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연기대상 공동수상
'악귀' 김태리, '모범택시2' 이제훈
사진=SBS 2023 연기대상 방송 캡처본.
사진=SBS 2023 연기대상 방송 캡처본.
지난 29일 SBS 연기대상 시상식이 진행됐다. 한 해 동안, 대중들을 웃기고 울린 여러 작품들은 후보에 오르고, 또 수상했다. 그중에서도 연기대상은 2023년도 최고의 연기를 한 배우에게 시상하는 상으로, 시상식에 앞서 누가 대상을 탈지 예측할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2023 SBS 연기대상 대상 부문 후보에는 드라마 '악귀'의 김태리, '모범택시 2'의 이제훈, '낭만 닥터 김사부 3'의 한석규, '소방서 옆 경찰서 그리고 국과수'의 김래원이 올랐다. 하지만 이례적으로 한 명이 아닌 두 명이 공동 수상하는 결과를 낳았다.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는 한정환 스튜디오S 대표이사의 말처럼 김태리와 이제훈이 수상하는 결과를 얻은 것. 수상 결과를 두고 왈가왈부가 많은 상황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두 배우가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2023년도 김태리와 이제훈은 어떻게 시청자들의 마음에 가닿았을까.


▶ 결핍이 증폭시킨 욕망과 청춘의 초상을 그려낸 김태리
SBS 금토드라마 '악귀' 구산영 역.
사진=SBS 드라마 '악귀' 방송 캡처본.
사진=SBS 드라마 '악귀' 방송 캡처본.
'싸인'(2011), '유령'(2012), '시그널'(2016), '킹덤' 시리즈의 김은희 작가 각본으로 주목받았던 한국형 오컬트 SBS 금토드라마 '악귀'는 귀신보다 무서운 인간의 추악한 욕망과 결핍을 섬세하게 분해하면서 파고든다. 극 중에서 25살 공시생 구산영 역을 맡은 김태리는 풀리지 않는 공부와 가난이란 무게가 자신을 짓누르는 현실을 견뎌내야만 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죽었다는 엄마의 말을 믿고 살던 구산영은 어느 날 최근에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말을 듣게 된다. 하지만 친할머니(예수정)이 사는 화원재에 방문했던 구산영은 아버지 구강모(진선규)의 유품인 빨간 댕기를 만지면서 그 안에 잠식되어있던 악귀에 씌게 된다.

민속학과 교수 염해상(오정세)는 악귀에 씌인 구산영에게 '그 존재'에 대해 말해주지만, 구산영은 믿지 않는다. 그러나 거울을 통해 그 존재를 직접 보게 되면서 두 사람은 악귀를 좇는 파트너로 움직이게 된다. 염해상 역시 어린 시절 어머니가 악귀에게서 벗어나려다 사망한 기억 때문에 악귀를 쫓고 있던 것.

'악귀'에서 김태리는 기존의 암울하고 소심하면서 자격지심마저 가지고 있는 구산영과 욕망 앞에서 마음껏 활개 치고 다니는 악귀에 씌인 모습의 1인 2역을 거부감 없이 소화해냈다. 특히, 악귀가 씌인 후부터는 상대를 또렷이 응시하는 은은한 광기와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으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긴장감마저 불러일으켰다.
사진=SBS 드라마 '악귀' 방송 캡처본.
사진=SBS 드라마 '악귀' 방송 캡처본.
5화에서 악귀에 씌인 구산영은 친구 백세미(양혜지)와 함께 간 고등학교 동창 결혼식 뒤풀이 장소에서 몰래 가져왔던 염해상의 카드로 마구 쇼핑을 하고 솔직함을 넘어선 막말로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김태리는 오래된 친구 백세미가 공시 1차 합격을 했다는 말에 "거지야? 합격했다고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어?"라고 폐부를 찌르기도 했다.

압권은 8회의 엔딩부에서 형사 이홍새(홍경)이 구산영의 문을 열어달라는 말에 무심코 손잡이를 잡아당기고, 문이 열리자 씨익하고 웃는 악귀 씌인 구산영의 모습이다. 악귀를 막기 위해 문을 열면 안 되는 금기를 깨버린 이홍새에게 구산영은 "문을 열었네"라며 입꼬리를 올리며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섬뜩함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 외에도 모든 사건의 발단이었던 염해상의 할머니인 나병희(김해숙)를 찾아가 진실을 캐내기 위해 악귀인 척 연기하는 담대함을 표현하며 이향이(심달기)라는 악귀의 이름을 알아내기도, 악귀 이향기가 구산영의 몸에서 나오지 않고 눌러앉으려고 발악하며 소리를 지르는 연기 또한 '김태리가 아니었다면 누가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악귀'에서 김태리는 단순히 악귀와 구산영이라는 1인 2역을 소화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묵인했던 이들을 기억하고 아버지인 구강모가 매듭짓지 못했던 시대의 추악한 단면을 들여다보고 바꾸려고 하는 청년 구산영의 모습을 보여줬다. 종종 악귀에 의해 자신의 몸을 통제할 수 없고, 깊숙한 곳에 내재한 은밀한 욕망이 고개를 쑥 하고 내밀더라도 마음만은 혼탁해지지 않으려 고군분투하며, 그렇게 김태리는 '악귀'에서 청춘들의 초상을 그려냈다.


