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은│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김가은│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LSM엔터테인먼트는 괴상한 회사다. 오디션을 증오한다던 이상민 대표는 연습생을 뽑기 위해 주구장창 오디션을 개최하고, 한 명밖에 없는 매니저 백영광은 무능력하고 눈치도 없는 주제에 늘 달샤벳 타령만 한다. 게다가 광고주인 삼촌 덕택에 1호 연습생이 된 이수민은 고문 자리까지 꿰차고, 호시탐탐 가수로 데뷔할 기회를 노린다. Mnet 은 무엇이 실제고 무엇이 픽션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 알쏭달쏭한 프로그램이다. 김가은은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이 세계에 겁도 없이 폴짝, 뛰어들어와 김 비서가 되었다. 마치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로 진입한 앨리스처럼.

비우고 기다릴 줄 아는 재능
김가은│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김가은│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PD님이 시트콤과 리얼리티의 사이라고만 말씀해주셨을 뿐, 제가 뭘 해야 하는지 정확한 내용을 알진 못했어요. 그냥 Mnet < UV 신드롬 > 시리즈를 연출하셨던 분이니까 재미있게 만드실 거라 생각하고 첫 촬영에 들어간 거죠. 일단 저한테는 새로운 시도였기 때문에 마냥 재미있었어요.” 두 눈에서는 싱싱한 물음표들이 반짝이며 튀어 오른다. 호기심이라는 본연의 성질을 간직한 채 팔딱거리는 이 물음표들 덕분에, 김가은은 이상한 나라로의 여정에 무사히 적응했다. ‘H-유진 정말 잘 생겼고’로 시작하는 다소 민망한 랩을 “점점 뻔뻔하게” 할 수 있게 된 건 기본이다. H-유진 앞에서 직접 랩을 해야 했던 상황에 대해선 심지어 “오셨는데 들려 드리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며 생글생글 웃어넘긴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게 쑥스러워 학창시절 장기자랑도 해본 적 없다던 고백이 무색하게 말이다.

사실 데뷔 후 지난 5년간은 김가은이 호기심을 발휘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아주 어릴 땐 어린이프로그램에 출연해 끼를 인정받았고, KBS 를 본 이후론 배우의 꿈을 의심해본 적이 없던 그였다. 하지만 뮤직비디오와 CF 몇 편에서의 깨끗한 이미지만 남겼을 뿐, 김가은이라는 이름을 아로새길 타이밍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기회가 많이 없었어요.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저를 선택해주셔야 작품을 할 수 있게 되는 거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오는 마음의 어려움이 있었어요. 앞으로 뛰어나가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기어서라도 가야 할 텐데, 과연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목소리가 떨리는가 싶더니 이내 반듯해진다. “그럴 땐 천 조각, 이천 조각짜리 퍼즐을 계속 맞추면서 생각을 비워버렸어요.”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터득했다는 것. 모든 게 불확실한 연예계에서 이것만큼 귀중한 재능이 또 있을까.

“기회가 오는 대로 다양하게 다 해보고 싶어요”
김가은│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김가은│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여전히 그는 “밖에 나가도 이상민 대표님이랑 다 같이 나가야 LSM이구나 하지, 혼자 다니면 사람들이 잘 알아보지 못하는” 배우다. 다만 지금 김가은이 스스로 틀을 깼다고 생각한다는 것, 자신의 변화를 감지하기 시작했다는 건 중요한 사실이다. 이미 그는 이상한 나라로 깊숙이 들어왔고, 쉽지 않을 여행은 오래전에 시작됐다. 이것이 한낮의 잠에서 비롯된 꿈으로 끝날지, 달콤한 현실로 끝날지는 오로지 김가은에게 달렸다. “지금은 기회가 오는 대로 다양하게 다 해보고 싶어요.” 다시 미지의 영토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 찬 얼굴, 그리고 덧붙이는 한 마디. “일할 때 지쳐서 쓰러지면 안 되니까, 항상 나중을 생각하면서 운동을 하고 있어요.” 그게 바로 인생의 진리다.

글. 황효진 기자 seventeen@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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