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생 배우 남주혁의 새로운 발견
'비질란테'를 통해 보여준 살벌한 눈빛
다양한 청춘의 초상 연기하길 바라는 마음
드라마 '비질란테' 스틸컷. /사진제공=디즈니+
드라마 '비질란테' 스틸컷. /사진제공=디즈니+
1994년생 남주혁은, 어리숙하고 장난기를 가득 머금은 눈망울을 지닌 '소년다움'이 떠오르는 배우다. 때 묻지 않은 싱그러움은 남주혁을 '청춘'이라는 단어와 가장 느껴지게 하는 이유였고, 특히나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로맨스물은 남주혁의 장기나 다름없었다.

드라마 '후아유-학교 2015'에서 소꿉친구인 고은별(김소현)을 짝사랑하며 옆에서 든든하게 지켜주는 고등학생 한이안 역으로, '치즈인더트랩'(2016)에서는 홍설(김고은)과 장보라(박민지) 곁에서 연하남의 정석을 보여주는 권은택 역으로, '역도요정 김복주'(2016)에서는 친구 사이였던 김복주(이성경)에게 서서히 스며드는 정준혁 역으로, '스물다섯 스물하나'(2022)에서는 천방지축 말광랑이 나희도(김태리)를 사랑하지만 끝내 현실적인 문제로 이별을 맞이하는 백이진을 연기하며 달콤쌉쌀한 사랑의 유형을 자신만의 팔레트로 표현해왔다.
'역도요정 김복주' 방송 캡처본.
'역도요정 김복주' 방송 캡처본.
'눈이 부시게' 방송 캡처본.
'눈이 부시게' 방송 캡처본.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방송 캡처본.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방송 캡처본.
그외에도 '눈이 부시게'(2019)에서 과거 혜자(한지민)의 아련함과 현재의 온기를 불러넣는 이준하로, '보건교사 안은영'(2020)에서 남들은 못 보는 젤리를 보는 안은영(정유미)를 돕는 한문교사 홍인표로 필모그래피를 차곡차곡 쌓아갔다.

언뜻 남주혁에게서 왠지 모를 서글픈 눈빛을 발견하기는 했으나, 그보다는 특유의 반짝거리던 청량함이 더 눈길을 끌곤 했다. 그런 남주혁에게서 기분 좋은 낯섦을 가져다준 것은 디즈니+ '비질란테'의 김지용이었다. 낮에는 경찰대생이자 밤에는 비질란테(Vigilante,자경단)으로 활동하는 김지용의 탈을 쓴 남주혁의 얼굴에는 그간 보지 못했던 은은한 광기와 채워지지 않은 공허함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었다.
드라마 '비질란테' 스틸컷. /사진제공=디즈니+
드라마 '비질란테' 스틸컷. /사진제공=디즈니+
지난 29일, 8부작이 모두 공개된 '비질란테'에서 남주혁은 특유의 명랑함과 잔뜩 날 선 서늘함이 뒤엉키는 과정 속 모호한 선악의 경계를 보여준다.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잔혹한 짓을 저지른 범죄자들에 관한 보도를 들으며 움켜쥐었던 주먹은, 범죄자들 앞에서 마구 뻗어나간다. 또한, 깊게 눌러쓴 후드 사이로 비치던 무표정하게 깔던 김지용의 눈은, 처벌을 받았지만 반성은 없는 자들 앞에선 실핏줄이 터질 듯 이글거린다. "그렇지 않고 풀려나면 내가 지옥을 보여줄게"라며 거친 호흡으로 그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심판하는 김지용에게서 느껴지는 살기 안에는 남다른 처절함이 담겨있다.

어린 시절, 김지용의 어머니는 빠르게 길을 비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동네 건달에게 폭행당해 사망했고 법은 가해자에게 그에 상응하는 벌을 부여되지 않았다. 김지용은 법이라는 시스템 아래에 있는 경찰대생임에도, 법에 환멸을 느끼며 범죄자들을 처단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간 세상을 향해 희망과 사랑을 외치던 남주혁이 김지용을 연기하며 '정의란 무엇인지'를 되묻는다는 점이다.
드라마 '비질란테' 스틸컷. /사진제공=디즈니+
드라마 '비질란테' 스틸컷. /사진제공=디즈니+
세상은 '정의'에 대한 김지용의 물음에 이렇게 답변한다. 통쾌하게 복수하는 다크 히어로이자 그들과 다를 것이 없는 범죄자라는 것.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비질란테'는 단순히 '나쁜 놈들을 처벌한다'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흑돌과 백돌처럼 경계를 완전하게 구분할 수 없는 혼탁한 경계에 선 김지용으로 하여금, 사적재제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최근 '더 글로리'의 문동은(송혜교)이 학교폭력 가해자인 박연진(임지연) 일당에게 차근히 잘못을 일러주며 현재의 삶을 무너뜨리는 것도, '모범택시'에서 택시기사 김도기(이제훈)를 비롯한 무지개 운수 직원들이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해 복수하는 행위도, '국민사형투표'에서 개탈(박성웅)이 악질범들을 대상으로 국민투표를 진행하는 기묘한 상황도 전부 '비질란테'의 장면들과 유사하다.

