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규민의 만남의 광장>>
"미국에서 DJ를 하다 작곡가를 꿈 꾸게 됐습니다"
"20만원 들고 무작정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죠"
"SM엔터테인먼트에서 저와, 크루에게 기회를 줬습니다"
"이효리를 만나기 위해 무작정 발로 뛰었습니다"
"부당 했다면, 수많은 작곡가가 저와 함께 하지 않았을 겁니다"
"미국에서 DJ를 하다 작곡가를 꿈 꾸게 됐습니다"
"20만원 들고 무작정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죠"
"SM엔터테인먼트에서 저와, 크루에게 기회를 줬습니다"
"이효리를 만나기 위해 무작정 발로 뛰었습니다"
"부당 했다면, 수많은 작곡가가 저와 함께 하지 않았을 겁니다"
<<노규민의 만남의 광장>>
텐아시아 노규민 기자가 매주 일요일 급변한 미디어 환경에서 방송, 가요, 영화, 패션 등 연예계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전합니다. 익숙지 않았던 사람들과 연예계의 궁금증을 직접 만나 풀어봅니다.
오후 2시, 청담동 A TEAM 엔터테인먼트 사옥 앞에서 편안한 트레이닝복 차림의 남자를 만났다. 'LOVE' 라는 문구가 커다랗게 박힌 모자를 눌러 쓰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인사했다.
새벽녘까지 곡 작업을 했고, 미국에서 협업하고 있는 작곡가들과 화상으로 업무를 했단다. "사진 찍는 걸 알고 있었는데 결국 꾸미질 못 했다"라는 그의 얼굴엔 피곤함이 가득 했다.
이효리의 'Chitty Chitty Bang Bang'부터 '수능 금지곡'인 샤이니의 '루시퍼', '프로듀스101' 메인 곡 '나야 나' 그리고 오마이걸의 '돌핀', 아이유의 '셀러브리티'까지, 14년 동안 변함없이 뜨거운 히트곡 제조기 라이언 전(44)이다. 어린시절에 파일럿을 꿈꿨다고요.
중학생 때 비행기를 처음 타 봤습니다. 미국으로 이민 가는 길, 하늘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 봤는데 뭔지 모를 짜릿함이 느껴졌어요. 제가 뭔가에 꽂히면 깊이 파고드는 습성이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했죠. 제 고향이 경상도 입니다. 부모님이 워낙 보수적이셨어요. 항공대에 붙었는데 집에선 원하지 않으셨죠.
미국에서 클럽 DJ를 하셨습니다.
파일럿 뿐만아니라 저는 가수가 되고 싶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를 좋아 했어요. 미국에 와서 음악도 계속 파고 들었죠. 역시나 부모님 반대에 부딪혀서 쉽게 그 길로 가질 못 했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 사촌이랑 치킨집을 운영 했는데 꽤 잘 됐어요. 그런데 마음 한 켠에서 음악에 대한 열망이 계속해서 끓어 올랐죠. 우연찮게 지인이 가지고 있는 턴테이블을 가지고 놀았는데, 다른 사람이 1년 정도 걸릴 스킬을 금방 배우고 따라한 겁니다. 그러면서 DJ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밴드도 하고 오케스트라도 했습니다. '음악'을 놓고 싶지 않아서 뭐라도 한 거예요.
어쩌다 작곡가의 길을 택하신 겁니까.
DJ를 하면서 다른 사람의 음악을 틀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걸 보고 '내 음악을 틀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라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취미'와 '꿈' 만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부딪혀 보고 싶었어요.
미국에서 바로 도전을 시작하셨다고요.
일단 데모 CD를 들고 미국 여러 대형 기획사를 다니면서 문을 두드렸어요. 당시만 해도 인종차별이 심했습니다. 철저하게 무시 당했죠.
한국행 비행기엔 어떻게 오른 겁니까.
