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회 백상예술대상 작품상 수상
1995년, 토익점수 600점을 진짜 요구 했을까?
그때와 지금, 빠다코코낫 포장이 다르다?
1995년, 토익점수 600점을 진짜 요구 했을까?
그때와 지금, 빠다코코낫 포장이 다르다?
<<노규민의 씨네락>>
노규민 텐아시아 영화팀장이 매주 일요일 영화의 숨겨진 1mm,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합니다. 알아두면 쓸모 있을 수도 있는, 영화 관련 여담을 들려드립니다.
"마이 드림 이즈 커리어우먼, 토익 600점만 넘기면 대리가 될 수 있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1995년을 배경으로, 업무능력은 베테랑이지만 입사 8년차에도 말단인 세 친구가 승진을 위해 토익반을 함께 듣다가, 회사가 저지른 비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다. 지난 13일 열린 제57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자산어보'(이준익 감독), '소리도 없이'(홍의정 감독),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홍원찬 감독), '남매의 여름밤'(윤단비 감독)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영화부분 작품상을 수상해 다시금 주목 받았다.
이 영화는 지난해 10월 21일 개봉, 코로나19 여파로 극장가가 침체에 빠진 상황에서 157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제작비 79억원, 손익분기점은 155만 명이다.
부조리한 사회에서 여성들이 힘을 모으고,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과정을 묵직하게만 그린 것이 아니라, 상업영화임을 분명히 하며 다채로운 캐릭터를 통해 흥미롭게 풀어내 보는 재미를 더했다. 충무로에서 연기 잘하기로 소문난 고아성, 이솜, 박혜수가 남다른 케미로 중심을 잡고, 영화가 끝난 후에도 또렷하게 기억날 정도로 개성 강한 조연 캐릭터들이 뛰어난 앙상블을 선보이며 극을 더욱 탄탄하게 했다. 실무 능력은 퍼펙트, 그러나 현실은 커피 타기의 달인인 생산관리3부 오지랖 '이자영'(고아성 분)부터 뼈 때리는 멘트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마케팅부 돌직구 '성유나'(이솜 분),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우승 했지만 실체는 가짜 영수증 메꾸기의 달인인 회계부 '심보람'(박혜수 분)까지 입사 8년차 동기들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 모였다.
남들은 대기업에 다닌다고 부러워 한다. 그러나 주업무는 상고 출신이라는 이유로 커피, 담배 등 잔심부름이다. 상사의 성희롱에 항의하면 돌아오는 건 '꽃뱀이냐'라는 비아냥 뿐이고, 결혼하고 임신하면 바로 쫓겨나는 신세다. 이는 1995년 직장생활을 하던 여성들이 실제로 겪은, 말 그대로 실화다.
그러나 이들에게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3개월 내 영어 토익 600점을 넘으면 대리로 승진'이라는 공고가 떴다. 자영, 유나, 보람은 대리가 되면 진짜 '커리어우먼'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부푼다. 그렇게 매일 새벽 6시부터 토익 수업을 듣기 시작한다.
여담인데 실제로 1990년대 초중반까지 삼성 등 최상위급 대기업이 아니면 취업에 토익성적을 요구하지 않았다. 당시 토익 응시자의 경우, 학력고사 세대라 문법이나 독해 실력은 뛰어나도 듣기가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로 취업난이 닥친 이후에야 토익이 취업의 필수조건으로 변했고, 그제야 토익 평균점수가 600점을 돌파했을 정도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진짜 있었던 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1991년 낙동강 페놀유출사건을 모티브로 해 제작단계서부터 화제가 됐다.
극 중 자영은 삼진전자 공장 앞 하천에 물고기가 떼로 죽어 있는 것을 목격한다. 비가 내리자 공장 하수구에서 폐수가 쏟아졌고, 그 폐수 속에는 회로기판(PCB) 제조시 사용되는 페놀이 포함 돼 있었다.
30년 전 낙동강 페놀유출 사건은 경상북도 구미시 구미공업단지 내 두산전자에서 발생했다. 3월 14일, 4월 22일 두 차례에 걸쳐 각각 페놀 30톤, 13톤이 낙동강으로 유출된 것이다.
