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키리야 공연. 생전 관객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풍경을 처음 보았다

이제 일본 투어의 마지막 글을 앞두고 있다. 사실 시간 순으로 쓰거나, 도시의 이동 루트를 따라서 글을 쓰는 것이 기록하는 입장에서는 편하겠지만, 뭐랄까 두서없이 다녀온 투어인 만큼 후기도 두서없이 쓰고 싶었다. 마지막 파트는 80일 간의 투어에서 쉼터의 역할을 했던 곳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볼까 한다. 홈스테잉을 제공하던 친구가 있어 머무는 곳으로 삼았었지만 투어 중반부터는 그냥 살던 동네 같은 느낌이 되어버린 카나자와, 환승하다가 정이 들어버린 츠루가, 뜻하지 않았던 일정이었지만 지나친 환대를 받았던 시모노세키와 코쿠라, 음식이 맛있었던 후쿠오카, 그리고 이런 인연도 있었나 했던 쿠마모토에서 있었던 마지막 이야기를 풀겠다.

카나자와
카나자와는 이번 투어가 두 번째 방문이었다. 작년 여름 이후 거의 1년 만이었다. 6월 어느 날 역에 도착하니 작년의 그 느낌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이라면 신칸센 확장 공사로 역이 조금 어수선해진 정도. 때마침 도착한 금요일은 카나자와 백만석 마츠리(햐쿠만고쿠, 百万石)가 시작하는 날이었다.

아스나씨의 집에서 배란다에서 보이는 카나자와의 풍경. 이…이건 안양천의 사촌인가?

카나자와의 첫 공연은 카포(Kapo)라는 갤러리에서 가졌고, 두 번째는 오래된 카페이면서 공연장이기도 한 모키리야(もっきりや)에서 가졌다. 이 모키리야는 404도 공연을 하게 될 예정이었고, 올 해 10월 같은 레이블 동료인 김태춘도 공연을 가지게 될 예정이다. 카포는 이미 작년에 단독으로 공연을 가졌던 곳인데, 올해는 작년 관객으로 만났던 로컬 뮤지션인 오바케노킨(obakenokeane)과 교81(kyo81)과 함께 했다. 특히 오바케노킨은 작년 내 공연을 보고 어쿠스틱 기타에 매력을 느꼈다고 칭찬해줘서 머쓱했고, 교81은 사운드아트 뮤지션인데 카포의 휑한 분위기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다음날 모키리야의 공연은 알프레드 비치 샌달(Alfred Beach Sandal)의 유명세에 묻어갔다. 토요일 점심시간, 모키리야에 줄 서있는 관객들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다니. 물론 내가 스포트라이트는 아니었지만 이런 건 묻어가는 입장이라도 감동은 같다. 카나자와는 연배가 비슷한 오거나이저들과 아스나, 리마카토 같은 친구들이 있어서 6월 중순부터는 이곳에 쭉 머물고 있었다. 그냥 동네 친구처럼 저녁에 찻집에서 만나 실컷 수다를 떨고, 코아미씨의 온천 입욕권 선물로 온천을 다니고, 바다를 보러 다니고, 하루 종일 걸어서 카나자와 이곳 저곳을 산책했었다. 처음으로 “난 투어용 인가?”라고 생각했던 게, 카나자와는 비와 눈이 많은 지방인데, 6월 중순 10일 넘게 머물면서 장마인데도 한 번도 비가 오지 않아 다들 나를 “럭키 보이”라고 불렀다.

7월에는 카자자와의 공연은 타이요노 오나라(태양의 방귀) 인디 페스티발이었는데, 저 타이틀은 유명한 책 제목이라고 한다. 카나자와의 로컬 씬과 다른 도시에서 온 뮤지션들이 하루 종일 두 개의 공간에서 번갈아 가며 공연을 가졌는데, 뭐랄까 내 음악이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꿋꿋이 공연도 했고, 가져온 음반도 완판했다. 오히려 카나자와 로컬의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는데, 다른 도시와는 달리 밴드들도 펑크나 하드코어처럼 강한 음악이 많았고, 또 반면 여러 장비들로 실험하는 사운드 아트 계열의 뮤지션도 많았다.

