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미스터 고’를 만들면서 사재를 털어 시각효과(VFX) 스튜디오인 덱스터 필름을 차렸다. 당초 계획에 없던 일이었던 걸로 안다. 아니, 어쩌자고.
‘미스터 고’ 개봉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김용화 감독을 만났다. 시사회 이후 쏟아지는 엇갈린 반응 앞에서 그의 얼굴은 살짝 상기돼 있었다. 4년의 시간을 품은 자식과도 같은 고릴라 링링에 대한 애정과 자신을 믿고 따라와 준 200여명의 텍스터 필름 동료들에 대한 고마움 등 여러 복잡다단한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듯했다. 대화 내내 호쾌하게 웃어 보이던 그는 “사실, 지금 굉장히 불안하다”고 인터뷰 말미에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그런 그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흥행느낌이 좋다고 말했다. 진심으로 이 영화가 흥행하리라 믿었으므로.
그런데 이건 정말이지 의외의 결과다. 개봉 첫 주 ‘레드 2’에 밀린 ‘미스터 고’는 앞서 개봉한 ‘감시자들’에게도 추격을 허용하며 고전중이다. 이를 바라보는 반응도 가지각색이다. ‘미스터 고’가 부진한 이유를 설득력 있게 분석한 기사부터, 응원하는 글과 원색적이 비난의 글이 인터넷 한 공간에서 혈투 중이다. 고릴라는 그렇게 예기치 않은 방향에서 화제의 중심에 섰다. 다행이라면 중국내 반응이 나쁘지 않다는 점인데, 그래서 더욱 더 궁금하다. ‘미스터 고’가 충무로 영화일지에 어떻게 기록될지. 바라는 건, 고릴라 링링 탄생을 위해 모인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열정과 기술의 완성도만큼은 고스란히 인정받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김용화: 나로서는 큰 모험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외주에 맡기려했다. 웨타(‘반지의 제왕’, ‘아바타’를 만든 VFX 스튜디오)로 보내느니 마느니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걸로는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견적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거든. 내가 모두 관여할 수 있어야 원하는 완성도가 나올 것도 같았고. 결국 “우리가 직접 하자!”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다.
Q. 속이 타들어가는 날들의 연속이었겠다.
김용화: 아우,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관건은 고릴라를 얼마나 완벽하게 만드는 가였다. 어설프면 관객들이 감정이입을 못할 테니 말이다. 그런데 완벽이라는 게 어디 있겠나. 한 달의 시간이 더 있었으면 그 한 달 만큼 더 좋아졌을 테고, 두 달 더 했으면 그 두 달 만큼 더 좋아질 뿐이겠지. 내가 할 수 있는 베스트는 한 것 같다.
Q. 글도 마감이 쓴다고, 아마 개봉 날짜가 없었다면 평생 완성을 못했을 거다.
김용화: 맞다. 완성도를 아래에서 위로 끌어올리는 건 쉬워도, 95점에서 96점으로 올리기는 정말 힘들다. 97점으로 올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하고. 개봉 한 달을 남겨두고 리테이크를 걸었다. 샷들을 다시 꺼낸 거다. 그걸 한번 돌려면 매치무브(실제 카메라와 물체 움직임 그리고 세트를 가상의 3차원 공간에서 재창조하는 작업)-모델링(캐릭터나 배경 요소, 소품 등을 3D 데이터로 만드는 잡업 )-텍스처(만들어진 디지털 모델의 표면에 색과 질감을 입히는 작업)-애니메이션(디지털 모델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작업)-크리처(고릴라 모형이 움직일 수 있도록 뼈대를 만들어 심고 움직임에 따라 고릴라가 변형될 수 있도록 하는 작업)-라이팅(3D 데이터 상에 실제와 같은 조명을 설계하는 작업)-렌더링(3D로 만들어낸 고릴라를 2D 이미지로 변환하는 작업)-컴포지팅(만들어진 촬영 영상에 CG 요소들을 합치는 작업)의 과정을 다시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린다. 쉬운 작업도 아니고. 그래서 “200샷만 꺼내라. 전체 2,000샷 중에 10분의 1만 가지고 다시 맞춰보자”고 했는데, 애들이 욕심이 있으니까 1,100샷을 꺼낸 거다. 개봉은 다가오지, 작업할 건 많지. 조마조마해서 죽는 줄 알았다.
