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한 해 동안 제작된 일본 원작 리메이크 드라마들. SBS ‘수상한 가정부’, MBC ‘여왕의 교실’, KBS2 ‘직장의 신’,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한국 드라마 시장에 일본 원작 드라마 리메이크 열풍이 불고 있다. 올 상반기만 해도 KBS 2TV ‘직장의 신’,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등 다수의 리메이크 작품이 방송됐고, 지난달 23일에는 2011년 일본 NTV에서 방송돼 평균시청률 40%를 기록한 흥행작 ‘가정부 미타’의 리메이크 드라마 SBS ‘수상한 가정부’가 첫 전파를 탔다.

현재 ‘수상한 가정부’의 성적표는 다소 초라한 편이다. 지난 8일 방송된 6회는 전국시청률 7.4%(이하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과도한 원작 베끼기’라는 평과 함께 최지우의 연기력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지난 8월 1일 종방한 MBC ‘여왕의 교실’ 역시 10%에 못 미친 시청률을 기록하며 초라하게 막을 내렸다.

리메이크 드라마 제작이 녹록지 않음에도 이런 시도가 계속되고 있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지상파 뿐 아니라, 케이블채널, 종합편성채널 등 드라마가 방송될 환경이 늘어나 한 해 제작 가능한 드라마 편수도 많아지면서 드라마 소재 고갈 현상이 나타났다. MBC ‘하얀거탑’(2007), ‘닥터진’(2012), KBS 2TV ‘공부의 신’(2010) 등 일본 리메이크 작품들이 소재의 신선함에 한국적 느낌과 사회메시지를 적절히 녹여냈다는 호평을 받은 영향도 있다. 시청률의 전쟁터가 되어버린 드라마 시장에서 리메이크 드라마란 생존을 위한 또 하나의 전략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또한 드라마 내수시장이 좁은 국내 여건상 일본 원작 드라마 리메이크는 차후 안정적인 한류 시장을 겨냥한 콘텐츠 마케팅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일례로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일본 제작사가 참여하기도 했다.

일본 원작 드라마 리메이크 자체가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문제는 리메이크 방식에 있다. 노동렬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한 해 12편 이상의 미니시리즈를 제작할 여력이 있는 지상파 채널에서는 리메이크 드라마 제작이 피할 수 없는 유혹일 것”이라며 “최근 ‘그 겨울, 바람이 분다’와 같은 작품들이 일본제작사·유통사를 끼고 제작하는 것도 애초에 국내 시장보다는 안정적인 한류 시장을 겨냥한 포석이다”고 지적했다.

단순히 리메이크했다는 사실만으로 성공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노 교수는 “장르드라마가 아닌 이상에야 (원작을) 적당히 바꿔서는 공감대 형성이 힘들다”며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는 노희경 작가가 있었고, ‘직장의 신’에서는 작품보다도 한국 사회현상을 잘 녹여낸 대본과 그걸 연기로 풀어낸 배우 김혜수의 역량이 돋보였다는 점에서 드라마의 흥행에 원작의 힘이 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노 교수는 “리메이크는 제2의 창작이다”며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서 (일본 작품을) 참조하는 정도는 괜찮을지 몰라도, 윤색·각색 과정을 통해 한국 시청자의 구미에 맞게 작품을 재창조할 수 없다면 리메이크를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일본 원작 드라마 리메이크 자체가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이 한국드라마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숨 고르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면, 종국에는 한국 드라마 콘텐츠는 정체성을 잃고 단순히 마케팅을 위한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제공. SBS, K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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