유출된 페놀은 대구광역시의 상수원인 다사취수장으로 유입됐다. 대구 시민들이 수돗물에서 냄새가 난다며 신고 했지만, 취수장에서는 원인 규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다량의 염소 소독제를 투입해 사태를 더욱 악화 시켰다. 페놀은 염소와 반응할 경우 클로로페놀이 되면서 독성이 더욱 강해진다. 이로인해 대구의 수돗물은 급속히 오염 됐고, 부산을 비롯해 낙동강 유역 일대가 페놀로 오염 됐다.
페놀은 중추신경계, 심장, 혈관, 폐 등에 손상을 일으키는 화학물질이다. 급성 중독시 쇼크, 일시적 정신착란, 혼스상태를 일으키고 만성 중독 시 간, 신장, 눈 등에 손상을 일으킨다. 당시 두산 기업이 크게 요동친것 처럼,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속 삼진전자도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된다. 이 사건이 고졸 말단 사원들이 꿈에도 그리는 승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가 관전 포인트다.
무엇보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배경, 소품, 의상 등 1995년 시대상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당시의 향수를 자극한다. 또한 레트로 감성이 트렌드인 요즘, 젊은 관객들에게도 90년대에 대해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크고 작은 옥의티도 곳곳에서 보인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비스켓 빠다코코낫은 1995년 당시 판매하던 제품과 다르다. 1995년만 해도 빠다코코낫은 비닐 포장이었다. 그러나 영화에선 박스 포장 돼 있다. 또한 로케트밧데리 간판 속 로고도 2000년대 이후 로고다.
중반부에는 삼진그룹 직원들이 단체로 아침체조를 하는데, 이때 아침체조 동영상에 소방차의 '넥타이부대'라는 노래가 삽입 돼 있다. '넥타이부대'는 영화 속 배경인 1995년엔 존재하지 않았다. 2005년에 발표된 노래다.
또한 고아성, 이솜, 박혜수 세 사람이 옥상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도 옥의티가 발견 됐다. 그들의 뒷 쪽에 보이는 빌딩은 KDB생명타워인데, 해당 건축물은 2013년에 완공됐다.
영화는 철저하게 '을'이 된 약자들의 목소리를 유쾌하고 통쾌하게 전한다. 영화는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고 단단하다. 비스켓 정도의 옥의 티는 그저 귀엽게 봐줘도 될 만한 '백상' 작품상이 아깝지 않을 작품이다.
노규민 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노규민 텐아시아 영화팀장이 매주 일요일 영화의 숨겨진 1mm,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합니다. 알아두면 쓸모 있을 수도 있는, 영화 관련 여담을 들려드립니다.
"마이 드림 이즈 커리어우먼, 토익 600점만 넘기면 대리가 될 수 있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1995년을 배경으로, 업무능력은 베테랑이지만 입사 8년차에도 말단인 세 친구가 승진을 위해 토익반을 함께 듣다가, 회사가 저지른 비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다. 지난 13일 열린 제57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자산어보'(이준익 감독), '소리도 없이'(홍의정 감독),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홍원찬 감독), '남매의 여름밤'(윤단비 감독)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영화부분 작품상을 수상해 다시금 주목 받았다.
이 영화는 지난해 10월 21일 개봉, 코로나19 여파로 극장가가 침체에 빠진 상황에서 157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제작비 79억원, 손익분기점은 155만 명이다.
부조리한 사회에서 여성들이 힘을 모으고,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과정을 묵직하게만 그린 것이 아니라, 상업영화임을 분명히 하며 다채로운 캐릭터를 통해 흥미롭게 풀어내 보는 재미를 더했다. 충무로에서 연기 잘하기로 소문난 고아성, 이솜, 박혜수가 남다른 케미로 중심을 잡고, 영화가 끝난 후에도 또렷하게 기억날 정도로 개성 강한 조연 캐릭터들이 뛰어난 앙상블을 선보이며 극을 더욱 탄탄하게 했다. 실무 능력은 퍼펙트, 그러나 현실은 커피 타기의 달인인 생산관리3부 오지랖 '이자영'(고아성 분)부터 뼈 때리는 멘트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마케팅부 돌직구 '성유나'(이솜 분),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우승 했지만 실체는 가짜 영수증 메꾸기의 달인인 회계부 '심보람'(박혜수 분)까지 입사 8년차 동기들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 모였다.
