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남규리를 처음 인터뷰한 것은 2008년 첫 영화 주연작 ‘고사’에 출연했을 때였다. 막 연기자로 데뷔했던 당시, 바쁜 스케줄에 치여 피곤한 가운데서도 자기 생각을 뚜렷이 힘주어 말하는 또랑또랑한 느낌이 인상적인 느낌으로 남아있던 그다.

그로부터 5년 후, 첫 주연작인 JTBC 드라마 ‘무정도시’의 언더커버(경찰, 정부 등을 위해 비밀리에 활동하는 요원) 수민 역으로 시청자들과 만난 그는 한결 여유로워지고 연기에 대한 욕심도 한껏 늘어났다. 예전의 똑부러지는 이미지는 여전히 간직한 채 말이다.

물론 TV 드라마에서 처음 시도한 본격 느와르 드라마에 대한 도전이 녹록지는 않았다. 드라마 방송 초반 연기 논란에 맞닥뜨리기도 했던 그에게서 작품을 마무리한 감회를 들어보았다.

Q. ‘무정도시’는 TV 드라마로는 보기 드물게 묵직한 작품이었다.
남규리: 끝나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먹먹했다. 수민의 진심이 얼마나 전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배우로서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는 작품이었다.

Q. 처음으로 느와르 드라마에 도전했던 결과는 만족스럽나.
남규리: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역할이었다. 나는 이제 4년차 배우고 겨우 네 작품째인데 드라마에서 경험하기 힘든 느와르 장르에 도드라진 역할을 맡다 보니 능력이나 경력 모든 면에서 모자르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특히 다른 배우들이 모두 꾸준히 연기해오신 분들이라 내가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있었다. 통통 튀고 밝은 이미지 외에 내게 또다른 모습이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연기한 것 같다.

Q. 초반에는 연기가 좀 어색하는 평가도 있었는데.
남규리: 표현하는 데 있어 내공이 좀더 쌓였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많았었다. 배우가 어떤 감정을 그저 가지고 있는 것과 그걸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가는 천지차이더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오히려 가진 사람보다 더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 난 연기할 때 진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더 고민해야 한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경험이었다.

Q. 어떤 점이 그간의 드라마와 많이 달랐나.
남규리: 그동안은 대사 위주의 드라마를 많이 했는데 ‘무정도시’는 그런 면에서는 친절하지 않은 작품이었다. 대본 자체가 해석이 여러가지로 가능한 열린 작품이었다. 예를 들어 김수현 작가님의 대본은 눈물을 흘릴 때 몇 방울을 떨어뜨려야 하는지, 식탁에는 딸기가 놓여 있는지 커피잔이 있는지도 세밀하게 적혀있어서 말하자면 대본으로 ‘보호’를 받으며 연기했었다. 그런데 ‘무정도시’는 여백이 참 많았다. 대사로 서술되지 않은 부분을 내가 연기로 표현해야 했는데 그런 점이 처음엔 익숙지 않아 굳어있는 모습도 보였던 것 같다. 내가 뭘 채워야하는지도 알게 됐고…’다음엔 촬영하면서 다시는 당황하지 말아야지’하는 다짐도 하게 됐다.

Q. 진숙(김유미)과의 남다른 우정이 표현되는 부분은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보여준 것 같아 새로웠다.
남규리: 나중엔 촬영하면서 (김)유미 언니가 “시현이 말고 나랑 멜로 하자”고 하더라. 두 여자의 애틋한 우정같은 부분이 호흡을 맞추면서 무척 달콤했다. 배우들과 깊은 감정의 교감을 나눌 때는 사실 감정을 잡기 어려울 때도 많은데 유미 언니랑은 굉장히 잘 맞았다.

Q. 후반부로 갈수록 수민의 캐릭터가 점점 자연스러워지는 모습은 확실히 있었던 것 같다.
남규리: 작품이 끝나가면서 캐릭터에 동화되는게 뭔지를 확실히 느낀 것 같다. 슬픔과 기쁨과 행복이 모두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베테랑 연기자분들의 경험을 높이 사는구나’란 점도 깨달았다.

Q. ‘무정도시’를 하면서 연기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뀐 부분이 있나.
남규리: 이전에는 폭발적인 감정표현이나 강렬한 느낌을 잘 소화하는 게 좋은 연기라고 착각했었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드라이한 가운데서도 표정만으로 감정을 표현한다든지 하는 절제의 미를 배운 것 같다. 조용히 표정만으로 보여주거나 아픈 마음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걸 많이 생각하게 됐다. 내겐 마치 성장통같은 드라마였다.

Q.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망설임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남규리: 개인적으로는 끌렸는데 작품 자체가 남자 드라마라 여성 캐릭터가 사랑받기는 어려울거란 얘길 들었었다. 그렇지만 난 “개런티를 조금 받더라도 출연하고 싶다”고 얘기했었다. 약해보이지만 내면이 강인한 캐릭터를 한번쯤 해보고 싶었다.

Q. 수민이가 지닌 근성이 배우 남규리에게도 엿보인다.
남규리: 맞다(웃음) 어릴 때 가수로 데뷔해 우여곡절을 꽤 많이 겪으며 살아왔다. 마음 편할 날이 없었을 정도로. 아마 내 안에 어떤 끈기나 오기같은 게 없었으면 계속 하지 못했을 거다. ‘인생은 아름다워’를 찍을 때는 김수현 선생님이 처음엔 반대하셨었던 터라 세 달 내내 혼나고 연습해서 배역을 따낼 수 있었다.

Q. 이번 드라마로 작품을 보는 눈도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남규리: 어떤 분량이나 캐릭터든 내가 좋아하고 꽂히는 작품을 하자는 생각을 했다. 그게 내가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완벽하게 만족스럽진 않을지라도.

Q. 배우로서 갖게 된 목표가 있나.
남규리: 한번에 잘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차곡차곡 신뢰를 쌓아서 어떤 역할을 하더라도 저 사람이 하면 볼만하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면 가장 뿌듯하겠지.

Q. 곧 봉사활동을 하러 간다고 들었다.
남규리: 아프리카 봉사활동은 처음이라 많이 기대된다. 그동안 가고 싶단 생각은 많았지만 차마 용기를 내지 못했는데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사실 오늘 예방주사도 맞고 왔는데 가기 전까지 운동도 많이 해서 체력을 기르고 가야 할 것 같다.

글. 장서윤 ciel@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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