Q. 다들, 오랜 시간 붙잡고 있어서 애정이 대단했나보다.
김용화: 아무래도. 덱스터필름이 내 회사인 것을 떠나서, 이번 영화가 안 되면 한국 VFX의 미래는 당분간 없으리라고 본다. 이 회사가 오래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Q. 그 얘기 하니까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가 생각난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시각효과를 담당한 할리우드의 VFX회사 리듬 앤드 휴스(Rhythm & Hues)의 경우, 그렇게 훌륭한 기술을 보여주고도 얼마 안 가 파산했다.
김용화: 시각효과 회사의 취약점은 제대로 된 대우를 못 받는다는 건데, 감독이 운영하는 시각효과 회사의 경우는 다르다. 그런 경우 감독의 모든 베네핏을 같이 누리니까. 예컨대 내가 차기작으로 다시 3D영화를 만든다고 치자. 그랬을 때 내가 시각효과 기술을 다른 회사에 의뢰하겠나? 내 회사가 있는데? 오히려 회사의 기술을 성장시키기 위해 각종 장비부터 시작해서 최고의 대우를 하겠지. 두 번째. 직원들 입장에서는 이 영화가 어떤 감독의 영화가 아니라, 우리 대표의 영화인 거다. 그랬을 때 그들이 지니는 동기부여란 다를 수밖에 없다. 그 다음에! 내가 (제작사로부터) 돈을 더 받아내면 받아내지, 예산을 깎지는 않을거 아닌가. 그러니까 감독이 컨텐트 프로바이드로서 회사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 시각효과 회사는 위험한 거다. 아무리 큰 영화의 3D 작업을 따낸다고 해도 수익을 제대로 못 받기 때문에 버티기 힘들다. 그런데 이건 내가 만들어 놓은 법칙이 아니다. ILM 스튜디오를 보유한 조지 루카스와 웨타 스튜디오의 피터 잭슨이 만들어 놓은 법칙이다.
덱스터 스튜디오에서 탄생한 고릴라 링링
Q. ‘아바타’ 개봉 당시 3D가 영화 산업의 미래다, 아니다하는 말들이 많았는데 몇 년 사이에 그 열기가 많이 식은 게 사실이다. ‘아바타’때 3D에 대해 가졌던 생각이 궁금하다.김용화: 그때는 정말이지 “헉, 이게 뭐지?”였다. 너무 훌륭하잖아. 당시엔 내가 3D를 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그러다가 ‘미스터 고’라는 작품을 하기로 결심하게 됐고, 이왕 만들 거라면 고릴라를 살아있게끔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살아 있는 최고의 도구는 3D라는 생각으로 발전해 나갔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가장 어렵다고 하는 3D와 VFX 두 가지 짐을 다 안게 된 거다.
Q. 당신 성향상, 뭔가를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파고들었을 것 같다.
김용화: 그래서 연구개발에만 1년 6개월을 매달렸다. 초반에만 30억을 쏟아 부었고. 쇼박스를 만나서 얘기했다. “자, 한국의 커트발이 똑딱거리는 불잔등 같은 영화를 계속 만들 거냐, 아니면 어느 나라를 가도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만들 거냐. 내가 중국 잡아 올게. 한번 해보자!”, “그래서 얼마가 필요하다는 거야?”, “일단은 30억! 30억을 달라” 그랬다. 시나리오도 없는 상태에서.
Q. 당신에 대한 믿음 하나로?
김용화: (웃음)트리트먼트는 있었다.
