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크리스 샌더스&커크 드 미코 감독,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크리스 샌더스(왼쪽) 커크 드 미코 감독" /><크루즈 패밀리> 크리스 샌더스(왼쪽) 커크 드 미코 감독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한때는 애니메이션이 어린이들의, 어린이들에 의한, 어린이들을 위한 장르이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의 애니메이션은 예전과 느낌이 조금 다르다. 과거 일본 애니메이션이 상징하던 마니아층이 탄탄한 ‘덕’스러운 느낌이나,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두드러지는 캐릭터중심의 내러티브 때문이 아니다. 누구나 즐길 수 있을 만큼 보편적이면서도 어른들을 위한 심도 깊은 이야기, 그리고 다양한 볼거리가 만들어낸 새로운 조류 덕분이다. 비단 이러한 변화의 원인은 기술의 발전에만 있진 않았다. 분명 2D 셀 애니메이션에서 3D로의 급격한 전환이 이뤄지긴 했지만, 보다 근본적인 변화는 ‘스토리텔링’ 가치의 재평가에서부터 시작됐다.

16일 개봉을 앞둔 신작 〈크루즈 패밀리〉에서도 곳곳에서 그러한 변화의 흔적이 발견된다. 〈크루즈 패밀리〉 속엔 몇몇 개성강한 캐릭터는 있어도 홀로 튀는 주인공은 없다. 관객의 머릿속에 각인될 만한 ‘캐릭터 만들기’보다는 ‘케미(Chemistry에서 유래. 사람 사이의 감정·궁합의 뜻)’를 중시한 결과다. 근래의 애니메이션들 속엔 과거 애니메이션들이 답습하던 인위적인 설정을 발견하기 어렵다. 히어로물이 아닌 이상에야 납득할만한 설명 없이 주인공이 극을 이끌어나가는 형식이 진부해진 탓이다. 그런 측면에서 드림웍스의 작품들은 가히 애니메이션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할 만하다. 완벽한 캐릭터를 포기하자 스토리텔링에 더 집중할 여력이 생겼다. ‘가족 이야기’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크루즈 패밀리를 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표방한다’는 드림웍스의 원칙은 허언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크루즈 패밀리〉를 연출한 두 감독 크리스 샌더스&커크 드 미코 감독은 드림웍스가 주도하는 이러한 변화의 중심이다. 크리스 샌더스 감독은 마블 프로덕션과 디즈니 스튜디오를 거치며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 〈뮬란〉 등 애니메이션 대작들의 스토리 각색을 담당해 왔다. 특히 2010년 〈드래곤 길들이기〉의 전세계적인 흥행에는 그의 공이 컸다. 〈크루즈 패밀리〉에는 낯선 이력의 소유자 커크 드 미코 감독도 함께 했다. 〈크루즈 패밀리〉의 구상에 중추적 역할을 수행한 그의 독특한 접근법 또한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지난 3일 〈크루즈 패밀리〉의 국내 개봉을 앞두고 한국을 찾은 두 감독을 만나봤다.

Q.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상의 시대 ‘크루데시우스’를 떠올린 배경이 궁금하다.
크리스 샌더스 감독: 9년 전 커크 드 미코 감독의 아이디어가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원시시대라는 설정이 전부였다. 원시인 마을이야기를 구상했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새로운 무언가를 받아들일 때의 모습이랄까. 그런데 생각을 발전시키며 좀 더 감성적인 접근법을 고려하다보니 ‘가족이야기’까지 오게 되었다.

Q. ‘가족이야기‘라는 소재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
크리스 샌더스 감독: 가족이란 개념은 바뀌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동일하다.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가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족 이야기’를 염두했다. 그루그와 이프는 충돌이 있을 때마다 의사소통을 통해서 갈등을 풀어나간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대 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계속 대화를 해야 한다.

Q. ‘원시시대‘라는 동일한 소재를 다룬 영화들이 많은데.
크리스 샌더스 감독: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딱히 영향을 받진 않았다. 제작과정을 거치면서 원시시대를 다룬 다양한 영화들을 모두 보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차별화할 수 있는 부분을 발견했다. 바로 ‘크루즈 패밀리’가 그것이다. 힘이 강하고 빠른, 신체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지닌 원시인을 만들고 싶었다. 아마도 다른 원시인들과의 공통점이라곤 원시 시대 사람이라는 점 하나뿐일 것이다(웃음).

