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성과를 달성하는 강력한 자율적 조직의 유일한 다른 방안은 전제적 체제밖에 없다. – 피터 드러커
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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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칠경: 박원순의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 박원순은 어린 시절 말썽꾸러기로 자랐다. 가뜩이나 가난한 집안에서 너무 말썽을 부린 나머지 집에서 취학 연령이 되기도 전에 학교를 보냈다. 하지만 박칠경은 박원순이 질문에 뻔한 답을 해도 “참 잘했어요”라고 칭찬했고, 수업이 끝나고 교문을 나설 때도 칭찬해주었다. 박원순은 처음으로 “나도 뭔가 잘할 수 있는 아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이후 박원순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성적이 좋아졌고,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에는 전교 어린이 회장이 됐다. 또한 고교시절 그의 담임이 “공부보다는 사람 됨됨이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 것 역시 “세상과 더불어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그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끼쳤다. 초등학교 아이에게도 중요한 것은 공부보다 따뜻한 관심과 소통이다.

예링: 독일의 법철학자. 박원순은 옥살이를 하던 시절 예링의 에서 “법의 목적은 평화, 그 목적에 이르는 과정은 투쟁”이라는 부분을 읽었다. 대학 재학 시절 캠퍼스에 난입한 전경들이 학생들을 폭행하는 것을 보고 학생운동에 가담, 투옥된 그는 을 읽고 “법을 공부하면 많은 것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감옥에서 그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죄를 지은 인간보다 죄를 짓게 만든 환경이 더 죄인”이라 생각하게 됐고, “원래 사람이란 선한 존재”라 믿게 된다. 또한 24세에 고등고시에 합격, 강원도 정선에서 등기소장을 하며 행정에 대해 배우고, 관료사회의 특성도 경험하게 된다. 그가 사법고시에 합격한 건 그 다음이다. 이때의 경험들은 그가 보다 조직화된 시민단체를 만들 수 있었던 바탕이 됐을 듯.

조영래: 사법고시에 합격한 박원순은 단 6개월 동안 검사로 일한 뒤 사표를 냈다. 각자의 사정이 있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무거운 형량을 내려야 하는 것에 회의를 느끼는 등 일의 보람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 훗날 배심원 제도를 지지하면서 “사법시험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얻고, 순탄한 인생을 사는 판사들이 피고인의 입장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변호사가 된 그는 권인숙 성고문사건 등에 나서 인권변호사로 활약해고, “경치 좋은 곳을 지날 땐 ‘저런 곳에 별장 하나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만큼 경제적으로도 성공했다. 그렇게 승승장구할 때 박원순은 자신의 선배인 인권변호사 조영래가 투병 중인 병원에 병문안을 갔고, 조영래는 그에게 “돈 그만 벌고 이젠 눈을 좀 돌려봐, 외국에도 나가보고”라고 말했다. 박원순은 자신이 “탐욕이란 열차에 올라탄 상태”라는 것을 깨닫고 변호사 활동을 접고 유학을 떠난다.

참여연대: 박원순은 영국에서 1년을 보낸 뒤 미국 하버드 로스쿨에 들어가 “하버드 법대 건물 지하 3층부터 7층까지에 있는 자료”를 모두 보고, 족히 트럭 한 대는 넘을 자료들을 복사한다. 그 자료들에는 부패방지법, 내부고발자 보호제도 등 시민사회가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방법과 과정 등에 대한 것들이 많았고, 이는 참여연대의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민주주의라는 게 과거엔 헌신과 용기가 필요했는데, 외형적으로 어느 정도 민주주의가 이루어진 상황에서는 대안적이고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고, “우리 사회가 좀 더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사회로 가는 과정에서의 아주 치밀한 대안”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정책과 대안 중심의, “중간 전달기관” 역할을 할 수 있는 시민단체를 구상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 박원순이 조직한 참여연대는 김대중 정부 시절 이슈의 핵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옷 로비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소액주주 운동을 주도했으며, 2000년 총선 당시 특정 후보의 낙선을 주장하는 낙선 운동을 주도했다. 낙선 운동은 당시 여당을 지지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고, 위법성 여부로 박원순이 결국 재판을 받기도 했다. 당시 그는 “국민 상식에 맞지 않는 선거법을 지키는 것보다 정치개혁을 앞당기기 위해 시민단체가 일정 정도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낙선 운동을 통한 후보자들의 철저한 검증이 이후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0년대 초반 그는 성역처럼 보인 정재계의 민감한 부분을 치고 들어가며 그들이 시민의 감시의 대상임을 선언했다. 그의 방법론에 대해서는 각자 입장이 다르겠지만, 당대 시민의 욕구를 표면화 시킬 이슈를 만들고, “효과적인 수단으로 문제를 제기”해 사회를 바꾸는 전략을 세우는 데는 탁월했다.

