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규민의 영화인싸>>
배우 양익준, 넷플릭스 '지옥'서 존재감
독립영화 '똥파리'로 영화상 휩쓴 연출자
"13년 동안 공황장애…어린시절 가정폭력" 고백
'똥파리' 넘고 감독으로서 가치 증명해야
배우 양익준, 넷플릭스 '지옥'서 존재감
독립영화 '똥파리'로 영화상 휩쓴 연출자
"13년 동안 공황장애…어린시절 가정폭력" 고백
'똥파리' 넘고 감독으로서 가치 증명해야
≪노규민의 영화人싸≫
노규민 텐아시아 영화팀장이 매주 일요일 오전 영화계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배우, 감독, 작가, 번역가, 제작사 등 영화 생태계 구성원들 가운데 오늘뿐 아니라 미래의 '인싸'들을 집중 탐구합니다.
길 한복판에서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이를 발견한 상훈이 남자를 사정없이 두들겨 팬다. 그러더니 폭력을 당한 여자를 때린다. 복수해주나 싶던 남자는 "왜 맞고 다니냐"고 한마디 하고 돌아선다.
"이 나라 아비들은 집에만 오면 지가 김일성인 줄 알아 X발."
상훈은 용역 깡패다. 돈을 받기 위해 채무자의 집을 찾았다가 아내를 때리는 남편을 발견, 그 남자를 사정없이 짓밟는다.
이는 거친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만큼, 비참하고 어두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내 여운을 남긴 영화 '똥파리'(2009) 속 장면이다.
'똥파리'는 배우이자 영화감독인 양익준 자신의 실제 이야기였다. 양익준은 최근 넷플릭스 화제작 '지옥'에서 형사 진경훈으로 등장, 극 초반부 강한 존재감을 선사했다. '새진리회' 수장 정진수(유아인)가 지옥의 사자들에게 최후를 맞는 순간을 유일하게 목격한 그 인물이다.
앞서 2014년 방송된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는 조인성 형 정재범으로 등장해 '생양아치' 연기의 달인임을 과시해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양익준은 그간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에 조연으로 출연해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SBS 예능 '불타는 청춘'에도 여러 차례 등장해 친숙함을 더했다.
감독으론 어떨까. 연출 데뷔한 지 13년이 지났지만 지금껏 상업영화를 내놓은 적이 없어 감독으로서 존재감은 미비하다. 그러나 양익준이 '똥파리'라는 영화를 만들고, 주연으로 출연한 감독 겸 배우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독립영화 '똥파리'는 폭력 등 불안정적인 가정에서 성장한 인물이 가족애를 느끼며 살아가게 되는 이야기로, 어두운 과거를 가진 상훈의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다루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양익준은 총제작비 4억 원을 들여 이 영화를 만들었다. 자신이 살던 전세방에서 극 중 연희(김꽃비)의 집 장면을 찍었고, 해당 신을 다 찍고 난 뒤 전세금을 빼서 촬영비에 보탰다. 또 돈다발을 날리는 장면을 찍기 위해 30만 원을 빌렸고, 촬영 후 회수했을 때 2만 원이 사라졌다는 일화도 있다. 결과적으로 '똥파리'는 손익분기점 12만을 돌파, 최종 12만 3000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독립영화 흥행 순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2010년 이후 여러 작품에 밀려 지금은 순위가 떨어진 상태다)
또한 양익준은 '똥파리'로 제30회 청룡영화상 신인남우상을 수상했고, 여주인공 연희를 연기한 김꽃비는 신인여우상을 받았다. 독립영화가 남녀 신인상을 싹쓸이한 건 영화상 이래 최초다. 뿐만 아니라 부일영화상, 디렉터스컷 어워즈,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뉴욕 아시아 영화제 등 국내외 유수의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이 영화로 일본에서 한국어 욕 'XX놈아'가 알려지게 됐다는 여담도 있다.
'똥파리'부터 '지옥'까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한 양익준은 지난 4일 방송된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 그동안 어디서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인간 양익준'을 꺼내 놓았다.
그는 "13년째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고 고백했다. 양익준은 "평생 가는 증상인가 싶어서 절망감이 오더라. 증세가 심해지면 컴퓨터 전원이 꺼지듯 머리(뇌)가 멈추는 느낌을 받는다. 단어와 문장도 구축이 안 된다. 중력 없이 우주 한복판에 떠 있는 것 같다"고 말해 걱정을 끼쳤다.