Q.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은 ‘호기심과 놀라움’이라는 소재를 즐겨 사용하는 듯하다.
커크 드 미코 감독: 정확하다. 우리는 호기심과 놀라움이라는 소재가 가장 흥미로운 소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각각의 작품들이 유사한 것은 아니다. 전작 〈드래곤 길들이기〉의 세계는 그 나름대로 완벽하고 유니크한 세계다. 〈크루즈 패밀리〉는 또 다른 세계다. 우리는 각각의 세계에 독특한 정체성을 부여하려 노력했다.

Q. ‘독특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을 듯하다.
커크 드 미코 감독: 막상 관객이 영화를 보면 그러한 노력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매우 방대한 작업을 해야 했다. 그건 무척이나 ‘거대한’ 일이었다(웃음).
크리스 샌더스 감독: 홍보를 하는 중에도 우리는 스튜디오에서 마지막 과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지막 3개월은 정말 힘든 기간이었다.

Q.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신기한 동물들이 눈에 띤다.
크리스 샌더스 감독: 이전에 전혀 본적이 없는 것을 만들어서 관객들이 극 중 캐릭터가 느끼는 ‘낯섬’을 함께 느끼길 원했다. 그래서 동물들 또한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다큐멘터리 촬영기법을 도입한 것도 같은 취지이다. 우리가 사물을 보는 시점과 비슷한 느낌을 줌으로써 사실감을 극대화시켜 공감의 폭을 넓히고 싶었다.

Q. 어떤 부분은 교육용 애니메이션으로도 손색이 없을 만큼 철저한 고증을 거친 흔적이 엿보인다.
크리스 샌더스 감독: 감사한 이야기다. 우리는 많은 참조를 사용했다. 사진과 그 외 필요한 자료들을 전세계에서 찾아냈다. 우리가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사진 책 등 많은 자료를 먼저 확인했다.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가 조사한 사진들이었다. 어떤 사진에는 포토샵 작업이 없었음에도 마치 다른 세계와 같은 놀라운 장면들이 담겨 있었다. 이러한 자료들을 통해 하나의 독특한 세계이면서도 실제 세계와 같은 느낌을 갖추도록 하는 것에 집중했다. 지구인데도 원시적이면서 독특한 환경을 만들려고 했다. 많은 고고학자들의 자문도 구했다.



[INTERVIEW]크리스 샌더스&커크 드 미코 감독,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보도스틸" /><크루즈 패밀리> 보도스틸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특징이 ‘캐릭터 스토리’라면,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은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스토리’로 요약할 수 있다. 월트디즈니 픽사 등 많은 애니메이션 제작사이 분전하고 있는 가운데 드림웍스는 스토리텔링의 효과를 극대화하며 독특한 지위를 획득했다.



Q. 전작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들은 어른들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특징이다. 이러한 스토리를 구상하는 데 비결이 있을까.
크리스 샌더스 감독: 비결은 따로 없다. 하지만 굳이 이야기를 하자면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기본이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크루즈 패밀리〉를 보다보면 관객들은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Q. 드림워스가 다른 애니메이션 제작사들과 차별화 되는 점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크리스 샌더스 감독: 정체성이다. 예를 들어서 디즈니는 매우 명쾌한 스타일이다. 캐릭터 설정이나 이야기 구성에서 확고한 스타일이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드림웍스는 매우 불안정하다. 하지만 확고한 정도가 덜하기 때문에 새로운 방향성을 찾는 데에는 자유롭다. 드림웍스가 출시하는 영화들은 모두가 각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Q. 크리스 샌더스 감독은 드림웍스에 오기 전 디즈니에 몸담았다. 반면 커크 드 미코 감독은 조금 특이한 이력을 쌓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커크 드 미코 감독: 이탈리어를 배우고 출판사에서 일하며 수많은 제작사와 배급사, 그리고 이탈리아 영화감독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결과적으로 모든 경험들이 도움이 되었다. 나는 스스로를 작가라고 생각한다. 감독 이전에 영화업계에서 일하면서 많은 감독·작가들이 ‘스토리텔링’하는 방식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지를 직접 확인했다. 그러한 과정은 통해 배운 것들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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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스틸" /><크루즈 패밀리> 보도스틸