운이 좋게 마음이 맞는 작곡가 친구들과 만나 크루를 결성 했습니다. 한국사람들이니까 한국에서 '웰컴' 해줄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여러 엔터테인먼트에 전화를 걸었어요. 속 된 말로 여기저기 다 까였습니다. 사투리를 쓴다는 이유로 믿지 않는 곳도 있었어요. '전화고 나발이고 직접 가서 부딪히자'라는 생각으로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친구들 모두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모두 함께 오지 못했고, 당시 저는 단돈 20만원을 들고 한국으로 왔어요. 20대 후반 무작정 한국으로 온 라이언 전은 미국에 있는 크루 작곡가들과 소통하며 음악 작업에 열중, 여기저기 문을 두드린 끝에 지인을 통해 SM엔터테인먼트와 인연이 닿았다. 그리고 2009년 샤이니의 'Get Down'을 통해 작곡가로서 첫 발을 내딛었다.
SM과 3년 전속계약을 하셨습니다.
지칠 때 쯤 유일하게 마음으로 안아준 회사입니다. 제 크루, 그리고 제가 음악 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하려고 함께 미국까지 다녀 왔어요. 비행기표도 끊어 줬죠.(웃음) 저와 저의 팀 미래에 과감하게 투자해 준 곳이에요.
이효리의 'Chitty Chitty Bang Bang'으로 존재감을 알리셨습니다.
없는 돈에 비행기 타고 미국 오하이오까지 가서 치킨 먹으며 만든 노래 입니다.
SM 전속이었는데 이효리에게 곡을 준 배경이 궁금합니다.
SM 전속이여도 다른 가수에게 곡을 줄 수 있었습니다. 다만 SM 작업이 우선이었던 거죠. 'Chitty Chitty Bang Bang'을 이효리 씨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이효리 씨를 만나는 건 쉽지 않았죠. 또 열심히 발로 뛰었습니다. 지속적인 두드림 끝에 매니저와 닿았고, 이효리 씨와 만날 수 있었어요. 효리 씨가 다행히도 'Chitty Chitty Bang Bang'을 좋아해 주셨죠.
라이언 전은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f(x), 엑소 등 SM 소속 가수들은 물론, 10년 넘는 시간 동안 B1A4, 뉴이스트, 초신성, 타이히, 스피카, 유키스, 여자친구, 몬스타엑스, 트와이스, 빅톤, 강다니엘, 이달의 소녀 등 수많은 아이돌 노래를 만들었다.
아이돌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시겠습니다.
저를 안아준 SM을 위해서, 또 제 자신을 위해서, 크루를 위해서 대박을 터트리기 위해 달려 왔습니다. 이런 과정에 '아이돌'이라고 무시하는 일부 시선이 싫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땀 흘려 노력한 끝에 대중 앞에 섰는데, 고정관념 때문에 인정 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죠. 그래서 대중에게 인정 받을 수 있는 음악을 하기 위해 더 노력했어요.
슬럼프를 경험하셨습니까.
2015년, 태연의 'I'가 나왔을 때 쯤 그랬던 것 같습니다. 진이 빠졌어요. 당시에는 책상에 앉기 조차 싫었죠. 노래를 계속해서 써야 하는 압박감과 히트해야 하는 부담감이 공존했어요. 무엇보다 제 곡이 1위를 했을 때 행복해야 하는데 공허함이 생기더군요. 쳇바퀴처럼 돌고 있는 상황에서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변화를 주셨습니까.
시야를 좀 더 넓혔어요. 제가 어려웠을 때처럼 '음악'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미국, 유럽 등을 돌며 신인을 발굴 하려고 했죠. 함께 음악 할 유능한 작곡가를 위해 투자 했어요. 힘들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행복합니다. 지금 그들이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너무 뿌듯하고요. 라이언 전은 현재 작곡가 뿐만 아니라 프로듀서, A&R(Artists and repertoire), A TEAM엔터테인먼트 대표 이사까지 여러 직함을 가지고 활동중이다.
