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엽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닐 지도 몰라"(인터뷰)
에서 동평군 이항을 연기했던 배우 이상엽"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동평군 이항을 연기했던 배우 이상엽

몇 년 전 방영된 드라마 <마이더스>에서 낯이 익지 않은 배우가 눈에 들어왔다. 그다지 큰 배역도 아니었고 흔하디흔한 주인공의 조력자 역이었는데, 그에게 시선이 머물렀던 이유를 지금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유롭게 그 세계를 헤엄치던 주변의 다른 인물들과는 다른 파닥거림이 신선했기 때문인 듯하다.

SBS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하 장옥정)에서 동평군 이항 역을 맡아, 유아인 김태희와 삼각 로맨스를 만들었던 배우 이상엽에 대한 첫 인상이다.

<마이더스> 이후 2년. 스스로는 한 단계씩 밟아나가는 인생이 때로는 힘들게 느껴진다고도 토로했지만, 차곡차곡 쌓은 노력은 그의 키를 더욱 크게 키워줄 것임이 분명하다. 스스로에게 솔직한 노력 끝에 결과를 만들어 낸 사람들만이 가진 떳떳한 풍모가 그의 표정에 서려있다.

아직 노련함이나 여유는 부족할지 모르나, 점점 세계를 넓혀가는 이 배우가 언젠가 굉장히 매력적인 몸짓으로 헤엄칠 날이 올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Q. <장옥정>에서 동평군 이항 역을 연기했다. 실존 인물인데, 실제 그의 인생은 굉장히 비극적이더라. 그런데 초반 등장한 이항은 아주 밝은 인물로 드라마에서 톡톡 튀었다.
이상엽 : 일단 드라마의 시작은 장옥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었기에, 동평군 역시도 새로운 인물로 창조해야 했다. 감독님(부성철 PD)은 동평군을 로맨티스트로 만들고 싶어 하셨다. 그의 사랑의 결말은 새드엔딩이기에, 초반에는 필요이상으로 밝아야 했다. 그래야 나중에 슬픈 신에서도 동평군의 웃음이 웃는 게 아니구나라는 점을 부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Q. 그때 탄생한 애드리브가 바로 문제의 ‘에잉~’ 이었나보다.
이상엽 : 덕분에 인간비글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웃음). 시작할 때 6회분량의 대본을 받았고 어떤 부분에서 동평군의 장난기를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Q. 그렇다면, 알려진 것과 달리 애드리브는 아니었던 것이네. 연구 끝에 탄생한 것 아닌가.
이상엽 : 그렇다. 톤을 바꿔서 여러 번 반복해서 준비했고, 감독님과 상의도 했다. 현장에서도 다들 재미있어 했다. 분위기를 확 바꿀 수 있는 대사이기도 하고. 이런 것들은 아까 말했듯, 동평군이 슬픈 감정을 애써 숨긴다는 것을 부각하기 위한 장치였다.

Q. 본래 연기에 임하기 앞서 연구를 많이 하는 편인가 보다.
이상엽 : 그렇긴 한데 연습을 너무 많이 해도 문제다. 특히 감정신이 경우, 나중에는 감정이 굳어져 정형화된 것이 나간다. 요즘은 대사를 텍스트 외우듯 무미건조하게 외운 다음, 상대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면 툭 터진다. 그게 진짜 맞는 것 같다.

Q. 동평군은 <성균관 스캔들>의 구용화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었다. 혹 촬영 전 참고를 하진 않았나.
이상엽 : 처음에는 나도 그런 생각을 했기에 송중기 씨가 연기한 것을 볼까도 했는데 의식하다보면 너무 따라가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작품들을 참고하지 않으려고 했다. 오히려 나중에는 <선덕여왕>의 비담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해 그때는 찾아본 적도 있긴 하다.

동평군 이항을 연기한 배우 이상엽
동평군 이항을 연기한 배우 이상엽
동평군 이항을 연기한 배우 이상엽

Q. 일각에서는 후반부 들어서 동평군의 캐릭터가 설자리가 없었다는 아쉬운 소리도 나온다. 그런 부분에 있어 제작진에게 불만은 없었나.
이상엽 : 글쎄. 어찌됐든 작품 속에 있는 캐릭터와 연기자는 감독님과 작가님에게 자식 같은 존재다. 특히나 감독님은 나라는 배우를 믿어주시고 끌어주셨고 힘을 실어주셨다. 감사할 뿐이다.

Q. 갑자기 청나라로 가버려서 사라졌을 때도 정말 괜찮았나. 물론 금방 돌아오긴 했지만.
이상엽 : 2~3일 만에 돌아왔지(웃음). 그 때는 감독님께 툭툭 던지듯 말하긴 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의 주가 돼야하는 것은 옥정과 이순 아닌가. 내가 부각이 됐더라면 산만한 그림이 됐을 것이다. 동평군이 할 수 있었던 최선이라고 본다.

Q.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할 때 보면, 실제 성격도 동평군과 닮은 점이 많은 것 같다. 뭔가 주변과 잘 어우러지는 사람 같은 느낌이 든다. 사랑에는 어떤 편인가? 동평군처럼 순정파인가?
이상엽 : 그런 것 같다. 장난기도 있다. 사랑은… 어렸을 때는 그랬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믿으면서 여자 친구들에게 실제로도 열 번 찍어보기도 하고 그랬었다.

