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 – 무도나이트’에서 유희열과 유재석은 댄스냐, R&B냐를 두고 대단한 신경전을 벌였다. 2년에 한 번 TV 스크린 뿐 아니라 가요계까지 들썩이게 하는 ‘무한도전 가요제’. 가요계에서는 예능프로그램의 코믹한 노래들이 음원차트를 장악하는 것을 실소와 부러움으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국내에서 아이돌 스타 지드래곤, 인디밴드 장미여관과 같이 활동 반경이 전혀 다른 뮤지션들을 한 무대에 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TV 프로그램이기도 하다.보아와 길, 지드래곤과 정형돈, 장기하와 얼굴들과 하하, 김C와 정준하, 프라이머리와 박명수, 장미여관과 노홍철 등 다른 팀들은 이미 곡에 대한 스케치까지 구상해가고 있는 가운데 유희열은 R&B, 유재석은 댄스를 외치며 한 치의 양보 없이 장르 공방전을 펼쳤다. 유희열은 “재석이를 섹시스타로 만들 수 있겠다. 장르를 섹시한 음악을 만들어야겠다”고 제안했고, 유재석은 “음악은 좀 빨라야 하잖아, 신나야 되거든, 난 신나지 않으면 미치겠어”라고 답했다. 유희열은 기존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이 이적, 박명수와 걸었던 댄스노선을 타파할 것을 설득하고 “나랑 만났을 때는 그것을 깨보자 내가 널 남자로 만들어줄게 그게 R&B야”라고 말하고 왕년의 스타 바비 브라운의 미디엄템포 R&B를 예로 들었다. 하지만 유재석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같은 과’가 되길 거부하는 둘. 뮤지션 유희열은 개그맨 유재석의 시각에 맞춰 이런저런 설명을 해보지만, 유재석은 “빠른 거”를 외치며 “‘자가자가자가자가’ 잘게 쪼개주는 거”를 주문했다. 하지만 유희열은 마치 미리 만들어놓은 곡이 있는 듯이 포기할 줄 모른다. 둘의 중간선이 될 만한 노래는 뭐가 있을까?
유희열은 BPM 88에서 90 정도의 미디엄 템포 R&B를 원하고 있다. 유재석은 무조건 빠른 거를 말하는데 아마도 클럽에서 유행하는 스크릴렉스, 데이빗 게타 류의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lectronic Dance Music)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유희열이 고집하는 R&B는 흑인음악 전반을 지칭하는 상위 개념의 장르다. 국내에서는 이 용어가 난무하면서 ‘끈적끈적한 발라드’ 정도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이는 지극히 제한적인 접근이다. 20세기 초반의 가스펠과 블루스 이후 생겨난 소울, 디스코, 훵크(Funk), 두왑 등이 모두 R&B에 속한다. 한편 유재석이 원하는 그리고 댄스뮤직이란 말은 엄연히 말해 장르가 아니며 춤을 출 수 있는 모든 음악을 말한다. 춤출 수 있는 스윙 재즈, 로큰롤도 댄스뮤직인 것이다. 즉, 유희열과 유재석의 중간선으로 빠른 BPM의 댄서블한 R&B를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다음과 같은 곡을 참고해보면 어떨까?
유희열 유재석의 이런 변신 어떤가요?
1. Daft Punk의 ‘Get Lucky’2013년 전 세계적으로 다프트 펑크 열풍을 몰고 온 노래. 다프트 펑크는 본래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lectronic Dance Music)을 대표하는 뮤지션이다. 이 곡이 수록된 앨범 ‘Random Access Memories’(2013)의 음악들에는 일렉트로니카와 복고풍 디스코의 결합이 매끄럽게 나타나고 있다. 다프트 펑크 식의 아날로그 댄스뮤직이라고 할까? 특히 ‘디스코 마스터’ 쉭(Chic)의 나일 로저스가 함께 한 ‘Get Lucky’는 70년대 디스코에 맞닿아 있으면서도 클러버들을 춤추게 할 정도로 감각적인 그루브를 지니고 있다. 유희열과 유재석이 다프트 펑크 가면을 쓰고 등장하면 상당히 재밌을 듯. 아, 얼굴을 가리면 ‘매의 눈’을 볼 수 없겠군.
