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온라인 포털사이트에 장문의 호소문 게시
"딸 버렸던 모친이 나타나 재산 요구하는 것 부당해"
자식 버린 부모의 상속권 박탈하는 '구하라 법' 청원
"딸 버렸던 모친이 나타나 재산 요구하는 것 부당해"
자식 버린 부모의 상속권 박탈하는 '구하라 법' 청원
고(故) 구하라의 오빠 구호인 씨가 친모와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는 이유를 직접 온라인 상에 밝히며 일명 '구하라 법' 청원에 힘을 실어달라고 호소했다. 또한 구 씨는 구하라가 과거 극단적인 시도를 몇 번이나 했다며 동생을 향한 절절한 심경을 털어놨다.
구호인 씨는 2일 오후 포털사이트에 두 남매의 안타까운 사연을 직접 적어 올렸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는 "친모는 이미 떠나 버렸고 아버지는 일 때문에 못 오시다 보니 졸업식 때 사진 한 장 같이 찍지 못했다"며 "엄마가 있는 척 해봤지만 그럴수록 어머니가 차지하고 있는 빈자리만 더 커졌다"고 밝혔다.
구 씨는 친모의 부재로 두 남매는 어린 시절부터 생계를 위해 일했다. 구 씨는 학교 근처 주유소 숙식하면서 학교를 다녔고, 생계를 위해 마트, PC방, 홀서빙 등 각종 알바를 했다. 구하라 역시 피팅 모델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지만 스타가 되겠다는 꿈을 잃지 않고 수십 번의 오디션 끝에 카라에 들어가게 됐다고 밝혔다.
모친이 없었지만 구호인 씨와 구하라는 서로 기대어 가깝게 지냈다. 구 씨는 "성인이 되어서도 엄마가 많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또 한편 그리웠다"며 "동생이랑 둘이서 울기도 하고 많은 얘기도 하면서 그렇게 서로 의지하면서 지냈다"고 전했다.
또한 구 씨는 구하라가 과거 극단적인 시도를 몇 번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모든 일들이 뉴스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저는 일하다가도 서울로 올라와서 동생을 돌봤다"며 "기사화 되지 않도록 보안이 철저한 병원을 찾아 동생을 옮기고, 또 옆에서 종일 지켜보면서 안정이 되면 퇴원을 시켰다"고 전했다.
하지만 구하라가 걱정됐던 구 씨는 주말마다 동생을 살피며 주의를 기울였다고 밝혔다. 정신적으로 불안한 시기였다. 그는 "전화를 하면 동생은 ‘오빠 이제 괜찮아 걱정마’라고 이야기를 했다"며 "한 번 그런 일이 있고 나니 안심이 되지 않아서 토요일에는 서울에 와서 동생이랑 같이 놀아주고 일요일에 내려오기를 반복했다"고 썼다.
당시 마음의 병을 앓던 동생을 위해 구 씨는 연락이 끊긴 친모를 수소문해서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그는 "동생이 여러 번 심리 상담을 하고 치료를 해도 잘 낫지가 않아서 의사선생님 권고에 따라 친모를 찾은 적이 있다"며 "그런데 오히려 안 만나는 것이 더 좋을 뻔 했다.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허망했다"고 밝혔다.
이어 구호인 씨는 두 남매를 방치했던 친모가 동생의 유산을 노리고 있다며 도움을 호소했다. 구하라의 친모는 이미 2006년 친부와 이혼하고 친권까지 포기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20여 년 뒤, 구하라의 장례식장에 찾아온 친모는 법과 변호사를 대동하고 딸 구하라가 남긴 유산의 절반이 어머니인 자신의 몫이라고 주장했다.
구호인 씨는 "우리에게 사랑을 준적도 없고 이렇게 힘든 시기를 겪는 동안 우리를 버렸던 분이 동생의 재산을 절반이나 가지고 가겠다면서 갑자기 장례식장에 나타났다"며 "저희를 끝으로 이러한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청원이라는 것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앞서 구호인 씨는 지난달 3일 자신의 친모 A씨를 상대로 상속재산분할심판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고 구하라의 사망 이후 A씨는 상속 순위에 따라 직계 존속이 유산의 50%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구 씨가 이를 반대하고 소송을 낸 것이다. 또한 ‘자식을 버린 부모의 상속권을 박탈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꾸기 위해 지난 3월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일명 ‘구하라 법’ 청원을 했다. 구 씨는 "앞으로 양육의무를 버린 부모들이 갑자기 나타나 상속재산을 챙겨가겠다고 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마지막으로 구 씨는 "법의 이름이 동생의 이름을 딴 구하라 법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동생이 가는 길에 남겨 놓은 마지막 과제라고 생각하고, 동생으로 인해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오빠로서 남기고 싶다"며 글을 맺었다.