도로시 파커: 소설가. 박원순은 유학시절 그가 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어는 ‘Check enclosed’(수표동봉: 기부를 의미함)”라는 구절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고, 훗날 물품 재사용운동을 통해 수익금을 얻고 기부에 나서는 아름다운 가게, 아름다운 재단 등을 설립한다. 아름다운 가게는 15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만큼 성장했다. “아름다운 가게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이미 잘 산다고 하는 것을 단순히 잘 먹고, 잘 입고하는 수준에서 더 나아갔다는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2000년대 초반 정치와 경제에 문제를 제기했던 그는 다시 시민의 소비생활에 주목했다. 아름다운 가게가 “경쟁 없는 블루오션”이라는 그의 표현처럼,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블루오션’이나 다름없는 이슈를 선점해 시민운동을 주도한 것. 또한 그는 “쇼핑센터는 물건과 사람을 분리한다. 반대로 아름다운 가게는 누군가 쓰던 물건이지만, 그 물건에는 삶의 진한 체취나 역사가 묻어나서 사람을 끌어 당긴다”며 자신의 아이디어가 인간다움을 바탕에 두고 있음을 강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박원순은 그를 “굉장히 담대하고 늘 작은 이익보다는 공익을 생각하는 분이었다”고 평가했고, 한 때 그에 이은 대통령 후보감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박원순은 노무현 정부 시절 “현 정부 이후 한두 텀 정도의 개혁 정부가 더 나와야 뒤쳐진 전근대성, 비합리주의, 반민주성, 비인간적 사회가 바뀌는데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하기도 했고, “노 당선자가 친 NGO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면서도 “시민단체는 비 개혁적인 정부와 싸우는 것이 모양이 나고 존재가치가 더 빛나는 것 아니겠나”라며 선을 그었다. 이후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는 것에 대해 “집권 여당과 야당은 차이가 있다. 집권여당이 그릇을 하나 깬 것은 권력을 잡고 있는 책임이 크기 때문에 야당이 독을 깬 것보다 더한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우리 사회의 개혁이라는 것은 일제시대부터 내려오는 권위주의와 전근대성, 봉건성, 비민주성, 비인간성들을 제거하고 보다 인간적이고 민주적이고 상식적인 사회로 가는 것”을 목표로 삼으며 보다 직접적인 정치 개혁 활동에 나섰다.

정약용: 조선시대 실학자. 박원순은 자신이 만든 싱크탱크인 희망제작소를 “실사구시적인 관점에서 우리 사회를 통찰하고 비전을 찾아내는 일”을 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말한바 있다. 그만큼 그는 합리성과 실용성을 중시한다. 실제로 지방선거는 당파성 대신 정책을 봐야 한다며 당을 가리지 않고 지원에 나서면서 논란의 대상이 됐었고, 스스로 “색깔 없이 살았다”고 말했다. 또한 FTA 반대를 위해 가두시위에 나선 농민들에게 “기본적으로 농민들과 뜻을 같이하지만 FTA 반대가 농민운동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농민단체도 FTA를 넘어 삶 속에서 포괄적이고 다양한 아젠다를 만들어가면 좋겠다”고 말했고, 도박에 대해서도 적당히 즐기는 것까지 막아놓으니까 호기심이 더 생긴다며 “엔터테인먼트로 하는 것”까지 막을 필요는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스스로를 “국가의 녹을 먹지는 않았지만 나라를 걱정하고, 위기가 생기면 앞장 서서 목숨을 바치”는 조선시대 선비와 비슷하다 생각한다. 어쩌면 그는 인간이 이성을 통해 합리, 실용, 자유, 절제를 모두 이루는 사회를 꿈꾸지 않을까.

