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창석(기타), 조정범(드럼), 이한철(보컬, 기타), 이한주(베이스)(왼쪽부터)
작년 연말 〈이한철의 올댓뮤직〉 공개방송을 보러 갔다가 뒤풀이에서 이한철에게 불독맨션 새 앨범을 작업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무려 9년만의 컴백. ‘Funk’ ‘Destiny’ ‘Apology 사과’ 등 주옥과 같은 곡들이 귀에 스쳐지나갔다.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춤추게 하는 음악들, 불독맨션스러운 흥겨움이 그립던 차였다.Q. 작년에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에서 재결성 공연을 했을 때 팬들의 반응이 대단했다. 이한철은 울먹울먹하던데.
1999년에 결성된 불독맨션이 앨범을 내고 활동한 기간(2002 ~ 2004)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이들의 음악은 팬들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최근 대세로 떠오른 페스티벌 계에서는 불독맨션처럼 그루브한 리듬에 멜로디 폭탄까지 지닌 팀들이 환영받고 있다. 한 페스티벌 기획자는 “불독맨션은 국내 페스티벌 계에서 가장 터질 수 있는 팀이었지만 아쉽게도 페스티벌 붐이 일기 전에 해체했다”고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아쉬움은 잠시, 불독맨션은 작년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에서 진격의 재결성 공연을 펼치며 가슴 벅찬 순간을 연출했다. 공연 중 감개무량한 이한철이 눈시울을 붉히자 관객들은 “울지 마 울지 마”를 외쳤다. 앞서 무대에 오른 음악동료 이규호는 “추운 겨울날에 불독맨션의 곡 ‘Fever’의 건반을 연주해준 적이 있다. 그게 벌써 10년 전”이라며 옛 추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멍석은 깔렸고, 불독맨션은 새 앨범 〈Rebuilding〉으로 돌아왔다. 여성 팬들이여! 눈물을 거둘지어다. 불독맨션의 멤버들인 이한철, 서창석, 이한주, 조정범을 텐아시아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이한철: 진짜로 울먹울먹한 것이 아니었다. 메이크업이 눈에 들어가서 그랬는데, 관객들이 오해한 것 같다. 정말 아닌데.(웃음)
Q. 새 앨범 발매는 무려 9년만이다. 그 동안 간간이 페스티벌 무대에 섰다.
이한철: 단독공연은 2004년 연말 공연이 마지막이었고, 2005년 1월 스완다이브 내한공연 때 게스트로 출연한 이후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2009년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에서 공연 한 것이 다시 모인 첫 무대였다.
Q.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을 주최하는 마스터플랜의 이종현 대표가 “불독맨션은 국내 페스티벌 계에서 가장 터질 수 있는 팀”이라고 말하더라. 재결성 공연을 제안했다고 하던데.
이한철: 재결성의 물꼬를 터준 것이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이었다. 작년에 불독맨션의 공연을 제의받으면서 이대로 공연만 하고 끝내지 말고 다시 앨범을 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 번 씩 큰 무대에 반짝 서고 마는 것이 팬들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신곡을 만들어 멤버들에게 들려줬다.
Q. 오랜만에 구곡이 아닌 신곡을 맞춰보니 기분이 어떻던가?
서창석: 타임머신을 타고 예전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 연주 스타일도 변하고, 성격도 변했는데 합주를 해보니 옛 느낌이 나오더라. 멤버 자신들도 놀랄 정도로.
이한주: 불독맨션 때 함께 연주를 하던 DNA가 그대로 남아있더라. 우리 네 명이 모였을 때 나오는 각자의 목소리들이 다시 나왔다.
Q. 불독맨션이 활동을 중단한 후 이한철은 솔로로 활동했고 나머지 멤버들은 세션 및 교육자로 활동한 것으로 알고 있다. 밴드활동이 많이 그리웠겠다.
조정범: 어디를 가도 불독맨션의 멤버였다고 소개를 하니까…. 종종 까먹고 있다가 ‘아 내가 한때 불독맨션이었지’라고 떠올리곤 했다. 정말 그리웠다.(웃음)
이한주(좌측), 이한철
Q. 불독맨션은 1집 〈Funk〉에서 제목 그대로 펑키한 음악을 들려줬다. 이한철은 불독맨션을 통해 펑키한 스타일의 음악을 하고 싶었나?이한철: 의도한 것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스타일이 그렇게 흘렀다. 우리의 첫 자작곡인 ‘The End’란 곡은 어두운 포크록이었다. 마스터플랜(라이브클럽)에서 공연할 당시 이종현 대표가 그 곡을 참 좋아했다.
