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비밀의 언덕'을 넘어 마주할 우리의 어린 시절, 그때를 소환할 영화의 마법
학창시절 누구나 학기초가 되면 학교에서 '가정환경조사서'를 받아온다. 생활기록부의 기본 정보가 되기도 하고, 학생을 둘러싼 환경을 담임교사가 파악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최근엔 상대적으로 적는 항목이 단촐했지만, 한 때 '자가 여부'까지 적던 시절도 있었다. 부모님의 직업 등을 구체적으로 적으라는 항목에 우리 부모님 직업을 부끄럽게 느끼던 이들도 있었다. 누구나 했을 법한 이 경험이다. 감수성이 풍부한 초등학생 5학년 소녀가 가정환경을 거짓으로 둘러대기 시작하면서 이 영화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5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영화 '비밀의 언덕'(감독 이지은)의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감독 이지은과 배우 문승아, 임선우, 장선, 강길우가 참석했다.

'비밀의 언덕'은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한 5학년 소녀 '명은'(문승아)이 글쓰기 대회에 나가 숨기고 싶었던 진실을 마주하는, 그 시절 나만 아는 여름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이지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제72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Kplus 경쟁 부문에 초청되기도 한 화제작이다.

배우 문승아는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은 은남 초등학교 5학년 7반 '명은' 역을 연기한다. 배우 임선우는 명은 가장 좋아하는 예쁘고 똑똑한 담임 선생님 '애란' 역을 맡았다. 배우 장선은 시장에서 젓갈 장사를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명은의 엄마 '경희' 역으로 분했다. 배우 강길우는 딱히 하는 일 없이 아내 경희의 젓갈 장사와 집안일을 돕는 명은의 아빠 '성호' 역으로 등장한다.
[종합]'비밀의 언덕'을 넘어 마주할 우리의 어린 시절, 그때를 소환할 영화의 마법
'비밀의 언덕'은 이지은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작품을 시작한 계기에 관해 묻자 그는 "영화의 시작은 굉장히 오래전이다. 초중고 시절에 하던 가정환경조사서부터 시작했다. 가족, 부모님 직업 등을 적는다. 종이 한 장이지만, 특히 한국 사회와 세계적으로 보편성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외에는 다른 것들이 생각나지 않아서 묻어뒀었다. 새로운 10대 여성 캐릭터를 보고 싶다는 감독으로서의 열망에서 시작했다. 발칙하고 뜨거운 욕망을 가진 작은 인간을 그려보고 싶었다. 이 두 가지를 결합해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지은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서 다뤄보고 싶었던 것은 솔직한 것이 좋을 것일까, 거짓을 말하는 것이 좋을까였다. 이게 가장 큰 화두다. 혜진과 명은은 글을 씀에 있어서 진실과 거짓이 좋은 것인지 판단하고 싶지는 않았다. 솔직하게 쓰면서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혜진과 명은의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관객들이 대입할 수 있게 하려고 했다"라며 고민했던 지점을 밝혔다.

영화의 배경은 1996년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어떤 현실 고증을 하려고 했느냐고 묻자 그는 "가정환경조사서는 부모님 세대도 있다고 생각한다.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라는 세대도 있지 않나. 그 세대까지는 가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필요했고, 90년대가 그런 자유가 있는 것 같다. 1996년인 이유는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바뀌어서 이 시대를 설정했다. 국민학교로 하면 공감하지 못하지 않을까도 생각했다. 1997년인 IMF를 거론하면, 너무 많은 이야기가 들어갈 것 같아서 1996년을 배경으로 삼았다. 비주얼적으로 고증을 크게 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의 감성과 인물상들을 고증하려고 했다. 인물의 리액션에 집중하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소개했다.
[종합]'비밀의 언덕'을 넘어 마주할 우리의 어린 시절, 그때를 소환할 영화의 마법
'비밀의 언덕'은 2009년생 문승아 배우의 섬세한 연기력이 눈길을 사로잡는 영화다. 이지은 감독은 캐스팅에 관해 "시나리오의 가장 앞 장에 쓴 내용이 있다. '명은이를 꼭 찾고 말 것이다'라는 목표였다. 4개월가량 많은 배우를 만났다. 오디션을 봤던 배우 중에 문승아 배우가 있었다. 연기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화가 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배역에 욕심이 있고 즐겁게 탐구하는 배우를 찾고 싶었는데, 그게 문승아 배우였다. 처음 만났는데 사람이 너무 구수하고 인간 대 인간으로 너무 재밌었다. 연기를 할 때는 너무 편하게 몰입해서 놀라기도 했다"고 답했다.

스크린을 장악하는 문승아 배우의 연기는 극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문승아는 "내 연기 선생님은 언제나 감독님이었다. 감독님과 많이 만나서 연습하고 친해졌다. 자연스럽게 명은에게 녹아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가족은 미워하지만 소중한 존재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족을 부끄러워해 본 적은 없지만, 뭔가 이해가 됐다. 다른 분들도 이해가 돼서 눈물을 글썽이는 분들도 계실 것이라는 것이 마음에 든다. 오늘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 좋을 것 같다"고 배역을 이입한 이유를 밝혔다.