현재 해당 청원은 국회동의청원 사이트에서 진행 중이다. 오는 17일까지 30일간 국민 10만 명의 동의를 언어야 해당 입법 청원이 국회에 정식으로 접수돼 심사 대상이 된다.
#다음은 구호인 씨 글 전문 안녕하세요. 저는 故구하라 친 오빠 구호인이라고 합니다.
코로나-19에, n번방 사건에 많이 심난하실 것 같습니다. 어제 실화탐사대 보시고격려해 주시는 분들이 많으셔서 평소 자주 즐겨봤던 판을 통해 간단히 심경을 적어봅니다.
물론 제 이야기가 너무 자주 나오는 것은 아니냐고 하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너그럽게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희 남매는 친모에게 버림 당하고 힘든 과정을 거치며 커왔습니다
현재 성인이 되어 결혼도 하고 아이까지 갖게 되면서 느낀 점은 가족 환경이 정말 중요하다는 겁니다. 초등학교 졸업식, 중학교 입학식과 졸업식때 다른 친구들은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친모는 이미 떠나 버렸고 아버지는 일 때문에 못 오시다 보니 사진 한 장 같이 찍지 못하였습니다.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 혹시나 놀림당할까, 혹시나 따돌림 당할까 싶어서 어렸을 때부터 존재하지 않던 "엄마"가 있는 척 해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어머니가 차지하고 있는 빈 자리만 더 커졌습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라는 존재에게 앙탈도 부리고 장난감이라도 사 달라고 떼도 부리고 싶었지만, 우리 남매에게 그런 기회는 없었습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저는 학교 근처 주유소 숙식하면서 학교를 다녔고, 생계를 위하여 마트, PC방, 홀서빙 등 각종 알바를 같이 해야했습니다. 동생은 피팅 모델 알바를 하면서 그래도 스타가 되겠다는 꿈을 잃지 않고 서울까지 가서 오디션을 봤고, 그렇게 수십 번의 오디션 끝에 카라에 들어가 아이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이름을 알렸고, 다른 나라에까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엄마가 많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또 한편 그리웠습니다. 만약 우리가 사랑 받으면서 자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동생이랑 둘이서 울기도 하고 많은 얘기도 하면서 그렇게 서로 의지하면서 지냈습니다.
사실 동생이 극단적인 시도를 한 것은 몇 번 더 있었습니다. 모든 일들이 뉴스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저는 일하다가도 팽개치고 서울로 올라와서 동생을 돌봤습니다. 기사화 되지 않도록 소속사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보안이 철저한 병원을 찾아 동생을 옮기고, 또 옆에서 종일 지켜보면서 안정이 되면 퇴원을 시켰습니다. 그리도 동생 집에서 며칠간 위로를 하고 일터로 돌아가서도 동생이 항상 평안한 마음을 가지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래도 동생이 너무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전화를 하면, 그럴 때마다 동생은 "오빠 이제 괜찮아 걱정마" 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한 번 그런 일이 있고 나니 안심이 되지 않아서 토요일에는 서울에 와서 동생이랑 같이 놀아주고 일요일에 내려오기를 반복했습니다. 어떨 때에는 출장 숙소가 바로 옆에 있는데에도 동생이 걱정되어 동생 집에서 출퇴근 하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옆을 지켜줬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가을에 설리의 일이 생겼고, 그 소식을 듣고 나니 동생을 더욱 잘 돌봐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더 자주 연락하고, 자주 보려고 노력 했는데, 바로 그때 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바람에 저는 소식을 듣고 정말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하라는 언제나 사랑이 그리웠던 아이였습니다. 지인들,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마음 한곳에서는 채워지지 않는 곳이 있었습니다. 좋은 남자를 만나게 되면 좋아질까 싶어서 소개도 해주고 응원도 했지만 좋은 인연이 이어지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최씨 사건이 터지게 되었고, 저는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그때 동생은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신이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괜히 건들다가 사건만 커진다고 ...’
