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순이 돌아왔다. 그것도 멋있게. 원신연 감독도 컴백했다. 그것도 제대로. 영화 ‘세븐 데이즈’로 인연을 맺은 박희순과 원신연 감독은 ‘용의자’로 뭉쳤다. ‘세븐 데이즈’로 박희순도, 원 감독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이후 행보는 다소 내리막이다. 박희순은 이후 여러 작품에 출연했으나 그다지 큰 주목을 끌기 못했다. 원 감독은 알다시피 ‘용의자’가 ‘세븐 데이즈’ 다음 작품이다. 다른 작품에 매달리면서 오랜 시간을 보낸 탓이다. 위기의 순간에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시너지를 냈다. 박희순은 특유의 목소리 톤과 어우러지는 무게감 있는 민대령으로 멋을 한껏 냈다. 원신연 감독은 액션 감독 출신답게 액션 시퀀스에 힘을 쏟았다. 그리고 ‘용의자’는 두 사람에게 흥행을 선물했다.

Q. 영화 ‘세븐데이즈’ 이후 원신연 감독과 다시 만났다.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결정했을 만큼 감독에 대한 신뢰감이 대단한 것 같다. 감독만을 믿고 이 작품을 온전히 선택한 게 맞는 건가. 그리고 그 신뢰감의 바탕은 무엇인가.
박희순 : 80~90%다. ‘세븐데이즈’ 작업했던 경험들이 굉장히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역할 자체도 튀는 역할이긴 했지만, 영화하면서 처음으로 신나게 놀았던 것 같다. 스스로도 진지하게는 많이 해봤지만, 재밌게 뛰어 놀았던 건 처음이다. 그만큼 나한테 신뢰와 믿음을 줬고, 마음대로 뛰어놀 수 있게 해줬다. 영화를 하다보면 감독이 싫어하지 않을까? 제지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마음대로 시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세븐데이즈’에서는 모든 것을 다 시도해볼 수 있을 정도로 자율권을 부여 받았다. 내 맘대로 애드리브도 해보고, 많은 걸 저질러 봤다. 그리고 한 가지를 만들어 가면, 연출이 2,3가지를 더해 디렉션을 주니까 마냥 신났던 것 같다. 그 기운으로 동년배 친구가 됐고, 그러면서 인간적인 믿음도 생겼다. 이 사람은 사적으로, 일적으로 아주 좋은 친구이면서 동시에 믿을 수 있는 몇몇 중에 하나라는 확신이 생겼다. 이 작품도 쉽게 하자는 말을 하지 않고, 제반 상황이 다 결정됐을 때 하자고 했다. 신중한 사람이란 것을 알기 때문에 대본을 보지 않고도 ‘오케이’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대본은 한 번 보고 하는 게 맞겠다 싶어서.

Q. 어! 대본 보지 않고 결정했다고 하지 않았나.
박희순 :
형식적인 절차라고 생각하면 된다. (웃음)

Q. 그렇게 믿고 신뢰하는 원신연 감독이었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볼 때도 영화적 재미와 완성도를 판단하는 기준은 조금 달랐을 것 같다.
박희순 :
만약에 같은 역할인데 내가 모르는, 믿음이 없는 감독이었다면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왜냐면, 대본상에 나와 있는 민대령은 화자 역할이다. 내 대사 90%가 지동철 이야기다. 때문에 민대령 캐릭터 자체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게 많이 제약돼 있었다. 그래서 믿음이 없는 감독이랑 했다면 쉽게 ‘오케이’ 했을까 하는 물음표가 있다. 물론 내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원신연이라면 조금 더 입체적으로 만들어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Q. ‘세븐 데이즈’ 때는 마음껏 뛰어 놀았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어땠나. 그때처럼 하기엔 어려웠을 것 같다.
박희순 :
‘세븐 데이즈’도 ‘목요일의 아이’에서 바뀐 건데, 그 당시 역할은 좋은데 조금 더 활력을 넣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감독이 바뀌고 나서 얘기도 안했는데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각색을 해 왔더라. 무술감독 출신으로서 액션만 강한 게 아니라 각색에도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이처럼 생각자체가 비슷한 지점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오히려 반대였다. ‘세븐 데이즈’는 마음껏 놀게 했다면, 이번엔 철저히 관리, 감독을 받았다. 중심축을 잡아야 하는 역할이고, 지동철과 김석호 모두에게 압력을 주는 동시에 이야기를 끌어가는 화자라고 이야기하더라. 그러면서 이 대본에 충실하고, 중심을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여기에 100% 공감했고, 따랐다. 사실 ‘세븐 데이즈’ 때처럼 껄렁껄렁하고, 조금 더 풀어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으나, 그 역할은 조대위가 할 테니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번에는 토시 하나 바꿀 때도 모두 허락 받고 할 정도였다.

