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크레이그, 최초 제임스 본드 제안 거절
골수팬, 피어스 브로스넌과 비교 '비아냥'
첫 작품 '007 카지노 로얄', 최고 흥행 기록
끊임 없는 부상 등으로 하차 선언 반복, 막말까지
'007 노 타임 투 다이'  다니엘 크레이그./ 사진제공=유니버셜 픽쳐스
'007 노 타임 투 다이' 다니엘 크레이그./ 사진제공=유니버셜 픽쳐스
≪노규민의 영화人싸≫

노규민 텐아시아 영화팀장이 매주 일요일 오전 영화계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배우, 감독, 작가, 번역가, 제작사 등 영화 생태계 구성원들 가운데 오늘뿐 아니라 미래의 '인싸'들을 집중 탐구합니다.


"제임스 본드의 골수 팬들은 나를 싫어한다. 내가 배역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다. 나도 그들의 팬심을 이해하지만 성급한 결론은 내지 않았으면 한다."

전세계 많은 관객들이 1962년 '살인번호'를 시작으로, 무려 50년 넘게 이어진 '007' 시리즈를 애정한다. 그만큼 골수팬들이 많고, 특히 화끈한 첩보 액션으로 영화적 쾌감을 안기는 주인공 제임스 본드에 열광한다.

2000년대 중반 배우 다니엘 크레이그가 피어스 브로스넌의 배턴을 이어 받아 6대 제임스 본드를 맡았다고 처음 알려졌을 때, 많은 팬들이 분노했다. 1995년 '007 골든 아이'부터 2002년 '007 어나더 데이'까지, 네 작품에서 제임스 본드로 활약한 피어스 브로스넌에 익숙해 있던 많은 관객들은 새로운 본드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특히나 피어스 브로스넌은 전형적인 젠틀맨 스타일로 제임스 본드 이미지의 정점을 찍었는데, 당시 다니엘 크레이그의 비주얼은 이와 정반대였다.

또한 제임스 본드를 연기한 대부분의 배우들은 키가 최소 180cm 이상이었는데, 다니엘 크레이그는 178cm로 비교적 작았다. 여기에 다른 제임스 본드와 달리 금발에 푸른 눈이었다.

뿐만아니라 다니엘 크레이그는 제임스 본드로 캐스팅 되기 전 주로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역이나, 터프한 이미지의 배역을 맡아 연기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제임스 본드 피어스 브로스넌과 비교되는 이유다.
[TEN피플] '007' 다니엘 크레이그, 비아냥·부상·막말…눈물로 막 내린 '6대 제임스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가 처음 합류한 '007 카지노 로얄'의 모토는 '007' 리부팅이었다. 초대 제임스 본드를 맡았던 숀 코너리와 비교 했을 땐 나쁘지 않은 캐스팅 이었다. 그러나 이는 일부 사람들만 인정 했을 뿐 '카지노 로얄'이 개봉할 당시까지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들이 대부분 이었다.

막상 뚜껑이 열리고 나서부터 전세가 뒤집혔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새로운 제임스 본드에 충실했다. 대역을 거의 쓰지 않은 채 몸을 사리지 않는 리얼한 액션을 선보이며 '007' 액션의 진수를 보여줬고, 전작과 달리 더욱 현실적인 액션을 보여주며 몰입도를 높였다. 결국 '007 카지노 로얄'은 이전까지의 '007' 시리즈 중 역대 흥행 1위를 차지, 최고의 흥행 수익까지 기록했다. 평단과 관객은 '007 카지노 로얄'의 성공은 온전히 다니엘 크레이그 효과라고 평했다. 이후 다니엘 크레이그는 '007' 시리즈에 다섯 번 더 출연하기로 계약했다.

'007' 22편 '퀸텀 오브 솔러스'를 지나 23편 '007 스카이폴'로는 또 한 번 '007' 시리즈 최고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다. 국내에서 237만명을 동원 했으며, 2012년 '어벤져스'에 이어 전세계 흥행 2위를 기록했다.
'007 스카이 폴' 스틸컷
'007 스카이 폴' 스틸컷
이렇게 제임스 본드로 입지를 탄탄히 하던 다니엘 크레이그는 24편 '스펙터' 촬영 이후 단 한 번의 실수로 많은 '007' 팬들에게 실망을 안겼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007' 차기작에 출연하느니 손목을 그어버리겠다"며 '스펙터'를 마지막으로 하차할 것을 밝혔다. 관객들은 자신을 스타덤에 올려준 '007'에 대한 악성 발언에 분노를 금치 못했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스펙터 촬영 후 예민한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나온 발언"이라며 후회했고, 2018년 후속작 '노 타임 투 다이'로 복귀할 것을 공식 발표했다.

그렇게 임한 25번째 '007' 시리즈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코로나19 여파로 3번의 연기 끝에 지난 29일 국내에서 전세계 최초로 개봉했다.

첫 날,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1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을 예고 했다. 특히 이 작품은 무려 다섯 작품에서 활약한 다니엘 크레이그의 마지막 '007'로 더욱 큰 관심을 모았다.
'007 노 타임 투 다이' 스틸./
'007 노 타임 투 다이' 스틸./
오래전 '007 시리즈' 제작자인 바바라 브로콜리가 다니엘 크레이그에 직접 전화를 걸어 '제임스 본드' 역할을 맡아 줄 것을 제안했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며 "감사하지만 잘못 고른 것 같다"고 거절했다.

몇 번의 거절, 그리고 고심 끝에 제임스 본드를 연기하기로 결정 했지만, 돌아온 것은 골수팬들의 비아냥 이었다. 이를 극복하고 보란 듯이 제임스 본드로 입지를 굳혔지만 그는 몇 번이고 '007' 은퇴를 고민 했다.

'카지노 로얄' 촬영중에는 이빨이 2개 부러지고, '스펙터' 촬영중에는 무릎부상을 입어 수술을 했다고 전해진다. 또 '퀀텀 오브 솔러스' 촬영중에도 부상으로 8바늘을 꿰메고, 어깨근육이 파열 돼 6개의 핀을 박기도 했단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제임스 본드로 살아온 다니엘 크레이그는 결국 '007 노 타임 투 다이' 마지막 촬영날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는 최근 한국 기자들에게 보낸 Q&A 영상에서 "나에겐 정말 기나긴 대장정이었다, 그리고 나의 마지막 여정이 담긴 작품이다, 이 작품에 대해서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은퇴 소감을 밝혔다.
[TEN피플] '007' 다니엘 크레이그, 비아냥·부상·막말…눈물로 막 내린 '6대 제임스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는 "마지막 작품이 정말 최고의 작품이 되도록 저희가 최선을 다했고, 내가 '007'로서의 기간을 최고의 작품으로 마무리했다고 생각한다"고 자부했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시대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007' 시리즈는 계속 된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다음 주자로 휴 잭맨 등 유명 배우들이 거론 되고 있으며, 흑인이나 여성배우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왔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여성이나 유색 인종 배우들을 위한 좋은 역할들이 많아져야 한다"며 "누가 다음 제임스 본드를 맡을지에 대해서는 어차피 내 소관이 아니다. 다만 누구 됐든 망치지 말아달라"라고 말했다.

노규민 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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