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가 진행된 카페 앞에서, 세발자전거를 타고 가던 꼬마는 길을 향해 다가와 “길 아저씨다!”라며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MBC ‘조정 특집’을 준비하며 온몸이 거무스름하게 그을린 서른다섯의 민머리 남자 역시 자신의 무릎까지밖에 오지 않는 꼬마에게 쑥스러운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리쌍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생겨난 가장 큰 변화는 아마도 이런 것일 것이다. 2002년 월드컵의 열기만큼이나 뜨거웠던 리쌍의 첫 번째 앨범 이후 9년, 지독할 만큼 우직하게 음악을 향해 삽질해 온 이들은 자신만의 색깔을 지닌 뮤지션인 동시에 어린아이들부터 노인까지 얼굴을 알아보는 연예인이 되었다. 어떤 것들은 달라졌고, 어떤 것들은 그대로다. 마치 의 짱구가 어른이 된 것처럼, 험상궂으면서도 어딘가 귀여운 구석이 있는, 무엇보다 음악 앞에 다시 없을 순정파인 남자 길을 만났다.

지난 앨범 때보다 얼굴이 훨씬 좋아진 것 같다. 건강해 보인다.
길 : 덕분이다. 원래 전혀 운동을 안 했는데, ‘조정 특집’을 하면서 무조건 매일 운동을 해놔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앞으로 언제 무슨 장기특집에 들어가게 될지 모르니까 평소에 해놓자는 마인드가 생겼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 편에서 힘들었던 청소년기에 대해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동안 앨범을 들을 때마다 리쌍의 10대, 20대가 궁금했다.
길 : 아버지가 오래 아프셨기 때문에 집안은 계속 어려웠다. 1년에 100만 원 벌면 많이 버는 거였고, 용돈 받는 건 생각도 못했다. 그러다 학교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면서 겉멋이 들게 됐는데, 그 땐 음악을 한다는 게 겉멋이었다. 개리랑 만난 게 96년이었는데 당시는 ‘힙합이 뭐야? 랩이 무슨 가사냐?’ 하던 시절이었고 랩을 써서 앨범에 실려도 저작권료를 안 줬다. 그래도 우리는 어디 가서 랩을 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우리 둘이 리쌍을 한다고 했을 때, ‘개리가 가사 쓰고 길이 음악 만든대’ 라는 얘기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너희가? 둘이서?” 였다. (웃음) 힙합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음악 하는 애들한테도 우리는 완전 무시당하는 존재였던 거다.

“슬픈 노래가 안 슬프면 꽝”
리쌍│길 “우리를 보면서 꿈을 꾼다고 말해줘서 고맙다”
리쌍│길 “우리를 보면서 꿈을 꾼다고 말해줘서 고맙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
길 : 당시 압구정동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했는데 4백 시간이 넘게 연속으로 녹음실을 썼다. 그 스튜디오가 없어질 때까지 그 기록이 깨지질 않았다. (웃음) ‘개리와 기리’ 가사에도 있듯 사람들이 다 미쳤다고 그랬다. 곡 처음 쓰는 애, 앨범 전체 가사는 처음 쓰는 애 둘이 와서 녹음실 비만 팔천팔백만 원을 쓰는데 빚이 1억 2천 7백만 원이었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작정 삽질하는 우리의 성격상 사랑 노래, 이별 노래 오십 몇 곡을 만들어놓고 열여섯 곡을 추려 만든 리쌍 1집 때부터 겨우 둘의 진짜 음악이 시작된 거다.

돌이켜보면 그 때 뭘 믿고 그랬던 것 같나. 우리가 잘 될 거라는 믿음, 혹은 그런 건 없지만 일단 한 번 가 보겠다?
길 : 사실 속마음은, 딱 한 장 해 보고 망하면 그만 하자는 거였다. (웃음) 그 전까지도 엑스틴이며 허니 패밀리로 거의 6년 동안 음악을 해왔으니까, 스물일곱 살에 1집 내는데 이번에도 안 되면 그냥 각자 갈 길 가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김빠질까 봐 서로 얘기는 안 했다. 이렇게 무시 받는 힙합으로 언젠가 차트 1위 할 때까지 우리가 한번 간다, 그런 마음이었다.

