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온전히 보호해주는 담장이 사라진 세상
소녀는 어떻게 어른이 될 것인가
소녀는 어떻게 어른이 될 것인가

'킬러들의 쇼핑몰'은 유려하고 스타일리시한 액션 설계가 단번에 눈에 띄는 작품이지만, 사실 킬러물을 표방한 가족 드라마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정지안(김혜준)의 총구가 향하는 시야에는 무질서하게 자신의 공간에 들어오고,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이름도 모르는 낯선 자들이다.
휴대폰 너머로 들려온 삼촌 정진만(이동욱)의 죽음을 눈앞에서 확인하고 부재를 인식한 뒤에 몰려오는 것은 슬픔보다는 괘씸함이, 아픔보다는 외로움이었다. 10년 전, 부모님을 다 잃고 삼촌과 함께 살아온 정지안에게 그의 자살은 일종의 배신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감정적 동요 없이 무던하면서도 삼촌이라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던 정진만은 정지안에게 집 앞 마당에 견고하게 세워져 있는 담장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 담벼락이 무너지고 정지안의 손에는 어느새 총이 들려있다.

그간 정진만의 울타리 안에서 정지안의 세계는 고요했고 지루했다. 가끔 돈을 떼먹는 편의점 점주와 같은 반 여자애, 변태 같던 학교 선배만이 그 고요함을 혼탁하게 만들 뿐이었다. 무언가 힘든 상황이 닥쳤을 때, 하늘에 대고 "정진만, 정진만, 정진만"을 부르라는 이상한 조건만 빼고 말이다. 그 주문을 외우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정지안의 세계는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킬러들의 쇼핑몰'은 모든 것을 통제하고 간섭했던 보호자 정진만이란 그늘이 사라진 이후, 정지안이 어떤 식으로 홀로서기를 할지를 그려내고 있다.

"정진만이 조카가 맞구마이"라며'바빌론'의 킬러 이성조(서현우)의 비아냥거리는 말처럼, 정지안은 그토록 이해할 수 없던 삼촌의 가르침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킬러들의 쇼핑몰'의 20살 정지안이 소파 밑에 숨겨진 총의 스코프를 자세히 노려보다가 격발하는 장면은 괜스레 박찬욱 감독의 영화 '스토커'(2013)의 18살 소녀 인디아(미아 바시코브스카)가 굽이 높은 구두와 원피스를 입고 기다란 저격용 총을 겨누는 모습과 겹쳐 보이기까지 한다. 초반부 정지안은 맥주병을 맞추기 위해서 새총을 들고 있었고, 킬러들이 온 상황에서도 총이 아닌 새총을 선택했다. 이후, 그녀는 손에 총을 들지만 말이다. 삼촌의 동료라는 민혜, 브라더, 파신을 전부 믿지 못해 의심하고 경계하다가도 설득당해 판단을 내리기도, 위험으로부터 직접 구해주기도 한다. 이는 삼촌 정진만이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인 셈이다.

판타지와도 같은 킬러물이란 장르에 성장 드라마를 덧입힌 '킬러들의 쇼핑몰'은 그래서 액션만큼이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주저앉고 부상당한 정지안이 어떻게 다시 일어나게 될지다. 그럼 이쯤에서 이렇게 묻겠다. 당신은 정지안처럼 영문도 모르는 사이에 총알이 날아온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벽 뒤에 숨어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겠는가. 혹은 1화의 정지안처럼 사각지대를 활용해 소파 밑에 있는 총을 손에 움켜쥘 것인가. 'whatever' 어떤 선택을 하든 이미 총알을 당신을 향해 달려들고 있다. 다음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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