Q. 사적인 친분이 있더라도 카메라 앞에서 원신연 감독과 만나는 건 7년 만이다. 바뀐 점도 있을 테고, 그대로인 점도 있을 것 같다. 7년 만에 다시 만난 원신연 감독, 박희순만의 관점에서 말해 달라.
박희순 :
‘세븐 데이즈’에서 원신연 감독은 ‘놀자’, ‘대중하자’가 모토였다. 당시 촬영감독도 이 모토에 한몫했다. 하지만 그들의 대본은 너덜너덜했다. 그만큼 철저하게 공부한 사람들인데 현장에서는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하자는 거였다. 이번에도 변함은 없었지만, 그 공부 양이 2~3배였던 것 같다. 액션 시퀀스가 많고, 자칫하면 큰 사고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사전 답사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감히 ‘대충하자’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보통 플랜카드를 걸면 ‘용의자 대박’ 이럴 텐데 이번엔 ‘용의자 안전제일’ ‘안전우선’이 걸릴 정도였다. 그만큼 더 연구하고, 공부하고, 칼을 갈았다는 게 보였다. 그럼에도 같았던 건 그 사람의 성품이다. 먼저 배려하고, 사람을 존중하고, 인간적인 면에서는 변함없었다. 촬영현장을 편안하게 이끌고, 배우들이 역량을 마음껏 내보일 수 있도록 끌어주는 건 강력해진 것 같다.

Q. 원신연 감독도 ‘세븐 데이즈’로 조명받기 시작했지만, 사실 박희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작품 이후 행보는 조금 아쉽다. 평가와 흥행 모두 안 좋은 작품도 있고, 평가는 좋았지만 흥행이 안 된 작품도 있다.
박희순 :
최선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운이라는 것도 무시 못 한다. 작품, 캐릭터, 흥행 등 삼박자가 다 맞는 게 쉽지 않다. 그렇다고 무작정 한 것은 한 작품도 없다. 한 작품, 한 작품 신중하게 골랐고,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관객과 조금씩 엇나가서 안타까웠고, 힘들었다. ‘세븐 데이즈’가 전환점이 됐듯, ‘용의자’가 그럴 거란 믿음이 있다. 흥행을 한다는 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작품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과 같다. 흥행 배우로 설 때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아질 수 있다. 흥행 배우가 되고, 그 위치가 견고하게 된다면 작은 영화를 해도 흥행에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면 좀 더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흥행이 중요하다.


Q. 한 동안 흥행 면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는데, 걱정이 많았겠다. 작품을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생겼을 것 같다.
박희순 :
그 때가 ‘용의자’ 전이었다. ‘아, 아무도 안 쓰는 거 아냐. 나도 진짜 흥행해야 하는데’란 두려움이 조금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용의자’를 결정하는데 힘이 됐던 것 같다. 원신연 감독에 대한 80~90% 마음이 있었지만, 나머지 10~20% 안에는 캐릭터에 대한 믿음도 있었다. ‘용의자’를 함으로서 흥행할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Q. 이번 영화의 흥행에 대한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크겠다.
박희순 :
1차 목표는 손익분기점이다. ‘용의자’의 손익 분기점이 250만인데, 이게 내 최고 기록을 넘는 거다. (참고로, ‘용의자’는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6일까지 전국 317만 6,939명을 동원했다.)

Q. 그리고 흥행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은 어디서 나온 건가.
박희순 :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장르임에도, 원신연이기 때문에 자신감이 있었다. 대본을 보면, 액션을 디테일하게 지문에 넣어 놨다. 대사보다 지문이 더 많았고, 액션을 세세하게 적어 놨다. 이 지문에 있는 액션만 보여줘도 흥행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흥행 작품들을 보면, 시도하지 않았던 것들이 꽤 있었던 걸로 생각되는데, ‘용의자’ 정도의 퀄리티가 나오는 액션 영화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Q. 맞다. ‘용의자’는 액션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영화다. 좁은 골목에서 펼쳐지는 자동차 추격 장면도 인상적이었고. 무엇보다 어떻게 촬영을 했을지 궁금하다.
박희순 :
그건 영업비밀이다. (웃음) 재개발 지역을 많이 돌아다녔고, 최대한 인적이 드문 곳에서 촬영했다. 그리고 엑스트라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액션 감독 출신답게 엑스트라가 필요한 가장 위험한 장면은 원신연 감독이 직접 하기도 했다. 구체적인 촬영 과정은 나중에 메이킹 영상을 보길 바란다. (웃음)

Q. 사실 마지막에 뭔가 멋진 박희순만의 액션 시퀀스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공유처럼은 아니더라도. 그런데 그런 맨손 액션이 없어 조금 아쉽긴 했다.
박희순 :
막판에 붙을 줄 알았는데 나도 아쉬웠다. (웃음) 지동철과 김석호의 대치가 감정적으로 중요했고, 나는 그 둘이 마지막에 붙을 수 있도록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이었다. 맞붙을 여지가 없었다. 2편에서 기대해 보겠다.


