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7인조 그룹 잉크 출신 이만복
'보험 사기' 사건, 사업 실패 등 '파란만장'
생애 첫 솔로 앨범 발매
18년 만에 컴백
'보험 사기' 사건, 사업 실패 등 '파란만장'
생애 첫 솔로 앨범 발매
18년 만에 컴백
듀스, 룰라 등 90년대 그룹을 표방한 '싹쓰리'(유두래곤, 린다G, 비룡)가 가요계를 장악하고 있고, 양준일 등 탑골 가수들이 인기를 끄는 등 '레트로'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또 한 명의 '탑골 레전드'가 무려 18년 만에 공백을 깨고 팬들 앞에 설 채비를 하고 있다. 7인조 그룹 잉크로 데뷔해 '만복이'로 불리며 큰 사랑을 받았던 이만복을 지난 20일 텐아시아 인터뷰룸에서 만났다.
"등 튀기기 춤요? 물론 지금도 되죠."
40대 후반이 됐는데도 여전했다. 활동을 위해 20kg을 감량했다는 이만복은 20년 전 잉크로 활동했을 때처럼 탄탄하고 건강해 보였다. 그는 90년대 '이만복' 이름 석자를 알린 일명 '등 튀기기 춤'을 눈 앞에서 직접 시연해 보였다. 춤 좀 추는 아이돌 멤버들도 쉽지 않을 고난이도 동작을 주저없이 선보이며 예전 기량을 뽐냈다.
이만복은 "대중 앞에 설 날만 기다렸다. 못 할 것도 없고 두려울 것도 없다. 나를 보고 즐겁다면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 할 생각이다"라고 열정을 드러냈다. 그도 그럴 것이 공백기만 18년이다. 강산이 2번 변할 동안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이제야 용기를 내고 팬들 앞에 서려 하고 있다.
잉크는 1992년 데뷔한 아이돌 그룹이다. 소방차 출신 이상원을 비롯해 김원호, 안원철, 황체휴, 김근수, 이성규, 이만복까지 7인조로,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잼, 등 몇 안 되는 아이돌 그룹중 하나였다. 이때만해도 7명이라는 많은 인원으로 구성된 그룹이 드물었기에 더 주목 받았다. 1집 앨범 타이틀곡 '그래 이젠'은 지금까지 회자될 정도로 센세이션하다. 7명 멤버가 쉼 없이 브레이크 댄스를 선보이며 말 그대로 '4분 순삭'을 이끈다. 그 중 이만복은 단연 돋보였다. 그 유명한 '등 튀기기 춤'은 물론 해드스핀까지 보여주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피부색부터 달라 눈에 띄었다. 혼혈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이만복은 "지금도 영어를 잘 못한다"며 웃었다. 그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토종 한국인이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축구선수로 활약하다 졸업할 무렵 갑작스레 춤에 빠지게 됐단다. 이만복은 "흑인 피는 못 속인다. 춤 추는 게 좋아서 무작정 대회에 참가했는데 늘 1등을 독식했다. 그러다 그 유명한 문나이트에 가게 됐고, 당시 양현석, 이현도, 강원래 등과 함께 춤을 췄다"고 떠올렸다. 피부색은 달랐지만 초롱초롱 큰 눈과 뚜렷한 이목구비 등 남다른 비주얼에 '끼'까지 다분한 그를 찾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룹 잉크로 데뷔하기 전 유명 의류 브랜드, 식품 브랜드 광고 등을 찍으며 얼굴을 알렸다. "소방차 정원관 선배 눈에 띄어 잉크로 데뷔했습니다. 처음에는 '토니'라는 이름으로 시작했고, 외국인 멤버처럼 활동했죠. 그러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름이 뭐냐'는 질문에 '이만복'이라고 잘못 말했다가 들통났지 뭐예요. 그런데 그때부터 더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만복이'로 불리기 시작하면서 이만복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각종 예능을 섭렵했고,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그러나 이상원이 소방차로 돌아가고 멤버들이 하나둘씩 군에 입대하면서 잉크는 1997년 해체 수순을 밟았다.
무대에 대한 갈증이 컸다. 2002년 혼성그룹 믹스로 재기를 꿈꿨지만 빛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서서히 이만복은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다.
"하루에 여덟군데 씩 업소를 돌며 행사를 뛰었어요. 그러다 교통사고가 났는데, 거기서 잘못을 저질렀던 거죠."
