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원의 인서트》
일본풍 의상 입은 악역+일본식 사죄하는 제임스 본드
욱일기 연상시키는 앞치마도 등장
단순히 '악당의 취향'이라기엔 의문 가득
실망스러운 피날레
일본풍 의상 입은 악역+일본식 사죄하는 제임스 본드
욱일기 연상시키는 앞치마도 등장
단순히 '악당의 취향'이라기엔 의문 가득
실망스러운 피날레
영화 속 중요 포인트를 확대하는 인서트 장면처럼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가 매주 수요일 영화계 이슈를 집중 조명합니다. 입체적 시각으로 화젯거리의 앞과 뒤를 세밀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했는데 일본 문화를 찬양하는 듯한 기묘함을 지울 수 없는 작품이 국내외 박스오피스 1위를 이어가고 있다. 영화 '007 노 타임 투 다이'의 이야기다. 전개와는 무관한 '일본 문화 코스프레'는 의아함을 자아낸다.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강력한 적의 등장으로 죽음과 맞닿은 작전을 수행하게 된 제임스 본드의 마지막 미션을 그린 액션 블록버스터. 수년간 사랑 받아온 '007' 시리즈의 한 시대를 마무리하는 작품이자 다니엘 크레이그표 제임스 본드와의 작별을 고하는 작품이다.
화려한 피날레를 위해 이번 작품은 비주얼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또한 개봉 전부터 시리즈 '사상 최악의 적' 사핀이 등장한다고 강조해왔다. 사핀 역에는 '보헤미안 랩소디'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라미 말렉이 캐스팅되면서 영화 팬들의 기대도 상당했다. 하지만 악역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사상 최악의 악함이 아니라 오히려 유약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보다 한국 관객들을 더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악당에게 진하게 배어 있는 일본풍 분위기다. 사핀은 첫 등장에서 일본풍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다. 여기까진 악당이 자신의 징그러운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라고 생각할 수 있다. 눈 부분이 뚫린 하얀색 가면은 악당의 기괴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배가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뚜렷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일본풍 설정들이 계속된다. 클라이맥스에서 제임스 본드가 사핀의 본거지에서 맞대결을 벌이는 낡은 군사시설은 2차 세계대전 때 사용됐던 장소라고 설정돼있다. 이곳은 나무, 연못, 모래 등을 인공적으로 배치한 느낌이 강한 것이 특징이 일본풍 정원으로 꾸며져있다.
위기에 처한 제임스 본드가 사핀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은 불편한 기분이 들게 한다. 악당의 말에 순순히 따르는 것 때문이 아니라 해당 자세가 크게 사죄하거나 간청할 때 취하는 일본식 풍습인 '도게자' 자세이기 때문이다. 사핀은 다다미가 깔린 방에서 일본 전통의상을 입고 앉아 제임스 본드가 조아리는 모습을 바라본다.
서양인인 사핀이 일본 풍습에 도취한 것을 그저 '악당의 취향'으로 치부하기엔 곳곳에 황당한 요소들이 가득하다. 애써 이유를 찾아보자면 영화를 만든 감독이 캐리 후쿠나가라는 일본계 미국인이라는 것. 영화에서 사핀의 본거지는 쿠릴 열도 안에 있다고 설정돼 있는데, 이곳은 러시아가 영유권을 갖고 있지만 일본과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곳이다. 이번 영화만 보면 마치 이곳이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는 곳이라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자신의 뿌리를 숨길 수 없었던 감독이 일부러 의도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품게 만드는 이유다. 캐리 후쿠나가 감독은 일본 매체 시네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풍 요소에 대해 "내 (혈통적) 요소가 들어간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면서 "하지만 클래식한 본드 영화의 악역 및 아지트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일본 문화 오마주라고 하기에는 영화에 심지어 욱일기를 연상하게 하는 의상도 등장한다. 바로 요원 큐가 집에서 요리할 때 두르고 있는 앞치마. 산이 빛이 나오는 태양을 살짝 가리고 있는 디자인의 앞치마는 욱일기를 떠올리게 하고, '일본대표'라는 한자도 프린트돼 있다.
