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크리스튼 위그), 지금 이 여자의 삶은 여러모로 씁쓸하다. 나이는 삼십 대 중후반, 케이크 집을 동업하던 애인은 가게가 망하자 홀연히 떠나가고, 이후로 만나는 남자는 자신을 심심한 밤을 달래주는 여자 ‘넘버 3’ 쯤으로 취급한다. 일하는 보석가게에는 커플반지, 약혼반지 사러 온 손님들로 가득하고, 통장 잔고는 바닥을 치고, 뻔뻔한 룸메이트의 여동생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일기장을 읽었다고 고백한다. “어머 그게 일기였어? 나는 손으로 쓴 되게 슬픈 소설인 줄 알았어.” 그러던 어느 날, 세상 누구보다 가까운 ‘절친’ 릴리안(마야 루돌프)이 말한다. “애니, 나 드디어 결혼해! 내 들러리가 되어 줄 거지?” 게다가 결혼을 앞둔 릴리안의 옆에는 재력과 미모까지 겸비한 기혼자 친구 헬렌(로즈 번)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쌓아온 애니와 릴리안의 애틋한 우정은 헬렌이 제시하는 화려한 결혼 준비와 파리 행 티켓 앞에서 초라하게 막을 내린다.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과장과 치장을 벗겨낸 <섹스&시티>, 위 아래로 터지는 여성판 <행오버> ‘마지막 지푸라기’라는 게 있다. 아슬아슬 위태로웠던 삶을 한 방에 무너지게 만드는 작지만 강력한 것. 애니에게 그것은 친구 릴리안의 결혼이다. 되는 거 하나 없는 인생이지만 그래도 한심하게 살아가는 비슷한 짝꿍이 옆에 있다는 것은 (친구에게는) 미안하지만 큰 위로였다. 하지만 친구가 삶의 다른 스테이지로 옮겨가려 할 때, 그 ‘마지막 지푸라기`가 얹어지고 여자의 인생은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쟨 점점 인생이 피는데, 나는 왜 매일 요 모양 요 꼴인 거야!”
그렇게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은 여자에 대한, 여자를 위한, 여자의 코미디다. 동성애가 아니더라도 친구에게 나보다 더 가까운 여자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싫은지, 질투가 아니더라도 친구가 나보다 더 행복한 상태가 되는 것이 얼마나 속상한 일인지 매일 아침 <행오버>에 시달리는 남자들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러데잇 나이트 라이브>의 간판 여성 코미디언인 크리스튼 위그와 마야 루롤프가 베스트 프렌드로 호흡을 맞춘 이 영화가 북미에서 R등급 여성 코미디부분 흥행 1위를 차지했던 데는 <행오버>의 흥행 전략과 닮은 구석이 많다. 물론 스스로에 대한 연민에 빠진 여자가 자신을 찾아가는 건강하고 훈훈한 드라마가 깔려 있지만,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이 여타의 여성 드라마와 차별 되는 지점은 바로 부끄럼 없이 내지르고 막가는 코미디 덕분이다.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대낮의 차로에서 큰일을 보고, 마음속으로 숨길 섭섭함을 고성방가와 기물파손으로 기어이 표현하고 마는 이 시끌벅적한 처녀 파티는 포스트 <섹스&시티>의 시대에 찾아온 낯부끄럽지만 즐거운 길티 플레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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