드론 갑자원을 위해 모레를 훔치는 중. 뮤지션 답게 봉투는 타워레코드 비닐봉투로

마지막 공연은 2주전 소개한 코베의 스페이스 오(space eauuu)를 위시한 칸사이 팀들과 아스나가 속한 레이블을 대표한 도쿄팀들이 드롱 갑자원(Drone Koshien Kanazawa)이라는 이벤트로 모두 카나자와에 모여 마치 야구 하듯이 이벤트를 가졌다. 갑자원하면 모래가 빠질 수 있나. 그래서 아스나에게 모레 아이디어를 제안했더니 좋다고 했다. 그리고 아스나와 나는 모레를 구하러(혹은 훔치러?) 카나자와 해안가를 누비기도 했다. 이벤트 때 나는 스페이스 오의 칸사이 팀 소속이 되어서 선서 선수로 오프닝을 맡았다. 유학생 자격이었다. 후일담이지만 칸사이에서 만나던 친구들을 카나자와에서 만나니 이 또한 참 신선했었다. 떠나는 친구들을 향해 “칸사이 포에버!”라고 헤어질 때 외쳤다. 난 다음날 5시에 일어나서 카나자와에서 15시간 30분 동안 보통열차를 타고 시모노세키로 떠나야 했다.

드론 갑자원에서는 모두 F 심볼이 있는 야구모자를 쓰고 공연을 했다. 난 F가 FuXX의 F라고 우겼지만…

츠루가
칸사이에서 카나자와로 보통열차를 타면 대략 4~5시간 정도 걸리고, 갈아타기를 2~3번 정도 해야 하는데, 꼭 이 츠루가라는 역에서 40분 이상 열차를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 보니 표를 보여주면 역 밖으로 나와 간단히 끼니를 때울 수도 있고 편의점에 들러 물건도 살 수 있었는데, 쿄토-카나자와를 몇 번 이동하다 보니 츠루가의 바다를 보고 싶었다. 나중에 카나자와에서 머물면서 이곳 츠루가에서 투어 말미에 나만의 휴가를 보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라쿠텐에서 대략 이벤트 중인 저렴한 호텔을 물색하고 2박을 예약, 무작정 츠루가로 떠났다. 휴가가 필요했던 이유는 투어의 마지막 15일 동안 공연이 12개가 잡힌 것도 있고, 이동 경로를 생각하니 “아, 이제 더 이상 여유 있게 지내지는 못하겠구나”라는 걱정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츠루가 역 앞부터 미야모토 레이지의 만화 캐릭터 거리가 시작된다. 저 동전은 전부 1엔짜리 동전

츠루가 역에서 내리니 만화 ‘은하철도 999’로 유명한 “마츠모토 레이지”의 만화 캐릭터 동상이 거리에 드문드문 세워져 있었다. 동상 하나하나를 사진을 찍으면서 걸으니 한 2시간 정도 역 앞의 거리를 크게 돌게 되는 것이다. 여름의 끝판 대장 격인 7월 여름의 무더위 때문에, 산책을 끝내고 호텔에 들어가자마자 더위를 먹었는지 처음 목적이었던 바다고, 츠루가의 소나무 숲이고 다 필요 없다는 생각에 에어콘 켜놓고 이틀 내내 잠만 잤었다. 그래서 지금도 츠루가의 바다는 상상의 바다가 되어버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칸사이에서 알게 된 프로페셔널 오디언스(전문 관객)인 이시하시씨가 츠루가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 직접 들은 적은 있는데, 직접 가보지 않는 이상, 일본의 지명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아 잊어버리고 있었거든. 트위터에서 아쉬워하는 이시하시씨는 다음에 츠루가에서 만나기로 하자.