또한 "몇 년 전까지 초등학생에게도 극존칭을 썼다"라며 자신의 성향을 드러냈다. 양익준은 "저 자신은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분들은 부담스러워하고, 어떤 분들은 함부로 대하기도 하더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창 시절 가만히 있다가 폭행을 당했던 일화와, 영화인들과 만남에서 한 배우에게 심하게 욕설을 들었던 이야기를 전해 충격을 안겼다.
일부러 선글라스를 끼고 녹화에 임하는 등 시종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양익준은 녹화를 끊고 약을 복용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 가정폭력을 당했던 과거를 고백했다. 양익준은 가정폭력을 일삼은 자신의 아버지를 빗대어 "집에서는 가장 큰 존재인데 밖에서 자신보다 큰 존재에겐 덤비지 못하는 연약한 사람들"이라며 "안에서는 강자, 밖에서는 약자다. 그런 무의식의 분노를 가정에 표출한 것이 우리 부모세대의 슬픈 역사인 것 같다. 가족에 대한 고민을 영화로 찍게 되면서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양익준은 "엄마, 아버지 세대가 시대의 희생자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라고 했다. 어린 시절 쌓였던 양익준의 분노와 적개심이 그대로 드러난 영화가 '똥파리' 였다. 양익준은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봤던 것들이 성장하면서 다양한 정신적인 증상을 만들었다"라며 "주변에서도 저와 같은 일을 겪은 누군가는 화가 나서 폭력적인 사람이 돼버리기도 하고 폭력이 두려워서 더 쫄보가 되는 사람도 있다. 지금 제 조카들도 그렇고, 제 가족들을 보면서 이런 것이 대물림 되지 않길 바라고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또한 양익준은 "'똥파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위로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양익준은 "아직까지 유명인을 보면 긴장한다"며 조인성, 유아인 등 톱스타들과 호흡했던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그는 "조인성 형 역할을 맡았으면, 조인성이 진짜 동생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해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오은영 박사는 양익준이 주변 사람들에게 큰 힘을 주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는 그렇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한 영향력을 자신에게 더 발휘해야 하고 지나치게 낮추기보다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관객들은 '똥파리'를 넘어서는 작품을 기대하고 있다. 지금껏 '똥파리'는 양익준 스스로 넘어야 할 큰 산이었다. 실제로 몇몇 단편영화를 연출했지만, 장편 상업영화를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 '똥파리'를 통해 감독으로서 가능성을 보여준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똥파리'가 '감독 양익준'의 유일한 대표작이다. 관객은 '똥파리'를 능가하는 '양익준 감독 표' 영화를 기대하고 있다. 영화를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할 때다.
노규민 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노규민 텐아시아 영화팀장이 매주 일요일 오전 영화계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배우, 감독, 작가, 번역가, 제작사 등 영화 생태계 구성원들 가운데 오늘뿐 아니라 미래의 '인싸'들을 집중 탐구합니다.
길 한복판에서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이를 발견한 상훈이 남자를 사정없이 두들겨 팬다. 그러더니 폭력을 당한 여자를 때린다. 복수해주나 싶던 남자는 "왜 맞고 다니냐"고 한마디 하고 돌아선다.
"이 나라 아비들은 집에만 오면 지가 김일성인 줄 알아 X발."
상훈은 용역 깡패다. 돈을 받기 위해 채무자의 집을 찾았다가 아내를 때리는 남편을 발견, 그 남자를 사정없이 짓밟는다.
이는 거친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만큼, 비참하고 어두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내 여운을 남긴 영화 '똥파리'(2009) 속 장면이다.
'똥파리'는 배우이자 영화감독인 양익준 자신의 실제 이야기였다. 양익준은 최근 넷플릭스 화제작 '지옥'에서 형사 진경훈으로 등장, 극 초반부 강한 존재감을 선사했다. '새진리회' 수장 정진수(유아인)가 지옥의 사자들에게 최후를 맞는 순간을 유일하게 목격한 그 인물이다.
앞서 2014년 방송된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는 조인성 형 정재범으로 등장해 '생양아치' 연기의 달인임을 과시해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양익준은 그간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에 조연으로 출연해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SBS 예능 '불타는 청춘'에도 여러 차례 등장해 친숙함을 더했다.
