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진의 오예≫
오늘, 주목할 만한 예능
국민 할머니 모인 '진격의 할매'
세대 아우르는 예능…'일방통행' 먹힐까
사진=채널S '진격의 할매' 방송 화면 캡처
사진=채널S '진격의 할매' 방송 화면 캡처
서예진의 오예≫
'콘텐츠 범람의 시대'. 어떤 볼지 고민인 독자들에게 서예진 텐아시아 기자가 '예능 가이드' 드립니다. 예능계 핫이슈는 물론, 관전 포인트, 주요 인물,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낱낱히 파헤쳐 프로그램 시청에 재미를 더합니다.
세대 차이는 문화의 차이로 연결된다. 옳고 그름을 떠나,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 속 조언은 종종 오해를 부른다. ‘개념 없는’ 젊은 세대와 ‘꼰대’로 비칠 수 있는 중장년층. ‘진격의 할매’ 제작진은 이런 고정된 이미지를 투사시키며 출연자들을 난감한 상황에 빠뜨리고 있다.

채널S는 국민 할머니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김영옥, 나문희, 박정수를 내세운 예능 프로그램 ‘진격의 할매’를 통해 고민 상담소 운영에 나선 것. 이들은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켜켜이 쌓인 지혜로 속 시원한 조언을 전한다.

하지만 2030 세대가 할머니들의 조언을 언제나 지혜로운 명언으로만 받아들이진 않는다. 다른 세대가 만나 의견을 공유하며 서로를 이해한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진격의 할매’는 이런 과정 없이 할머니들의 일방적인 으름장으로 기승전결을 짓는다. 제작진이 심어놓은 ‘경로 우대’라는 장치가 출연자들에게 독이 되는 것.
사진=채널S '진격의 할매' 방송 화면 캡처
사진=채널S '진격의 할매' 방송 화면 캡처
지난 8일 방송분에선 ‘털’에 대한 강박을 호소하는 의뢰인이 등장했다. 타인의 몸에 돋아난 털을 보면 뽑고 싶은 욕구가 치민다는 고민이다. 그는 이런 점을 살려 왁싱 숍을 운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나문희는 중요한 부위까지 털을 제거하냐고 물었고, 왁싱 문화가 낯선 할머니들은 충격에 빠졌다.

의뢰인은 썸타는 남자의 털을 견디지 못해 관계 지속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에 박정수는 “결혼 전까지 만이라도 참을 순 없냐”고 물었다. 나문희는 “기준을 높여라. 그래야 시집가지”라고 말하는가 하면, "서양 영화 보면 가슴에 털 있고 그러면 보기 좋던데…근사하지 않아?”라고 설득을 시도하기도. 김영옥은 “(의뢰인) 얼굴로 봐선 자신 있을 나이가 아니다”라며 “만점 입장은 아닌데 왁싱을 강요하면 더 힘들어진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날 또 다른 의뢰인은 3번 연속 사기를 당했다며 찾아왔다. 인터넷 카페를 통한 신종 투자 사기를 당해 남편과 이혼 위기에 놓였다는 설명이다. 박정수는 과거 자신이 당했던 사기 경험을 언급하며 “‘난 당해도 싸다’라고 생각했더니 속상했던 마음이 누그러지더라”라며 “내가 흑심을 품고 돈을 쉽게 벌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조언했다. 나문희 역시 “내 탓이로소이다. 그 말이 참 좋더라”고 덧붙였다.
사진제공=채널S '진격의 할매'
사진제공=채널S '진격의 할매'
할머니들의 조언은 평생 ‘참을 인(忍)’자를 세기며 살아온 자신들의 삶을 반영한다. 이들의 입장에선 의뢰인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최선의 조언이었을 터다. 하지만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라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이 젊은 세대에 위로가 될지는 미지수다.

사기를 당한 피해자에게 “내 탓으로 여기라”는 조언 또한 마찬가지다.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처럼 언급되는 ‘가스라이팅’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것. 문제는 할머니들 역시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꿀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점에 있다.

제작진은 할머니들의 구수한 입담과 따뜻한 조언에 중점을 뒀을 터. 실제로 국민 할머니의 호통 속에는 뼈아픈 진실과 훈훈한 온기가 가득하다. 하지만 세대를 아우르는 예능 프로그램은 일방통행이 먹히지 않는다. 악의 없는 할머니의 진심 어린 조언들만 안타까워지고 있다.

서예진 텐아시아 기자 ye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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