2. Prince ‘Kiss’
유희열이 말한 섹시한 R&B를 표현하는데 프린스만큼 적격인 뮤지션을 찾기 힘들 것이다. 온 몸에 쫙 달라붙는 반짝이 의상을 입고 무대에 등장해 간드러진 가성으로 노래하다가 살벌하게 블루스 기타를 연주하고, 끈적이는 소울 댄스를 추는 프린스. 그만큼 섹시한 남성 R&B 뮤지션도 없을 테니 말이다. 앨범 ‘Parade’(1986)에 수록된 노래 ‘Kiss’는 프린스의 섹시한 매력이 극대화된 곡이다. 이 앨범은 프린스가 그를 마이클 잭슨의 라이벌로 만들어버린 앨범 ‘Purple Rain’의 인기에서 벗어나 순수한 음악을 하고자 한 앨범. 그래서인지 흑인음악 특유의 원초적인 질감부터 실험성까지 잘 살아있으며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곡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때면 소름이 돋기도 한다. ‘Kiss’는 간결한 사운드로 극대화된 그루브를 들려주고 있다. 이 노래의 가성에서 프린스의 퇴폐적인 가성이 유재석과 유희열의 ‘불결한 가성’과도 왠지 어울릴 듯. 원곡 ‘쪽쪽’거리는 뽀뽀 소리를 들어보시길.
3. Robin Thicke ‘Blurred Lines’
올해 빌보드싱글차트에서 8주간 정상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킨 노래. 복고풍 디스코 풍이지만 동시에 트렌디함도 느껴지는, 근래 나온 곡 중 단연 ‘쿨’하고 섹시한 곡이다. 로빈 시크는 국내에는 낯설지만 오랜 경력을 가진 뮤지션이다. 어셔, 메리 제이 블라이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브랜디 등과 함께 작업해왔으며 이 곡이 담긴 앨범 ‘Blurred Lines’(2013)이 6집이다. ‘Blurred Lines’의 히트로 이제는 21세기 ‘블루 아이드 소울’ 뮤지션 중 대표주자로 꼽힐만한 위치에 다다랐다. 유재석이 원하는 “‘자가자가자가자가’ 잘게 쪼개주는 리듬”이 잘 살아있으며 유희열이 원하는 섹시함도 잘 담겼다. 여성들의 누드가 대거 등장하는 뮤직비디오로도 유명한 곡이다. 이 기회에 유희열과 유재석이 누드 뮤직비디오를 함께 찍어보면 어떨까? 유희열은 오히려 벼르고 있지 않을까?
4. Ohio Players ‘Sweet Sticky Thing’
‘달콤하고 끈적끈적한 것’이란 제목에서 나타나듯이 야릇한 노래. 유희열이 유재석에게 제안한 BPM 88에 가까운 속도를 가졌다. 유희열은 왜 유재석에게 미디엄템포의 R&B를 밀어붙이는 것일까? 혹시 ‘Sweet Sticky Thing’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해보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오하이오 플레이어스는 느릿한 그루브의 ‘슬로우 잼’에서 군계일학이라 할 만한 사운드를 들려줬다. 나체의 여인이 꿀을 떠먹는 앨범커버로 유명한 대표작 ‘Honey’(1975)에 담긴 ‘Sweet Sticky Thing’, ‘Let’s Love’, ‘Honey’는 오하이오 플레이어스의 스타일을 대변하는 로맨틱한 슬로우 잼 넘버들이다. 앨범커버 속의 꿀처럼 달콤하고, 여인처럼 섹시한 그루브가 영혼을 춤추게 한다. 유희열과 유재석이 이런 풍의 노래를 해봐도 되지 않을까? 꿀을 몸에 바르고 말이다.
5.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알앤비’
이번 ‘무한도전 가요제’ 섭외 과정에서 김태호 PD는 상당히 많은 인디 뮤지션들과 접선했다고 한다.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만큼 ‘무한도전 가요제’의 콘셉트를 잘 소화할만한 팀도 드물 것이다. 개그, 풍자부터 나름의 편곡 능력까지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알앤비’는 한국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R&B. 즉, 끈적거리는 발라드풍의 곡으로써 여자들이 좋아하지 않는 인디밴드를 그만두고 ‘알앤비’를 할 것이라는 굳센 의지를 담고 있다. 최근 최자-설리 스캔들이 터진 후 인디 신의 많은 록 뮤지션들이 힙합을 하지 않은 것을 땅을 치며 후회했다는 이야기들이 돌고 있는데, 그런 세태와 맞닿아 있는 가사라 할 수 있다. 선견지명인지 모르겠지만 이 노래에는 ‘나는 지금 설리에게 빠져 있기 때문에’라는 가사가 나온다. 유희열과 유재석이 이번 가요제를 통해 이런 신랄한 메시지를 던져주면 어떨까?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MBC, 소니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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