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기억을 1990년대까지 돌릴 필요도 없다. 그저 tvN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가 방송을 앞둔 지난 10월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나정이 역의 고아라, 그리고 삼천포 역의 김성균에 의문을 품었다. 쓰레기 역의 정우나 해태 역의 손호준은 영화 ‘바람’의 팬을 제외하고는 큰 관심도 없었다. 말 그대로 신인이었던 빙그레 역의 바로(B1A4)와 조윤진 역의 도희(타이니지) 역시도 화제가 되는 캐스팅이 아니었다. 그나마 칠봉 역의 유연석이 영화 ‘건축학개론’을 시작으로 ‘늑대소년’이나 ‘구가의 서’를 통해 주목받고 있을 뿐이었다.tvN ‘응답하라 1994′의 출연해 잭팟을 터뜨린 배우들참으로 뜨거웠다. tvN ‘응답하라 1994′ 속 신촌하숙집의 이야기. 나정이(고아라)의 남편이 누구인가를 놓고 핏대를 세웠지만, 매회 우리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 것은 신촌하숙집 모든 이의 젊은 날을 통해 우리가 걸어온 1990년대를 추억할 수 있었던 바로 그 점이었다.
나정이의 대학생활을 통해 우리의 새내기 시절을 떠올렸고, 삼천포(김성균)와 윤진(도희)의 풋풋한 캠퍼스 사랑을 통해 그 시절 우리의 설익은 사랑을 돌이켰다. 해태(손호준)와 삼천포의 투닥거림을 통해 그 시절 얄팍했으나 뜨거웠던 우정을 기억해볼 수 있었다.
한 편의 드라마가 인생을 사는 법을 알지 못해 서툴렀으나 지금보다는 훨씬 더 용기있었던 젊은 날의 나를 소환시켜 준 것이다. 오는 28일 막을 내리는 ‘응답하라 1994′. 그 뜨거운 여운 속에 우리는 2013년을 마무리 하게 되었다.
이미 전작 ‘응답하라 1997′(이하 응칠)로 인해 원석발굴 능력을 입증한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놈의 의심이란 끝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이 열린 ‘응답하라 1994′는 첫 회부터 우리를 매료시키고 만다. 서울역에 도착해 신촌하숙집까지 10시간의 여정을 끝낸 삼천포를 만난 순간 그는 우리 모두의 동기가 돼버렸다. 짐승같은 쓰레기가 허리가 아픈 나정이를 위해 과자봉지를 던진 순간, 그는 나의 첫사랑이 돼버렸다. 칠봉이까지 가세해 이 사랑을 흔들기 시작하자 내 마음도 따라 흔들렸다. 삼천포와 해태, 윤진, 빙그레의 이야기들도 가슴에 콱 박혀버렸다. 의심했던 배우들이 감동을 가져왔다. 연기력 논란은 그 어렵다는 사투리 연기 가운데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한 신원호 PD의 마법(?)을 공개한다.
먼저 그는 기존의 것을 답습하는 방식을 지양했다. 사실 고아라나 정우, 바로, 유연석, 김성균 등은 연기력이 부족한 배우들은 결코 아니다. 이들이 주목받았던 이유는 못하던 연기를 잘 해서가 아니라 파격에 가까운 캐스팅 그 자체 때문이었다.
tvN ‘응답하라1994′ 속 배우들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늘 예뻤던 고아라는 수더분한 여대생으로 분했고, 영화판에서는 일찍부터 주목받았으나 TV라는 대중적 매체를 통해 자신을 알릴 기회가 없었던 정우와 손호준은 신원호 PD의 손을 잡고 스타가 되었다. 늘 첫사랑 킬러로만 등장하던 유연석은 누구보다 달달한 서울남자로, 살벌한 살인마로 스크린을 유영하던 김성균은 수줍은 새내기로 분한 것이다. 이미 연기적으로 가능성이 입증된 배우에게 그들 스스로가 신이 나는 판을 마련해준 것은 신원호 PD가 한 일이었다.모험을 성공으로 만들어버린 신원호 PD. 연기에 기본기가 없는 신인들을 다루는 방식도 확실히 다르다. 예능PD 출신의 그는 리얼버라이어티로 이름 붙여진 현장성이 강한 프로그램을 연출하는데 익숙하다. 드라마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넘어와서도 그는 작위적으로 그려넣고 꾸미는 방식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내려 했다. 완전한 신인인 도희와 바로에게도 따로 연기수업을 받지 말라고 말한 것도 이런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실제로도 지방출신 배우들을 기용, 사투리 연기에서 어색함을 최대한 덜었다. 그리고 캐스팅을 확정짓고 실제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 충분한 준비기간을 줌으로써 배우가 그 인물로 걸어들어가 몰입할 수 있는 탄탄한 기본기를 마련할 수 있도록 했다. 과정 속에서는 배우와 인물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를 해 신뢰를 쌓고 배우 스스로도 생각할 시간을 주기는 했지만, 어떤 명확한 디렉션 속에 배우의 연기를 가두지 않는다.
배우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리더, 신원호 호에 탑승한 이들은 그렇게 이번에도 어김없이 스타덤에 올랐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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