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규민의 씨네락>>
노규민 텐아시아 영화팀장이 매주 영화 관련 이슈와 그 안에 숨겨진 1mm,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합니다. 알아두면 쓸모 있을 수도 있는, 영화 관련 여담을 들려드립니다.
"돈을 많이 들였는데 티 안 나는 영화가 있다. 사람들이 '회식비로 썼나?' 라고 말할 정도로 말이다. 보면 알겠지만 우리 영화는 돈을 들인 티가 팍팍 나는 영화다."
재난영화 '싱크홀'(김지훈 감독)로 돌아온 배우 차승원이 이렇게 말했다. 차승원이 자신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싱크홀' 제작진은 세트부터 CG까지, 리얼리티를 극대화 하기 위해 전력을 다 했다. 차승원의 말대로 '돈 좀 들였겠네' 싶다.
쇼박스에 따르면 '싱크홀'은 제작비 140억 원 정도를 들였다. 생생한 재난 상황을 구현해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기 위해 동네를 통째로 만들어 냈다. '화려한 휴가'부터 '타워'까지 김지훈 감독과 오랜 호흡을 맞춘 김태영 미술 감독이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세트 팀과 힘을 합쳐, 빌라와 각종 편의시설 등 총 20여 채의 건물을 지어 대규모 세트를 완성 했다.
무엇보다 싱크홀 속 재난 상황을 실감나게 그려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제작진은 지하 500m 지반을 담아내기 위해 대규모 암벽 세트를 제작했고, 건물이 무너지며 발생하는 흔들림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짐벌 세트 위에 허물어진 빌라 세트를 지었다. 여기에 장마로 물이 차오르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아쿠아 스튜디오에 빌라 옥상까지 포함된 수조 세트를 만들어 더욱 몰입도를 높였다. "영화의 시작점은 세트다. 세트의 완성도가 CG 퀄리티를 결정한다"는 김 감독의 말처럼, 이러한 세트를 기반으로 배우들의 연기부터 촬영, CG까지, 3박자가 들어 맞으면서 영화의 퀄리티가 높아졌다. 배우들도 "세트부터 분장까지 완벽해서 따로 연기를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저절로 몰입이 됐다"고 입모아 말했다.
이렇게 보면 재난영화로 분류되는 '해운대'(160억), 판도라'(155억), '백두산'(260억) 등과 비교했을 때 오히려 적은 돈을 들이고도, 수준 높은 작품을 완성한 것 같다. 여기까진 좋다. 그러나 '싱크홀'은 '해운대'나 '백두산'이 아닌 '엑시트'와 비교 대상이다. 생사가 걸린 심각한 상황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재난+코미디 장르이기 때문이다.
'엑시트'는 산악 동아리 출신 용남(조정석 분)과 그의 후배 의주(윤아 분)가 유독가스로 뒤덮여 혼란에 빠진 도심 속 한 건물에서 탈출하는 과정을 그린 재난 액션 영화로, 2019년 7월 31일에 개봉해 무려 942만 6131명을 동원했다. 제작비는 130억원을 들였다.
애초 '엑시트'는 개봉 전 재난 액션에 코미디가 섞였다고 예고 돼 B급 코미디물로 비춰져, 기대치가 낮았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달랐다. 재난물의 단골 공식인 주요 인물들의 일상> 재난> 극복 과정에서의 늘어지는 전개는 없었다. 주인공 남녀의 탈출기를 중점으로 두고,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현실적인 도구를 사용해 위기 상황을 극복해 나가는 기발하고 신선한 전개가 재미를 안겼다. 특히 이 과정에서 뜻대로 되지 않을 때의 상황을 억지스럽지 않게 코미디로 연결 시키면서, 가벼운 듯하면서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선사했다. 조정석, 윤아를 비롯해 박인환, 고두심, 김지영, 김강훈 등 세대를 불문, 조연들의 연기 향연과, 이 영화로 장편 데뷔한 이상근 감독의 기발한 각본과 연출이 모두 들어 맞았다.