Q. <장옥정> 현장에서도 더 없이 밝았다고.
이상엽 : 이번 현장에서는 유독 날아다녀야 했다. 그렇게 해야 동평군의 까불까불한 연기도 잘 나오고. 현장이 편해서 그런지 촬영도 재미있었다.

Q. 드라마는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배우들끼리는 사이가 좋아 보인다.
이상엽 : 정말이다. 되게 좋았고 재미있었다. 종방연을 하고 배우들끼리 2차를 갔었는데 거기서도 정말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트 게임을 했는데 유아인 씨와 내가 꼴등을 해 막춤을 췄다. 그때 뮤직비디오 찍느라 늦게 온 한승연 씨가 합류해 함께 춤을 추며 소리를 질렀다. 나만 좋아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유아인 씨도 너무 좋아하더라. 목에 핏대를 세우며 좋아하다 서로 민망했던 기억도(웃음). 배우들끼리 단합이 참 좋았던 현장이다. (김)태희 누나가 젊은 배우 중 가장 누나였는데 동생들을 잘 챙겨주고 항상 웃는 얼굴이었기에 서로들 잘 뭉쳤던 것 같다.

동평군 이항을 연기한 이상엽
동평군 이항을 연기한 이상엽
동평군 이항을 연기한 이상엽

Q. 고백하는데 <마이더스> 때 유독 눈에 들어왔다. 저 배우 잘 될 것 같다는 감이 왔었고, 확실히 눈에 띄는 뭔가가 있었다.
이상엽 : 그 때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을 만난 것은 처음이다(웃음). 실은 <마이더스>는 내게 힘든 작품이었다. 군 제대 이후, 첫 작품이었는데 내가 카메라 울렁증이 있었구나 싶었다. 제대 직전 군대에서부터 작품 준비를 했었는데도 불구하고 2년이란 기간은 길더라. 현장과 떨어져 갇혀 지낸 시간 속에서 나 혼자 만에 생각으로 머리가 커져버린 것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 나는 현장에서 많이 깨지고 상처받고 힘들어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혹독한 복귀식을 치렀기에 성장할 수 있었던 듯 하지만.

Q. <선덕여왕>에 캐스팅 된 단계에서 갑자기 군대를 가게 됐고, 따라서<마이더스>는 정말이지 이를 갈며 준비한 작품이었을텐데.
이상엽 : 부딪혔고, 장혁 선배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다름 작품을 하면서 하나하나 풀어지긴 했다. 그래도 그런 시간 탓에 다음 작품을 더 많이 준비하게 됐다. 꿈은 어려서부터 연기자였지만, 그 때는 동경의 대상에 더욱 가까웠지 실현 가능한 꿈이라고는 차마 생각 못했다. 대학에서의 전공도 경영학이었다. 그러다 우연찮게 오디션에 지원했고 25세 무렵 연습생이 됐다. 이후 데뷔작 시나리오만 받으면 곧장 슈퍼스타가 될 것이라는 건방진 생각을 했었다(웃음). 그러나 이 세계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알면 알수록 더 어려웠다. 군대에서도, 또 군 제대 이후 첫 복귀작에서도 이런 나의 건방진 생각들이 조각조각 깨졌다. 이 세계는 많이 준비해도 100을 다 할 수 없는 것이 바닥이구나, 100을 보여주려면 200과 300을 준비해야만 하는 세계구나라는 점을 그 때 절실히 깨달았다.

Q.그래도 돌이켜 보면, 최근 2년 동안 차곡차곡 크기를 잘 키워온 듯 보인다.
이상엽 : 예전에는 답답할 때도 있었다. 정말 나는 한 계단씩만 올라가는구나 싶어서. 한 번에 열 계단씩 올라가고 싶은 마음도 들고, 실제로 그렇게 오르는 사람들도 보이니까. 하지만 그 분들은 또 그 분들의 길이 있는 것이고 내게는 내 길이 있는 것이더라. 지금은 그저 재미있다. 연기를 할 수 있는 현재가 행복하고, 스타들과 함께 연기하는 것도 그들과 친해지는 것도 신기하고 재미있다.

Q. 이상엽도 그렇지만 요즘 또래 남자배우들 중 좋은 배우들이 참 많다. 그들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느낌은.
이상엽 : 다양한 배우들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위기감이 때로는 느껴질지라도 그래서 더 자극받으며 치열하게 살게 된다. 이번에는 함께 한 유아인 씨에게서 내가 갖고 있지 못한 것을 느낀 적도 있다. 배우로서는 좋은 영향을 많이 받게 됐다.

Q. 필모그래피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은근히 도전한 분야가 많더라. 심지어 애니메이션 더빙도(웃음). 그래서 우리가 보는 이상엽은 어쩌면 지극히 일부분일 지 모르겠구나 생각했다. 언젠가 이상엽의 서글서글한 얼굴에서 폭발하는 광기를 느낄 날도 올까.
이상엽 : 악? 없진 않죠. 나도 사람인데. 화나면 성질도 내고. 그래도 단순해서 잘 까먹는 편이기는 하다. 하지만 순간순간은 못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연출자 분들은 내 안에서 그런 순간의 광기들을 봐주셨으면 한다. 내가 지금 웃고 있긴 하지만, 결코 웃는게 아니라는 반전을 생각해주시길(웃음).

글,편집.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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