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차지연
차지연
“그대여 힘이 돼 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그대여 길을 터주오. 가리워진 나의 길.”

‘가왕’ 차지연이 눈물을 흘렸다. 고(故)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을 연습하면서다. 태산 같던, 늘 거대하던, 언제나 여전사처럼 무대를 호령하던 차지연이 애처롭게 눈물을 흘렸다. 무슨 일일까.

지난달 30일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일밤-복면가왕’에서는 여전사 캣츠걸이 우리동네 음악대장에게 가왕 자리를 넘겨주는 모습이 그려졌다. 캣츠걸은 지난해 11월 17대 가왕에 오른 후 무려 28주 동안이나 자리를 지켰던 인물. 이날 캣츠걸은 승부가 갈린 뒤 복면을 벗고 정체를 공개했다.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캣츠걸은 차지연이었다.

탈락을 미리 예감했던 걸까. 이날 차지연은 평소와 달리 잔잔한 노래를 선곡해 진한 감동을 남겼다. 그가 선보인 무대는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 무대를 보고 있노라니 문득 떠오르는 노래가 있었다. 뮤지컬 ‘서편제’의 넘버 ‘살다 보면’이었다.

앞서 차지연은 세 차례에 걸쳐 뮤지컬 ‘서편제’에 송화 역으로 출연했다. 극 중 넘버 ‘살다 보면’은 마치 차지연을 위한 넘버인 듯 기가 막히게 어우러졌다. 국악에 뿌리를 둔 목소리, 생생한 한(限)의 정서 또한 일품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진정성이 깊은 울림을 남겼다.
차지연
차지연
차지연의 외가는 대대로 명인을 배출해낸 국악인 집안. 그에게 노래는, 운명이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차지연의 길은 평탄치 않았다. 가수의 꿈을 안고 무작정 상경해 기획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좌절했고, 집안 사정이 어려워 서울예대를 중퇴하기도 했다. 뮤지컬 ‘라이언 킹’에 캐스팅되며 한 숨 숨을 돌리는가 싶더니, 월세와 어머니 수술비 등으로 월급을 모조리 차압당하기도 했다. 그가 쉼 없이 작품에 출연했던 건, 단순히 꿈을 위한 달음질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또한 생계이기도 했다.

하지만 차지연은 ‘살다 보면’의 가사처럼 그저 살아냈다. 그가 지나온 길은 고단했을지언정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은 고스란히 차지연 자신에게 녹아들었다. 힘들었던 경험 역시 그에겐 양분이 됐다. “어려움이 있었기에 음악적 깊이를 가질 수 있었다”던 유영석의 말은 차지연에게도 유효한 얘기였다.

결국 차지연은 5대 연속 가왕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물론 가왕 등극 여부가 가수로서의 성공과 실패를 가리는 기준은 아니다. 하지만 꿈을 향한 갈증을 해갈해 주기엔 부족함이 없었을 게다. 차지연 역시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긴 세월동안 가수가 되고 싶어 발버둥 쳤는데 잘 안 됐다”면서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일을 이제야, 많이 돌고 돌아서 이제야 하게 됐다”고 소감을 밝힌 바 있다.

‘가리워진 길’을 부르며, 차지연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혹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리진 않았을까. 알 길이 없어 짐작만 할 뿐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제 가수라는 꿈이 더 이상 차지연을 외롭게 만들지 않을 거라는 점. 차지연의 앞날에 아낌없는 응원을 보낸다.

이은호 기자 wild37@
사진. MBC ‘일밤-복면가왕’, ‘살다 보면’ MV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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