가령 공포와 코미디를 조합해 혹평을 받은 공포물 '나만 보이니'처럼, 어울리지 않을 법한 장르의 조합은 어쩌면 무모한 도전이 될 수 있다. 재난과 코미디도, 섞이기 힘든 조합이다. 그러나 '엑시트'는 이를 영리하게 풀어나가 결국 흥행에 성공했다. '싱크홀'은 '엑시트'와 많이 닮았다. 도심에 유독가스가 퍼진 '엑시트'처럼, 빌라 한 동이 통째로 싱크홀 속으로 빠졌다는 전대미문의 재난 상황은 분명 신선한 소재다. 배우 김성균은 '싱크홀' 개봉 전 인터뷰에서 '엑시트'와의 차별점을 묻는 질문에 "'싱크홀'로 인한 재난을 다룬 영화는 없었다"라고 했다. 그러나 엑시트도 마찬가지다. 유독가스가 퍼진 재난물도 없었다.
또 '싱크홀'은 코미디에 일가견이 있는 차승원, 이광수, 연극무대부터 갈고 닦은 연기력으로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김성균, 그리고 청룡영화상 신인 여우상에 빛나는 김혜준까지, 주요 배우들의 면면도 '엑시트' 만큼 화려하다.
제작비도 엇비슷하다.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은 '엑시트'와 '싱크홀'이다. '싱크홀'이 흥행하는데 있어서 관건은 재난에 뿌려진 코미디다. '엑시트' 처럼 잘 버무려져 장르 자체의 맛이 살아야한다. '싱크홀'의 애초 손익분기점은 400만 정도다. 그러나 '싱크홀'은 '모가디슈'와 함께 한국상영관협회 지원책 대상작으로 선정돼 총 제작비 50% 회수가 보장 됐고, 손익분기점도 200만 정도로 낮춰졌다.
코로나19 창궐 이전, '엑시트'가 입소문을 타고 9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 했지만, 지금 '싱크홀'은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200만 손익분기점도 넘기지 못할 수 있다. 이는 코로나19의 영향도 있겠지만, 영화의 '질'에서 판가름 난다. '싱크홀'이 관객수는 배제하고, '엑시트'를 뛰어 넘을 재난+코미디물이 될 수 있을 지는 오로지 관객에 의해 결정 된다.
노규민 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노규민 텐아시아 영화팀장이 매주 영화 관련 이슈와 그 안에 숨겨진 1mm,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합니다. 알아두면 쓸모 있을 수도 있는, 영화 관련 여담을 들려드립니다.
"돈을 많이 들였는데 티 안 나는 영화가 있다. 사람들이 '회식비로 썼나?' 라고 말할 정도로 말이다. 보면 알겠지만 우리 영화는 돈을 들인 티가 팍팍 나는 영화다."
재난영화 '싱크홀'(김지훈 감독)로 돌아온 배우 차승원이 이렇게 말했다. 차승원이 자신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싱크홀' 제작진은 세트부터 CG까지, 리얼리티를 극대화 하기 위해 전력을 다 했다. 차승원의 말대로 '돈 좀 들였겠네' 싶다.
쇼박스에 따르면 '싱크홀'은 제작비 140억 원 정도를 들였다. 생생한 재난 상황을 구현해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기 위해 동네를 통째로 만들어 냈다. '화려한 휴가'부터 '타워'까지 김지훈 감독과 오랜 호흡을 맞춘 김태영 미술 감독이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세트 팀과 힘을 합쳐, 빌라와 각종 편의시설 등 총 20여 채의 건물을 지어 대규모 세트를 완성 했다.
무엇보다 싱크홀 속 재난 상황을 실감나게 그려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제작진은 지하 500m 지반을 담아내기 위해 대규모 암벽 세트를 제작했고, 건물이 무너지며 발생하는 흔들림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짐벌 세트 위에 허물어진 빌라 세트를 지었다. 여기에 장마로 물이 차오르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아쿠아 스튜디오에 빌라 옥상까지 포함된 수조 세트를 만들어 더욱 몰입도를 높였다. "영화의 시작점은 세트다. 세트의 완성도가 CG 퀄리티를 결정한다"는 김 감독의 말처럼, 이러한 세트를 기반으로 배우들의 연기부터 촬영, CG까지, 3박자가 들어 맞으면서 영화의 퀄리티가 높아졌다. 배우들도 "세트부터 분장까지 완벽해서 따로 연기를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저절로 몰입이 됐다"고 입모아 말했다.