Q. 하하. 어쨌든 믿으니까 그 상황에서 투자를 해 준 거겠지.
김용화: 그런데 내가 그동안 (쇼박스에) 얼마나 벌어줬나.(일동 웃음) 1,850만 명을 모았으니, 배급 수수료가…(314만 명을 동원한 데뷔작 ‘오! 브라더스’를 시작으로 662만 명이 찾은 ‘미녀는 괴로워’, 848만 명을 기록한 ‘국가대표’ 모두 쇼박스와 함께 했다.) 나도 그걸 감안하고 얘기한 거다. 하하하하. 아무튼! 다행히 쇼박스와의 관계가 좋으니까 초반에 30억을 투자 받을 수 있었고, 본격적으로 작업에 착수할 수 있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미스터 고’의 핵심은 고릴라를 사실적으로 구현하는 것이었다. 200만개가 넘는 고릴라의 털을 실사처럼 묘사해야 하는데, 그 털이 기존의 사용툴로는 절대 나올 수 없다. 고릴라가 등장하는 장면이 1,000컷에 달하는데, 그걸 기존 사용툴로 했다면 아마 100컷도 못 찍었을 거다. 좋은 퀄리티를 유지하면서 빠른 결과물을 얻기 위해 찾아낸 게, 컴퓨터를 기만하는 거였다. 컴퓨터 CPU가 연산명령을 내리잖아. 10빵을 때려야 10빵이 나오는데, 그걸 한 방만 때려도 10빵이 나오게끔 인식시키는 거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컴퓨터 스스로가 자기가 잘못하는지를 몰라야 한다는 거다. 그런 기술을 통해 지금의 고릴라 링링이 탄생했다.
Q. ‘미스터 고’는 과학이네! 그 기술을 뽑는 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렸나?
김용화: 나오긴 6개월 만에 나왔는데 안정화되는데 1년이 걸렸다. 그 1년 동안 전 세계에 존재하는 3D 리그 카메라 중 가장 좋은 걸 사서 직원들에게 공부하라고 가져다 줬다. “자, 주마다 확인 한다↗”이러면서.(웃음) 어쩌겠나. 스승도 교본도 없는데. <아바타>를 어떻게 찍었는지 아무도 안 가르쳐 주니까, 직접 부딪혀야지. 정말 미친 짓을 한 거다. 그렇게 배워 나가면서 할리우드는 기술을 돈으로 메꿨다는 걸 알게 됐다. 할리우드는 리그로 찍은 게 아니다. 많은 오류들을 돈으로 무마시킨 거지. 그렇다면! 돈이 없는 우리는 어째야 하지? 더 정교해야 했다. 3D의 경우 두 개의 카메라를 이용해 촬영하기 때문에 여러 문제점들이 발생할 수 있다. 렌즈간의 거리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좌,우 왜곡들과 양쪽 촬영 영상의 색상 차이 등… 이런 문제점들을 시각 효과 및 이미지 처리 프로그램인 ‘오큘라(OCULA)’를 이용해서 해결했다. 색깔, 밝기, 픽셀 단위의 틀어짐들을 오큘라 프로그램에 넣어서 보정한 거다.
Q. 개인적으로 3D 완성도가 좋아서 반가웠다. ‘7광구’를 바라보면서 아쉬웠거든.
김용화: 사실 ‘7광구’는 극장에서 보지 못했다. 컨버팅 영화라서 굳이 찾아보진 않았는데… 컨버팅이라도 거기에 200억 원을 쏟아 붓는다면 잘 나올 거다. 픽셀 단위로 하나하나 입체 값을 조절하면 잘 나오는데, 그걸 누가 200억 들여서 하겠나.
Q. 할리우드에서도 한동안 컨버팅 영화들이 나오고 있는데…
김용화: 한동안이 아니라 지금도 대부분이 컨버팅 영화다. ‘퍼시픽 림’도 컨버팅이고, ‘맨 오브 스틸’도 컨버팅이다. 할리우드는 돈이 없어서 못하는 게 아니다. 시간이 아까워서 리그 촬영을 안 하는 거다. 리그 촬영이 어렵기도 하고, 복잡하고 돈도 더 많이 드니까.