이어 자신과 다른 시대를 연기함에 전혀 이질감이 없었다고. 그는 "MZ세대이기는 하지만, 프로니까 그 세대에 이입하는 것은 문제없었다"고 말했다. 또한 "명은 덕에 반장도 하고, 글짓기에서 상도 탔다. 명은이가 고마운 존재다"고 배역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영화 '비밀의 언덕' 배우 장선. /사진제공=국외자들
영화 '비밀의 언덕' 배우 장선. /사진제공=국외자들
명은 엄마 역의 장선은 "어린아이라서 보이는 어른들의 모순과 어리기 때문에 못 보는 모습이 있는 것 같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명은 상을 받으러 갈 때, 얼굴이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미소를 짓는 것이 가장 좋더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한 개인에 대한 이야기 같다. 관객들도 가족과 성장에 더불어 그런 생각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주인공 명은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설명했다.
영화 '비밀의 언덕' 배우 임선우. /사진제공=국외자들
영화 '비밀의 언덕' 배우 임선우. /사진제공=국외자들
영화의 첫 장면은 담임 선생님 애란과 연관될 정도로 애란은 중요한 인물. 임선우는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애란을 선생님처럼 연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익숙하게 봐온 선생님의 전형적인 모습보다는 명은과 선생님의 거리를 보여주는 것에 집중했다. 막 사회초년생을 벗어난 캐릭터로 생각하고 연기했다. 좋은 선생님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친절하지만 남과도 같은 거리감을 표현하고 싶었다. 시기가 1996년이다 보니 그 당시의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을 통해 외적인 부분을 만들려고 했다"고 자신이 맡은 인물을 소개했다.
[종합]'비밀의 언덕'을 넘어 마주할 우리의 어린 시절, 그때를 소환할 영화의 마법
'여섯 개의 밤'(감독 최창환),'초록밤'(감독 윤서진), '절해고도'(감독 김미영) 등 다양한 독립영화에서 개성 있는 연기력을 보여준 배우 강길우는 아버지 연기는 처음이었다고. 그는 "'성호'는 놈팡이 같고 잠만 자지만 생각이 많은 캐릭터다. 과거의 우리들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라고 캐릭터를 설명했다. 이어 그는 "아빠 연기가 처음이다. 성호도 아빠가 처음일 테니, 누군가의 아빠를 연기해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직업적인 역할로 적히지 않은 것 같았다. 성호도 누군가의 친구이자 남편으로 생각하고 아빠를 연기하는 것에 부담은 없었다. '우리 딸 대단하다'라는 대사를 할 때는 성호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연기했다. '츤데레처럼 스스로가 무능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진심을 담아서 용기 내서 한 말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인물을 준비하고 연기하면서 어린 시절과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났다. 젊은 아빠의 모습이 어땠는지가 생각나더라. 이 영화를 보신 관객들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끄집어내게 될 것 같다. 요즘은 어제 있던 일도 기억이 안 난다. '비밀의 언덕'을 보면, 잊고 있었지만 내가 만난 사람과 감정을 생각하면, 풍부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극 중에서 명은은 가족들에 대해 서운함을 토로한 글을 쓰게 된다. 만약 '명은'의 엄마와 아빠가 그것을 보게 되면 어떨 것 같냐고 묻자 명은 엄마 역할의 장선 배우는 "관객과의 대화에서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이 질문을 듣자마자 '마음이 너무 아프다'라고 생각했다. 경희라면 읽어도 마음에 두고, 원래의 일상을 가질 것 같다. 나라면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 같은 엄마가 될 것 같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경희는 못 본 적, 모른 척하면서 하루를 보냈을 것 같다"고 답했다.

명은 아빠 역할의 강길우 배우 역시 "성호의 경우, 솔직함이 약이 될 것 같다. 변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열심히 뛰어다니고 정장을 입으면서 노력을 할 것 같다"고 말해 웃음을 터뜨렸다.

'비밀의 언덕'을 봐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임선우는 "마음이 기분 좋지만 복잡한 마음이 든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즐기는 단계였다면, 오늘을 기점으로 세상에 나간다고 생각하니 긴장과 동시에 기대도 된다. 가장 좋은 것들을 이 영화 안에 넣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본 시간이 값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이어 장선은 "요즘 극장에 관객들의 발걸음이 뜸해진 시기지만, 성별과 나이를 떠나서 모든 분을 울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또한 강길우는 "촬영했던 많은 작품 중에 가장 불호가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엄청나게 좋아하지는 않아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깨알 같은 섬세함이 많다. 놓치면 아까운 디테일이 많으니, 혼자서도 보고, 가족과도 보고, 집에서도 보면서 두고두고 보면 좋겠다"고 작품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어 문승아는 "많이 볼수록 재밌는 영화다. 입소문 많이 내달라"고 설명했고, 이지은 감독은 "그 인물을 떠올릴 때, 가슴이 뭉클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비밀의 언덕'은 오는 7월 12일 개봉한다.

사진제공=국외자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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