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과 구조대원 중 누가 더 힘들까요? 장혁에게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누가 뭐래도 현재 장혁을 규정짓는 두 단어는 바로 군인과 구조대원이다. 안방에선 군인으로, 스크린에선 구조대원으로 대중을 만나고 있다. 둘 다 반응이 뜨겁다. ‘정말 고생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4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다. TV에서도, 영화에서도 그 모습이 그대로 묻어난다. 대중이 그에게 환호하는 이유,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최근 ‘무릎팍도사’, ‘화신’ 등에 출연한 그의 모습은 또 사뭇 다른 느낌이다. ‘예능을 다큐’로 만드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가벼운 ‘농담’을 던져도, 돌아오는 대답은 ‘학술논문’이다. 가식이 아닌 원래 모습인가 보다. 영화 ‘감기’ 개봉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도 ‘농담의 다큐화’는 이어졌다. ‘군인과 구조대원 중 누가 더 힘들까요’, 가볍게 질문을 던졌지만 돌아오는 답변에는 그만의 ‘철학’까지 담겼다. 그 안에서 진심과 묵직함까지 느껴졌다. 또 잘 나가던 스타에서 군 문제로 한 순간 ‘추락’을 경험했다. 위기는 곧 기회를 만들었다. 장혁은 내외적으로 더욱 단단해져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달려오고 있다. 이 배우, 상당히 매력적이다.

Q. 영화에 대한 반응을 봤나.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면 해 달라.
장혁 : 재난 영화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긴 한데 무섭다고 하더라. 또 누가 옆에서 기침하면 찝찝하다는 식이다. 과거 ‘신종플루’가 유행일 때 루머 때문에 더 많은 공포심을 유발하지 않았나. 개인적으로도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안 된 상황이었던지라 극 중 상황이 더 체감할 수 있었다. 영화도 치사율이 높은 것도 있지만 캠프촌 안에서 루머가 확산되고,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에 더 체감하는 것 같다.

Q. ‘박민하의 영화’란 평가가 있더라. 어떻게 생각하나.
장혁 : 누구의 영화여도 상관없는 것 같다. 내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면 영웅을 그리려고 했을 것이다. 물론 강지구 같은 캐릭터가 어딨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전쟁 속에서도 살기 위해 도망가는 사람이 있는가 반면 남아서 지키는 사람도 분명 있다. 그렇게 밸런스가 유지되는 거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안에 박민하가 연기한 미르라는 어린 아이가 있는거고. 이 영화는 사람들한테 어떤 체감을 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다.


Q. 그런데 강지구가 그토록 보호하는 미르는 실제 가족이 아니다. 그리고 미르의 엄마 인해(수애)에게 첫 눈에 반하긴 하지만 상대가 계속 땍땍 거리지 않나. 그런데도 끝까지 인해-미르 모녀를 보호하는 그 원동력은 무엇인가. 사심이라 한정 짓기엔 부족한 것 같은데.

장혁 : (사심이) 없지 않았겠죠. 하지만 한 가지 색깔을 가지고 있진 않다. 전쟁 전에 병사들끼리 농담하면서 웃는게 초조함을 떨치는 거라 하더라. 마찬가지인 것 같다. 같은 경험을 공유했기 때문 아닐까. 예를들면 ‘진짜 사나이’가 아닌 다른 예능이라면 전우애가 느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떤 것을 공유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또 죄의식 같은 것도 있다. 이 아이 때문에 같이 따라다니긴 했지만 한순간 잃어버리지 않나. 친구의 아들을 맡았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해봐라. 미르가 감염된 것을 알았을 때도 인해한테 보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지 않나. 이 같이 죄의식, 미안함도 있고, 굉장히 소시민 적인 생각이 기본 바탕인 것 같다. 뭐 마지막 장면에서 인해 어깨에 손을 올리는 건 사심이겠죠. 하하.