Q. 컨버팅 영화들에 대한 아쉬움이 큰 것 같다.
김용화: 그건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의 기본 예의 문제다. 컨버팅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공들여서 한다면야 나쁘게 볼 필요가 없다. 다만, 마켓이 좋으니까 편하게 해서 내보내자는 발상은 안 좋다고 본다.
Q. 안 그래도 제임스 카메론이 “‘맨 오브 스틸’과 ‘아이언맨 3’는 굳이 3D로 만들 필요가 없는 영화였다”며 만연하는 3D 영화에 대한 우려를 전한바 있다.
김용화: 컷이 입체를 고려한 문법들이 아닌데 그걸 컨버팅 하니까 어지러운 거다. 아, 3D 얘기는 밤새 해도 끝이 없을 거다.(웃음)
Q. 영화 준비 중에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이 개봉했다. 침팬지 CG 효과가 굉장히 좋은 영화였는데, 만드는 입장에서 비슷한 영화가 나오면 철렁하지 않을까 싶다.
김용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에 등장하는 침팬지의 경우 스킨 디테일은 굉장히 좋다. 털과 살을 붙이는 걸 텍스처(texture) 디테일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그걸 징그럽지 않을 정도로 만들려고 했다. 텍스처 품질을 올리는 건, 사실 어려운 게 아니거든. 대신 애니메이션에서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을 이기고 싶었다. 유인원들이 다리 위에서 인간과 습격하는 장면 있잖아. 그 부분 애니메이션이 사실 엉망이다. 전문가들은 아마 다 알거다. 보면서 저 정도는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Q. 전작 ‘국가대표’가 스키점프를 이용해 활강의 쾌감을 선보였다면, 이 영화는 야구를 통한 ‘타격의 쾌감’을 보여준다. 실감나는 야구장면을 위해 해외에서 헬리캠 등의 장비를 공수해왔다고 들었다.
김용화: 헬리캠은 인공위성에서 좌표를 받아 움직이는 무선헬기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카메라라서, 높은 위치에서 역동적인 화면을 담아내기에 좋다. 벨기에 본사에서 도입한 거였다. 그리고 스카이워커라고 해서 야구장 전체를 훑듯이 돌아다니는 와이어 캠을 써서 관객들이 다이나믹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Q. 공이 화면으로 던져지는 장면에서 관객들이 많이 피하더라.(웃음)
김용화: 그 부분을 많이들 좋아하는 것 같다.
Q. 스포츠 영화다운 맛이 덜한 건, 아쉬웠다. 스키점프 장면을 길게 보여줌으로서 스포츠 영화 특유의 쾌감을 살린 ‘국가대표’에 반해, ‘미스터 고’는 야구가 이야기에 철저하게 복무하는 느낌이었다.
김용화: 스포츠가 좋은 소재고 그 부분에서 일정량의 만족은 줘야겠지만, 결국은 소녀와 고릴라의 따듯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게 이 작품의 생명이라고 봤다.
Q. 영화를 보면서 한국보다 중국시장을 더 노린 게 아닌가란 생각을 했다. 사실 시장 자체에서 게임이 안 되기도 하고. 중국 시장에 대한 염두가 이야기에 얼마나 영향을 끼친 건가? (중국 영화사 화이브라더스로부터 500만 달러를 투자받은 ‘미스터 고’는 중국 5,000개 스크린에서 개봉했다.)
김용화: 중국시장이 아니라, 한국시장을 더 고려해서 만들었다. 물론 울고 싶은 사람이 눈물 콸콸 흘릴 수 있게는 내가 연출을 못했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진 않았다. 신파적인 이야기로 눈물을 빼려고 마음먹었다면 충분히 할 수 있었지만 부담스러웠다. 한국식 신파보다는 보편적인 감정을 담고 싶었다.
Q 김흥래, 이준혁 배우가 고릴라 링링과 레이팅 대역을 했다. 이준혁은 ‘늑대소년’에서 송중기에게 늑대 연기를 가르친 코치로도 유명하다.