이명박: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시장이던 시절 박원순은 월급을 기부할 것을 요청하고, 이명박 시장이 이를 받아들이는 등 나쁘지 않은 관계였다. 하지만 대통령 당선 후 박원순은 시민단체가 국정원의 사찰 대상이 됐다고 주장하며 파문을 일으켰다. 박원순이 주도한 희망 제작소가 정부와 기업 등에 판매한 공공성을 가진 정책 및 아이디어들은 연이어 무산되기도 했다. 아름다운 가게를 통해 소비 운동을 하고, 희망제작소로 정책을 통해 사회를 직접 바꾸겠다는 생각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만큼 좋은 방향이다. 하지만 일반 기업이나 자치 단체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바꾸는 것은 정치 행위고, 그것을 실현시키는 데는 설득 대상과의 관계는 물론 비효율적이지만 반드시 개입되는 정치적 문제가 존재한다. 정책 판매를 통해 시민단체의 수익구조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결정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박원순은 선비처럼 정치 밖에서 세상에 대해 발언하고자 했지만, 그의 방식에는 엄연한 현실적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이 선비는 “시민사회도 포지티브한 모델을 만들어갈 필요” 때문에 정치적 이슈에 개입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이런 기대가 하나하나 어긋나”기 시작한다며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에 나섰다.

세종대왕: 조선시대 최고의 지도자. 박원순은 자신의 블로그에 세종대왕을 비롯한 다양한 인물들의 리더십에 대해 적어 놓았다. 그는 다이어리에 모든 것을 적어놓으며 자신을 관리하고, 지금을 “헌신과 희생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하며, “여야갈등, 지역갈등, 세대갈등, 좌우갈등, 이런 갈등들이 부추겨지고 확산하고 있는 때일수록 갈등들이 치유되고 서로 합의할 수 있는 것을 합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자신이 일하는 곳에서는 그곳 직원들로부터 “데이터에 민감”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통계를 챙기고, “집단지성의 시대다. 공무원 한 사람이 책상머리에 앉아 정책을 내면 제 아무리 똑똑해도 시행착오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행정 철학으로 삼는다. 스스로를 “공무원이나 CEO”로 생각하고, 시민단체들을 통해 성과를 낸 그는 문자 그대로 서울시의 경영인이 되길 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가 서울시를 경영한다면, 그의 경영은 ‘인간적’이면서 ‘실용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까.

안철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울 시장 후보로 거론되던 인물. 그러나 “살아온 길과 흔적은 누구보다 선명”하다는 박원순을 지지하고 불출마 선언을 했다. 그들은 정치계 바깥에서 일했지만 정치적인 활동을 하거나 조직을 움직였고, 합리성을 기반으로 조직의 성장과 조직원들의 행복, 사회에 대한 기여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안철수와 박원순에 대한 기대는 정치적 방향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의 보편적인 행복과 수치적인 성과 양쪽을 잡을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것일지도 모른다. 모두의 의견을 모아 합리적으로 조직을 움직이면 행복한 사회가 실현 가능하다는 믿음. 그러나 박원순은 희망제작소 인턴을 무급으로 고용한 문제로 인해 논란을 빚었다. 그는 자원봉사로 이뤄지는 시민단체의 특성을 설명하며 무급 인턴의 존재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인턴들은 자신이 급여가 없다는 것에 흔쾌히 동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에는 올곧은 선비와 선한 자원봉사자만 있지 않다. 박원순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다수의 보통 시민들을 설득하고, 만족시켜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인성이 아니라 시스템이고, 시스템을 통한 성과다. 그가 보여줘야 하는 것은 단지 인간적이고 민주주의적인 가치가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보다 나은 성과를 낼 수 있는 그만의 경영 철학과 비전이다. 그렇지 않으면, 피터 드러커의 말대로 자율적 사회는 다시 전제적 체제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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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콘서트 에 박원순과 함께 강연을 한 김제동과 여러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한 박경림이 진행한 ‘애정만세’에 출연했던 성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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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명석 기자 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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