여러명의 작곡가와 함께 작업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도 있습니다.
Mnet '프로듀스101'에서 '나야 나'를 내 놓은 이후 저에 대한 소문이 안 좋았습니다. 하는 것 없이 폭리만 취한다는 말도 있었죠. 저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음악'을 혼자 하지 않았죠. 저와 처음부터 함께한 친구들이 지금도 함께 하고 있어요. 제가 부당하게 했다면 함께할 이유가 없죠.
2008년과 지금, 곡을 만드는 데 달라진 점이 있습니까.
음악도 패션처럼 트렌드가 있어서 돌고 돕니다. 저는 일관성 있게 음악 하고 있고, 저와 함께하는 이들과 트렌디함을 입히고 있어요. 고정 된 틀에 얽메이지 않고 협업을 통해 자유분방한 음악을 만드는 것이 저희 팀 색깔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1호 걸그룹 버가뷰(bugAboo)를 선보이셨습니다.
저와 5~6년 함께한 의리 있는 친구들 이에요. 대표와 계약자의 관계가 아니라 삼촌과 조카처럼 지내고 있죠. 자유롭게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풀어 놨는데, 말괄량이처럼 말 안 들을때도 있어서 미울 때가 있어요. (웃음) 계약금부터 품위유지비까지 조건부터 다른 곳과 다릅니다. 그들이 보여준 의리에 제가 보답 하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죠. 버가부는 이제 시작입니다. 5월 쯤 두번째 싱글이 나올 예정이니, 많이 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팀 라이언 전'은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까.
음악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일은 없을 겁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계속해서 뛰어난 작곡가, 프로듀서를 찾고, 한 회사에서 함께 음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죠. 저는 'LOVE'라는 단어를 좋아해요. 사랑은 곧 희생이죠. 제게 주어진 미션이 있을 때 일확천금을 노리기보다 먼저 희생하고, 무엇보다 '함께' 하는 것이 의미 있는 것 같습니다. 삶은 공생 입니다. 저 또한 혼자가 아닙니다. 제겐 더 위대한 곳을 향하는 배에 함께 탄 크루가 있습니다.
에필로그
이효리를 처음 봤을 때 어땠습니까.
핑클 노래를 들으면서 자란 세대입니다. '와 연예인이다' 했죠. 하하하.
노규민 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텐아시아 노규민 기자가 매주 일요일 급변한 미디어 환경에서 방송, 가요, 영화, 패션 등 연예계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전합니다. 익숙지 않았던 사람들과 연예계의 궁금증을 직접 만나 풀어봅니다.
오후 2시, 청담동 A TEAM 엔터테인먼트 사옥 앞에서 편안한 트레이닝복 차림의 남자를 만났다. 'LOVE' 라는 문구가 커다랗게 박힌 모자를 눌러 쓰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인사했다.
새벽녘까지 곡 작업을 했고, 미국에서 협업하고 있는 작곡가들과 화상으로 업무를 했단다. "사진 찍는 걸 알고 있었는데 결국 꾸미질 못 했다"라는 그의 얼굴엔 피곤함이 가득 했다.
이효리의 'Chitty Chitty Bang Bang'부터 '수능 금지곡'인 샤이니의 '루시퍼', '프로듀스101' 메인 곡 '나야 나' 그리고 오마이걸의 '돌핀', 아이유의 '셀러브리티'까지, 14년 동안 변함없이 뜨거운 히트곡 제조기 라이언 전(44)이다. 어린시절에 파일럿을 꿈꿨다고요.
중학생 때 비행기를 처음 타 봤습니다. 미국으로 이민 가는 길, 하늘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 봤는데 뭔지 모를 짜릿함이 느껴졌어요. 제가 뭔가에 꽂히면 깊이 파고드는 습성이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했죠. 제 고향이 경상도 입니다. 부모님이 워낙 보수적이셨어요. 항공대에 붙었는데 집에선 원하지 않으셨죠.
