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떠들썩하게 한 '기생충 신드롬'
코로나 팬데믹으로 관객 수 급감·매출 타격
긴 어려움에 끝에 찾은 넷플릭스라는 돌파구
여성 영화인들의 약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의 4관왕을 기뻐하는 봉준호 감독, 곽신애 대표와 배우들. /사진제공=A.M.P.A.S.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의 4관왕을 기뻐하는 봉준호 감독, 곽신애 대표와 배우들. /사진제공=A.M.P.A.S.
기쁨의 극치와 고통의 극한을 오갔던 2020년이었다.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르며 전 세계에 신드롬을 일으킨 영화 '기생충'으로 온 국민이 웃었지만 이후 코로나 팬데믹으로 영화계는 치명상을 입으며 피눈물 흘렸다. 그럼에도 영화는 이어졌다.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대안은 위기 속 기회로 떠올랐다. 또한 여성 영화인들의 섬세하고도 강인한 열연이 담긴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아카데미 4관왕 '기생충', 새로 쓴 영화史

구글이 발표한 '2020 올해의 검색어'에서 '기생충'은 한국과 글로벌 모두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 수치만 봐도 '기생충'이 전 세계 영화계에 미친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시작으로 미국 아카데미까지 석권하며 전 세계에 '기생충 신드롬'을 일으켰다. '기생충'은 지난 2월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 감독상, 작품상까지 4개 부문 트로피를 가져가며 영화계에 새 역사를 썼다. 한국 최초라는 기록도 대단하지만 92년 아카데미 역사상 영어가 아닌 언어로 만들어진 영화가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기생충'이 처음이었다.

오스카 레이스 내내 봉 감독의 유머러스한 모습도 화제를 모았다. 아카데미를 "로컬 시상식"이라고 하거나 수상 후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아침까지 술을 마시겠다" 등 좌중을 휘어잡는 재치 있는 화법으로 주목받았다. 봉 감독은 미국 타임지의 '2020년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와 세계 엔터테인먼트업계 리더 '버라이어티 500'에도 선정됐다.
코로나19 사태로 관객의 발길이 끊긴 극장의 모습. / 사진=텐아시아DB
코로나19 사태로 관객의 발길이 끊긴 극장의 모습. / 사진=텐아시아DB
코로나 팬데믹 직격탄 맞은 영화계

'기생충'의 활약이 올해 영화계를 호황으로 이끌 것이라 전망됐으나 코로나19 팬데믹에 뜻하지 않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됐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집계된 극장 관객 수는 5840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억420만 명의 28% 수준에 불과했다. 코로나19 여파로 관객 수가 그야말로 급감한 것. 12월 관객 수 역시 150만 명을 넘기 힘들 것으로 전망돼 올해 전체 관객 수는 6000만 명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전산망 가동 이전 집계 기준으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7년(5470만명)~2000년(6460만명)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충격적 결과다. 뿐만 아니라 극장 매출 추산액은 5100억 원대로 전년 대비 73.3% 감소한 수치로 마감할 것으로 예상, 올해 한국 영화산업 주요 부문 매출 합산 추산액 1조 원에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국내 멀티플렉스들은 상영관 폐점, 인원 감축 등 자구책 마련에 애썼지만 이젠 허리띠 졸라매기도 한계에 달했다는 한탄이 터져나온다. 존폐 위기까지 온 상황에서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이 회원으로 있는 한국상영관협회는 정부에 코로나19 피해업종에 대한 지원 대상자에 영화관이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배제돼 있다며 임대료 경감 등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영화 '사냥의 시간', '콜', '승리호' 등이 넷플릭스 공개를 택했다. / 사진제공=넷플릭스
영화 '사냥의 시간', '콜', '승리호' 등이 넷플릭스 공개를 택했다. / 사진제공=넷플릭스
극장 말고 이젠 넷플릭스

코로나19 여파에 올해 개봉 예정이던 주요 대작들은 내년으로 공개를 미루거나 장고 끝에 넷플릭스행을 택했다. 관객들이 극장에 올 수 없는 상황이니 OTT 플랫폼을 통해 직접 찾아가기로 한 것이다.

당초 2월 극장 개봉 예정이던 '사냥의 시간'은 넷플릭스를 통해 지난 4월 공개됐다. 이 과정에서 해외 배급을 담당했던 세일즈사 콘텐츠판다와 제작사 리틀빅픽처스 간에 법적 분쟁도 있었으나 양측이 원만히 합의하며 마무리됐다. 3월 개봉 계획이었던 '콜' 역시 개봉이 미뤄진 끝에 지난 11월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됐다. 이외에도 영화 '차인표'와 송중기, 김태리 주연의 대작 '승리호' 역시 넷플릭스 공개를 앞두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넷플릭스 직행 영화도 많이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영화가 극장이 아닌 넷플릭스 등 OTT 플랫폼 공개로 치중되다보면 영화산업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관람할 수 있는 작품의 폭이 다양해지고 창작자들의 자유도 보장된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도 나온다. 코로나19가 바꿔 놓은 한국 영화시장에서 극장과 OTT 플랫폼의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여성 영화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 사진제공=각 영화 배급사
여성 영화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 사진제공=각 영화 배급사
여성 영화인 활약 빛났던 한 해

전쟁 속에서도 희망이 피어나는 것처럼 갖은 고난 속에서도 관객을 웃고 울게 한 작품은 있었다. 그 가운데 여성 영화인들이 주축이 된 작품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라미란 주연의 '정직한 후보'는 코로나19 시국 속에서도 손익분기점을 돌파했고, 신혜선·배종옥은 '결백'을 통해 '연기의 정석'을 보여줬다. '오케이 마담'의 엄정화는 첫 도전한 액션를 훌륭히 소화해내 찬사를 이끌어냈다. 고아성, 이솜, 박혜수 주연의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작은 것들의 힘'을 보여주며 어수룩해 보이는 약자들이 강자를 이기는 통쾌함을 선사했다. 신민아, 이유영이 주연하고 조슬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디바'는 전에 없던 강렬하고 아름다운 미스터리 스릴러였다. 신민아는 이 영화로 '인생 연기를 펼쳤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중년 여성의 성 문제를 다룬 '69세'라든지 고교팀의 유일한 여자 야구선수의 이야기를 그린 '야구소녀' 같은 독립영화도 주목받았다. '69세'의 예수정은 담담하고 깊이 있는 연기로 편견에 맞서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인물의 단단함을 호소력 있게 전달했고, '야구소녀'의 이주영 역시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인물의 불안함과 강인함을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내년으로 연기된 제41회 청룡영화상에서 신인 감독상의 후보 5명 중에는 4명이 여성 감독이다. '82년생 김지영' 김도영 감독, '찬실이는 복도 많지' 김초희 감독, '남매의 여름밤' 윤단비 감독, '소리도 없이' 홍의정 감독이다.

여전히 남아있는 성별의 관습적 구조 속에서 여성 영화인들의 이같은 활약상은 영화계의 균형 있는 발전을 기대케 한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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