감독으론 어떨까. 연출 데뷔한 지 13년이 지났지만 지금껏 상업영화를 내놓은 적이 없어 감독으로서 존재감은 미비하다. 그러나 양익준이 '똥파리'라는 영화를 만들고, 주연으로 출연한 감독 겸 배우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독립영화 '똥파리'는 폭력 등 불안정적인 가정에서 성장한 인물이 가족애를 느끼며 살아가게 되는 이야기로, 어두운 과거를 가진 상훈의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다루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양익준은 총제작비 4억 원을 들여 이 영화를 만들었다. 자신이 살던 전세방에서 극 중 연희(김꽃비)의 집 장면을 찍었고, 해당 신을 다 찍고 난 뒤 전세금을 빼서 촬영비에 보탰다. 또 돈다발을 날리는 장면을 찍기 위해 30만 원을 빌렸고, 촬영 후 회수했을 때 2만 원이 사라졌다는 일화도 있다. 결과적으로 '똥파리'는 손익분기점 12만을 돌파, 최종 12만 3000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독립영화 흥행 순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2010년 이후 여러 작품에 밀려 지금은 순위가 떨어진 상태다)
또한 양익준은 '똥파리'로 제30회 청룡영화상 신인남우상을 수상했고, 여주인공 연희를 연기한 김꽃비는 신인여우상을 받았다. 독립영화가 남녀 신인상을 싹쓸이한 건 영화상 이래 최초다. 뿐만 아니라 부일영화상, 디렉터스컷 어워즈,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뉴욕 아시아 영화제 등 국내외 유수의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이 영화로 일본에서 한국어 욕 'XX놈아'가 알려지게 됐다는 여담도 있다.
'똥파리'부터 '지옥'까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한 양익준은 지난 4일 방송된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 그동안 어디서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인간 양익준'을 꺼내 놓았다.
그는 "13년째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고 고백했다. 양익준은 "평생 가는 증상인가 싶어서 절망감이 오더라. 증세가 심해지면 컴퓨터 전원이 꺼지듯 머리(뇌)가 멈추는 느낌을 받는다. 단어와 문장도 구축이 안 된다. 중력 없이 우주 한복판에 떠 있는 것 같다"고 말해 걱정을 끼쳤다.
또한 "몇 년 전까지 초등학생에게도 극존칭을 썼다"라며 자신의 성향을 드러냈다. 양익준은 "저 자신은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분들은 부담스러워하고, 어떤 분들은 함부로 대하기도 하더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창 시절 가만히 있다가 폭행을 당했던 일화와, 영화인들과 만남에서 한 배우에게 심하게 욕설을 들었던 이야기를 전해 충격을 안겼다.
일부러 선글라스를 끼고 녹화에 임하는 등 시종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양익준은 녹화를 끊고 약을 복용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 가정폭력을 당했던 과거를 고백했다. 양익준은 가정폭력을 일삼은 자신의 아버지를 빗대어 "집에서는 가장 큰 존재인데 밖에서 자신보다 큰 존재에겐 덤비지 못하는 연약한 사람들"이라며 "안에서는 강자, 밖에서는 약자다. 그런 무의식의 분노를 가정에 표출한 것이 우리 부모세대의 슬픈 역사인 것 같다. 가족에 대한 고민을 영화로 찍게 되면서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양익준은 "엄마, 아버지 세대가 시대의 희생자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라고 했다. 어린 시절 쌓였던 양익준의 분노와 적개심이 그대로 드러난 영화가 '똥파리' 였다. 양익준은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봤던 것들이 성장하면서 다양한 정신적인 증상을 만들었다"라며 "주변에서도 저와 같은 일을 겪은 누군가는 화가 나서 폭력적인 사람이 돼버리기도 하고 폭력이 두려워서 더 쫄보가 되는 사람도 있다. 지금 제 조카들도 그렇고, 제 가족들을 보면서 이런 것이 대물림 되지 않길 바라고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또한 양익준은 "'똥파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위로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양익준은 "아직까지 유명인을 보면 긴장한다"며 조인성, 유아인 등 톱스타들과 호흡했던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그는 "조인성 형 역할을 맡았으면, 조인성이 진짜 동생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해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오은영 박사는 양익준이 주변 사람들에게 큰 힘을 주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는 그렇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한 영향력을 자신에게 더 발휘해야 하고 지나치게 낮추기보다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관객들은 '똥파리'를 넘어서는 작품을 기대하고 있다. 지금껏 '똥파리'는 양익준 스스로 넘어야 할 큰 산이었다. 실제로 몇몇 단편영화를 연출했지만, 장편 상업영화를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 '똥파리'를 통해 감독으로서 가능성을 보여준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똥파리'가 '감독 양익준'의 유일한 대표작이다. 관객은 '똥파리'를 능가하는 '양익준 감독 표' 영화를 기대하고 있다. 영화를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할 때다.
노규민 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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