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비스트는 지난 14일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에서 ‘비가 오는 날엔’의 가사를 바꿔 노래했다. ‘취했나봐 그만 마셔야 할 것 같아’를 ‘체했나봐 그만 먹어야 할 것 같아’로 바꾼 것이다. 가사가 음주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로부터 청소년유해매체물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10cm의 ‘아메리카노’와 2PM의 ‘Hands up’, 옴므의 ‘밥만 잘 먹더라’, 김현중의 ‘제발’, 장기하와 얼굴들의 ‘나를 받아주오’ 등 여러 곡들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결정됐다. 결정사유는 주로 술, 담배, 마약, 유해화학물질이 포함된 ‘유해약물’의 사용을 조장하는 가사를 담았다는 이유다. 여성가족부의 연이은 청소년유해매체물 판정으로 인해 가요계는 심의 기준에 대한 거센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 법령
최근 심의에서 논란이 된 ‘유해약물’을 판가름하는 조항은 청소년보호법시행령 제 7조 ‘청소년유해약물의 효능 및 제조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기술하여 그 복용, 제조 및 사용을 조장하거나 이를 매개하는 것은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결정한다’는 법령에서 비롯된다. ‘술’과 ‘담배’가 이 법령에서 가리키는 유해약물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법령 해석은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2월 SM 더 발라드의 ‘내일은…’에서 ‘술에 취해 너를 그리지 않게’, ‘술에 취해 잠들면 꿈을 꾸죠’라는 가사가 음주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이 노래를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고시했다. SM 더 발라드의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25일 법원은 “술의 효능이나 제조방법 등 구체적인 언급도 권장도 없다”며 노래의 유해성을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이유로 SM엔터테인먼트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소송을 맡았던 법무법인 지평지성의 최정규 변호사는 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번 판결은 표현의 자유냐, 청소년 보호냐를 말하는 가치 충돌문제가 아니다. 명시된 심의기준과 다른 근거 없는 규제였다는 것이 문제였다.”라고 말했다. 청소년보호법시행령 제 7조는 청소년 유해약물인 술, 담배의 효능 및 제조방법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음악을 제재하기 위해 만든 법령으로, 유해약물이 가사에 포함됐다는 이유로 유해하다는 판결을 내린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문제는 ‘내일은…’의 가사에 대한 유해성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가 아니라, 여성가족부의 심의 기준 자체에 근거가 없었던 것이다.
인디레이블 “심의결정 전 사전 통지? 받은 적 없다” 여성가족부의 심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심의는 뚜렷한 근거를 바탕으로 모두에게 일관성 있는 조치가 내려져야 한다. 하지만 여성가족부의 심의는 기준은 물론 일관성도 지켜지지 않는다. 여성가족부의 대중음악 심의는 5명의 모니터링 요원이 유해음반 및 음악파일 중 심의대상을 가린다. 이후 행정절차법 제 11조에 따라 청소년 유해매체 심의 전 해당 음반 제작사나 유통사에 사전 통지를 하고, 의견을 들어본다. 음반심의위원회와 청소년보호위원회의가 10cm의 ‘아메리카노’를 심의하기 전 노래에 담긴 의미 등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셈이다. 그러나 몇몇 인디 음악 레이블에 확인해본 결과 “예전에는 가사가 뭘 의미하는지 연락이 온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청소년 유해매체 판결이 난 곡이 몇 곡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가족부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반면 대형 제작사들은 “여성가족부로부터 통보를 받고, 지적한 부분에 대한 의미를 전달할 기회를 가졌다”고 밝혔다. 소규모 인디 레이블은 심의에서마저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셈이다.