사회적으로 명명하고 규제한 시스템은 김지용의 행동을 쉬이 용인하지 않는다. 특히, 우락부락한 팔다리와 190cm를 웃도는 거구의 광수대 팀장 조헌은 시스템에 도전하는 경찰 후배이자 김지용이 비질란테임을 알아채고는 세상의 이치를 알려주려고 한다. '비질란테'의 재미난 지점은 여기에 있다. 어엿한 경찰임에도 늘 깡패라고 오해받고, 폭력을 행사하는 조헌은 고장 난 시스템에 분노하면서도 철저하게 그 경계만은 지키려고 한다. 처음에는 상대에게 존댓말을 하면서 흔히 아는 경찰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내가 지금부터 반말을 하겠습니다"라고 정중한 듯 거친 조헌의 대사들은 어딘가 기묘하기 때문이다.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의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의 형사 마석도(마동석)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드라마 '비질란테' 스틸컷. /사진제공=디즈니+
드라마 '비질란테' 스틸컷. /사진제공=디즈니+
'비질란테' 5화, 굴다리 밑에서 조헌과 비질란테 김지용은 서로가 생각하는 '정의'에 대해 명명한다. 김지용은 "타인의 삶을 파괴하고 선처받고도 뉘우치지 않으며 풀려나서 또 같은 잘못을 하는 인간이 있다고 할 때, 그 한명의 인권을 박탈함으로써 더 많은 선량한 사람들의 삶을 구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옳은 행동입니까? 그른 행동입니까?"라고 피 끓는 목소리로 조헌에게 묻는다.

이에 조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회에서 가장 무겁게 처벌하는 범죄가 뭘까? (중략) 그건 반역죄야. 기존 권력 시스템에 도전한 자"라고 범죄를 향한 증오가 경찰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김지용에게 충고한다. 하지만 김지용은 "세상이 절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습니다. 저에겐 소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략) 아니면 제가 선배님께 증명하겠습니다. 불법이 거악을 잡는 모습을"이라며 의지를 다진다.

조헌에 의해 만신창이 피투성이가 되었음에도 자신이 바라는 세상과 정의에 대해 열변을 토해내는 김지용은 그야말로 '괴물'과도 같다. 긴 호흡으로 두 인물이 서로의 신념을 밀어붙이는 장면은 숨 막힐 정도로 거칠다. 이 장면의 무게감은 아마도 남주혁과 유지태의 연기에 있을 것이다. 긴 대사를 거침없이 쏟아내야 하기에 다소 피로감이 드는 장면일 수도 있으나, 남주혁과 유지태는 늑대와 호랑이처럼 서로에게 엉켜 붙어 힘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한다. 특히, 남주혁은 피투성이가 되었음에도 꺾이지 않는 눈빛으로 유지태를 노려보면서 무너지지 않는 독기를 보여줬다. 그간 남주혁의 필모를 돌아봐도 이 정도의 독기를 본 것은 아마 처음이 아닐까 싶다.
드라마 '비질란테' 스틸컷. /사진제공=디즈니+
드라마 '비질란테' 스틸컷. /사진제공=디즈니+
드라마의 엔딩에서 르포 25시 기자 최미려(김소진)과 DK 그룹 부회장이자 김지용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광팬 조광옥(이준혁), 조헌, 킬러인 방씨(신정근)와 쇠돌이(박광재), 세울미래자원 김삼두(윤경호), 비리 경찰이자 들쥐 엄재협(이해영)이 뒤엉켜 싸우고, 결국 거악을 처단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김지용은 경찰대 학생들의 임관 당일, "나는 대한민국의 공무원으로서 헌법과 법령을 준수하고 국가를 수호하며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라는 임용 선서에도 꼿꼿이 고개를 세우고 경례도 하지 않는다. 굳은 결의가 느껴지는 이 장면은 경찰이 아닌 비질란테로서 삶을 이어 나갈 것을 의미한다. 과연 사적제재는 올바른가라는 질문보다, 드라마 '비질란테'는 김지용을 이렇게 만든 악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드라마 '비질란테' 스틸컷. /사진제공=디즈니+
드라마 '비질란테' 스틸컷. /사진제공=디즈니+
다만, 동명의 원작을 기반으로 한만큼 원작 팬들의 아쉽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상황이다. 8부작으로 압축하다보니 생략된 스토리와 김지용이 거악을 잡는 과정들이 다소 비약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캐릭터가 지닌 설정이나 상황 표현은 좋았으나, 웹툰에서 김지용의 속마음이 외부 지문으로 나온 것처럼 내레이션이 있었다면 심리를 알아채기 쉬웠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경찰대생 복장을 하고 거울 속의 자신을 응시하는 모습이나 시간이 지날수록 순수함 대신 공허함이 들어찬 남주혁의 눈빛은 인상적이다.

현재 군입대한 남주혁의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지점이다. 청춘에도 다양한 초상이 있듯, 남주혁은 새로운 얼굴의 청춘들을 표현해낼 수 있지 않을까. '비질란테' 속 김지용의 눈빛에서 그 가능성을 본 것만 같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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