셉티마에서의 연주

5월부터 7월간 투어의 중반이었던 6월은 지옥과 천국을 다녀오는 기분이었다. 도쿄에서는 일정을 다 채우지도 않았는데 진심으로 서울로 돌아가고 싶을 만큼 마음이 약해지기도 했다. 아마 공항이 가지고 있는 그 어떤 분위기와 힘이 있었나 보다. 무엇보다 도시를 이동하면서 처음 만나는 공연장의 스텝들과 뮤지션들과 알아가는 것이 조금씩 버거워지고 있었다. 낯을 가리는 성격도 있었지만 일본어가 유창하지 않은 탓도 있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쯤 일본어도 조금씩 익숙해지고, 친구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면서 피곤한 몸과 마음이 투어의 끝을 향해가고 있었다.

도쿄
6월 15일 토요일, 신주쿠에 도착했다. 신주쿠역은 한창 공사 중이었는데, 아침 일찍 마츠모토에서 특급열차를 타고 내려와서인지 몸은 여전히 피곤했고 슬슬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일정은 15일부터 30일까지 보름 동안 머무는 것으로 잡긴 했는데, 예전에 밴드를 하면서 알고 지내던 형이 일정 때문에 25일부터 3일 정도 밖에 못 재워준다고 통보를 했다. 15일부터 당장 잘 곳을 찾는 게 문제였다. 도쿄의 첫 공연이 21일에 잡혀있어서, 공연 전까지 가진 돈으로 버텨야 했기 때문이었다. 기억으로는 주머니에 7000엔 정도 있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캐리어와 백팩과 기타를 들고 하네다 공항으로 갔다.

짐보쵸의 시쵸시츠의 스테이지. 그랜드 피아노가 인상적이었다. 입구는 좁지만, 속은 꽉차있다

하네다 공항이 최근 국제공항으로 다시 리모델링을 하면서 시설 말고도 서비스나 시스템이 많이 바뀌어서, “비행기를 놓쳐서 예산에 맞는 비행기 티켓을 기다리고 있다”는 핑계로 3일 정도를 공항에서 지냈다. 놀랍게도 그게 가능했던 것이다! 일단 공항은 핸드폰 충전이 가능했고, 와이파이가 무료였다. 여름이어서 그나마 시원한 에어콘이 항상 가동되고 있었고, 3층 탑승 층의 의자가 눕기에 딱 좋았다. 사실 도쿄에 도착한 날이 내 생일이었다. 3층의 모노레일이 바라보이는 큰 창이 있는 의자에서 누워서 생일축하 한다는 페이스북 글들을 읽었다. 누가 생일 선물로 천엔만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샤워룸 30분 이용료가 천엔이었다.

어떻게든 도쿄에서 버텨나가기 위해서는 관광이나 구경을 하면 안됐다. 움직이면 돈을 쓰게 되니까. 그렇게 3일을 버티고 6월 19일 드디어 교토 공연이 잡히게 됐다. ‘왜 교토야?’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일단 공연을 하면 조금이나마 관객들의 기부금으로 개런티를 받을 수 있고, 앨범 판매 수익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도쿄에서 교토 공연을 잡은 이유는 18일 저녁에 심야버스를 타고 교토로 가서 공연을 하고, 당일 저녁에 다시 심야버스를 타고 도쿄로 돌아오면 이틀 동안 버스에서 숙박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돈을 벌고 이틀 잠자리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18일 오전에 겨우 3000엔짜리 심야버스를 동전까지 긁어모아서 승차권을 살 수 있었다. 비상금으로 500엔 동전 하나 남기고 교토 공연만이 살길이라는 절박함으로 다녀왔었다. 심야버스의 승차감은 일본인 친구들에게도 말해주니 모두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할 정도였다. “사람을 위한 교통수단이 아닙니다.”

