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요, '더 글로리' 긴장감 고조시킨 김경란役
"1차 오디션 땐 혜정-사라, 2차 땐 성희 연기"
"임지연, 촬영 들어가니 딱 '나쁜 박연진'"
"다양한 연기 선보일 재료들 많이 갖고 있어"
배우 안소요.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배우 안소요.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애매한 태도로 피해자 연대의 일원인지 가해자 무리의 끄나풀인지 헷갈리게 했던 인물. '더 글로리'의 스토리에 궁금증을 더했던 김경란이다. 김경란 역의 안소요는 학교 폭력 트라우마를 지닌 인물의 불안함과 초조함, 방어적 태도, 외로움과 괴로움 등 복잡한 내면을 세밀하게 연기해냈다.

김경란은 학폭 가해자 전재준(박성훈 분)에게 박연진(임지연 분)을 의심케 하는 빌미를 제공했고, 무엇보다 또 다른 가해자 손명오(김건우 분)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며 죽게 하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피해자 연대의 일원이 됐고, 학폭 피해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났다. 29일 서울 중림동 텐아시아 사옥에서 넷플릭스 '더 글로리'에 출연한 배우 안소요를 만났다.

'더 글로리'는 유년 시절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한 여자가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 3월 29일 기준 넷플릭스 TOP10에 따르면 '더 글로리'는 4억 1305만 누적 시청 시간을 기록하며 넷플릭스 TV(비영어) 부문 역대 시청 시간 6위로 올라섰다. 국내 넷플릭스 시리즈 작품으로는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을 잇는 성과다. '더 글로리'파트1은 5주 동안 TOP 10 리스트에 진입, 파트2는 공개 직후 3주 연속 비영어 부문 1위 자리를 수성했다.

주변 반응에 대해 안소요는 "가까운 사람들은 제가 오랫동안 연기한 걸 알고 있어서 덤덤하다"고 말했다. 이어 "어릴 때 친구들이나 제가 연기하는 걸 잘 몰랐던 분들은 축하한다며 응원의 문자를 많이 보내줬다. 인지도가 달라졌다는 건 크게 실감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인터뷰를 다니고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더 글로리'가 많은 사랑을 받았고 내가 이 작품에 함께했구나, 영광스럽다는 생각을 한다"고 전했다.
'더 글로리' 안소요. / 사진제공=넷플릭스
'더 글로리' 안소요. / 사진제공=넷플릭스
안소요는 두 차례의 오디션 뒤 '더 글로리'에 합류하게 됐다고 밝혔다. 안소요는 "처음에는 혜정(차주영 분)-사라(김히어라 분)의 대사가 적힌 대본을 받았다"며 "그때는 화장도 전혀 하지 않고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갔다. 감독이 제 이미지가 어려보이고 애기 같이 생겼다고 하시더라. 역할에 이미지도 나이대도 안 맞는 것 같다고 얘기하셔서 '안 됐구나' 생각했는데 다행히 두 번째 오디션에 불러주셨다"고 회상했다.

이에 안소요는 2차 오디션 때 진하게 화장하고 꾸미고 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문동은(송혜교 분)의 공장 동료이자 복수 조력자인 성희의 대사를 받게 됐다. 안소요는 "꾸미고 간 제 모습이 또 안 어울린 거다. 감독님이 이번에는 '나이가 많아 보인다. 역할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고 얘기하시더라. 그래서 '지난번에 어려보인다고 하셔서 꾸미고 왔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아기 엄마 역할도 했고 다양한 나이대 캐릭터가 다 가능하다고 어필했다"고 비하인드를 전했다. 또한 "두 번째 오디션 때 감독님이 동은이 대사도 읽어보라고 하셔서 해봤다. 연기는 좋았다고 피드백해주셨는데 나중에 들으니 이미지나 나이대 때문에 고심하셨다고 하시더라"고 말했다.

안소요는 경란을 연기하며 "감독님이 경란 캐릭터가 피해자 연대인지 가해자 무리인지 헷갈려 보이면서 긴장감을 가져갔으면 좋겠다는 말씀하셨다. 연기하면서 그 모호한 지점을 찾으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저는 경란을 진심으로 연기하고 싶어서 경란의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하루하루를 머릿속으로 계속 그려봤다. '왜 그랬을까'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천천히 그려가며 접근했다"고 설명했다.
배우 안소요.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배우 안소요.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김경란은 성인이 된 뒤에도 학폭 가해자 무리에게서 성인이 된 후에도 벗어나지 못한다. 전재준(박성훈 분)의 옷 가게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기상캐스터 박연진(임지연 분)의 스타일리스트로 일한다.