그렇게 만든 리쌍 1집이 6만 장 넘게 팔리는 성공을 거뒀다.
길 :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우리가 H.O.T.나 god 같은 아이돌도 아닌데 와, 대박이야.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집을 준비하는데, 이제는 패기나 열정만 가지고는 안 되는 거다. 2집 녹음이 끝난 날까지 타이틀곡도 못 정했는데 개리가 “야, 이제 됐어. 알아서 해” 그러면서 가 버렸고 매니저 형도 “나도 모르겠다”며 갔다. 어떻게 보면 두 번째 타이틀곡은 우리의 노선, 마인드,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정하는 순간 같은 거였는데 그 때 선택한 게 ‘리쌍 블루스’였다.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이 반은 욕했고 반은 엄청 욕했다. (웃음) “그게 뭐야? 너희 힙합 아니잖아?” 그럼 우린 “단정 짓지 마. 우린 이제 리쌍이야”라고 했다. 그 뒤로는 솔직히 기억이 안 난다. 바쁘게 살았고, 그저 삽질인 줄 알았는데 우리가 걸어온 길이 어릴 때부터의 꿈을 이루는 과정이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말한 대로 리쌍의 음악은 어느 시점부터 힙합이라는 장르를 벗어나서 자기 색깔을 갖게 됐다. 다른 싱어 송 라이터들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색을 지닌 작곡가, 프로듀서로서 그 바탕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길 : 대부분의 작곡가 분들은 음악을 배운 분들인데 나는 교육을 못 받았고, 배우려고 해 봤는데도 잘 안 됐다. (웃음) 하지만 나는 무작정 곡부터 쓰기 시작해 170여 곡을 만들면서 최전방에 계속 있었던 사람이다. 결국 각자가 무엇을 제일 중요시하느냐가 음악에 드러날 텐데, 나는 감정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화려한 코드나 장르의 공식이 다 있지만 나는 슬픈 노래가 안 슬프면 꽝이라고 생각하고 드럼 비트에 노래만 올려놔도 슬프면 그게 진짜라고 본다. 그래서 개리는 내가 작업할 때 옆에서 보면 덩치 이만한 애가 곡에 감정이입해서 혼자 인상 쓰다가 슬퍼하다가 그러니까 엄청 웃기다고 한다. (웃음) 하지만 내가 개리한테 “이거 들어봐. 슬프지 않냐? 여기선 해가 지는데, 강가야. 그리고 이 부분에서 비가 내리는 거야” 하는 식으로 설명하면 개리도 “오, 그래 맞아” 하면서 알아듣는다. 그래서 같은 팀인 것 같다.

음악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음에도 사운드의 완성도 면에서 집착적일 만큼 완벽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6집 앨범을 만들면서 녹음실 배선을 바꾸는 데만 수천만 원을 들였다고 했었는데.
길 : ‘발레리노’ 앨범 때도 뉴욕 가서 마스터링만 천이백만 원을 들여놓고 한국 와서 다시 했다. 그랬더니 주위 뮤지션 형들이 “너희 진짜 정신병자들 같다”고 하더라. (웃음) 그런데 마스터링을 다시 해서 들려주면 바로 이해한다. 우리 음악은 요즘 사운드처럼 세련되게 뽑히면 오래 못 듣는다. 빈티지한 사운드를 내기 위해 70년대 릴 사다놓고, 로즈 피아노 사다 놓고 해도 구현하기가 정말 힘들다. ‘나란 놈은 답은 너다’는 편곡만 아홉 번 했는데 이적, 정재형, 루시드 폴 형이랑 같이 차타고 가다 들려줬더니 “이거, 너희가 만든 거 아니지?” 하는 거다. (웃음) 오중석 작가가 만화로 그리기를, 우리가 하는 막창집 안에 애들이 노래 만들고 있고 나랑 개리는 놀러다니고 예능 가서 웃기고 들어오면 애들이 곡 써서 검사받고. 그거 보고 배꼽 잡았다.