시모노세키
시모노세키는 이번 투어 때 처음으로 방문한 도시였다. 올해 봄 칸사이 투어 때 만난 마스모토 코타(航太?本)씨의 소개로 시모노세키의 공연이 성사되었다. 시모노세키 역 근처에 Cafe Com의 주인인 나오씨가 뮤지션이기도 하고 직접 자신의 카페에서 공연도 하니 만남을 주선해준 것이다. 5월 칸사이 후, 후쿠오카로 넘어가 처음으로 나오씨를 만났었다. 그런데, 이게 참 놀라운 게…거리가 있어서 그런가, 칸사이와는 마치 딴 나라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말 넓긴 넓다는 느낌이 들었다.

첫 시모노세키 공연. 공연이 끝난 후의 카페

5월의 시모노세키 공연은 정말 재밌었다. 시모노세키 역 근처에는 ‘부산문’이라는 큰 문이 있는데, 부산과의 거리가 가까워서 그런지 한국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래서 환대를 받고 있구나 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부산문을 지나면 지금은 그리 활발하지 않지만 시장 거리에서도 심심치 않게 한국어가 들렸다. 나오씨는 소울자매(ソウル姉妹)라는 밴드를 하고 있었는데, 나오씨와 미스즈씨(기타), 그리고 남편되시는 후지무라씨(키보드) 그리고 베이시스트로 구성된 4인조 밴드. 이날 공연은 그냥 조인트 공연이었는데, 갑자기 공연 중반에 타이틀이 ‘일한(한일) 우호의 날’로 바뀌고 소울자매가 서울자매로 이름이 바뀌어버린 것. (소울과 서울의 카타카나 표기는 똑같다.) 여튼 Cafe Com은 관객으로 빈공간이 없을 정도였고, 훈훈하게 공연은 끝났다.

마지막 시모노세키 공연. 후지무라씨의 포즈와 나의 포즈가 뭔가 설정샷 같은 느낌인데…

7월 다시 시모노세키를 방문했다. 시모노세키에서는 나오, 후지무라 부부의 집에서 홈스테잉을 했다. 오래된 일본식 목조 2층 건물이었는데, 2층의 방을 내게 내주었다. 그래서 투어의 마지막 일주일은 나오씨 집에서 지냈었다. 마지막 시모노세키 공연은 나오씨의 친구이기도 한 카즈씨의 카페인 히요코헤드(Hiyokohead)에서 가졌다. 공연 전 날 카즈씨의 딸이 태어나서, 카즈씨는 아주 피곤한 얼굴로 가게 문을 열어주었다. 교통이 그다지 좋지 않아 후지무라씨가 자동차로 나를 태우고 다녀주었는데, 그 전날 후지무라씨에게 한 곡 정도 반주를 넌지시 부탁했더니 저녁부터 멜로디온으로 ‘Flair’를 연습했다. 그리고 히요코헤드의 공연은 후지무라씨의 멋진 ‘Flair’ 연주로 끝냈다. 이날 공연 사진이 아주 잘나왔었다.

아키오씨, 후지무라씨 그리고 나. 히로시마식 오코노미야키 익기를 기다리는 중

마지막으로 맞은편에 사는 아키오씨. 이 친구는 배를 모는 선장인데, 놀랍게도 시간을 쪼개 음악을 한다. 토터즈 시티 밴드 일렉트로(Tortoise City Band Electro)라는 밴드를 하는데, 처음으로 음악과 캐릭터의 이질감이 큰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음악은 정말 청량감이 있는데, 캐릭터는 끈적끈적했다. 후쿠오카, 코쿠라 공연 할 때 대부분 찾아와 주었는데, 나중에 함께 공연도 해보고 싶다. 그런데 아키오는 티셔츠를 까뒤집으며 배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배타느라 시간없다요.”

글, 사진. 드린지 오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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