김용화: 한국의 앤디 서키스(‘반지의 제왕’ 골룸,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시저를 연기한 배우)라고도 불리는 배우지. 그 배우들이 엄청난 도움을 줬다. 기본적인 블로킹 가이드는 다 해줬으니까. 그런데 앤디 서키스 같은 경우는 사람의 골격과 비슷한 침팬지를 연기했기에 움직임과 표정을 그대로 컴퓨터 그래픽화 하는 게 편리했을 거다. 그와 달리 고릴라는 골격자체가 사람과 다르다. 팔이 무지하게 길고, 다리는 짧기 때문에 배우들의 움직임을 그대로 적용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표정이나 움직임보다는 블로킹 위주의 참조를 많이 했다.
Q. 전작 ‘오! 브라더스’,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를 휴먼 3부작으로 보는 시선이 많은데, ‘미스터 고’는 어찌해야 할까?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고릴라이긴 한데, 휴먼이라 할 수는 없고.(웃음)
김용화: 하하. 그렇지. ‘미스터 고’가 내 영화의 새로운 좌표가 돼주면 좋겠다. 세계시장으로 외연을 확장하는 첫 출사표랄까.
Q. 당신은 왜 휴먼드라마에 천착하나?
김용화: 나는 휴머니티가 없는 사람이다. 사람에게 기대를 안 한다. 그렇다고 내가 사회생활이 서툴다는 의미는 아니다. 타인에게 굉장히 잘 하긴 하는데, 어떤 기대를 안 할 뿐이다. 상처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고,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Q.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한가?
김용화: 기대를 안 하기 때문에 편하고 말고도 없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저 사람 입장이라면, 나도 그랬겠지 이해하고 넘어간다. 그 편이 훨씬 더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 생각하고. 이게 오랜 시간 살면서 느낀 철학 같은 건데,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 건 그 환경이 처한 특수성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악인과 선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거지.
Q. 그래서인가? ‘오! 브라더스’의 오상우(이정재), ‘미녀는 괴로워’의 한상준(주진모), ‘국가대표’의 방코치(성동일), ‘미스터 고’의 성충수 등 당신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악인도 선인도 아닌, 이중성을 지닌 경우가 많다. 그런 인간에 흥미가 있나보다.
김용화: 대부분의 인간들은 이중적이다. 건달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쁘기만 하겠나. 밖에서는 악인이지만, 그도 집에 가면 누군가의 아빠고 누군가의 아들이다. 그건 너무나 당연한 거다. 그래서 이유 없는 악인이나 선인이 등장하는 게 내겐 조금 낯설다. 인간은 절대 그런 종족이 아니거든.
Q. 그렇다면 다시 물어야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머니티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김용화: 거기에 1%의 진심이 있으니까. 1%의 진심이 사람을 움직인다고 생각하니까. 그것 때문에 영화를 하는 거다.
Q. 한 영화를 책임지는 감독으로서, 250억 원이라는 제작비는 도대체 어떤 무게감이던가?
김용화: 실감이 잘 안됐다. 너무 나눠서 받았기 때문에.(일동 폭소) 책임 있게 행동하려고 노력했고, 허튼 곳에 안 쓰려고 노력했다.
Q. 중국에서 제작비의 3분의 1을 지원했다.
김용화: 내 목표는 중국에서 BEP(손익분기점)를 맞추는 거다.
Q. 지금 뭐랄까. 자신감이 느껴진다.
김용화: 아니! 자신감이 있었으면 내가 지금 내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하진 않겠지. 사실 굉장히 불안하다. 그래서 더욱 더 웃는 거다. 나와 함께 한 사람들에게 성공을 맛보게 해 주고 싶고, 성취감을 느끼게 해 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Q. 대한민국에 봉준호 박찬욱 같은 감독도 있어야 하지만, 김용화 같은 감독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런 시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김용화: 최동훈 감독과 매일 그런 얘기를 한다. 대중 영화로 끝까지 가보자고.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고, 위로해 주는 것. 그것이 우리의 가치를 증명하는 최선의 방법이 아닌가 싶다. 그걸 놓는 순간, 감독 그만 둬야지.
글,편집.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사진제공. 쇼박스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