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아유’ 촬영현장
‘후아유’ 촬영현장
‘후아유’ 촬영현장

무더운 날씨, 경기도 파주시 하지석동에 위치한 tvN 드라마 ‘후아유’ 세트장의 온도도 뜨거웠다. 구석에서 돌아가는 에어컨 소리가 우렁찼다. 그런데 더욱 호탕한 목소리가 기계의 괴팍한 음성 사이로 새어나온다. 주인공은 옥택연이다. 욱하는 성미 탓에 형사로서 뛰어난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고뭉치가 돼버린 경찰청 유실물센터 차건우 경장 역을 맡은 그는 영혼을 보는 여인 시온(소이현)과 살인사건을 추적해 어두운 진실을 파헤치느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흔히들 분위기 메이커라는 표현을 쓴다.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현장의 밝기가 50룩스쯤 밝아지는 것 같은 그런 존재들을 일컫는 표현이다. 옥택연은 분위기 메이커의 좋은 예다.

텐아시아가 ’후아유’ 현장을 찾아간 날, 첫 신은 주인공 시온과 건우가 근무하는 경찰청 유실물센터에서 진행됐다.

시온과 건우는 서로를 향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늘 티격태격하면서도 하루하루 서로에게 스며들고 있는 두 사람인 것을 알지만, 이 순간의 긴장감은 어찌할 수 없다. 살벌하게 마주 보며 대사를 주고받던 두 사람 사이로 더욱 음침한 존재가 있다. 시온의 눈에만 보이는 영혼이다. 영혼을 사이에 둔 터라, 유실물센터에는 냉기가 스며든다. 그러나 ‘컷!’ 조현탁 PD의 음성이 현장을 종료시켰다. 순간, 택연의 표정은 완전히 바뀐다. 시온을 향해 자신이 어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천진난만한 미소다. 조현탁 PD가 다가와 택연에게 디렉션을 준다. 그때의 표정은 또 진지하다.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택연에게 건우는 특별한 존재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앞으로도 쭉 연기를 할 텐데 그때마다 첫 본격 주연으로 불리게 될 그런 캐릭터다. 그래서 더욱 정성을 들이게 된다.

그래도 마음 속 열정의 온도를 계속 유지해나가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드라마 현장이라는 것이 흔히 그러하듯, 같은 장면을 수백 번 고쳐 찍는다. 각도를 달리해서 찍고, 같은 각도라도 다른 조명으로 찍어보고, 또 자세를 고쳐서도 찍는다. 불과 5분이면 지나가 버릴 장면도 1시간이 걸리게 될 때가 허다하다.

‘후아유’ 촬영현장 속 옥택연
‘후아유’ 촬영현장 속 옥택연
‘후아유’ 촬영현장 속 옥택연

옥택연에게 집중력을 유지하는 비결을 귀띔해 달라하니, 슬쩍 공을 제작진에게 돌린다. “저는 감독님만 100% 신뢰해요. 처음에는 늘 긴장하고 있었어요. 집중력을 유지하려고 쉬는 시간에도 긴장하고 있었죠. 하지만 긴장을 조였다 푸는 것이 연기의 재미라는 감독님의 말만 듣고는, 이제는 그 풀렸다 조였다 하는 작업을 즐기려고 해요.”

조현탁 PD는 매사에 자신을 신뢰하면서도 열정적으로 건우가 되어가는 택연이 예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어떻게 택연과 만나게 됐는지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배우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못했다. “택연의 캐스팅은 드라마 연출 입장에서는 극히 일어나지 않는 특이한 예가 됐죠. 제안을 하면서 기대는 컸지만 안 될 수도 있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오케이 하더라고요.”

그렇다면 그는 어째서 처음부터 건우 역에 택연을 점찍어 두게 된 것일까. “자기가 맡게 되는 캐릭터에 대해 기대를 갖고 있는 동시에 준비도 돼있는 친구였어요. 자기 준비라는 것도 억지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원래 옥택연이 가진 한 부분이 자연스럽게 건우에게 스며드는 형식이죠. 그러니 현재는 차건우를 연기하는 옥택연이 아니라, 옥택연화(化) 된 차건우가 되어가는 과정인 것이죠.”

연기를 하는 사이사이 긴장도를 올렸다 떨어뜨리는 등 조절하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다 말했던 옥택연은 조현탁 PD의 말처럼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스며드는 건우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현장에서 그런 옥택연을 유심히 관찰하는데, 조현탁 PD가 다시 기자에게 다가와 말했다. “잘 보세요. 자기 자신과 배역 간의 상호관계가 진행되는 거예요. 각진 곳이 점점 둥글어지는 것처럼 정리의 과정인 것이죠. 실은 택연 군이 어떤 결정적인 이유로 차건우가 되고자 마음먹게 됐는지는 몰라요. 또 그 역할로의 성공적인 변신에 있어 택연의 어떤 면이 결정적인 키를 제공하게 됐는지도 모르죠. 다만 연출의 입장에서 배우 본인과 배역 간의 상호관계,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것이 놀라워요.”



후배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옥택연(가운데)
후배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옥택연(가운데)
후배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옥택연(가운데)

스태프들이 이리저리 분주하고 오가고, 같은 장면을 반복해 찍은 다음에야 첫 신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다음 장면에는 새로운 얼굴들도 등장한다. 의경 옷을 입은 노영학과 성승하 역의 신인배우가 그 주인공이다. 어린 친구들이 들어오자 택연의 표정은 더욱 밝아진다. 후배들과 호흡할 때 다정한 성미가 더 발현되는 것 같다.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할 때 일부러 키를 낮추는 매너도 보여줬다. 그렇게 후배들을 챙기다가 선배 소이현에게도 슬쩍 다가가 ‘하하’ 힘차게 웃는다. 소이현의 표정에 지친 기색이 사라진다. 웃음이 전염된 것인지 화사한 미소의 소이현은 “왜 그렇게 자꾸 웃어?”라고 묻기도 했다. 옥택연은 주저 없이 답한다. “이게 바로 차건우지!”

배우가 연기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내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에 있어 그 어떤 배우도 자신 안에 없던 전혀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지는 않는다. 수많은 상상력과 반복되는 훈련으로 자신의 다양한 감정의 골격 중 하나 혹은 여럿을 끄집어내 내 안에 있는 나, 또 다른 나를 찾아낸다. 그렇게 ’후아유’는 배우들에게는 늘 잊어서는 안 되는 스스로를 향한 질문이 된다. 내 안의 나, 당신은 누구인가요?

* 택연과의 인터뷰는 텐아시아가 발행하는 ’10+Star’(텐플러스스타) 9월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구혜정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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