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소재의 독특한 활용법
장항준 감독과 송은이 제작자의 만남
문 너머의 진실, 마주할 준비 되었는가
영화 '오픈 더 도어' 스틸컷. /사진제공=㈜컨텐츠랩비보
영화 '오픈 더 도어' 스틸컷. /사진제공=㈜컨텐츠랩비보
*영화 '오픈 더 도어'에 관련된 주요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문(門)은 공간을 이어주기도, 대상의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선이 되기도 한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스즈메의 문단속'(2023)도 지나온 세계와 다가올 세계를 통과하거나 재난을 막는 매개로 표현되었다. 또한, 한국의 전래 동화에서도 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전래 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도 어린 남매는 문을 사이에 두고 호랑이로부터 위협을 벗어나는 영특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영화의 속에서 문은 그만큼 매력적인 소재라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제목에서부터 문을 강조한 장항준 감독의 영화 '오픈 더 도어'는 어떨까. '오픈 더 도어'는 7년 전, 발생했던 미국 뉴저지 한인 세탁소 살인 사건의 숨겨진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 '오픈 더 도어'는 총 5개의 챕터와 역순 구조로 되어있다. 보통의 심리 스릴러가 사건을 향해서 발돋움해가는 과정을 그린다면, '오픈 더 도어'는 사건의 중심부에서 점점 들어갔다가 빠져나오는 형식을 지니고 있다.
영화 '오픈 더 도어' 스틸컷. /사진제공=㈜컨텐츠랩비보
영화 '오픈 더 도어' 스틸컷. /사진제공=㈜컨텐츠랩비보
'오픈 더 도어'의 첫 장면은 이렇다. Chapter 1 'The Door'는 미국 뉴저지를 배경으로 도시의 야경과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가 그려진다. 자동차의 시점 샷으로 관객들 역시 어딘가로 향하게 되는데, 차에서 내린 치훈(서영주)는 한 집의 문 앞에서 머뭇거린다. 노크하기를 여러 번, 집 안에서 나온 매형 문석(이순원)은 어딘가 불안한 모양새다. 두 사람은 테이블 위에서 술판을 벌이고 좋았던 시절을 반추하며 대화를 나눈다.

분명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허공에 흩날리며 붕 뜨는 느낌이다. 감정이 고조된 치훈이 "우리 누나를 왜 때리냐"라며 본래의 목적을 테이블 위에 내어놓자, 문석 역시 "나한테 너희 엄마 죽이라고 시킨 게 너희 누나야"라며 감춰왔던 추악한 그날의 기억을 꺼내놓는다. 진실의 방아쇠가 당겨지고, 치훈은 화장실을 핑계로 문 안으로 들어가고, 문석 역시 안방으로 들어간다. 두 사람은 문의 안과 밖을 경계로 진실을 마주한 대가를 치르기 위해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여있다.

하지만 영화는 두 사람의 선택을 과감하게 생략한다. 대신 과거의 파편 조각들을 퍼즐판 위에 하나씩 올려놓기에 이른다. Chapter 2 'Call from sister'는 치훈은 매형의 집에 가기 5시간 전, 누나 윤주(김수진)으로부터 "그 새끼 죽여버릴 거야"라는 전화를 받는다. 윤주의 극대화된 감정은 치훈이 감당하기에는 버겁다.
영화 '오픈 더 도어' 스틸컷. /사진제공=㈜컨텐츠랩비보
영화 '오픈 더 도어' 스틸컷. /사진제공=㈜컨텐츠랩비보
이어진 Chapter 3 'a Suggestion'은 5년 전의 과거로 돌아가, 부부가 붕괴하기 시작한 시작점을 짚어준다. 사건의 연속성보다는 공백을 의도적으로 배치하면서 관객들에게 질문들을 제시하는 것이다. 엄마(강애심)의 말기 암과 급전적으로 다급한 상황이 맞물리면서 윤주는 남편 문석에게 섬뜩한 제안을 건넨다. 강도를 고용해서 엄마의 세탁소로 침입해서 죽인다는. 일종의 선언을 하고 윤주는 문밖으로 나가고, 문석은 하염없이 문 너머를 보며 고민을 거듭한다. 비극으로 치달은 부부의 제안은 결국 우발적인 사건에 의해 허무하게 종결된다. 살인을 계획했지만, 머뭇거리던 결정적인 순간에 진짜 강도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부부는 자신이 원하던 목적을 이뤘지만, 문석의 망설임은 돌이킬 수 없는 문을 열고야 말았다.

장항준은 영리한 감독임이 틀림없는데, 카메라를 하나의 인격체가 된 것처럼 보여주며 과거의 추억을 쫓는 기법을 사용한다. 특히 Chapter 5 'Play the guitar'에서 치훈, 문석, 윤주, 윤주의 엄마까지 공간을 채우던 행복했던 그 시절은 카메라의 유려한 움직임으로 더욱 빛을 발한다. 인물들이 빠져나간 집 안을 천천히 훑던 카메라는 문밖에서 들려오는 치훈과 문석의 기타 소리에 청자가 된 듯이 우두커니 서 있고, 환한 빛이 들어오는 열린 문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거리에 놓여있다. 아마도 그들은 이제 다시는 좋았던 시절을 손안에 넣을 수 없을 것이다.
영화 '오픈 더 도어' 스틸컷. /사진제공=㈜컨텐츠랩비보
영화 '오픈 더 도어' 스틸컷. /사진제공=㈜컨텐츠랩비보
물론 '오픈 더 도어'는 신선하지만, 서사의 헐거움을 무시할 수는 없다. 처음에는 단편영화로 기획했다는 장항준 감독의 말처럼 소재의 포맷 자체가 장편과는 적합하지 않다. 무엇보다 한정된 공간에서 대사를 통해 사건을 전달하다 보니, 설명적이라는 인식도 지울 수는 없다. 그러다 보니, 인물들의 격화된 감정은 과장되어 보이고 연극 무대처럼 비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오픈 더 도어'는 장항준 감독의 재기발랄한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간 연출했던 '리바운드'(2023), '기억의 밤'(2017), '라이터를 켜라'(2002), 드라마 '싸인'(2011)과는 사뭇 다른 느낌마저 든다. "독립 영화가 지닌 순수한 도전 정신과 충실함에 대해서 매력을 느낀다"는 장항준 감독의 말처럼 작품 안에서 그 순수함을 발견할 수 있다. 게다가 영화 제작자로 처음 도전하는 송은이 대표와 배우 이순원, 서영주, 김수진, 강애심의 격렬한 연기는 '오픈 더 도어'의 흡입력을 보장한다. '오픈 더 도어'는 감당하기 버거운 진실로 인해 무너지는 한 가족의 처절한 아픔을 담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문 너머에 있는 진실을 찾기 위해 문을 열 준비가 되었는가.

영화 '오픈 더 도어' 10월 25일 개봉. 러닝타임 71분. 15세 이상 관람가.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