미국에서 클럽 DJ를 하셨습니다.
파일럿 뿐만아니라 저는 가수가 되고 싶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를 좋아 했어요. 미국에 와서 음악도 계속 파고 들었죠. 역시나 부모님 반대에 부딪혀서 쉽게 그 길로 가질 못 했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 사촌이랑 치킨집을 운영 했는데 꽤 잘 됐어요. 그런데 마음 한 켠에서 음악에 대한 열망이 계속해서 끓어 올랐죠. 우연찮게 지인이 가지고 있는 턴테이블을 가지고 놀았는데, 다른 사람이 1년 정도 걸릴 스킬을 금방 배우고 따라한 겁니다. 그러면서 DJ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밴드도 하고 오케스트라도 했습니다. '음악'을 놓고 싶지 않아서 뭐라도 한 거예요.
어쩌다 작곡가의 길을 택하신 겁니까.
DJ를 하면서 다른 사람의 음악을 틀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걸 보고 '내 음악을 틀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라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취미'와 '꿈' 만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부딪혀 보고 싶었어요.
미국에서 바로 도전을 시작하셨다고요.
일단 데모 CD를 들고 미국 여러 대형 기획사를 다니면서 문을 두드렸어요. 당시만 해도 인종차별이 심했습니다. 철저하게 무시 당했죠.
한국행 비행기엔 어떻게 오른 겁니까.
운이 좋게 마음이 맞는 작곡가 친구들과 만나 크루를 결성 했습니다. 한국사람들이니까 한국에서 '웰컴' 해줄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여러 엔터테인먼트에 전화를 걸었어요. 속 된 말로 여기저기 다 까였습니다. 사투리를 쓴다는 이유로 믿지 않는 곳도 있었어요. '전화고 나발이고 직접 가서 부딪히자'라는 생각으로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친구들 모두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모두 함께 오지 못했고, 당시 저는 단돈 20만원을 들고 한국으로 왔어요. 20대 후반 무작정 한국으로 온 라이언 전은 미국에 있는 크루 작곡가들과 소통하며 음악 작업에 열중, 여기저기 문을 두드린 끝에 지인을 통해 SM엔터테인먼트와 인연이 닿았다. 그리고 2009년 샤이니의 'Get Down'을 통해 작곡가로서 첫 발을 내딛었다.
SM과 3년 전속계약을 하셨습니다.
지칠 때 쯤 유일하게 마음으로 안아준 회사입니다. 제 크루, 그리고 제가 음악 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하려고 함께 미국까지 다녀 왔어요. 비행기표도 끊어 줬죠.(웃음) 저와 저의 팀 미래에 과감하게 투자해 준 곳이에요.
이효리의 'Chitty Chitty Bang Bang'으로 존재감을 알리셨습니다.
없는 돈에 비행기 타고 미국 오하이오까지 가서 치킨 먹으며 만든 노래 입니다.
SM 전속이었는데 이효리에게 곡을 준 배경이 궁금합니다.
SM 전속이여도 다른 가수에게 곡을 줄 수 있었습니다. 다만 SM 작업이 우선이었던 거죠. 'Chitty Chitty Bang Bang'을 이효리 씨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이효리 씨를 만나는 건 쉽지 않았죠. 또 열심히 발로 뛰었습니다. 지속적인 두드림 끝에 매니저와 닿았고, 이효리 씨와 만날 수 있었어요. 효리 씨가 다행히도 'Chitty Chitty Bang Bang'을 좋아해 주셨죠.
라이언 전은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f(x), 엑소 등 SM 소속 가수들은 물론, 10년 넘는 시간 동안 B1A4, 뉴이스트, 초신성, 타이히, 스피카, 유키스, 여자친구, 몬스타엑스, 트와이스, 빅톤, 강다니엘, 이달의 소녀 등 수많은 아이돌 노래를 만들었다.