서창석: 정말 어두운 곡이었지.
조정범: 처음엔 멤버들이 각자 하고 싶은 곡을 가져와서 커버 곡으로 공연을 시작했다. 이것저것 다양한 곡을 카피해보다가 점점 우리 스타일을 만들어갔다.
이한주: 라디오헤드의 ‘Nice Dream’ ‘Black Star’ 이런 곡도 공연에서 했다.(일동 폭소)
이한철: 별의별 곡을 가리지 않고 했다. 쿨라 쉐이커, 잭슨 파이브, 템테이션스 등등. 심지어 웸(Wham)은 메들리로도 연주했다.(웃음)
서창석: 자미로콰이의 ‘Virtually Insanity’ ‘Traveling Without Moving’도 했지.
이한철: 당시가 1999년이었는데 돌이켜보면 홍대 클럽 신(scene)에 우리와 같은 음악을 하는 팀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 모던록, 펑크록 위주였으니까.
Q. 불독맨션이 데뷔했을 때 롤러코스터, 긱스(Gigs)와 같은 팀들이 반향을 일으킨 시절이다. 수준급의 연주실력을 바탕으로 세련되고 펑키한 음악을 하는 팀들 말이다.
이한철: 롤러코스터, 긱스는 우리와 같은 소속사였다. 이후 그런 팀들이 늘기 시작했다. 파워 플라워, 커먼 그라운드, 어바노, 지금도 활동하는 얼스 등과 같이 소울·펑크 스타일의 팀들이 있었다. 그렇게 한 3년쯤 유행이 생기더니 어쿠스틱 음악 쪽으로 옮겨가기 시작하더라.
이한주: 세계적으로 애시드재즈가 뜨던 시절이다.
Q. 1집에서는 ‘Destiny’가 인기를 끌었다. 당시 뮤직비디오 촬영에도 상당히 돈을 들였다고 하던데?
서창석: 당시 우리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던 여배우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조정범: 이제 10년 정도 흘렀으니까 그 분도 서른 살이 다 됐겠네.
서창석: 지금은 어떻게 지낼까?
서창석(좌측), 조정범
Q. ‘Destiny’와 같이 밝은 멜로디의 곡도 좋았지만 ‘Funk’와 같은 정통 펑크(Funk)에 가까운 음악도 좋았다. 불독맨션의 주제가와 같은 곡이 아니었나?서창석: 공연할 때 분위기 끌어올리는데 정말 좋았다. 항상 그 곡을 첫 곡으로 했다. 그 곡을 하면 밴드의 합도 딱 맞아떨어진다. 최고의 인트로 곡이 아닐까?
Q. 새 앨범 〈Rebuilding〉을 들어보니 불독맨션의 과거 앨범이 떠오르더라.
이한철: 신곡을 쓸 때 불독맨션의 예전 음반들을 많이 들었다. 지난 9년간 나 나름대로 솔로 활동을 하면서 불독맨션과는 단절된 음악을 했다. 때문에 불독맨션의 느낌을 잘 살리기 위해 내가 만든 곡들을 다시 공부하듯이 듣는 과정이 필요했다.
Q. 첫 싱글 ‘The Way’는 불독맨션의 기존의 매력이 잘 살아있다. 마치 레이 파커 주니어의 〈고스트 버스터즈〉 주제가가 연상되더라.
일동: 그런 이야기 많이 듣는다.
이한철: 힌트가 된 곡은 우리 노래 ‘Funk’다. ‘Funk’와 마찬가지로 ‘The Way’도 원 코드 진행이 중심이 된다. 또 프린스 초기 작품처럼 악기를 많이 쓰지 않고, 여백을 남겨 둔채 펑키한 그루브를 만들어보고자 했다. 곡의 후반부에는 록적인 편곡을 가미했다. 우리가 타워 오브 파워처럼 훵크만 하는 밴드는 아니니까.