만약 엄마의 사랑을 받고 자란 동생이었더라면, 그래도 이런 일이 생겼을까? 동생을 이별하고 이런 생각들이 계속 들어서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동생을 그렇게 보내고 저에게 아이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만약 하라가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조카가 생겼다는 소식을 조금이라도 빨리 알게 되었다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나 속상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동생이 여러 번 심리 상담을 하고 치료를 해도 잘 낫지가 않아서 의사선생님 권고에 따라 친모를 만나면 혹시나 도움이 될까 싶어서 수소문 끝에 친모를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안 만나는 것이 더 좋을 뻔 했습니다. 친모를 만나면 그 동안의 마음의 상처가 조금이라도 아물 줄 알았는데,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허망했습니다.
그런 친모가 동생의 유산을 노리고 있습니다.
너무 분합니다. 친권 양육권을 포기해도 상속권과는 별개라고 합니다.
장례식장에서 친모는 자신이 상주복을 입겠다고 하여 절대 안 된다고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저희를 버리고 떠났던 친모가 갑자기 상주인 것처럼, 하라 엄마라면서 나서는 것 자체가 너무나 싫었고 소름이 끼쳤습니다. 한번은 빈소에서 친모와 이야기를 하는데, 휴대폰 사이로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무엇인가 싶어 혹시 대화를 녹음하고 있는지 물어보니 친모가 그렇다고 답하였습니다. 당시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그 자리에서 녹음파일을 삭제하고, 친모를 쫒아냈습니다. 그러자 친모는 저를 손가락질 하면서 "구호인 너 후회할 짓 하지마" 하고 떠났습니다. 뒤늦게 들었지만 자기 딸 장례식장에서 연예인들에게 함께 사진찍자고 하는 분이 안타깝게도 저희 친어머니 입니다.
발인을 마치고 이틀 뒤에는 부동산 거래와 관련된 일도 있었습니다. 동생이 살아 있을 때 팔았던 부동산이 있었고, 매수인은 잔금을 치루고 이사를 오셔야 하는데 동생이 사망신고가 되는 바람에 이도 저도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부동산 중개인께서 친모 연락처를 묻길래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한 후 전화를 했는데 받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동산 중개인에게 친모 연락처를 드려 중개인이 통화가 되었는데 친모는 변호사 명함을 보내 놓고는 모든 것을 그 변호사에게 위임하였으니 그 쪽으로 연락하라고 답변을 했다고 하였습니다. 이후 잔금을 치르기 위하여 매수인과 함께 한 자리에 그 변호사 두 분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 일단은 5:5로 받고 나중에 정리하자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친모 쪽에서는 그냥 제가 가만히 있으면 그대로 동생 재산 의 절반을 가져가겠다는 생각인 것 같아서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도대체 우리에게 사랑을 준 적도 없고 이렇게 힘든 시기를 겪는 동안 우리를 버렸던 분이 우리에게, 도대체, 왜 이렇게 하는지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동생이 이렇게 되었는데도 동생의 재산을 절반이나 가지고 가겠다면서 갑자기 장례식장에 나타나 또 다시 상처를 주는 것만 같아서 너무나 분하고 억울했습니다.
제가 법을 잘 모르지만 법이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안함때에도 세월호때에도 이런 일이 계속 있었지만, 왜 오랜 시간이 지나도 법은 바뀌지 않고 저와 동생에게 생긴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답답하였습니다.
안타까운 사연이 나올 때에만 잠깐 이슈만 되고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가게 된다면 저희와 같은 경우는 계속 발생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를 끝으로 이러한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청원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매체의 인터뷰와 방송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친모는 저에게도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이기에 친모를 상대로 이렇게 하는 마음이 너무나 무겁습니다. 언론에 인터뷰를 할 때면 제가 그렇게 지우고 싶었던 과거의 일들이 하나 둘씩 떠올라 악몽을 꾸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간혹 지루하다, 혹시 돈을 독차지하려고 이렇게 하는 것 아니냐는 악플을 볼 때면 가슴이 미어지는 듯 합니다.
저도 법이 개정되거나, 새로운 법이 만들어지더라도 저희 사건에 적용되지는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비록 저희에게는 적용이 되지 않더라도 저희로 인하여 앞으로 양육의무를 버린 부모들이 갑자기 나타나 상속재산을 챙겨가겠다고 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이 법의 이름이 동생의 이름을 딴 구하라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동생이 가는 길 남겨 놓은 마지막 과제라고 생각하고, 동생으로 인해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오빠로서 남기고 싶습니다.
