대중들도 함께 행복해지고 있다.

앞으로 전지현의 연기 인생은 어떤 곡선을 그릴까. 아직은 단언할 수 없다. 여전히 젊기에 변수가 여전히 있다. 하지만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꾸준히 지켜보는 건 대중에게 크나큰 즐거움이 될 듯하다.

글. 최재욱 대중문화평론가 fatdeer69@gmail.com
사진제공. HB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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