김경란이 가해자 무리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물음에 안소요는 "많은 분들이 의아해하시기도 하고 동시에 자신들의 직간접적 경험을 통해 추론하더라. 그것들을 보면서 저도 공감했다. 많은 분들이 이해해주신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왜 그랬는지에 대한 이유를 한 줄로 설명하긴 힘들 것 같다. 실패하고 좌절했던 날들이 하루하루 쌓여 이제는 뭔가를 더 시도해보거나 노력해볼 힘도 남아있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눈앞의 하루하루를 버티고 안전하게 지내는 것, 그것만으로도 경란은 벅찼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학폭 피해자를 연기하며 심적으로 힘들진 않았냐고 묻자 안소요는 "경란의 마음에 깊게 들어가고 싶었다. 경란을 몸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당연히 경란의 마음속 어둠을 느꼈다"고 답했다. 이어 "그런 좋지 않은 감정들도 많았지만, 기본적으로 그 바탕에는 나 자신이 있다. 내가 작품을 하고 있다는 감사한 마음이 커서 이 역할의 어두운 감정이 괴롭고 힘들지만은 않았다. 그런 감정도 받아들일 만큼 내가 경란을 사랑하고 잘 연기해내고 싶다는 밑받침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어떤 역할이든 소화해내기 어려운 감정을 연기해야할 땐 "잠 못 이루는 날이 많다"는 안소요. '더 글로리' 때는 "제가 촬영이 많진 않았다. 띄엄띄엄 있었는데, 거의 모든 장면마다 촬영한 그날은 잠을 잘 못 잤다. 계속 복기하게 됐다. 또 촬영한 장면들과 연결되는 장면도 있지 않나. 오늘 어떻게 연기했는지도 생각하고 인물의 감정에 대해서도 생각하다보면 쉽게 잠이 들진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배우 안소요.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배우 안소요.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이번 작품으로 송혜교와 연기 호흡을 맞춘 안소요는 "실제로 많이 뵙지는 못했지만 캐릭터상 동질감을 느꼈다. 워낙 대선배기도 하고 제가 '극I' 성격이라 현장에서 말을 잘 못 붙이겠더라. 하지만 촬영 딱 들어가자 선배님은 동은이가 됐다. 저도 어려운 선배님이 아닌 동은으로 대하게 됐다. 그 잔잔하고 단호한 눈빛 이면에 일렁이는 감정의 파도들이 저에게로 고스란히 전달됐다"며 당시 송혜교의 모습을 떠올렸다. 임지연에 대해서는 "털털하고 밝으시다. 편안한 분위기로 있었는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나쁜 박연진'이 되더라. 연기를 잘해주셔서 저도 자연스레 몰입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김경란은 박연진에게 맞아 정신을 잃어가는 손명오를 술병으로 마지막 일격을 가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 안소요는 "많은 분들이 그 병에 관심이 많으시더라. 실제로 그 병이 묵직하고 단단하다. 촬영장에는 병 2개가 있었다. 하나는 단단한 쿠션 같은 느낌이었고 다른 하나는 진짜 유리병이었다"며 비하인드를 전했다. 이어 "쿠션이라도 단단하면 세게 맞으면 아플 것 같아서 손명오 배우에게 '이 정도로 하면 괜찮을까요?'라고 계속 물었다. 명오 배우는 전혀 괜찮다며 넉살 좋게 얘기해주셔서 한방에 있는 힘껏 내려쳤다"고 말했다. 또한 "모든 장면이 다 어려웠지만 그 장면이 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중요한 포인트지 않나. 동은을 만나기 전까지 깊이 곳에 묻어둬서 스스로 인지하지 못할 만큼 (가해자들을 향한 분노와 복수심을) 회피하고 있던 거다. 동은을 만나면서 어린 시절 자신과 동은을 상기하게 된 거다. 묻어뒀던 감정의 파도가 다시 일어난 거다. 그들이 조금씩 망가져가고 힘들리는 모습도 지켜봐오지 않았나. 조금은 고소했을 거다"며 경란의 감정을 헤아렸다.

그 후 김경란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안소요는 "여러 번 생각해봤다. 마음의 힐링이 되니까"라고 말했다. 이어 "많은 분들이 '경란이는 이렇게 살았을 거다', '경란이는 행복하게 살고 있나요?' SNS로 많이들 물어봐주신다. 물론 한번에 모든 것이 나아지는 건 힘들 거다. 경란은 이제 자기자신을 돌보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전에는 오랫동안 상처 받은 어린 경란을 돌보지 않은 채 방치했다면 이젠 어린 경란을 스스로 안아주고 앞으로 한발한발 나아가지 않을까 싶다. 새로운 것도 배워보고 새로운 일에도 도전할 것 같다"며 캐릭터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배우 안소요.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배우 안소요.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안소요의 다음 작품은 OTT 시리즈 '남남'으로, 촬영은 이미 마쳤다. 안소요는 "지금은 놀고 있다. 집순이라서 집에서 멍 때리기도 하고 책 읽고 책의 내용을 곱씹어보고 상상해본다. 그런 걸 좋아한다. 영화도 본다"며 웃었다.

1987년생인 안소요가 정식 데뷔한 건 2015년 영화 '인 허 플레이스'지만 연기를 시작한 건 스무 살부터라고 한다. 그는 "계기는 없다. 돌이켜 보면 어릴 때부터 내성적인 성격인데도 멍석을 깔아주면 나가서 사람들을 웃기게 하는 게 재밌었다. 그때만 활기차고 지나고 나면 내가 왜 그랬지 부끄러워하고 그랬다. 그랬던 기억이 쌓여서 배우의 꿈을 갖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고3 때 진로에 대해 고민할 때 연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배우 일 하는 걸 처음엔 반대했다. 신문방송학과로 입학했는데, 학교 들어가자마자 연극 동아리부터 들어갔고, 연극학을 복수전공했다"고 전했다. 또한 "동아리부원들과는 여전히 연락하고 종종 만난다. 동아리 사람들은 저의 든든한 뒷배같은 느낌이다. 저를 배우로서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사람들이다. 마음 속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지금 연기하는 분들도 있다"고 했다.

남들보다 늦게 데뷔했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을 이어간 안소요. 그는 "지금까지 연기를 해오면서 안 풀리거나 재능이 없다고 느겼던 순간들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다시 힘과 영감을 얻게 된 건 '작품들'이었던다. 그 자체를 사랑하고 진심으로 이 작품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털어놓았다.

안소요는 "'더 글로리'는 저라는 배우를 많은 분들에게 소개시켜줄 수 있었던 작품이다. 감사하다. 하지만 이전 작품들을 하며 다양한 캐릭터를 한 만큼 여러 경험을 갖고 있다. 많은 걸 선보일 재료를 갖고 있으니 다양한 역할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더 나은 사람,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계속 이 마음을 잃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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