2007년 이만복은 '보험사기'에 연루 돼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그는 오랜 재판 끝에 처벌까지 받았다. 그러는 사이 아내와도 이혼했다. 그는 "잘못을 인정한다. 죄값을 치렀고 이미 대중들께 용서를 구했다. 다시는 없을 일이다. 다시 한 번 죄송하다"라고 거듭 사과했다.
삶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지인과 선술집, 치킨집 등을 차려 생계를 위해 발버둥 쳤지만, 동업으로 인해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사업 자금으로 빌린 돈을 갚지 못하면서 또 한 번 소송에 휘말렸고, 법적 처분까지 받게 됐다.
"모든 건 변명의 여지없이 제 실수입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작하고 싶던 디제잉이나 작곡을 배웠어야 했는데, 괜히 다른 길을 선택해서 벌어진 일이죠." 이만복은 올해 초 데뷔 이후 처음으로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그는 "더 늦기 전에 내가 할 일을 하고 싶었다"고 컴백을 다짐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디제잉, 작곡 등 음악과 관련해 더 공부하고 싶었지만 금전적인 여유가 없었다. 고민하던 차에 도움이 손길을 내민 사람이 있었다. (주)마이더스파트너스를 이끄는 젊은 사업가 서석현 회장이다. 서 회장은 이만복의 오랜 팬이었다. 자신의 사비를 털어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이만복은 서 회장 덕에 생애 첫 솔로 앨범도 발매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마이더스 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이 됐다.
"타이틀곡은 '돈 나고 사람 났냐' 입니다. 돈 보다 사람이 먼저란 얘기죠. 살아오면서 돈 때문에 서러웠던 적이 참 많았어요. 매니저랑 소주 한 잔 하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직접 가사로 썼어요."
'돈 나고 사람 났냐'는 세미 트로트다. 이만복은 "내가 꺾기가 잘 안 된다. 트로트라기 보다 트로트풍 댄스곡인데 재미있게 들을 수 있다. 술 한 잔 하고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었다"며 웃었다.
이번 앨범에는 '돈 나고 사람 났냐' 이외에도 '정신차려 오뚝이', '난 이만복', '버스안에서' 등의 곡이 수록돼 있다. 특히 90년대 자자의 히트곡 '버스안에서'를 리메이크해 눈길을 끈다. 이 노래를 15살 중학생 딸과 함께 불렀다. 이만복은 "처음부터 시키려 한 건 아니다. 녹음실에 놀러왔길래 한 번 불러보라고 했는데 곧잘 하더라. 그래서 자켓 사진도 함께 찍게 됐다"며 "딸이 과거 Mnet '댄싱9'에도 나갔고, 이쪽 일에 관심이 있다. 하지만 어렸을 때 잘못하면 수렁에 빠질까봐 적극적으로 시키진 않고 있다. 자신도 그저 즐길 뿐, 푹 빠지진 않는다. 공부도 열심히 잘 하고 있다"고 했다. 이제 20살이 된 아들과, 15살 된 딸은 각별하다. 이만복은 "딸이 '아빠 연예인이었다며 왜 TV에 안 나오느냐'고 몇 번이나 물었다. 딸을 위해서라도 TV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아들과 딸에게 부끄러움 없는 아빠가 되고 싶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다보니 눈에 확 들어온다. 아빠가 문제를 일으키면 곧바로 피해가 간다. 두 아이 때문에라도 더 열심히 살고 싶다"고 애틋함을 드러냈다.
이만복은 무대만큼 예능 출연에도 남다른 욕망을 가지고 있다. 90년대 전성기 때도 예능에서 두각을 보였고, 친근한 이미지와 개그맨 못지 않은 입담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요즘 레트로가 유행 아닌가. 지금 톱스타가 된 유재석, 이정재, 정우성 등 많은 연예인들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차고 넘친다. '라디오스타' '비디오스타' 등 토크쇼에서 털어낼 썰이 무한대다"라고 자신했다.
또 이만복은 "내가 유재석, 이정재 훈련소 생활할 때 면회도 갔었다. 부대에서 '등 튀기기 춤'을 춰서 그 친구들이 휴가도 얻었다"며 "요즘 김종국 씨도 인기가 많지 않나. 터보 이름도 사실 내가 지어줬다"고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예전에는 하기 싫어서 도망 다녔는데 지금은 활동했던 때가 정말 그립습니다. 이제 정말 사고 칠 일 없을 겁니다. 속죄하고 다 털고 나왔으니 믿어주시길 바랍니다."