▶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꼬집은, 이제훈의 변화무쌍한 얼굴
SBS 금토드라마 '모범택시 2' 김도기 역'
사진=SBS 드라마 '모범택시2' 방송 캡처본.
사진=SBS 드라마 '모범택시2' 방송 캡처본.
2021년 방영됐던 '모범택시'를 잇는, 2023년 '모범택시 2'는 현실판 비질란테를 연상케 하며 카타르시스를 안겨줬다. 심지어 '모범택시3'의 제작이 확정되었다고 하니, 해당 시리즈가 지닌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체감할 수 있다. 최고 시청률 21.0%를 기록한 '모범택시 2'는 까를로스, 크크재진의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며,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해 택시회사 무지개 운수의 식구들이 사적 복수를 대행하는 이야기다.

극 중에서 택시기사 김도기 역을 맡은 배우 이제훈은 특전사 출신으로 어머니가 살해된 이후에 힘든 시기를 보내다가 장성철(김의성)의 눈에 들면서 모범택시를 운영하게 된 전사가 시즌 1에서 그려진다. 무지개운수 식구들은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가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에게 피해를 당하였음에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이들의 의뢰를 받고 이를 해결해준다. 필시 '모범택시' 시리즈가 대중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사적 복수'라는 테마가 지닌 무게도 있었지만, 대부분 2회씩 다른 에피소드로 구성된 다양한 사회 문제를 조명하는 것과 함께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김도기의 캐릭터성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1~2화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의뢰인의 아들이 빚을 갚기 위해 대학을 그만두고 해외 취업을 나가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 하지만 해외로 나간 이후, 연락이 뚝 끊겨버리고 실종되어버린 아들은 사실 취업 사기를 당했으며, 강제로 납치한 이들은 불법 도박게임 프로그램을 만들라고 지시했던 것. 김도기는 신입사원으로 위장해서 베트남으로 향하며 몸소 위험을 무릅쓰기도 했다. 3~4화에서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카드 계약을 맺어 돈을 갈취하고는 막대한 카드빚을 남기게 하는 수법을 쓰는 악질들에게 김도기는 경운기를 모는 순수 총각으로 변신해 일부러 심기를 긁는 느릿한 말투나 억양으로 재미를 더하기도 했다.
사진=SBS 드라마 '모범택시2' 방송 캡처본.
사진=SBS 드라마 '모범택시2' 방송 캡처본.
5~6화에서는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이용해 신혼부부를 상대로 부동산 사기를 쳐 수익을 챙기는 범죄를 일삼는 이들을 색출하기 위해 동료 안고은(표예진)과 애정 표현 넘치는 신혼 부부로 변장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법사 도기, 환자 도기, 블랙썬 VIP에 잠입한 가드 도기 등 팔색조처럼 얼굴을 바꾸기도 여러 번.

이제훈은 어둡고 무거운 사회 문제를 꼬집으면서도 시청자들이 끝까지 이야기를 따라올 수 있도록 재미도 적절히 섞으며 균형감을 만들어냈다. 또한, 파편적인 듯 보이지만 하나로 연결된 사건들의 중심에 있는 무지개 운수에 숨어든 빌런 온하준(김단우)에게 다가서면서 생기는 쫄깃쫄깃한 긴장감도 묘사해냈다.

"가장 선한 사람들만 골라서 피해를 준 뒤틀린 마음을 본인도 경험해 봐야죠", "너는 지켰냐? 부모님 만나게 해준다고 아이들에게 수없이 한 약속, 너는 단 한 번이라도 지켰어?", "종교가 원래 마음이 힘든 사람들에게 마음의 위안과 용기를 주거든. 진짜 종교는 그런 거더라고. 잘 가" 등의 촌철살인 멘트와 함께 분노에 찬 이제훈의 얼굴은 그간 보여준 김도기의 다양한 얼굴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얼굴이다. '모범택시 2'에서 이제훈은 세상의 부조리함을 바로잡기 위해 모범택시를 운행하는 소시민이자 현실 히어로가 되어줬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