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작업에 매진하다보니 3년이란 시간이 훌쩍 갔어요. 밤샘 녹음과 곡 수정을 반복하며 이제는 팬들에게 들려줄 때가 왔구나 싶어 달력을 보니 어느새 2013년이네요.” 대한민국 힙합 신의 대부 타이거 JK는 요즘 앨범 작업에 몰두중이다. 윤미래와 비지(Bizzy)의 솔로 앨범과 드렁큰 타이거의 9집 앨범을 함께 만들면서 작업하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정도다. 아내인 윤미래와 가족 같은 후배 가수 비지와 함께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 MFBTY가 올 초 발매한 앨범인 ‘스위트 드림’은 별다른 활동이 없었음에도 해외 팬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인기를 끌기도 했다.
“개인 솔로 작업에 홀려 시간이란 개념을 잊고 지내다 지쳐버린 서로의 모습에 혼란스러웠던 때였다. 각자 솔로 앨범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미래, 비지와 함께 하면 재미있을 것 같은 곡을 골라내 프로젝트 그룹이라는 그림을 그려 봤다. 사실 우리가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기도 전부터 이미 MFBTY 라는 팬클럽이 해외에서는 먼저 만들어졌다. ‘My fans better than yours’와 ‘Mother Father Bizzy Tiger Yoonmirae’라고 불리는데 팬들의 영향력이 더 큰 듯한 케이팝의 묘한 패러다임을 패러디한 이름인 것 같다.” 그렇게 만들어진 MFBTY는 타이거 JK에게 음악에 대한 초심을 불러일으켰다. “그저 ‘재밌고 멋진 작품을 만들기에만 집중하고 즐기자’란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대단한 뮤직비디오가 탄생하고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큰 도움을 받으면서 우리 마음에 ‘새로 고침’을 해 주는 기회가 됐다. 조용필 선배님이나 여러 영화 감독님들에게 연락이 오고 프랑스 미뎀 페스티벌에 초청돼 해외 언론의 호평을 받는 등 나름의 성과가 컸다.”
이에 힘을 얻어 요즘에는 신인 힙합그룹 MIB의 앨범 프로듀싱에도 나섰다. “처음에는 사장님의 부탁으로 부담스러워 피하다 결국 미니앨범까지 나왔다.”는 그는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국내 ‘힙합 신’의 대부로서 후배 양성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물으니 “나는 힙합 신의 일부일 뿐 절대 대부는 아니고 후배를 양성할 만한 능력도 없다”며 손사래친다. 다만 “힙합 신이 사라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유명하진 않아도 실력있는 아티스트들과는 언제든 함께 작업하려고 손을 내밀 것”이라고 전한다. 아들 조단이 잠든 사이에 틈틈이 음반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는 그가 꼽은 ‘음악에 영감을 주는 영화들’을 들어 봤다.




1. 초록물고기
1997년 | 이창동
타이거JK: 한석규 씨의 연기는 물론 영화 자체의 스토리에 감동받았다. 한 번은 한석규 씨의 광팬이 된 내가 우연히 거리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한석규 씨를 봤다. 실례가 되는 건지도 모르고 달려가 인사를 드렸는데, 영화 속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마치 안성기 선배님을 보는 듯한 자상함과 따뜻함으로 인사해주셨다. 그 때의 감동은 지금까지 잊지 않고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다.
영화설명: 배우 한석규에게 국내의 거의 모든 영화상 시상식의 남우주연상을 안겨다 준 작품이자 이창동 감독의 데뷔작. 1990년대 신도시를 배경으로 폭력조직에 들어간 스물 여섯 청년 막동의 인생 여정을 통해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삶의 가치를 통찰력 있게 전해주고 있다. 영화 속 캐릭터들에 대한 심도 있는 접근으로 기존 한국 영화의 틀을 깬 작품으로 꼽힌다.


2. 7인의 사무라이
2004년 | 구로사와 아키라
타이거 JK: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팬이다. 3시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는 묘한 캐릭터들과 영상들, 지금의 CG 기술이 없던 옛날 영화지만 전혀 뒤처지지 않는 액션 신들이 예술이다.
영화설명: 1950년대 사무라이 열풍을 불러일으킨 데 이어 1964년에 세르지오 레오네가 <황야의 무법자>란 제목의 서부 영화로 리메이크한 전설적인 작품. 16세기 중반 일본 막부시대 사무라이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갈등을 그려 냈다.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인물 내면에 대한 집중력있는 관찰로 마지막 신까지 관객을 이끌고 들어가는 영화.