아이돌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시겠습니다.
저를 안아준 SM을 위해서, 또 제 자신을 위해서, 크루를 위해서 대박을 터트리기 위해 달려 왔습니다. 이런 과정에 '아이돌'이라고 무시하는 일부 시선이 싫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땀 흘려 노력한 끝에 대중 앞에 섰는데, 고정관념 때문에 인정 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죠. 그래서 대중에게 인정 받을 수 있는 음악을 하기 위해 더 노력했어요.
슬럼프를 경험하셨습니까.
2015년, 태연의 'I'가 나왔을 때 쯤 그랬던 것 같습니다. 진이 빠졌어요. 당시에는 책상에 앉기 조차 싫었죠. 노래를 계속해서 써야 하는 압박감과 히트해야 하는 부담감이 공존했어요. 무엇보다 제 곡이 1위를 했을 때 행복해야 하는데 공허함이 생기더군요. 쳇바퀴처럼 돌고 있는 상황에서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변화를 주셨습니까.
시야를 좀 더 넓혔어요. 제가 어려웠을 때처럼 '음악'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미국, 유럽 등을 돌며 신인을 발굴 하려고 했죠. 함께 음악 할 유능한 작곡가를 위해 투자 했어요. 힘들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행복합니다. 지금 그들이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너무 뿌듯하고요. 라이언 전은 현재 작곡가 뿐만 아니라 프로듀서, A&R(Artists and repertoire), A TEAM엔터테인먼트 대표 이사까지 여러 직함을 가지고 활동중이다.
여러명의 작곡가와 함께 작업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도 있습니다.
Mnet '프로듀스101'에서 '나야 나'를 내 놓은 이후 저에 대한 소문이 안 좋았습니다. 하는 것 없이 폭리만 취한다는 말도 있었죠. 저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음악'을 혼자 하지 않았죠. 저와 처음부터 함께한 친구들이 지금도 함께 하고 있어요. 제가 부당하게 했다면 함께할 이유가 없죠.
2008년과 지금, 곡을 만드는 데 달라진 점이 있습니까.
음악도 패션처럼 트렌드가 있어서 돌고 돕니다. 저는 일관성 있게 음악 하고 있고, 저와 함께하는 이들과 트렌디함을 입히고 있어요. 고정 된 틀에 얽메이지 않고 협업을 통해 자유분방한 음악을 만드는 것이 저희 팀 색깔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1호 걸그룹 버가뷰(bugAboo)를 선보이셨습니다.
저와 5~6년 함께한 의리 있는 친구들 이에요. 대표와 계약자의 관계가 아니라 삼촌과 조카처럼 지내고 있죠. 자유롭게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풀어 놨는데, 말괄량이처럼 말 안 들을때도 있어서 미울 때가 있어요. (웃음) 계약금부터 품위유지비까지 조건부터 다른 곳과 다릅니다. 그들이 보여준 의리에 제가 보답 하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죠. 버가부는 이제 시작입니다. 5월 쯤 두번째 싱글이 나올 예정이니, 많이 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팀 라이언 전'은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까.
음악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일은 없을 겁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계속해서 뛰어난 작곡가, 프로듀서를 찾고, 한 회사에서 함께 음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죠. 저는 'LOVE'라는 단어를 좋아해요. 사랑은 곧 희생이죠. 제게 주어진 미션이 있을 때 일확천금을 노리기보다 먼저 희생하고, 무엇보다 '함께' 하는 것이 의미 있는 것 같습니다. 삶은 공생 입니다. 저 또한 혼자가 아닙니다. 제겐 더 위대한 곳을 향하는 배에 함께 탄 크루가 있습니다.
에필로그
이효리를 처음 봤을 때 어땠습니까.
핑클 노래를 들으면서 자란 세대입니다. '와 연예인이다' 했죠. 하하하.
노규민 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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