이 모든 과정이 일관성 있고 공평하게 이뤄졌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MBC 의 ‘나는 가수다’에서 장혜진이 부른 ‘술이야’는 “전체적인 맥락상 술을 문제 해결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청소년유해매체 판정이 났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여전히 ‘술이야’를 문제 없이 들을 수 있다. 심의 대상은 여성가족부가 음반 심의를 맡게 된 2006년 11월 이후 새롭게 발매된 곡으로, 이보다 먼저 발표된 ‘술이야’의 원곡, 바이브가 부른 ‘술이야’는 제재를 받지 않는다. 현재 규제 대상으로 의견 청취 과정을 밟고 있는 노래 ‘취중진담’도 전람회의 원곡이 아닌 ‘나는 가수다’에서 김조한이 리메이크한 곡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또한 청소년유해매체물 고시는 최종 심의와 결정까지 2개월 이상 걸린다. 요즘처럼 발표 즉시 디지털 음원차트에서 반응이 오는 가요계의 흐름상, 2개월이면 청소년들이 충분히 음원을 들은 뒤다. 결국 심의가 청소년 보호라는 원래 목적을 상실한 채, 여성가족부가 언제든지 노래를 규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규제를 위한 규제’에 가깝다.
‘누구를 위한 심의인가?’가 재정립 돼야 심의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자 여성가족부는 음반 심의제도의 발전을 위해 “음반심의 기준을 구체화한 음반 심의 세칙을 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유해약물을 권하거나 미화하는 가사를 제재하는 방향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오는 2012년 1월부터는 청소년 유해음반에 대한 재심의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재심의 과정을 통해 음반심의위원회와 대중음악계의 간극을 좁힐 수 있다는 기대다. 또한 음반과 음원 심의는 영화나 게임과 달리 나이대 별로 등급이 나눠지지 않고 초, 중, 고등학생이 같은 범주의 청소년으로 분류된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심의 기준이 더욱 필요한 이유다.
‘내일은…’의 청소년유해매체물 결정 고시를 취소한다는 판결을 내린 안철상 판사는 “오래 전부터 문학작품이나 대중문화예술에서 작가는 ‘술을 마시는 내용’을 작품에 포함시켜 인간의 복잡한 내면감정을 외부에 드러냄으로써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판사도 판단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기준을 심의위원이 모르는 시대. 심의는 그 시대를 보여주는 표본이다. 올해 들어 기준조차 모호한 심의로 청소년 유해매체물 딱지를 받은 노래들이 급격히 늘었다는 통계야 말로 우리 사회를 속상하게 하는 ‘술 권하는 사회’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사진제공. 큐브엔터테인먼트
글. 박소정 기자 nineteen@
문제는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 법령
최근 심의에서 논란이 된 ‘유해약물’을 판가름하는 조항은 청소년보호법시행령 제 7조 ‘청소년유해약물의 효능 및 제조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기술하여 그 복용, 제조 및 사용을 조장하거나 이를 매개하는 것은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결정한다’는 법령에서 비롯된다. ‘술’과 ‘담배’가 이 법령에서 가리키는 유해약물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법령 해석은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2월 SM 더 발라드의 ‘내일은…’에서 ‘술에 취해 너를 그리지 않게’, ‘술에 취해 잠들면 꿈을 꾸죠’라는 가사가 음주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이 노래를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고시했다. SM 더 발라드의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25일 법원은 “술의 효능이나 제조방법 등 구체적인 언급도 권장도 없다”며 노래의 유해성을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이유로 SM엔터테인먼트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소송을 맡았던 법무법인 지평지성의 최정규 변호사는 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번 판결은 표현의 자유냐, 청소년 보호냐를 말하는 가치 충돌문제가 아니다. 명시된 심의기준과 다른 근거 없는 규제였다는 것이 문제였다.”라고 말했다. 청소년보호법시행령 제 7조는 청소년 유해약물인 술, 담배의 효능 및 제조방법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음악을 제재하기 위해 만든 법령으로, 유해약물이 가사에 포함됐다는 이유로 유해하다는 판결을 내린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문제는 ‘내일은…’의 가사에 대한 유해성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가 아니라, 여성가족부의 심의 기준 자체에 근거가 없었던 것이다.