남들은 대기업에 다닌다고 부러워 한다. 그러나 주업무는 상고 출신이라는 이유로 커피, 담배 등 잔심부름이다. 상사의 성희롱에 항의하면 돌아오는 건 '꽃뱀이냐'라는 비아냥 뿐이고, 결혼하고 임신하면 바로 쫓겨나는 신세다. 이는 1995년 직장생활을 하던 여성들이 실제로 겪은, 말 그대로 실화다.
그러나 이들에게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3개월 내 영어 토익 600점을 넘으면 대리로 승진'이라는 공고가 떴다. 자영, 유나, 보람은 대리가 되면 진짜 '커리어우먼'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부푼다. 그렇게 매일 새벽 6시부터 토익 수업을 듣기 시작한다.
여담인데 실제로 1990년대 초중반까지 삼성 등 최상위급 대기업이 아니면 취업에 토익성적을 요구하지 않았다. 당시 토익 응시자의 경우, 학력고사 세대라 문법이나 독해 실력은 뛰어나도 듣기가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로 취업난이 닥친 이후에야 토익이 취업의 필수조건으로 변했고, 그제야 토익 평균점수가 600점을 돌파했을 정도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진짜 있었던 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1991년 낙동강 페놀유출사건을 모티브로 해 제작단계서부터 화제가 됐다.
극 중 자영은 삼진전자 공장 앞 하천에 물고기가 떼로 죽어 있는 것을 목격한다. 비가 내리자 공장 하수구에서 폐수가 쏟아졌고, 그 폐수 속에는 회로기판(PCB) 제조시 사용되는 페놀이 포함 돼 있었다.
30년 전 낙동강 페놀유출 사건은 경상북도 구미시 구미공업단지 내 두산전자에서 발생했다. 3월 14일, 4월 22일 두 차례에 걸쳐 각각 페놀 30톤, 13톤이 낙동강으로 유출된 것이다.
유출된 페놀은 대구광역시의 상수원인 다사취수장으로 유입됐다. 대구 시민들이 수돗물에서 냄새가 난다며 신고 했지만, 취수장에서는 원인 규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다량의 염소 소독제를 투입해 사태를 더욱 악화 시켰다. 페놀은 염소와 반응할 경우 클로로페놀이 되면서 독성이 더욱 강해진다. 이로인해 대구의 수돗물은 급속히 오염 됐고, 부산을 비롯해 낙동강 유역 일대가 페놀로 오염 됐다.
페놀은 중추신경계, 심장, 혈관, 폐 등에 손상을 일으키는 화학물질이다. 급성 중독시 쇼크, 일시적 정신착란, 혼스상태를 일으키고 만성 중독 시 간, 신장, 눈 등에 손상을 일으킨다. 당시 두산 기업이 크게 요동친것 처럼,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속 삼진전자도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된다. 이 사건이 고졸 말단 사원들이 꿈에도 그리는 승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가 관전 포인트다.
무엇보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배경, 소품, 의상 등 1995년 시대상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당시의 향수를 자극한다. 또한 레트로 감성이 트렌드인 요즘, 젊은 관객들에게도 90년대에 대해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크고 작은 옥의티도 곳곳에서 보인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비스켓 빠다코코낫은 1995년 당시 판매하던 제품과 다르다. 1995년만 해도 빠다코코낫은 비닐 포장이었다. 그러나 영화에선 박스 포장 돼 있다. 또한 로케트밧데리 간판 속 로고도 2000년대 이후 로고다.
중반부에는 삼진그룹 직원들이 단체로 아침체조를 하는데, 이때 아침체조 동영상에 소방차의 '넥타이부대'라는 노래가 삽입 돼 있다. '넥타이부대'는 영화 속 배경인 1995년엔 존재하지 않았다. 2005년에 발표된 노래다.
또한 고아성, 이솜, 박혜수 세 사람이 옥상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도 옥의티가 발견 됐다. 그들의 뒷 쪽에 보이는 빌딩은 KDB생명타워인데, 해당 건축물은 2013년에 완공됐다.
영화는 철저하게 '을'이 된 약자들의 목소리를 유쾌하고 통쾌하게 전한다. 영화는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고 단단하다. 비스켓 정도의 옥의 티는 그저 귀엽게 봐줘도 될 만한 '백상' 작품상이 아깝지 않을 작품이다.
노규민 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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