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원의 반주에 ‘서른즈음에’를 노래하는 한경록
강승원의 반주에 ‘서른즈음에’를 노래하는 한경록
강승원의 반주에 ‘서른즈음에’를 노래하는 한경록



“여러분 제 열여덟 살 생일에 와주신 거 감사드립니다. 난 열여덟 살이니까 개구쟁이!”

‘경록절’이 열린 11일 에반스라운지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관객이 들어차 있었다. 밤 11시쯤 공연장 안을 들어서니 김수철이 한경록과 뜨거운 무대를 펼치고 있었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객석에는 뮤지션이 반, 또 팬들이 반이다. 공연장 밖에는 손부채로 땀을 식히고 있는 이들이 있다. 모르는 사람은 무슨 록페스티벌이 열린 줄 알았을 게다.

크라잉넛의 베이시스트 ‘캡틴록’ 한경록의 생일인 ‘경록절’은 크리스마스, 헬로윈과 함께 홍대 3대 명절 중 하나로 꼽힌다. 크리스마스에 굳이 홍대에 갈 이유가 없지만, 경록절에는 홍대에 가야 한다. 그 곳에 가면 반가운 추억속의 얼굴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연도 열린다. 운이 좋으면 국카스텐 이정길이 드럼을 치고 차승우와 윤병주가 블루스잼을 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웬만한 록페스티벌보다 재밌다”고 말한다.

에반스라운지 앞에 들어서니 ‘홍대의 왕’ 김락건이 장승처럼 서 있었다. 절을 하자 은혜롭게도 안에 들어가는 걸 허락해주었다. 안에 들어서니 인디 신 관계자들이 쭉 보인다. ‘드럭’을 설립한 이석문 전 대표를 비롯해 크라잉넛, 노브레인, 해리빅버튼, 미미 시스터즈, 갤럭시 익스프레스, 술탄 오브 더 디스코, 스트릿건스, 로다운 30, 킹스턴 루디스카 등의 멤버들이 보였다. 이들뿐만 아니다. 지금은 해체된 힙포켓 등 과거의 전우들도 모였다. 이들은 10~20년 전의 일들을 어제의 이야기처럼 나눴다.

김수철의 무대
김수철의 무대
김수철의 무대



한경록은 제대 후부터 생일잔치를 크게 벌이기 시작했다. 음악 하는 친구들을 초대하면 밴드들이 다 오다보니 점점 커졌다. 공연도 하고, 즉석 잼세션이 벌어지기도 하면서 자연스레 수백 명이 몰리는 ‘경록절’이 매년 열리게 됐다. 술값은 한경록이 쏜다. 올해에는 40만cc의 맥주를 주문했다.

크라잉넛을 비롯해 무드살롱 유발이의 소풍, 갤럭시 익스프레스, 스트릿건즈, 데드 버튼즈 등이 무대에 올랐다. 올해는 특별히 ‘서른즈음에’를 만든 강승원의 즉석 무대도 이어졌다. 이날 ‘서른즈음에’는 한경록이 불렀다. 마흔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이지만 한경록은 이 노래를 부르는 게 어색해보였다. 노래가 시원치 않자 강승원은 즉석에서 크라잉넛의 ‘밤이 깊었네’를 보사노바 버전으로 연주해줬다.

‘경록절’에는 모인 이들 모두가 한경록처럼 웃는다. 크라잉넛이 데뷔한지 20주년이 됐지만 한경록은 변함이 없다. 그를 처음 본 게 1998년이었다. 이후 그는 혼자 타임캡슐에 들어간 듯 여전한 외모와 말투, 웃음으로 사람을 반긴다. 무대 위에서는 언제나 ‘말달리자’ 크라잉넛이다. 홍대의 어린 왕자. 언제나 그 자리에.

글, 사진.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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