철저하게 관리한 몸도, 웃음을 유발하는 입담도 여전했다. 여전히 '등 튀기기 춤'을 출 수 있다는 사실 자체도 놀라웠다. 길었던 공백만큼 절실함이 느껴졌다 . 이만복은 "가족을 비롯해서 시청자, 방송 관계자들 모두가 매일 보고 싶어할 정도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만능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그리고 "(김)구라 형 연락 한다더니 왜 안 하나. '라디오 스타' 나가고 싶다"며 유쾌하게 웃었다.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
"등 튀기기 춤요? 물론 지금도 되죠."
40대 후반이 됐는데도 여전했다. 활동을 위해 20kg을 감량했다는 이만복은 20년 전 잉크로 활동했을 때처럼 탄탄하고 건강해 보였다. 그는 90년대 '이만복' 이름 석자를 알린 일명 '등 튀기기 춤'을 눈 앞에서 직접 시연해 보였다. 춤 좀 추는 아이돌 멤버들도 쉽지 않을 고난이도 동작을 주저없이 선보이며 예전 기량을 뽐냈다.
이만복은 "대중 앞에 설 날만 기다렸다. 못 할 것도 없고 두려울 것도 없다. 나를 보고 즐겁다면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 할 생각이다"라고 열정을 드러냈다. 그도 그럴 것이 공백기만 18년이다. 강산이 2번 변할 동안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이제야 용기를 내고 팬들 앞에 서려 하고 있다.
잉크는 1992년 데뷔한 아이돌 그룹이다. 소방차 출신 이상원을 비롯해 김원호, 안원철, 황체휴, 김근수, 이성규, 이만복까지 7인조로,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잼, 등 몇 안 되는 아이돌 그룹중 하나였다. 이때만해도 7명이라는 많은 인원으로 구성된 그룹이 드물었기에 더 주목 받았다. 1집 앨범 타이틀곡 '그래 이젠'은 지금까지 회자될 정도로 센세이션하다. 7명 멤버가 쉼 없이 브레이크 댄스를 선보이며 말 그대로 '4분 순삭'을 이끈다. 그 중 이만복은 단연 돋보였다. 그 유명한 '등 튀기기 춤'은 물론 해드스핀까지 보여주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피부색부터 달라 눈에 띄었다. 혼혈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이만복은 "지금도 영어를 잘 못한다"며 웃었다. 그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토종 한국인이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축구선수로 활약하다 졸업할 무렵 갑작스레 춤에 빠지게 됐단다. 이만복은 "흑인 피는 못 속인다. 춤 추는 게 좋아서 무작정 대회에 참가했는데 늘 1등을 독식했다. 그러다 그 유명한 문나이트에 가게 됐고, 당시 양현석, 이현도, 강원래 등과 함께 춤을 췄다"고 떠올렸다. 피부색은 달랐지만 초롱초롱 큰 눈과 뚜렷한 이목구비 등 남다른 비주얼에 '끼'까지 다분한 그를 찾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룹 잉크로 데뷔하기 전 유명 의류 브랜드, 식품 브랜드 광고 등을 찍으며 얼굴을 알렸다. "소방차 정원관 선배 눈에 띄어 잉크로 데뷔했습니다. 처음에는 '토니'라는 이름으로 시작했고, 외국인 멤버처럼 활동했죠. 그러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름이 뭐냐'는 질문에 '이만복'이라고 잘못 말했다가 들통났지 뭐예요. 그런데 그때부터 더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만복이'로 불리기 시작하면서 이만복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각종 예능을 섭렵했고,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그러나 이상원이 소방차로 돌아가고 멤버들이 하나둘씩 군에 입대하면서 잉크는 1997년 해체 수순을 밟았다.
무대에 대한 갈증이 컸다. 2002년 혼성그룹 믹스로 재기를 꿈꿨지만 빛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서서히 이만복은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다.
"하루에 여덟군데 씩 업소를 돌며 행사를 뛰었어요. 그러다 교통사고가 났는데, 거기서 잘못을 저질렀던 거죠."
2007년 이만복은 '보험사기'에 연루 돼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그는 오랜 재판 끝에 처벌까지 받았다. 그러는 사이 아내와도 이혼했다. 그는 "잘못을 인정한다. 죄값을 치렀고 이미 대중들께 용서를 구했다. 다시는 없을 일이다. 다시 한 번 죄송하다"라고 거듭 사과했다.
삶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지인과 선술집, 치킨집 등을 차려 생계를 위해 발버둥 쳤지만, 동업으로 인해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사업 자금으로 빌린 돈을 갚지 못하면서 또 한 번 소송에 휘말렸고, 법적 처분까지 받게 됐다.