국회청원 링크 입니다. 본인인증을 거쳐야 하지만 한 분 한 분의 동의가 앞으로 저희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막아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국회에서 구하라법이 꼭 통과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어서 빨리 코로나가 진정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긴글..관심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명상 기자 terry@tenasia.co.kr
구호인 씨는 2일 오후 포털사이트에 두 남매의 안타까운 사연을 직접 적어 올렸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는 "친모는 이미 떠나 버렸고 아버지는 일 때문에 못 오시다 보니 졸업식 때 사진 한 장 같이 찍지 못했다"며 "엄마가 있는 척 해봤지만 그럴수록 어머니가 차지하고 있는 빈자리만 더 커졌다"고 밝혔다.
구 씨는 친모의 부재로 두 남매는 어린 시절부터 생계를 위해 일했다. 구 씨는 학교 근처 주유소 숙식하면서 학교를 다녔고, 생계를 위해 마트, PC방, 홀서빙 등 각종 알바를 했다. 구하라 역시 피팅 모델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지만 스타가 되겠다는 꿈을 잃지 않고 수십 번의 오디션 끝에 카라에 들어가게 됐다고 밝혔다.
모친이 없었지만 구호인 씨와 구하라는 서로 기대어 가깝게 지냈다. 구 씨는 "성인이 되어서도 엄마가 많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또 한편 그리웠다"며 "동생이랑 둘이서 울기도 하고 많은 얘기도 하면서 그렇게 서로 의지하면서 지냈다"고 전했다.
또한 구 씨는 구하라가 과거 극단적인 시도를 몇 번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모든 일들이 뉴스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저는 일하다가도 서울로 올라와서 동생을 돌봤다"며 "기사화 되지 않도록 보안이 철저한 병원을 찾아 동생을 옮기고, 또 옆에서 종일 지켜보면서 안정이 되면 퇴원을 시켰다"고 전했다.
하지만 구하라가 걱정됐던 구 씨는 주말마다 동생을 살피며 주의를 기울였다고 밝혔다. 정신적으로 불안한 시기였다. 그는 "전화를 하면 동생은 ‘오빠 이제 괜찮아 걱정마’라고 이야기를 했다"며 "한 번 그런 일이 있고 나니 안심이 되지 않아서 토요일에는 서울에 와서 동생이랑 같이 놀아주고 일요일에 내려오기를 반복했다"고 썼다.
당시 마음의 병을 앓던 동생을 위해 구 씨는 연락이 끊긴 친모를 수소문해서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그는 "동생이 여러 번 심리 상담을 하고 치료를 해도 잘 낫지가 않아서 의사선생님 권고에 따라 친모를 찾은 적이 있다"며 "그런데 오히려 안 만나는 것이 더 좋을 뻔 했다.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허망했다"고 밝혔다.
이어 구호인 씨는 두 남매를 방치했던 친모가 동생의 유산을 노리고 있다며 도움을 호소했다. 구하라의 친모는 이미 2006년 친부와 이혼하고 친권까지 포기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20여 년 뒤, 구하라의 장례식장에 찾아온 친모는 법과 변호사를 대동하고 딸 구하라가 남긴 유산의 절반이 어머니인 자신의 몫이라고 주장했다.
구호인 씨는 "우리에게 사랑을 준적도 없고 이렇게 힘든 시기를 겪는 동안 우리를 버렸던 분이 동생의 재산을 절반이나 가지고 가겠다면서 갑자기 장례식장에 나타났다"며 "저희를 끝으로 이러한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청원이라는 것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앞서 구호인 씨는 지난달 3일 자신의 친모 A씨를 상대로 상속재산분할심판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고 구하라의 사망 이후 A씨는 상속 순위에 따라 직계 존속이 유산의 50%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구 씨가 이를 반대하고 소송을 낸 것이다. 또한 ‘자식을 버린 부모의 상속권을 박탈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꾸기 위해 지난 3월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일명 ‘구하라 법’ 청원을 했다. 구 씨는 "앞으로 양육의무를 버린 부모들이 갑자기 나타나 상속재산을 챙겨가겠다고 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마지막으로 구 씨는 "법의 이름이 동생의 이름을 딴 구하라 법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동생이 가는 길에 남겨 놓은 마지막 과제라고 생각하고, 동생으로 인해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오빠로서 남기고 싶다"며 글을 맺었다.
