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인터뷰 도굴 이제훈 너무 신나서 연기가 술술 풀렸어요

범죄오락 '도굴'서 천재 도굴꾼 役 이제훈
"능청스런 캐릭터 덕분에 말 많아져"
"사랑스런 캐릭터들, 후속편 나오길 기대"
"영화 빼면 나를 소개할 말 없을 것 같아"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는 제 모습을 떠올려 보면 그렇게 말을 많이 하거나 분위기를 주도하거나 이야기를 이끄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주로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맞장구치는 타입이었는데 이번 작품 통해서 많이 활발해지고 적극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배우 이제훈이 무거움과 진중함을 잠시 내려놓고 능청스러움이 넘치는 캐릭터로 유쾌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영화 '도굴'을 통해서다. '도굴'은 천재 도굴꾼 강동구가 전국의 전문가들과 함께 땅 속에 숨어있는 유물을 파헤치며 짜릿한 판을 벌이는 범죄오락 영화. 이제훈은 남다른 촉과 직감을 타고난 도굴꾼 강동구 역을 맡았다. 내내 깐족거리고 능글맞은 모습이 매력적인 캐릭터다. 이제훈 스스로도 처음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했다.

"제가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즐기고 있다고 느꼈어요. 이 '기분 좋음'을 현장에서 '풀어버리자', '놀자'라고 생각하고 임했어요. 관객들이 강동구가 흥미롭고 리드미컬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고 느끼길 바랐어요. 그래서 제 기분 상태를 계속 업하면서 연기했어요. 사실 억지로 그렇게 할 필요도 없었죠. 기분 좋은 흐름이었어요. 대사를 외워서 해야겠다고 할 필요도 없이 술술 풀렸어요. 촬영 현장에 가는 게 항상 기분 좋고, 오늘은 어떻게 놀아볼까 기대감을 갖고 갔어요."

이번 영화에서는 무엇보다 개성 넘치는 각각 캐릭터의 티카타카 케미가 돋보인다. 능글맞은 이제훈과 진지함과 코믹을 오가는 존스 박사 역의 조우진, '더티 섹시'로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는 임원희까지 '도굴팀' 호흡이 잘 어우러진다.

"선배님들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서 쉽게 친해질 수 있었어요. 서로 연기할 때 뭘 해도 선배님들이 하면 정말 재밌고 제가 표현하는 것도 잘 받아주셔서 신나게 할 수 있었죠. 영화 홍보 활동을 하면서도 정적이 흐르거나 썰렁한 적이 없어요. 정말 노는 것처럼 흘러가요. 이 작품이 끝나도 이 캐릭터들이 살아서 후속편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만큼 귀엽고 사랑스러워요."

이번 영화는 무겁고 심각하지 않아 팝콘무비로 제격. 이제훈은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이 영화로 즐거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비단 어려움에 처해있어요. 그래도 현명하게 잘 대처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죠. 극장을 자주 찾는 사람으로서 신작이 많이 나오지 않는 아쉬움은 있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수요는 있고, 그 무거운 발걸음을 좀 더 가볍게 할 수 있게끔 신작들이 계속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해요. '도굴'도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고요. 이후에 나오는 영화들도 많은 사람들이 극장에 찾아올 수 있게끔 계기를 마련해주길 바라요. 지금은 선의의 경쟁을 한다는 것 이상으로 함께 관객들을 불러 모으자는 사명감도 생기네요. 관객들로 꽉 찬 극장의 객석을 얼른 보고싶어요."

이제훈은 2010년 영화 '파수꾼'으로 대종상과 청룡영화상에서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파수꾼'은 저예산 독립영화로서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호평 받는 작품. 신인상을 수상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의 이제훈에게는 무엇보다 '사람'이 중요해졌다. 이제훈은 "영화를 찍으면서 인생을 배우고, 그 배움의 인생을 지속하게 된다"고 말했다.

"쉬지 않고 계속 나아가고 있구나 싶어요. 작품으로 인한 어떤 평가들에 안주하지 않고 나아가고 있다는 데 스스로 조금이나마 다독여 주고 싶어요. 뿌듯한 점과 아쉬운 점도 공존하죠. 그런데 10년간 하면서 제가 생각하게 된 건 앞으로 작품 선택을 하는 데 있어서 '사람들과의 소통'이 중요한 영향이라는 거예요. 분명 시나리오가 재밌고 좋아서도 선택하겠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같이 만드는 사람들이에요. 작품이 아쉽고 부족하더라도 발전적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들간의 소통이 있다면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어요. 영화는 각자 파트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만들어지는 작업이라 소통을 잘 할 수 있는 사람들과 계속해서 만들어가길 바라고 있어요."

이번 영화를 통해 천연덕스러운 캐릭터도 찰떡 같이 소화해낸 이제훈. 심각하고 무겁고 꼭 의미가 막중한 캐릭터가 아니라도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고 스스로 즐거운 캐릭터도 충분히 가치 있다는 걸 증명해낸 셈이다.

"이런 작품을 극장에서도 많이 보고 좋아하는데 막상 제가 선택하는 작품은 그다지 그렇지 않다는 게 스스로도 의문스러웠던 것 같아요. 거기에 덧붙여서 왜 나는 영화를 선택할 때 사랑 이야기를 이렇게 안 하지 싶기도 했고요. 보는 건 엄청 좋아하거든요. 보면서 눈물 흘리기도 하고 행복해하기도 해요. 그래서 앞으로 하고 싶다는 의지가 더 강해요. 20대 초반에는 첫사랑을 경험하는 '건축학개론'을 남겼는데 30대에는 사랑 이야기를 꼭 하고 싶어요. 이제 곧 앞자리 숫자가 바뀌니까요. 하하. 진한 멜로든 알콩달콩 로코든 빨리 만나고 싶어요."

지난해 영화 제작사 하드컷도 설립한 이제훈. 영화를 사랑하는 그에게 영화는 어떤 의미일까.

"그걸 빼고 저라는 사람을 소개한다면 거의 남는 게 없어요.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소재도 현저히 적어지고요. 재미 없는 사람일 수 있겠지만 저는 그런 인생을 살고 있고 그걸 좋아해요. 정말 재밌는 건 내가 그렇게 영화 이야기를 하고 영화를 많이 보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보지 못한 게 훨씬 많다는 거예요. 가끔 그게 놀라워요. 그 유명한 '반지의 제왕'도 안 봤고 '해리포터'도 1편만 봤어요. 손이 안 간다고 하면 다들 '미친 거 아니냐'고 해요. 하하. 이젠 그런 부분에도 조금씩 더 마음이 열려져 가는 것 같아요."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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