"모든 건 변명의 여지없이 제 실수입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작하고 싶던 디제잉이나 작곡을 배웠어야 했는데, 괜히 다른 길을 선택해서 벌어진 일이죠." 이만복은 올해 초 데뷔 이후 처음으로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그는 "더 늦기 전에 내가 할 일을 하고 싶었다"고 컴백을 다짐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디제잉, 작곡 등 음악과 관련해 더 공부하고 싶었지만 금전적인 여유가 없었다. 고민하던 차에 도움이 손길을 내민 사람이 있었다. (주)마이더스파트너스를 이끄는 젊은 사업가 서석현 회장이다. 서 회장은 이만복의 오랜 팬이었다. 자신의 사비를 털어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이만복은 서 회장 덕에 생애 첫 솔로 앨범도 발매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마이더스 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이 됐다.
"타이틀곡은 '돈 나고 사람 났냐' 입니다. 돈 보다 사람이 먼저란 얘기죠. 살아오면서 돈 때문에 서러웠던 적이 참 많았어요. 매니저랑 소주 한 잔 하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직접 가사로 썼어요."
'돈 나고 사람 났냐'는 세미 트로트다. 이만복은 "내가 꺾기가 잘 안 된다. 트로트라기 보다 트로트풍 댄스곡인데 재미있게 들을 수 있다. 술 한 잔 하고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었다"며 웃었다.
이번 앨범에는 '돈 나고 사람 났냐' 이외에도 '정신차려 오뚝이', '난 이만복', '버스안에서' 등의 곡이 수록돼 있다. 특히 90년대 자자의 히트곡 '버스안에서'를 리메이크해 눈길을 끈다. 이 노래를 15살 중학생 딸과 함께 불렀다. 이만복은 "처음부터 시키려 한 건 아니다. 녹음실에 놀러왔길래 한 번 불러보라고 했는데 곧잘 하더라. 그래서 자켓 사진도 함께 찍게 됐다"며 "딸이 과거 Mnet '댄싱9'에도 나갔고, 이쪽 일에 관심이 있다. 하지만 어렸을 때 잘못하면 수렁에 빠질까봐 적극적으로 시키진 않고 있다. 자신도 그저 즐길 뿐, 푹 빠지진 않는다. 공부도 열심히 잘 하고 있다"고 했다. 이제 20살이 된 아들과, 15살 된 딸은 각별하다. 이만복은 "딸이 '아빠 연예인이었다며 왜 TV에 안 나오느냐'고 몇 번이나 물었다. 딸을 위해서라도 TV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아들과 딸에게 부끄러움 없는 아빠가 되고 싶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다보니 눈에 확 들어온다. 아빠가 문제를 일으키면 곧바로 피해가 간다. 두 아이 때문에라도 더 열심히 살고 싶다"고 애틋함을 드러냈다.
이만복은 무대만큼 예능 출연에도 남다른 욕망을 가지고 있다. 90년대 전성기 때도 예능에서 두각을 보였고, 친근한 이미지와 개그맨 못지 않은 입담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요즘 레트로가 유행 아닌가. 지금 톱스타가 된 유재석, 이정재, 정우성 등 많은 연예인들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차고 넘친다. '라디오스타' '비디오스타' 등 토크쇼에서 털어낼 썰이 무한대다"라고 자신했다.
또 이만복은 "내가 유재석, 이정재 훈련소 생활할 때 면회도 갔었다. 부대에서 '등 튀기기 춤'을 춰서 그 친구들이 휴가도 얻었다"며 "요즘 김종국 씨도 인기가 많지 않나. 터보 이름도 사실 내가 지어줬다"고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예전에는 하기 싫어서 도망 다녔는데 지금은 활동했던 때가 정말 그립습니다. 이제 정말 사고 칠 일 없을 겁니다. 속죄하고 다 털고 나왔으니 믿어주시길 바랍니다."
철저하게 관리한 몸도, 웃음을 유발하는 입담도 여전했다. 여전히 '등 튀기기 춤'을 출 수 있다는 사실 자체도 놀라웠다. 길었던 공백만큼 절실함이 느껴졌다 . 이만복은 "가족을 비롯해서 시청자, 방송 관계자들 모두가 매일 보고 싶어할 정도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만능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그리고 "(김)구라 형 연락 한다더니 왜 안 하나. '라디오 스타' 나가고 싶다"며 유쾌하게 웃었다.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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