이렇게 보면 재난영화로 분류되는 '해운대'(160억), 판도라'(155억), '백두산'(260억) 등과 비교했을 때 오히려 적은 돈을 들이고도, 수준 높은 작품을 완성한 것 같다. 여기까진 좋다. 그러나 '싱크홀'은 '해운대'나 '백두산'이 아닌 '엑시트'와 비교 대상이다. 생사가 걸린 심각한 상황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재난+코미디 장르이기 때문이다.
'엑시트'는 산악 동아리 출신 용남(조정석 분)과 그의 후배 의주(윤아 분)가 유독가스로 뒤덮여 혼란에 빠진 도심 속 한 건물에서 탈출하는 과정을 그린 재난 액션 영화로, 2019년 7월 31일에 개봉해 무려 942만 6131명을 동원했다. 제작비는 130억원을 들였다.
애초 '엑시트'는 개봉 전 재난 액션에 코미디가 섞였다고 예고 돼 B급 코미디물로 비춰져, 기대치가 낮았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달랐다. 재난물의 단골 공식인 주요 인물들의 일상> 재난> 극복 과정에서의 늘어지는 전개는 없었다. 주인공 남녀의 탈출기를 중점으로 두고,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현실적인 도구를 사용해 위기 상황을 극복해 나가는 기발하고 신선한 전개가 재미를 안겼다. 특히 이 과정에서 뜻대로 되지 않을 때의 상황을 억지스럽지 않게 코미디로 연결 시키면서, 가벼운 듯하면서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선사했다. 조정석, 윤아를 비롯해 박인환, 고두심, 김지영, 김강훈 등 세대를 불문, 조연들의 연기 향연과, 이 영화로 장편 데뷔한 이상근 감독의 기발한 각본과 연출이 모두 들어 맞았다.
가령 공포와 코미디를 조합해 혹평을 받은 공포물 '나만 보이니'처럼, 어울리지 않을 법한 장르의 조합은 어쩌면 무모한 도전이 될 수 있다. 재난과 코미디도, 섞이기 힘든 조합이다. 그러나 '엑시트'는 이를 영리하게 풀어나가 결국 흥행에 성공했다. '싱크홀'은 '엑시트'와 많이 닮았다. 도심에 유독가스가 퍼진 '엑시트'처럼, 빌라 한 동이 통째로 싱크홀 속으로 빠졌다는 전대미문의 재난 상황은 분명 신선한 소재다. 배우 김성균은 '싱크홀' 개봉 전 인터뷰에서 '엑시트'와의 차별점을 묻는 질문에 "'싱크홀'로 인한 재난을 다룬 영화는 없었다"라고 했다. 그러나 엑시트도 마찬가지다. 유독가스가 퍼진 재난물도 없었다.
또 '싱크홀'은 코미디에 일가견이 있는 차승원, 이광수, 연극무대부터 갈고 닦은 연기력으로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김성균, 그리고 청룡영화상 신인 여우상에 빛나는 김혜준까지, 주요 배우들의 면면도 '엑시트' 만큼 화려하다.
제작비도 엇비슷하다.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은 '엑시트'와 '싱크홀'이다. '싱크홀'이 흥행하는데 있어서 관건은 재난에 뿌려진 코미디다. '엑시트' 처럼 잘 버무려져 장르 자체의 맛이 살아야한다. '싱크홀'의 애초 손익분기점은 400만 정도다. 그러나 '싱크홀'은 '모가디슈'와 함께 한국상영관협회 지원책 대상작으로 선정돼 총 제작비 50% 회수가 보장 됐고, 손익분기점도 200만 정도로 낮춰졌다.
코로나19 창궐 이전, '엑시트'가 입소문을 타고 9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 했지만, 지금 '싱크홀'은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200만 손익분기점도 넘기지 못할 수 있다. 이는 코로나19의 영향도 있겠지만, 영화의 '질'에서 판가름 난다. '싱크홀'이 관객수는 배제하고, '엑시트'를 뛰어 넘을 재난+코미디물이 될 수 있을 지는 오로지 관객에 의해 결정 된다.
노규민 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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