〈크루즈 패밀리〉 속엔 유독 다른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많다. 의도했거나 혹은 의도치 않았거나, 어느덧 생각하는 대중을 위한 복합적인 콘텐츠는 옵션이 아닌 의무가 되었다. 영상 음악 더빙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기에 제작하는 이들의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Q. 〈크루즈 패밀리〉를 보고 있으면 〈아바타〉(2009) 〈반지의 제왕 2: 두 개의 탑〉(2002) 등과 같은 영화들이 연상된다. 의도한 것인가.
크리스 샌더스 감독: 이전에도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크루즈 가족이 신세계에 처음 도착해서 거대한 나무들을 보는 모습을 보면, 마치 그들이 난장이가 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한 장면은 우리도 〈아바타〉와 유사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가 준비를 하고 있는 기간에 〈아바타〉가 출시되었다(웃음). 어쨌든 훌륭한 영화와 비교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커크 드 미코 감독: 우리는 전혀 몰랐다(웃음). 생각해 보니 두 개의 봉우리를 보고서 〈반지의 제왕 2〉 속 두 개의 탑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다. 두 개의 봉우리 같은 경우에는 가장 산으로 대표되는 것을 만들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하다가 나온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루그가 신세계로 이동할 때 동물들을 구하는 장면을 보고 ‘노아의 방주’가 떠오른 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건 ‘노아의 방주’를 모티브로 한 것은 아니다. 그 장면은 사실 팀 버튼 감독의 〈피위의 대모험〉(1985)에서 따온 장면이다(웃음).

Q. 쟁쟁한 배우들이 더빙에 참여해서 화제를 모았다. 니콜라스 케이지·엠마 스톤·라이언 레이놀즈 등이 참여했는데.
커크 드 미코 감독: 그루그는 크리스와 작업을 시작할 때부터 니콜라스 케이지를 염두해 두었다. 그가 원칙을 중시하고 가족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잘 표현해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이프는 굉장히 괴짜다. 엠마 스톤을 보았을 때 그녀의 대담한 성격이 눈에 들어왔는데, 이프와 잘 맞아떨어졌다. 라이언 레이놀즈도 훌륭한 연기를 펼쳤다. 잘난척한다거나 자만하지 않고, 두려워하면서도 그들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역할을 잘 소화해냈다.

Q. 〈크루즈 패밀리〉를 보면 극 중 캐릭터들과 더빙배우들의 싱크로율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 느껴진다. 비결이 있나.
크리스 샌더스 감독: 더빙 배우를 캐스팅할 때 목소리가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녹음을 진행하면서 배우들에게 과장스럽다싶을 정도의 연기를 주문했다. 그리고 배우들이 더빙하는 모습을 비디오에 담아서 애니메이터들에게 보여줬다. 그들이 작업을 할 때 실제 영상에 더빙 배우들의 몸짓이나 동작이 담길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엠마 스톤의 몸짓은 이프의 행동 곳곳에 녹아있다.
커크 드 미코 감독: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의 더빙을 진행했던 ‘스카이워커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했다는 것도 훌륭한 결과물을 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Q. 감초 캐릭터 ‘벨트’ 얘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독특한 목소리로 종종 더빙에 참여한 크리스 샌더스 감독이 연기했다.
크리스 샌더스 감독: “딴딴따아아아~”(크리스 샌더스 감독이 벨트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줬다) 사실 굉장히 현실적인 이유로 내가 더빙을 맡았다(웃음). 분량이 적기 때문에 배우를 따로 찾기가 애매했달까. 그런데 생각보다 화제가 되어서 놀랍다. 벨트 캐릭터는 어떤 상황에서나 소음을 만들어내는 존재를 찾다가 탄생했다. 재미의 요소도 있지만, 어떤 재앙이 닥칠 때 그것이 반복될 것이라는 암시를 주는 장치의 기능을 한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사진제공. CJ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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