Q. 그래도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에서 굉장히 멋있게 나왔다고 생각한다. 특유의 목소리 톤과 역할 그리고 분위기가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원신연 감독이라서 가능했을 것 같기도 하다.
박희순 :
맞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에 대해 굉장히 잘 알고 있다. 그간에 해온 작품들에 대해서도 매번 시사회 때 오고, 코멘트를 해준다. 또 작품을 정할 때 모니터를 부탁하곤 한다. 때문에 다른 작품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박희순의 새로운 면을 보여줄 수 있는 자신감이 분명 원신연 감독에게 있었다. ‘세븐데이즈’ 이전엔 웃음 코드가 있는 역할을 안 해 봤는데 그걸 끄집어 내준 게 원신연 감독이기도 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센 역할은 많이 했지만, 따뜻한 매력이 있으면서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역할은 해보지 않았던 부분이다. 이런 게 시너지라고 생각한다.

Q. 엄밀하게 말하면 ‘용의자’에서 크레딧 1번은 아니다. ‘의뢰인’ 당시 인터뷰를 보니 주연하면서 잠시 잊은 ‘잽’의 소중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캐릭터는 ‘잽’보다 ‘스트레이트’ 한방이었던 것 같은데.
박희순 :
지동철 이야기가 중심이다. 그러다 보니 민대령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가 별로 없어 갈증이 있긴 했다. 편집에서 잘려나간 장면도 있고. 또 욕심을 부린다면 조대위가 지닌 웃음 포인트도 가져올 수도 있었다. 그런데 전체를 중요시하고, 내가 맡은 임무에 대해 감독의 의견을 존중하고 믿었다. 이번에는 이걸로 만족한다.

Q. 특히 공유의 이미지 변신이 두드러졌다. 스크린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느껴졌다. 직접 옆에서 본 공유는 어땠나.
박희순 :
처음 만났을 때 그 친구가 얼마나 몰입돼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몸가짐이 돼 있었다. 촬영하면서 보니까 마음가짐도 빠져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자기 스스로 공유의 몸이 아니라 지동철의 몸이라고 하더라. 그리고 센 얼굴만 있는 게 아니라 마지막에 풀어주기 직전 나를 보는 표정은 사슴 같다. 순박함과 거친 얼굴을 같이 만들어낸다는 건 캐릭터에 젖어있지 않으면 힘들다고 본다. 동생으로서 대견하고 멋있어 보였다.


Q. 공유처럼 이미지 변신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박희순 역시 그간 변화를 우선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은데 앞으로도 그럴 건가.
박희순 :
성향이니까 바뀔 순 없는데 최근 들어 대중이 원하는 게 뭘까 생각해보고 있다. 바뀌는 걸 좋아하는지, 아니면 구축하는 게 좋은 것인지. 원신연 감독이 지동철도, 김석호도, 민대령도 다 어울린다는 얘기를 했다. 그건 어떤 한 캐릭터에 박희순이란 배우가 특화되지 않았다는 거다. 그게 장점일 수도, 단점일 수도 있다. 예전에는 그에 대한 부담이 없었다면, 요즘은 생기는 것 같다. 괜히 이것저것 하다 밥그릇도 못 챙기는 건 아닐까, 잘 하는 걸 계속 할까 싶기도 하다.

Q. 그럼 스스로 생각했을 때 잘하는 건 어떤 건가.
박희순 :
껄렁껄렁하면서도 유머가 있는 인물. ‘세븐데이즈’, ‘맨발의 꿈’ 같은 게 하는 것도 재밌고, 잘 맞는 것 같다. 무게 잡는 건 100% 연기다.

Q. ‘용의자’ 이후 민대령과 비슷한 성격의 캐릭터 제안이 이어질 것 같다. 배우들도 딜레마일 것 같은데 변화와 유지, 균형을 잘 맞춰야 할 것 같다.
박희순 :
‘세븐데이즈’ 이후 비슷한 게 많이 들어왔는데 재미가 없었다. 재밌고, 마음이 갈 정도로 작품이 괜찮았다면 (이미지가) 반복되더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거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톤은 비슷하더라도 ‘용의자’보다 재밌고, 관심이 가는 캐릭터라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과거보다 여지는 넓어졌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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