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100퍼센트] 우리는 왜 90년대를 그리워할까](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1110813044762116_1.jpg)
기후가 바뀔 만큼 시간이 흐르는 동안 1990년대의 소녀들이 ‘오빠’라 불렀던 그들의 인생은 각자의 길을 걸었다. 젝스키스의 은지원은 토크쇼에서 한 인턴기자가 자신을 ‘개그맨’이라고 했다며 울컥했다. NRG의 노유민은 행복한 표정으로 둘째 아이 사진을 공개했고, 같은 그룹의 이성진은 사기 사건으로 재판 중이다. Mnet 에서 슈퍼주니어의 신동은 현진영의 1990년대를 연기하고, ‘까만 콩’ 이본이 MC로 돌아온 SBS E! TV 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주노, 구피, 쿨 같은 그룹의 컴백을 시도한다. 이 한국 댄스 음악의 가장 뜨거웠던 순간에 대한 헌정이라면, 은 그들의 현재다. 한 시대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90년대를 소환하는 상반된 방식
![[강명석의 100퍼센트] 우리는 왜 90년대를 그리워할까](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1110813044762116_2.jpg)
그러나 이 모든 성공 스토리는 이 시절의 반쪽이다.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오너 이수만은 H.O.T.의 멤버를 뽑기 위해 길거리에서 토니 안에게 춤을 추도록 했다. 반면 지금 SM은 정기적으로 각종 대회와 오디션을 통해 연습생을 뽑는다. 아이돌을 꿈꾸는 10대들은 댄스 학원에 등록해 춤을 연습하고, 데뷔 몇 년 전부터 소속사에 출근한다. 원하는 기획사에 캐스팅되지 않으면 Mnet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다. ‘문나이트’ 같은 언더그라운드 신에서 곧바로 주류의 중심으로 올라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제작자와 방송사는 자신들의 규격을 제시하고, 대다수의 가수들은 이를 받아들인다. 가장 예측할 수 없는 에너지가 넘치던 신이 산업화와 함께 가장 규격화된 영역으로 바뀌었다.
과 이 1990년대를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에서 이주노는 그 시대를 지배한 신화다. 반면 에서는 리얼리티 쇼의 도움을 받으며 컴백해야할 상황이다. 과거는 신화였지만 현재는 애처롭다. 1990년대 댄스 음악의 성공요인들이 20여년에 걸쳐 완전히 분석되고, 시스템화 됐다. 그 사이 신화의 주인공들도 시스템에 맞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누군가는 그 시절의 아우라를 잃었고, 양현석과 박진영처럼 시스템의 한 축을 담당하기도 했다. 아니면 잊혀진 뒤 불미스러운 일로 다시 대중과 만났다. ‘핫’하게 나타나 ‘폼생폼사’를 외치며 성공 ‘신화’를 만들던 ‘오빠’들이 길어야 20여년, 짧으면 십 수 년만에 현실에 적응한 아저씨로 돌아왔다.
우상이 땅에 내려온 뒤, 꿈이 사라지다
![[강명석의 100퍼센트] 우리는 왜 90년대를 그리워할까](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1110813044762116_3.jpg)
산업이 대중의 욕구에 맞춘 상품을 기획하는 건 당연하다. 아이돌이 어설픈 허세나 신비주의 대신 팬과 소통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아이돌이 대중에게 제시할 꿈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가진 건 춤이나 노래 밖에 없는 청년들의 성공신화, 멤버들의 끈끈한 팀웍 같은 건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새로운 꿈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대신 걸그룹이 매번 바뀌는 무대 콘셉트와 대중성을 강조한 노래들로 현실을 벗어나버린 판타지를 제시했다.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그 틈을 치고 들어온 새로운 유형의 가수들이다. 그들은 울랄라 세션처럼 꿈과 진정성, 그리고 팀원들의 단단한 관계를 보여준다. 그들은 기존의 아이돌처럼 시장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대신 “난 꿈이 있어요”라며 대중을 자신들이 펼친 꿈과 비젼 속으로 끌어들일 수는 있다. 지금 대중음악계가 오디션 프로그램과 걸그룹 중심으로 나눠진 이유다. 가공되지 않은 것 같은 꿈을 노래하거나, 완벽하게 완성된 무대로 현실 바깥의 판타지를 만든다. 그리고 그들 중 누군가는 일본, 다시 서구권으로 진출해 새로운 꿈과 도전의 과제를 제시하며 전성기를 연장한다.
그래서 1990년대 하늘 위에 있었던 그들이 땅으로 내려오기까지의 시간은 가수가 우상이었던 시대에서 꿈이 사라진 시대로의 변화다. 더 이상 ‘10대들의 승리’는 없다. 대신 기능적으로 뛰어난 아이돌이 소비자를 만족시킨다. 그래도 산업은 유지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오기 전까지 몇 달 뒤의 세상을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지금 이 시대도 언젠가 ‘잊혀진 계절’이 될지 모른다. 우리는 지금 한 시대의 마지막,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시작에 서 있는 건 아닐까.
글. 강명석 기자 two@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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