핫쵸보리의 나나하리의 스테이지. 아담해서 뮤지션도 관객도 집중하기 좋았다

도쿄에 오기 전에 카나자와에 잠깐 머문 적이 있었다. 카나자와는 아수나(ASUNA)라는 친구가 살고 있었는데, 이 친구가 내가 공연이 잡히지 않아 고민하고 있으니 트위터에 “드린지 오가 도쿄를 갑니다. 혹시 공연 잡아주실 분?”이라고 올려버린 것. 이 때 때마침 국내 밴드 404의 일본 투어를 기획하고 있던 우타카타 레코드의 토모코씨가 연락이 왔고, 도쿄 쪽에서 여러 곳의 공연 부킹을 토모코씨가 내게 포워딩 해주었다. 19일 교토 공연을 끝내고 그 날 저녁 다시 심야 버스를 타고 20일 아침 도쿄에 도착했다. 20일은 일본에서도 꽤 유명한 ‘도뮨(Dommune)’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라이브가 예정되어 있었다. 박다함씨는 한국 인디음악 소개를 위해 패널로 출연하기로 되어 있었고, 토모코씨가 중간에 라이브로 2곡을 할 수 있도록 진행자들과 기획을 했던 것이다. 난 토모코씨를 먼저 만난 후 뒤늦게 도착한 다함씨를 함께 마중하고 모두 토모코씨의 집으로 향했다. 다함씨가 선물로 면세 담배 한 보루를 줬다. 토모코씨 집에 도착하자, 다함과 토모코씨는 404의 투어에 대해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나는 토모코씨의 거실에서 미친 듯이 잤다. 침대 형 소파에 누워서 정말 미친 듯이 잤다.

도뮨의 라이브가 지옥 끝 행복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었을까? 도쿄에서 공연이 잡히기 시작하면서, 뜻밖의 시모키타자와 인디펜클럽 2013 페스티발의 (무료섹션이긴 하지만) 30분 간 라이브 기회도 얻게 되었고, 25일부터는 친한 형의 집에서도 잘 수 있게 되었다. 스이도바시역(水道橋) 인근의 짐보쵸의 시쵸시츠(試?室), 시부야 Music Org, 핫쵸보리(八丁堀)의 나나하리(七針), 스나가와(砂川)의 셉티마(Septima)에서 계속 공연을 가지게 되었다. 도쿄가 아무래도 서울처럼 대도시이다 보니 뮤지션뿐만 아니라 클럽이나 사운드 홀도 많다. 하지만, 서울의 홍대처럼 특정 지역에 다 모여 있다기보다는 여기저기 구청이나 동사무소처럼 공연장들이 있었다. 그나마 코엔지(高円寺)나 시모키타자와(下北?)가 다른 동네에 비해 클럽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 같았다. 공연도 기획공연이 대부분이었고, 어떤 공연들은 레이블에서 소소하게 만드는 공연들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관객들도 뮤지션을 보러 가는 경우도 있고, 레이블에 대한 애정과 신뢰라고 해야 할까, 꼭 동창회하는 느낌으로 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도쿄공연은 특이하게 관객들이 모이면 시끌시끌했었다. 관객들이 모두 서로 친하다! 이럴 수가! 심지어 관객들과 뮤지션도 서로 친하다! 이런 충격과 공포에 잠깐 빠지게 된다.



도쿄의 마지막 공연은 30일 시부야의 ‘바 보사(Bar Bossa)’라는 카페였다. 한국 인디음악을 정말 좋아하는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일요일 카페를 열지 않는데도 흔쾌히 공연 진행으로 부부의 주말 휴식을 양보해주었다. 이 날은 마침 같은 레이블의 빅 포니(Big Phony)가 잠깐 여행을 하고 있어 함께 공연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 공연이라서 그런가 처음엔 어색했던 도뮨의 진행자 분도 와주었고, ‘스위트 드림 프레스’의 후쿠다씨도 와주었고, 미디레코드의 츠카하라씨도 와주었다. 앰프와 마이크가 없는 공연이었는데 60명 정도의 관객들이 공간을 가득 매웠다. 아직도 해가 중천에 떠있던 오후, 도쿄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바 보사의 하야시씨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 다음 도시로 이동했다. 3000엔짜리 심야버스를 타고.

시부야 Bar Bossa에서의 마지막 공연. 이날은 여행을 온 빅 포니와 함께 공연을 했다

글, 사진. 드린지 오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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