Q. 영화를 보고 있으면 고생을 많이 한 것 같다. 그리고 강지구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찌됐던 영웅적인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방금 설명을 들으면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장혁 : 체력적으로 힘든 건 없었다. 워낙 체력이 좋으니까. 하하하.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건 체력보다 캐릭터를 잡아가는 거였다.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이런 사람이 어딨어요’라고 했다. 말도 안 된다고. ‘영웅적이지 않게 그려주세요’라는 말을 하고 촬영에 들어갔다. 단, 흡사한 부분이 하나 있었다. 뭔가 인간적으로 ‘땡기는’ 게 있다면 그냥 간다는 점이다. 강지구도 그런 것 같더라. 그리고 느낌적으로는 영웅일 수 있고,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미르 말고, 다른 사람을 도와준 게 없다. 대의명분을 위해 움직인 것도 없다. 단지 미르를 엄마한테 보내주겠다는 생각 정도다. 영웅의 입장에서 생각한 게 아니라. 그런데 그냥 감정적으로 흘러가다 보니 능동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촬영할 땐 너무 안 하는 것 같아 일부러 만든 신들도 많았다. 결론적으로 편집됐지만.

Q. 실제 장혁이었다면, 영화 속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 것 같은가.
장혁 : 내 가족이 있다면 들어갈 것 같다. 어렸을 때 내 동생을 누가 혼내면 못 보는 성격이었다. 내가 혼내면 혼냈지. 근데 만약에 다른 지역에 있는데 찬반에 대한 투표를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Q. 갑자기 엉뚱한 질문이 생각난다. 현재 슬하에 아들만 둘이지 않나. 이번에 박민하 양과 호흡을 맞췄는데 작품 하면서 딸을 갖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던가.

장혁 : 딸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했다. 그런데 사실 확률이 반반 아니냐. 아들일수도 있고, 딸일 수도 있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다는 거다. 그러다 보니 아들 세 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하하.

Q. 김성수 감독과 ‘영어완전정복’으로 호흡을 맞췄다. 벌써 10년이다. 10년 만에 현장에서 만난 김성수 감독은 어떻던가.
장혁 : 현장에서 즐거워하더라. 그게 가장 달라진 것 같다. 감독이란 자리는 장수 같은 느낌이 있다. 모든 것을 파악하고 움직여야 하니까. 그런 느낌이 여전히 있는데 다만 그 느낌이 유쾌하고 즐겁더라. 하나의 개인적 바람은 그 연배 감독님들이 많이 하셨으면 좋겠다.

Q. ‘감기’란 작품을 선택하는 데 있어 감독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될까.
장혁 : 100%라고 봐야 한다.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 있는데 재난영화에 초점을 맞춰서 만든 영화는 ‘컨테이젼’이 대표적인 것 같다. ‘감기’는 재난영화 장르도 있지만 사람들의 군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 ‘무사’의 경우도 고려시대의 한정된 장소 안에 있는 무사들의 군상들을 보여주지 않나. 이 작품 역시 감염구역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다. 이게 감독님이 가장 잘하시는 거다.


Q. 굉장히 무서운 감독으로 알려졌는데.

장혁 : 무섭다. 다만 무서운 사람과 어려운 사람의 차이인 것 같다. 감독님은 어려운 사람이다. 그리고 ‘영어완전정복’ 할 땐 온화하셨다. 무섭다는 걸 소문으로 들었지 직접 체감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하하. 그리고 1996년부터 감독님과 연이 있었는데 당시 감독님은 단역 배우가 와서 하더라도 ‘이 신의 주연은 너다’라는 식으로 북돋을 수 있는 말을 해 준다. 또 모질게 하더라도 하루를 넘어가지 않는다. 다 풀어준다.