인디레이블 “심의결정 전 사전 통지? 받은 적 없다” 여성가족부의 심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심의는 뚜렷한 근거를 바탕으로 모두에게 일관성 있는 조치가 내려져야 한다. 하지만 여성가족부의 심의는 기준은 물론 일관성도 지켜지지 않는다. 여성가족부의 대중음악 심의는 5명의 모니터링 요원이 유해음반 및 음악파일 중 심의대상을 가린다. 이후 행정절차법 제 11조에 따라 청소년 유해매체 심의 전 해당 음반 제작사나 유통사에 사전 통지를 하고, 의견을 들어본다. 음반심의위원회와 청소년보호위원회의가 10cm의 ‘아메리카노’를 심의하기 전 노래에 담긴 의미 등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셈이다. 그러나 몇몇 인디 음악 레이블에 확인해본 결과 “예전에는 가사가 뭘 의미하는지 연락이 온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청소년 유해매체 판결이 난 곡이 몇 곡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가족부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반면 대형 제작사들은 “여성가족부로부터 통보를 받고, 지적한 부분에 대한 의미를 전달할 기회를 가졌다”고 밝혔다. 소규모 인디 레이블은 심의에서마저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셈이다.
이 모든 과정이 일관성 있고 공평하게 이뤄졌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MBC 의 ‘나는 가수다’에서 장혜진이 부른 ‘술이야’는 “전체적인 맥락상 술을 문제 해결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청소년유해매체 판정이 났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여전히 ‘술이야’를 문제 없이 들을 수 있다. 심의 대상은 여성가족부가 음반 심의를 맡게 된 2006년 11월 이후 새롭게 발매된 곡으로, 이보다 먼저 발표된 ‘술이야’의 원곡, 바이브가 부른 ‘술이야’는 제재를 받지 않는다. 현재 규제 대상으로 의견 청취 과정을 밟고 있는 노래 ‘취중진담’도 전람회의 원곡이 아닌 ‘나는 가수다’에서 김조한이 리메이크한 곡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또한 청소년유해매체물 고시는 최종 심의와 결정까지 2개월 이상 걸린다. 요즘처럼 발표 즉시 디지털 음원차트에서 반응이 오는 가요계의 흐름상, 2개월이면 청소년들이 충분히 음원을 들은 뒤다. 결국 심의가 청소년 보호라는 원래 목적을 상실한 채, 여성가족부가 언제든지 노래를 규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규제를 위한 규제’에 가깝다.
‘누구를 위한 심의인가?’가 재정립 돼야 심의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자 여성가족부는 음반 심의제도의 발전을 위해 “음반심의 기준을 구체화한 음반 심의 세칙을 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유해약물을 권하거나 미화하는 가사를 제재하는 방향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오는 2012년 1월부터는 청소년 유해음반에 대한 재심의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재심의 과정을 통해 음반심의위원회와 대중음악계의 간극을 좁힐 수 있다는 기대다. 또한 음반과 음원 심의는 영화나 게임과 달리 나이대 별로 등급이 나눠지지 않고 초, 중, 고등학생이 같은 범주의 청소년으로 분류된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심의 기준이 더욱 필요한 이유다.
‘내일은…’의 청소년유해매체물 결정 고시를 취소한다는 판결을 내린 안철상 판사는 “오래 전부터 문학작품이나 대중문화예술에서 작가는 ‘술을 마시는 내용’을 작품에 포함시켜 인간의 복잡한 내면감정을 외부에 드러냄으로써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판사도 판단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기준을 심의위원이 모르는 시대. 심의는 그 시대를 보여주는 표본이다. 올해 들어 기준조차 모호한 심의로 청소년 유해매체물 딱지를 받은 노래들이 급격히 늘었다는 통계야 말로 우리 사회를 속상하게 하는 ‘술 권하는 사회’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사진제공. 큐브엔터테인먼트
글. 박소정 기자 nine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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