현재 해당 청원은 국회동의청원 사이트에서 진행 중이다. 오는 17일까지 30일간 국민 10만 명의 동의를 언어야 해당 입법 청원이 국회에 정식으로 접수돼 심사 대상이 된다.
#다음은 구호인 씨 글 전문 안녕하세요. 저는 故구하라 친 오빠 구호인이라고 합니다.
코로나-19에, n번방 사건에 많이 심난하실 것 같습니다. 어제 실화탐사대 보시고격려해 주시는 분들이 많으셔서 평소 자주 즐겨봤던 판을 통해 간단히 심경을 적어봅니다.
물론 제 이야기가 너무 자주 나오는 것은 아니냐고 하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너그럽게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희 남매는 친모에게 버림 당하고 힘든 과정을 거치며 커왔습니다
현재 성인이 되어 결혼도 하고 아이까지 갖게 되면서 느낀 점은 가족 환경이 정말 중요하다는 겁니다. 초등학교 졸업식, 중학교 입학식과 졸업식때 다른 친구들은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친모는 이미 떠나 버렸고 아버지는 일 때문에 못 오시다 보니 사진 한 장 같이 찍지 못하였습니다.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 혹시나 놀림당할까, 혹시나 따돌림 당할까 싶어서 어렸을 때부터 존재하지 않던 "엄마"가 있는 척 해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어머니가 차지하고 있는 빈 자리만 더 커졌습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라는 존재에게 앙탈도 부리고 장난감이라도 사 달라고 떼도 부리고 싶었지만, 우리 남매에게 그런 기회는 없었습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저는 학교 근처 주유소 숙식하면서 학교를 다녔고, 생계를 위하여 마트, PC방, 홀서빙 등 각종 알바를 같이 해야했습니다. 동생은 피팅 모델 알바를 하면서 그래도 스타가 되겠다는 꿈을 잃지 않고 서울까지 가서 오디션을 봤고, 그렇게 수십 번의 오디션 끝에 카라에 들어가 아이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이름을 알렸고, 다른 나라에까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엄마가 많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또 한편 그리웠습니다. 만약 우리가 사랑 받으면서 자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동생이랑 둘이서 울기도 하고 많은 얘기도 하면서 그렇게 서로 의지하면서 지냈습니다.
사실 동생이 극단적인 시도를 한 것은 몇 번 더 있었습니다. 모든 일들이 뉴스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저는 일하다가도 팽개치고 서울로 올라와서 동생을 돌봤습니다. 기사화 되지 않도록 소속사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보안이 철저한 병원을 찾아 동생을 옮기고, 또 옆에서 종일 지켜보면서 안정이 되면 퇴원을 시켰습니다. 그리도 동생 집에서 며칠간 위로를 하고 일터로 돌아가서도 동생이 항상 평안한 마음을 가지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래도 동생이 너무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전화를 하면, 그럴 때마다 동생은 "오빠 이제 괜찮아 걱정마" 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한 번 그런 일이 있고 나니 안심이 되지 않아서 토요일에는 서울에 와서 동생이랑 같이 놀아주고 일요일에 내려오기를 반복했습니다. 어떨 때에는 출장 숙소가 바로 옆에 있는데에도 동생이 걱정되어 동생 집에서 출퇴근 하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옆을 지켜줬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가을에 설리의 일이 생겼고, 그 소식을 듣고 나니 동생을 더욱 잘 돌봐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더 자주 연락하고, 자주 보려고 노력 했는데, 바로 그때 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바람에 저는 소식을 듣고 정말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하라는 언제나 사랑이 그리웠던 아이였습니다. 지인들,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마음 한곳에서는 채워지지 않는 곳이 있었습니다. 좋은 남자를 만나게 되면 좋아질까 싶어서 소개도 해주고 응원도 했지만 좋은 인연이 이어지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최씨 사건이 터지게 되었고, 저는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그때 동생은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신이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괜히 건들다가 사건만 커진다고 ...’
만약 엄마의 사랑을 받고 자란 동생이었더라면, 그래도 이런 일이 생겼을까? 동생을 이별하고 이런 생각들이 계속 들어서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동생을 그렇게 보내고 저에게 아이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만약 하라가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조카가 생겼다는 소식을 조금이라도 빨리 알게 되었다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나 속상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동생이 여러 번 심리 상담을 하고 치료를 해도 잘 낫지가 않아서 의사선생님 권고에 따라 친모를 만나면 혹시나 도움이 될까 싶어서 수소문 끝에 친모를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안 만나는 것이 더 좋을 뻔 했습니다. 친모를 만나면 그 동안의 마음의 상처가 조금이라도 아물 줄 알았는데,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허망했습니다.