Q. 영화와는 상관없지만 ‘진짜 사나이’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과거에 군대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현재 군대 예능 ‘진짜 사나이’에 출연 중이다. 시작할 때 기분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군대도 제대로 안 갔으면서 군대 예능을 한다’는 시선도 있었을 것 같은데.
장혁 : 다른 이야기일 수 있는데 ‘평온한 바다는 노련한 뱃사공을 만들지 못하고, 거친 바다는 노련한 뱃사공을 만든다’는 말이 정말 와 닿더라. 여하튼 과거에 있었던 일은 지워지지 않는다. 계속 가지고 가야 할 부분이다. 그렇다고 그걸 의식해서 행동에 제약을 두면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 ‘진짜 사나이’도 군대여서 들어간 것도 있다. 20대 후반에 30대를 생각했는데 어쩌다 보니 30대 시작이 군대가 됐다. 20대는 뭔지 모르게 (내가 해 온 길이) 선명하게 찍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군대 때문에 다 쓸려간 듯했다. 그러다가 군대에서 장혁이 아닌 본명으로 불리게 되고, 서서히 나를 찾아가게 되더라. 그러면서 발자국이 잘 찍혀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제대 후에는 현장에 대한 절심함이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게 됐고, 정말 감사하게도 좋은 작품을 만나 지금까지 오게 됐다. 그리고 ‘진짜 사나이’를 보는데 예능 같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그래서 여기에 들어가면 시작일 때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었고, 해보고 싶더라. 또 나중에 아이가 그걸 접하는 상황이 왔을 때 뭐라고 이야기를 할까? 정말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그 안에 내가 들어가서 뭔가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면, 뭐 그런 생각이 병합됐다. 아직도 예능이라 생각 안한다. 그리고 1주일을 다녀오면 ‘힐링’이 돼 있다. 또 3주는 자유롭기도 하고. 하하.

Q. 군인과 구급대원을 다 경험하지 않았나. 둘 중 어떤 게 더 힘들까.
장혁 : 절권도 등 다양한 격투기 운동을 하면서 ‘이게 세요, 저게 세요’란 이야기를 많이 한다. 사실 그건 잘 모르겠다. 하는 사람이 어떻게 적응하고, 얼마나 했고, 얼마나 실전 경험이 많은지가 정답인 것 같다. 실질적으로 군인이었던 적이 있으니까 체험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구조대원은 아무래도 간접적이니까. 다만 구조대원 분들이 사명감만으로 일을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사명감도 많지만 그 이상으로 동료애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더라. 사건 사고는 많은데 인력이 부족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한 명이 비번일 때 나머지 인원들이 좀 더 많은 부분을 커버해야만 한다. 비번인 사람도 편하지 않고. 그런 동료애가 굉장히 강하더라.


Q. 제대 후 첫 작품이 드라마 ‘고맙습니다’다. 장혁하면 대표적인 게 카리스마 아니냐. 군대 이전에도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고맙습니다’ 같은 모습도 굉장히 좋더라. 그런데 점점 한쪽으로 이미지가 굳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장혁 : 그 점에 충분히 공감을 하고 있다. 대중적인 이미지와 실제 배우의 모습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가령 ‘펜트하우스 코끼리’, ‘토끼와 리저드’, ‘의뢰인’ 등의 작품을 하긴 했지만 다른 것들에 비해 어필이 되지 않다 보니까. 계속 시도는 하고 있다. 그리고 섣부르게 너무 늦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지금 하고 있는 부분에 최선을 다하고, 다른 것도 많이 해보려고 한다. 중요한 건 캐릭터와 내 자체를 분리해서 생각한다. 좋은 분위기도 있을 거고, 그렇지 않은 상황도 있을텐데 분리하지 않으면 내가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 아니면 영향을 받게 되더라.

Q. 요즘 토크쇼에서 자주 보이더라. 작품 홍보가 있기도 하지만 이미지 상쇄를 위한 하나의 전략처럼 보이기도 한다. 섬세한 면이나 이런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장혁 : 나는 이성보다 감성에 맞닿아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전략적으로 생각하면서 움직이지 않는다. 가령 처음 시작한 회사에서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고, 감독님과 시작했으면 이후로도 감독님만 보고 갈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예능으로 좋은 분위기를 타고 있지만 얼마나 가겠나. 평생 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본질은 어디까지나 배우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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