Q. 불독맨션은 펑키한 곡 외에 다양한 장르를 선보여 왔다. ‘Apology 사과’와 같이 서정적인 곡도 팬들 사이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새 앨범에서는 ‘침대’가 그런 감성이다.
이한철: 이 곡은 작년 가을 여행을 갔다가 갑자기 멜로디가 떠올랐다. 악기가 없어서 ‘개러지 밴드’로 편곡을 했다. 데모보다 가사는 훨씬 어둡게, 연주는 훨씬 밝게 편곡했다. 이 곡을 편곡하는 과정에서 잊고 있었던 불독맨션의 정체성이 떠오르더라. 진지한 이야기가 됐건 우울한 멜로디가 됐건 간에 연주는 경쾌하게 풀어가는 것이 우리의 특징이다.
서창석: ‘Apology 사과’도 언뜻 들으면 슬픈 곡인데 사실은 비트감이 센 노래다. 그런 게 바로 불독맨션 스타일인 것 같다.
Q. 이한철은 유부남이 어떻게 ‘혼자 사는 남자’라는 가사를 썼나?
이한철: 나머지 멤버 셋이 모두 미혼이다. 굳이 말하자면 나머지 멤버들을 위한 곡이다.
서창석: 가사에 무척 공감한다.(웃음)
Q. ‘혼자 사는 남자’는 들어보니 악기로 만든 클럽음악 같더라.
이한주: 처음 만들었을 때 가제가 ‘디스코’였다. 편곡이 매우 많이 바뀌었는데 결국 클럽음악처럼 됐다.
이한철: 일반 공연장이 아닌 댄스클럽에서 공연을 해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
서창석: 괜찮은데! 팬들의 연령대를 낮출 필요가 있다. 절실해!
Q. 한 여성 팬은 이한철이 혼자 무대에 올라 불독맨션 노래를 할 때 너무 상처를 받았다고 하더라.
서창석: 우리 멤버들이 전부 보고 싶으셨구나.
이한철: 잠정적으로 해체한 후 2년 정도 라이브에서 불독맨션 곡을 하지 않았다. 솔로와 불독맨션을 구분 지은 것인데, 그 뒤로는 하게 되더라.
이한주: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1회 때 파리스매치를 보러 갔다. 잔디밭에 앉아 와인을 마시며 공연을 보는데 어디선가 불독맨션의 ‘Hello! My Friend’가 들리는 거다. 누가 음반을 틀어놓을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한철이 형 공연이더라!
이한철: 내가 아마 수변무대에서 했을 거야.(웃음)
이한주: 그런데 유심히 들어보니 음악이 조금 다른 거야. 밴드와 세션의 차이랄까? 난 그렇게 안 쳤는데 말이야.
이한철: 답을 가지고 있는 연주자들이니까 그렇게 들렸겠지.
이한주: 거꾸로 내가 다른 뮤지션의 세션을 할 때 편곡을 할 경우 내 스타일이 아니라 상대방의 음악에 맞춘다. 하지만 밴드에서는 내 속에 있는 연주를 마음껏 꺼내어 보여줄 수 있다. 그래서 내 밴드가 좋은 거 아닌가? 불독맨션이 그리운 이유였다.
Q. 이한철은 솔로 외에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왔다. 그 중에서 불독맨션은 어떤 지점을 차지하고 있나?
이한철: 1994년에 대학가요제로 데뷔했으니 올해로 가수 데뷔 20주년이다. 불독맨션은 내가 데뷔 후 만든 처음이자 유일한 풀 밴드다. 그동안 여러 부침이 있었는데 불독맨션을 하기 전에는 거의 바닥이었다. 불독맨션이 나에게는 음악적으로 성숙해지고 도약한 시기다. 지금 옆에 있는 멤버들은 그 중요한 시기를 같이 한 친구들이다.
Q. 6월 16일에는 홍대 KT&G상상마당에서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을 연다.
이한주: 새 앨범을 내고 공연을 하려니 나이를 먹었는데도 설렌다. 오늘 공장에서 CD가 나왔는데 이 곳으로 오는 차 안에서 들어보니 기분이 이상하더라. 지금은 빨리 공연장에서 큰 사운드로 신곡을 연주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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