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모두 불완전한 존재라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 것 같아요. 2년 가까이 <힐링캠프>를 하면서 가장 많이 배운 점이죠”<힐링캠프> <화신> <자기야> <인기가요> 등 SBS의 주요 예능 네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최영인(46) CP는 아직도 해맑은 소녀다운 웃음을 간직하고 있다. 1990년 EBS에 입사해 PD 생활을 시작한 지 20년을 훌쩍 넘긴 그는 남다른 방송감과 트렌디한 감각으로 그 동안 <진실게임> <야심만만>에 이어 <힐링캠프>에 이르기까지 롱런하는 프로그램을 다수 탄생시켰다. 최근에는 방송가 여성 PD들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왕언니 격의 역할을 하며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그에게서 여성 PD로서의 일과 삶에 대해 들어보았다.
Q. 여성 PD 전성시대의 선두주자라는 평가를 많이 받는데
최영인 : 전성기라기보다 내가 나이가 가장 많아서 그렇게 보이는 거다.(웃음) 시대를 잘 만난거지. 근데 방송이 점점 세분화되면서 여자에게 잘 맞는다. 앞으로는 추세가 더 그렇게 될 것 같다. 작가들도 여자가 많고. 방송이 거대화되면서 협업 시스템으로 가면서 점점 소통 능력이 중요해지는 것 같다.
Q. 특히 예능 분야에서 여성 PD들의 강세가 두드러진 것 같다.
최영인 : 예능이라는 게 결국 서로 어우러져서 즐거움을 주는 분야인데 여자가 수다도 더 많이 떨고 부드러운 면이 있다는 면에서 강점이 있는 것 같다. 사실 방송은 혼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점점 소통 능력이 중요해지는 시대에 각 분야의 전문가를 모아 120% 능력을 발휘하도록 만드는 게 피디의 능력인 것 같다.
Q. 원활한 소통이라는 부분에서 여성 PD들의 강점이 발현되는 것 같나
최영인 : 패턴화시켜 얘기할 순 없지만 그런 면이 강한 것 같다. 상대방을 권위적이지 않고 수평적인 시선으로 대하는 느낌이 더 강하다. 시대가 그런 점을 점점 더 요구하기도 하고.
Q. 스스로를 평가해봤을 때는 어떤 리더라고 생각하나
최영인 : 잘 들어주는 리더?(웃음) 나이가 한참 어린 막내작가들과도 어떤 얘기든 스스럼 없이 하는 편이다. ‘나를 따르라’라고 하기 보다 뭐든지 의논할 수 있는 상대가 되려고 한다. PD들은 특히 자발성이 중요한 집단이기 때문에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게끔 하는 역할이 중요하다. 그 역할을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단점을 보완해주는 부분이나 잘하는 게 뭔지 파악해 제시해주는 부분 같은 것들. 그래서 사람에 대한 통찰력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것 같다. 다만 시간 내에 결정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단호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하는 스타일이다.
Q. 그런 면에서 후배 PD들에게 자주 강조하는 부분이 있나
최영인 : 난 무엇보다 연애를 하라고 권한다. 연애를 안하면 삶이 굉장히 건조해지고 그게 프로그램에도 드러난다. 자꾸 시선이 냉정해지기 때문에 시간없단 탓하지 말고 연애는 꼭 하라고 항상 얘기한다(웃음).
Q. 엄마로서의 경험이 프로그램에도 도움되나
최영인 : TV라는 매체는 굉장히 대중적이기 때문에 만드는 이들도 보편성을 따르는 게 시청자들의 시선에 더 맞지 않을까란 생각을 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경험을 하면서 나라를 초월하는 엄마들만의 공통 정서가 있다는 걸 발견했고, 또 사실 애를 키우다 보면 사람이 겸손해진다. 애는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웃음) 그래서인지 이젠 토크쇼에서 누가 어떤 얘기를 해도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는 느낌이다.
Q. <힐링캠프> 방송을 기획하고 시작한 지 벌써 2년이 다 돼 간다.
최영인 : 사실 프로그램은 생물체라 끊임없이 꿈틀꿈틀 발전하고 있다. 실제로 시청자들은 잘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1회와 지금의 방송분을 보면 엄청나게 큰 변화가 있다. 오래가는 프로그램을 잘 들여다보면 안 변하는 듯 하지만 조금씩 변화를 주고 그게 많이 쌓여가는 편이다. <힐링캠프>는 특히 고정된 포맷이 있다기보다 게스트에 맞춰 달라지기 때문에 변화 폭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힘도 들지만 재밌기도 하다.
Q. <힐링캠프>를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최영인 : 미국 연수 후 회사에 복귀해 <야심만만 2> <밤이면 밤마다> 등을 맡았다가 회사로부터 원톱 토크쇼 제안을 받았었다. 정말 하고 싶던 프로그램이었다.나이 마흔을 넘어가면서 개인적으로는 한 사람 얘기를 쭉 듣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야외로 나가볼까 하는 생각을 작가들과 함께 구체화시켰다. 프로그램도 내 인생이랑 점점 맞춰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Q. 80회가 넘어가면서 게스트 선정이 어렵지는 않나
최영인 : 사람들은 항상 보지 못했던 인물을 원하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선보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존 방송의 토크쇼도 많기 때문에 늘 새로움을 주는 부분에 주력하고 있다. 사실 요즘은 연예인 외의 인물로 지평을 넓혀보려고 CEO 등도 생각하고 있는데 회사 홍보가 될까봐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백종원 씨 같은 경우 타이밍이 잘 맞았던 부분이 있지만.