그런 친모가 동생의 유산을 노리고 있습니다.
너무 분합니다. 친권 양육권을 포기해도 상속권과는 별개라고 합니다.
장례식장에서 친모는 자신이 상주복을 입겠다고 하여 절대 안 된다고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저희를 버리고 떠났던 친모가 갑자기 상주인 것처럼, 하라 엄마라면서 나서는 것 자체가 너무나 싫었고 소름이 끼쳤습니다. 한번은 빈소에서 친모와 이야기를 하는데, 휴대폰 사이로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무엇인가 싶어 혹시 대화를 녹음하고 있는지 물어보니 친모가 그렇다고 답하였습니다. 당시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그 자리에서 녹음파일을 삭제하고, 친모를 쫒아냈습니다. 그러자 친모는 저를 손가락질 하면서 "구호인 너 후회할 짓 하지마" 하고 떠났습니다. 뒤늦게 들었지만 자기 딸 장례식장에서 연예인들에게 함께 사진찍자고 하는 분이 안타깝게도 저희 친어머니 입니다.
발인을 마치고 이틀 뒤에는 부동산 거래와 관련된 일도 있었습니다. 동생이 살아 있을 때 팔았던 부동산이 있었고, 매수인은 잔금을 치루고 이사를 오셔야 하는데 동생이 사망신고가 되는 바람에 이도 저도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부동산 중개인께서 친모 연락처를 묻길래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한 후 전화를 했는데 받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동산 중개인에게 친모 연락처를 드려 중개인이 통화가 되었는데 친모는 변호사 명함을 보내 놓고는 모든 것을 그 변호사에게 위임하였으니 그 쪽으로 연락하라고 답변을 했다고 하였습니다. 이후 잔금을 치르기 위하여 매수인과 함께 한 자리에 그 변호사 두 분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 일단은 5:5로 받고 나중에 정리하자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친모 쪽에서는 그냥 제가 가만히 있으면 그대로 동생 재산 의 절반을 가져가겠다는 생각인 것 같아서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도대체 우리에게 사랑을 준 적도 없고 이렇게 힘든 시기를 겪는 동안 우리를 버렸던 분이 우리에게, 도대체, 왜 이렇게 하는지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동생이 이렇게 되었는데도 동생의 재산을 절반이나 가지고 가겠다면서 갑자기 장례식장에 나타나 또 다시 상처를 주는 것만 같아서 너무나 분하고 억울했습니다.
제가 법을 잘 모르지만 법이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안함때에도 세월호때에도 이런 일이 계속 있었지만, 왜 오랜 시간이 지나도 법은 바뀌지 않고 저와 동생에게 생긴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답답하였습니다.
안타까운 사연이 나올 때에만 잠깐 이슈만 되고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가게 된다면 저희와 같은 경우는 계속 발생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를 끝으로 이러한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청원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매체의 인터뷰와 방송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친모는 저에게도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이기에 친모를 상대로 이렇게 하는 마음이 너무나 무겁습니다. 언론에 인터뷰를 할 때면 제가 그렇게 지우고 싶었던 과거의 일들이 하나 둘씩 떠올라 악몽을 꾸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간혹 지루하다, 혹시 돈을 독차지하려고 이렇게 하는 것 아니냐는 악플을 볼 때면 가슴이 미어지는 듯 합니다.
저도 법이 개정되거나, 새로운 법이 만들어지더라도 저희 사건에 적용되지는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비록 저희에게는 적용이 되지 않더라도 저희로 인하여 앞으로 양육의무를 버린 부모들이 갑자기 나타나 상속재산을 챙겨가겠다고 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이 법의 이름이 동생의 이름을 딴 구하라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동생이 가는 길 남겨 놓은 마지막 과제라고 생각하고, 동생으로 인해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오빠로서 남기고 싶습니다.
국회청원 링크 입니다. 본인인증을 거쳐야 하지만 한 분 한 분의 동의가 앞으로 저희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막아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국회에서 구하라법이 꼭 통과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어서 빨리 코로나가 진정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긴글..관심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명상 기자 terry@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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