“예능이 음악 하는 데 정말 좋은 영향을 끼친다”
리쌍│길 “우리를 보면서 꿈을 꾼다고 말해줘서 고맙다”
리쌍│길 “우리를 보면서 꿈을 꾼다고 말해줘서 고맙다”
MBC 무브먼트 특집에서 다른 가수들이 ‘MT나 모임을 주도하고 챙기는 성격’이라고 한 것처럼 음악도 어떤 판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동참시키는 데 능숙한 편인 것 같다.
길 : 술값이 많이 나간다. (웃음) 어릴 때 집이 못 살았고 형 없이 누나만 셋이다 보니 사람들 만나는 데 굶주려있었던 것 같다. 누구랑 데이트를 하다가 라디오에서 어떤 음악이 하나 나왔는데 둘이 같이 좋아하는 곡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음악 하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금세 잘 통한다. 가끔 술자리에서 “야, 오늘은 음악 얘기 하지 말자” 그러다가도 두 시간만 지나면 결국은 다들 음악 얘기를 하고 있을 만큼 음악을 좋아한다. 그래서 다른 분들도 ‘리쌍이랑 만나 술 한 잔 했는데 얘네랑 음악 얘기 하니까 참 기분이 좋더라’는 느낌을 받으시면 우리가 어떤 제안을 했을 때 거의 흔쾌히 받아주시는 것 같다. 대신 우리는 항상 얘기한다. “언제든지 리쌍이 필요하면 불러라. 죽을 때까지 가 드리겠다.” (웃음) 우리가 유난히 남들 결혼식 축가를 많이 부르러 다니는 것도 그래서다. 다이나믹 듀오의 개코나 BMK 누나처럼 도움을 받은 사람들에게 종신계약이 돼 있기 때문에. (웃음)

음악에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이룬 것들을 인정받고 있지만 사실 예능에서의 반응이 음악만큼 좋지는 않다. 마음고생도 있을 것 같은데.
길 : 사실 내가 마음고생을 하고 안하고는 중요한 게 아니다. 음악은 음악대로, 예능은 예능대로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 개리는 음악도 예능도 잘 하고 있는데 내가 ‘길이 음악은 잘 해. 그런데 예능은 너, 혼난다?’ 라는 말을 들으면 더 목숨 걸고 해야 하는 거다. 들어와서 1년은 뭣도 모르고 했고, 그 다음 1년은 ‘아, 이거 맞는 건가?’ 하면서 고민했고, 지금은 열심히 해도 안 웃기는 캐릭터를 얻은 단계인 것 같다. (유)재석이 형을 비롯해 10년 이상 예능을 했던 멤버들 말대로 매주 그냥 무조건 목숨 걸고, 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다.

그러면 음악이 아닌 다른 분야에 뛰어들고 나서 얻은 건 뭐라고 생각하나.
길 : 진짜 좋은 사람들을 만난 거다. 식구들도, ‘런닝맨’ 식구들도 스태프들까지 다 정말 좋은 사람들이다. ‘회상’ 가사에 개리가 “돈은 많이 벌진 못해도 사람 땜에 받은 상처 사람으로 다시 메꿔”라고 쓴 것처럼, 출연료보다 크게 얻은 건 좋은 마인드를 배운 거다. 을 하면서 운동이란 걸 하게 됐고, 그러다보니 살도 빠지고, 시청자들이 우리를 보면서 희망을 얻는 것처럼 나도 포기하지 않는 걸 배우고 있다. 그게 음악 하는 데 정말 좋은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예능을 하면서 음악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은 많이 줄었을 텐데 그런 것들은 어떻게 커버하나.
길 : 후회 없이 살고 싶어서 열심히 살고 있다. 옛날엔 잠이 진짜 많아서 엄청 혼났는데 잠도 굉장히 많이 줄여서 운동하고 음악하고 예능 한다. 이번 앨범 나오고 나서 음악 하는 동생들한테 고맙다는 문자도 많이 받았다. 사실 우리가 이 바닥에 있는 16년 동안 수많은 천재들이 떠났다. 음악으로 돈벌이가 안 되니까. 그런데 이제 애 아빠 되고 음악 포기하려고 했던 동생들이 “음악 포기하려고 했는데 형들 때문에 다시 꿈을 갖게 됐다, 형들 같이 생긴 사람들이 음원 올킬 하는 걸 보니 희망이 생긴다”고 말한다. (웃음)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꿈을 꾼다고 말해줘서 고맙다.

지금 사는 게 정말 즐거워 보인다.
길 : 10년만 더 이렇게 살고 싶다고 얘기한다. 마흔 다섯 까지만 이렇게 살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그런데 마흔 다섯이 되면 또 그 꿈이 연장되겠지. (웃음)

사진제공. 정글엔터테인먼트

글, 인터뷰. 최지은 five@
인터뷰. 이가온 thirte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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