Q. 최근에는 변화를 줘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최영인 : 프로그램이 점점 관심을 많이 받다 보니 게스트들에 대해 불필요한 논란이 전개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최근엔 좋은 게스트들을 좀 더 좋게 보이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게스트 섭외의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 내부에서 많은 검증을 한 후 모실 만한 분을 모시는 편이다. 완벽한 인간이 나오는 토크쇼는 아마 보기 싫을 것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공감하고 경청하게 되는 거고, 그런 점에 항상 포커스를 맞춘다.
Q. 오랜시간 토크쇼를 연출하면서 게스트 섭외에 나름의 원칙이 있나
최영인 : 물론 기본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성공한 사람이 나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 많은 갈등과 고뇌가 있었음을 보면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게 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사전인터뷰 때 그만이 지닌 사람 자체의 결이나 톤을 많이 본다. 제작진이 받은 느낌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잘 전달하고자 하는 게 토크쇼의 목적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매력을 느껴야 한다. 대부분은 만나면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더라.
Q. 토크쇼는 섭외가 관건일 것 같은데, 섭외 노하우가 있는가
최영인 : 섭외는 다 힘들다. 기간도 꽤 오래 걸리고. 바로 결정해서 출연하는 분들도 있고 오래 심사숙고하시는 분들도 있고 게스트 성향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비결에 대해 많이 묻는데 끊임없는 관심과 적절한 타이밍을 잡는 게 중요한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해야 한다. 어쨌든 예능은 즐거우라고 보는 것 아닌가. 게스트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섭외 걱정이 많지는 않다. 사람은 계속 나온다.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새로운 사람들이 있는데… 앞으로 프로그램이 어떻게 변해갈지 지금은 예측할 수 없지만 한 사람의 얘기를 듣는 프로그램은 없어질 수 없다.
Q. 끈질기게 섭외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못 해본 게스트가 있다면
최영인 : 손현주씨다. 죽기 전에 꼭 나오신다고 하셔서 계속 찔러보고 있다. 쑥스럽다며 자꾸만 고사하시더라.
Q. 토크쇼에 대한 매력을 크게 느끼는 것 같다
최영인 : 토크쇼라는 게 나이가 먹으니 더 좋아진다. 남의 얘기를 들으면서 내 속이 더 넓어지고 여유로워지는 느낌이 있어서 오래할 수 있겠다는 흐뭇함이 있다. 뭐든 자기가 즐겁고 잘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
Q. 원래 EBS교양PD 출신인데 어떻게 예능을 연출하게 됐나
최영인 : EBS에서 <꼬마 요리사>같은 아동 프로를 주로 하다 SBS로 옮기게 됐고 처음엔 SBS에서도 교양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그러다 예능을 해 볼 생각 없냐는 제안을 받고 좀 더 재미있게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 처음 연출한 프로그램이 <진실게임>이다. 일반인을 상대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보는 프로그램인데 정말 재밌게 했다. 주위에서 만나기 힘든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마치 소설같았다. 3년 반 동안 <진실게임>을 하고 나서 내가 자주 보는 TV 시간대인 11시대 프로그램을 하고 싶어져서 나온 게 <야심만만>이다.
Q. 부침 큰 방송계에서 오랜 시간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
최영인 : 경험이 쌓이면서 점점 노하우가 축적돼 가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예전엔 ‘감’에 의존해 캐스팅했다면 요즘은 경험치가 쌓이면서 캐스팅에 대한 실수도 점점 더 적어진다든지 하는. 프로그램이 일단 100회 가까이 되면 전성기나 위기를 한번씩 겪으면서 더 견고해지는 것 같다. 솔직히 매주 성적표(시청률)가 다음날 온천하에 공개되는 건 엄청난 스트레스를 동반하기도 한다. 하지만 금방 툭툭 털고 웬만하면 좋은 부분을 자꾸 찾아내려는 스타일이다.
Q. 일에 있어 스스로가 정한 원칙이 있나
최영인 : 내가 재미가 있어야 한다. 사실 재미가 없으면 그 일을 할 수 없지 않나. 그래서 내가 뭘 좋아하고 어디에 즐거워하는지를 잘 알아야 한다. 또 ‘재미는 찾기 나름’이라는 원칙으로 어디서든 즐거울 수 있는 걸 찾아보려고도 하고. 예전에 EBS에 근무했을 때는 복사나 수능 방송 강의가 끝난 후 칠판 지우는 일도 내게 떨어지곤 했었다. 그런 때도 ‘어떻게 하면 칠판을 한번에 빨리 지울 수 있을까’란 생각에 집중하는 편이었다. 뭐든 다 배우는 거라고 생각하면 버릴 게 없는 것 같다.
Q. 앞으로 꼭 도전해보고 싶은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나
최영인 : 어떤 게 됐든, 방송이 끝나고 각자의 마음에 남는 ‘한 줄’이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웃음).
글.장서윤 ciel@tenasia.co.kr
사진.이진혁 eleve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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