3.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1977년 | 밀로스 포먼
타이거JK: ‘쿨한 배우’의 대명사 잭 니콜슨. 지금도 가끔씩 보는데, 볼 때마다 지금 세상 속의 나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영화설명: 교도소에서 정신병원으로 후송된 범죄자 맥 머피(잭 니콜슨)는 억압적인 병원 내 규칙에 반기를 들고 환자들의 영웅이 되지만 병원에 의해 전기치료실로 끌려간 후 기존의 환자들처럼 무기력한 모습이 되고 만다. 그런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낀 병원 동료 브롬덴 추장(윌 샘슨)은 그의 영혼에 자유를 주기로 한다. 인간 본연의 자유의지를 꺾는 획일적인 사회체제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작품.


4. 성난 황소
1980년 | 마틴 스콜세지
타이거 JK: 영화광으로서 마틴 스콜세지 감독, 로버트 드 니로, 조 페시의 팬이라는 건 그리 새롭거나 쿨하지도 않은 사실이지만, 어렸을 적에 스탤론의 <록키>가 최고의 영화라고 생각했던 내게는 정말 큰 충격을 준 작품이다. 물론 <택시 드라이버>, <비열한 거리>, <좋은 친구들> 등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시작하면 일주일도 모자라다.
영화설명: 1940년대 미들급 세계 챔피언을 지낸 권투 선수 제이크 라모타의 삶을 그린 작품. <록키>가 무명 선수의 성공담을 보여줬다면 이 작품은 시간이 갈수록 성취와는 점점 멀어지는 권투선수의 비극을 담았다. 로버트 드 니로가 라모타의 선수 시절과 은퇴 이후의 모습을 몇십 kg의 몸무게 변화를 통해 현실감 있게 그려내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5. 시계태엽 오렌지
1971년 | 스탠리 큐브릭
타이거 JK: 박찬욱 감독님의 <올드보이>나, 더 이상 재기불능이라는 여론에 짓궂은 장난에 미소를 던지며 날라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아이언맨> 등 다른 작품들도 너무 많아 마지막 영화는 고르기가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하나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면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시계태엽 오렌지>를 꼽고 싶다. 실화치고는 너무나 소설같은 영화라 스크린으로 먼저 보고 책까지 사서 읽은 내게 독서의 기회를 준 고마운 영화다.
영화설명: 독특한 구성과 폭력적인 영상으로 1971년 개봉 당시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작품. 앤서니 버지스의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이 영화는 방황하는 세 청소년들의 갖가지 범죄 행각을 통해 미래 사회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가장 논쟁적인 작품 중 하나로 호평과 악평을 동시에 받았다. 작품에 담긴 강력한 풍자와 감각적인 영상미는 40여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도 천재적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아빠로서의 ‘작은 행복’에 집중하고 있는 시간들, 타이거 JK


“지금껏 음악을 하면서 돈 때문에 움직여 본 적은 없다. 이런 이유로 많은 동료들이 철들라고 꾸중하기도 했고, 소속사에는 별 도움되지 않는 가수가 돼버리기도 했다. 고등학교에서 공연을 해달라는 팬레터가 오면 소속사 허락 없이 찾아가 공연을 하고, 대학교 축제 때는 기분 내키는 대로 콘서트를 하고 행사비를 다시 내뱉고 오는 기분파였다. 내가 행복한 순간은 (척수염 투병 이후) 방귀를 뀔 수 있을 때, 무대에서 함성 소리가 들릴 때, 한 곡이 완성되었을 때, (눈 찢어지고 무섭게 생겼다는 말을 하도 들어서) 팬들이 내 얼굴을 보고 환하게 웃어주는 때이기 때문이다.” 뮤지션이자 아내 윤미래의 남편, 아들 조단의 아빠로 요즘 그는 새삼 소소한 곳에서 오는 ‘행복’의 의미를 곱씹고 있다. “척수염 투병 이후 죽은 신경은 다시 살아날 수 없고 다시 제대로 걸을 수 없을 거라는 말을 듣고 지팡이에 의존해야만 겨우 움직일 수 있던 내가 지팡이를 던져버리고 조단이를 목마 태워 놀아 줄 때, 대소변 약에 의존하며 화장실에서 3시간 이상 씨름하고, 방귀도 집중해서 10분 이상 명상해야 나오는 ‘괴물’을 ‘멋지다’고 해주는 미래의 미소를 볼 때, 이런 것들이 내겐 진정한 행복이다. 난 조단이의 친구다. 아직 아빠가 어떤 건지 모르지만 배워가고 있고 그래서 가끔은 미안하기도 하다. 그동안 철없이 살아와서 내 행복만 추구하고 미래에 대한 계획 없이 철부지로 살아온 것 같아서. 언젠가 큰 돈을 벌게 돼서 부모님에게는 바치더라도, 조단이에게는 짠돌이 아빠가 될 생각이다. 사랑은 듬뿍 줄 거지만, 돈에는 매정한 아빠가 될 거다. 내가 철들 때 음악도 그만둘 생각이다.”

사진제공. 정글엔터테인먼트



글. 장서윤 ciel@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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