'007 노 타임 투 다이'가 한국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수년간 한국에서도 열렬한 사랑과 응원을 받아왔던 작품이다. 또한 한국에서 이번 영화를 전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는 것은 그 만큼 한국 관객들도 당당하고 자랑스러웠다는 얘기다. 일본 풍습과 일본이라는 국가에 대한 동경이 짙게 배여 있다는 점은 한국과 일본의 특수한 관계로 인해 불편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고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까지 동원됐다는 사실은 '007 노 타임 투 다이'가 서양 영화라 해도 간과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부분이다. 일본에 대한 우월감을 강조한 '007'의 피날레가 실망스러운 이유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했는데 일본 문화를 찬양하는 듯한 기묘함을 지울 수 없는 작품이 국내외 박스오피스 1위를 이어가고 있다. 영화 '007 노 타임 투 다이'의 이야기다. 전개와는 무관한 '일본 문화 코스프레'는 의아함을 자아낸다.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강력한 적의 등장으로 죽음과 맞닿은 작전을 수행하게 된 제임스 본드의 마지막 미션을 그린 액션 블록버스터. 수년간 사랑 받아온 '007' 시리즈의 한 시대를 마무리하는 작품이자 다니엘 크레이그표 제임스 본드와의 작별을 고하는 작품이다.
화려한 피날레를 위해 이번 작품은 비주얼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또한 개봉 전부터 시리즈 '사상 최악의 적' 사핀이 등장한다고 강조해왔다. 사핀 역에는 '보헤미안 랩소디'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라미 말렉이 캐스팅되면서 영화 팬들의 기대도 상당했다. 하지만 악역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사상 최악의 악함이 아니라 오히려 유약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보다 한국 관객들을 더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악당에게 진하게 배어 있는 일본풍 분위기다. 사핀은 첫 등장에서 일본풍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다. 여기까진 악당이 자신의 징그러운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라고 생각할 수 있다. 눈 부분이 뚫린 하얀색 가면은 악당의 기괴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배가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뚜렷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일본풍 설정들이 계속된다. 클라이맥스에서 제임스 본드가 사핀의 본거지에서 맞대결을 벌이는 낡은 군사시설은 2차 세계대전 때 사용됐던 장소라고 설정돼있다. 이곳은 나무, 연못, 모래 등을 인공적으로 배치한 느낌이 강한 것이 특징이 일본풍 정원으로 꾸며져있다.
위기에 처한 제임스 본드가 사핀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은 불편한 기분이 들게 한다. 악당의 말에 순순히 따르는 것 때문이 아니라 해당 자세가 크게 사죄하거나 간청할 때 취하는 일본식 풍습인 '도게자' 자세이기 때문이다. 사핀은 다다미가 깔린 방에서 일본 전통의상을 입고 앉아 제임스 본드가 조아리는 모습을 바라본다.
서양인인 사핀이 일본 풍습에 도취한 것을 그저 '악당의 취향'으로 치부하기엔 곳곳에 황당한 요소들이 가득하다. 애써 이유를 찾아보자면 영화를 만든 감독이 캐리 후쿠나가라는 일본계 미국인이라는 것. 영화에서 사핀의 본거지는 쿠릴 열도 안에 있다고 설정돼 있는데, 이곳은 러시아가 영유권을 갖고 있지만 일본과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곳이다. 이번 영화만 보면 마치 이곳이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는 곳이라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자신의 뿌리를 숨길 수 없었던 감독이 일부러 의도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품게 만드는 이유다. 캐리 후쿠나가 감독은 일본 매체 시네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풍 요소에 대해 "내 (혈통적) 요소가 들어간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면서 "하지만 클래식한 본드 영화의 악역 및 아지트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일본 문화 오마주라고 하기에는 영화에 심지어 욱일기를 연상하게 하는 의상도 등장한다. 바로 요원 큐가 집에서 요리할 때 두르고 있는 앞치마. 산이 빛이 나오는 태양을 살짝 가리고 있는 디자인의 앞치마는 욱일기를 떠올리게 하고, '일본대표'라는 한자도 프린트돼 있다.
'007 노 타임 투 다이'가 한국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수년간 한국에서도 열렬한 사랑과 응원을 받아왔던 작품이다. 또한 한국에서 이번 영화를 전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는 것은 그 만큼 한국 관객들도 당당하고 자랑스러웠다는 얘기다. 일본 풍습과 일본이라는 국가에 대한 동경이 짙게 배여 있다는 점은 한국과 일본의 특수한 관계로 인해 불편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고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까지 동원됐다는 사실은 '007 노 타임 투 다이'가 서양 영화라 해도 간과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부분이다. 일본에 대한 우월감을 강조한 '007'의 피날레가 실망스러운 이유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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