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1일, 그 날은 정말 난리도 아니었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는 물론이고 트위터 타임라인에도 온통 그 얘기뿐이었다. 무섭다는 반응은 그나마 평범한 축에 속했으며, 자신이 일하는 사무실에서 몇 초 간격으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는 제보도 있었다. 그만큼 웹툰 ‘옥수역 귀신’(이하 ‘옥수역 귀신’)의 후폭풍은 거셌으며 또 대단했다. 마치 실화인 것처럼 느껴지는 스토리 구성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모니터 앞으로 끌어당긴 후 마지막 장면에서 외마디 비명과 함께 마우스를 떨어뜨리게 만들었던 장본인은 바로 호랑 작가다.얼마 전 ‘옥수역 귀신’으로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까지 오르면서 소위 대박이 났다. 시리즈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2007년 로 데뷔한 후 작년까지 를 연재했던 그는 과거 게임 회사에서 모델링 작업을 했던 경험을 살려, 스크롤에 맞춰 노래나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든가 웹툰 중간에 애니메이션이 등장하는 등 꾸준히 웹툰과 멀티미디어 효과를 접목시켜왔다. 연출적인 면에서는 늘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이야기만큼은 ‘해피엔딩을 안 좋아하는 작가’라는 꼬리표가 붙을 정도로 늘 “부조리하고 역설적인”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현재 준비하고 있는 차기작에 대해 “명랑만화 느낌이 날 것”이라면서도 “즐거운 척 하다가 뒤통수 때리는 로봇만화”라고 설명하는 걸 보니, 이번에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것 같다. 진지한 말투로 얘기하는 와중에 예상치 못한 유머가 툭툭 튀어나왔던 다음의 인터뷰를 읽을 때 역시 마찬가지다.
호랑: 연재를 쉬고 있던 터라 별 생각 없이 참여했다. 다른 작가님들도 다들 참여하신다고 하고, 또 계속 쉬다보니까 돈도 떨어졌고. (웃음)
“웹툰에서만 할 수 있는 연출기법을 많이 도입했으면 좋겠다” 누가 뭐래도 의 압권은 플래시를 활용한 특별한 효과였는데, 다음에 게재했던 공포웹툰 에서도 비슷한 기술을 활용했던 걸로 안다.
호랑: 에서 그런 걸 처음 시도했는데, 왜 그 때는 안 뜨고 지금 이렇게 화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웃음) 물론 그 때는 지금처럼 뭔가 화면 바깥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 효과가 약하긴 했지만. 를 연재할 때는 그런 기술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다른 웹툰처럼 컷들을 길게 나열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는데, 굳이 출판만화의 틀에 얽매일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컴퓨터로 보여주는 거잖아. 그 때부터 연구를 많이 하기 시작했다. 에서 스크롤에 맞춰 노래나 내레이션이 나오도록 만들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과거 bgm을 사용하는 웹툰은 종종 있어왔지만 이렇게 멀티미디어 요소들을 활용한 건 내가 처음이다.
그런 걸 처음 시도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나.
호랑: 자부심이라기보다는 웹툰 전체가 함께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웹툰 초창기에는 출판만화를 늘여놓은 것에 불과했다면, 나를 포함한 2세대 작가들은 웹툰에서만 할 수 있는 연출기법을 많이 도입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스크롤에 맞춰 음악이 재생되는 기술을 다른 작가들에게 공개했다. 이 기술을 나 혼자 독점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웹툰이 생긴지 10년 정도밖에 안 된 매체이기 때문에 이것 저것 시도해볼 수 있는 즐거움이 클 것 같다.
호랑: 이번 달에 을 하나 더 연재하는데, 이번에는 영화 필름 같은 느낌을 주려고 한다. 컷이 일정한 간격으로 쭉 이어져 있는데 스크롤이 자동으로 내려간다. 마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텐데, 그것도 나름대로 섬뜩할 거다. 원래 차기작에 쓰려고 했던 기술이었는데 왠지 공포만화에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의 특별편에서 ‘임인스바보’라는 암호를 입력하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라는 창이 뜨는 연출도 재밌었다.
호랑: 그걸 하면서 독자들이 정말 ‘귀차니즘’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우스 휠만 내리고 절대 클릭을 안 한다. 손가락이 엄청나게 무거우시다. (웃음) 버튼을 누르고 뭔가를 입력하는 건 독자들이 귀찮아서 안 하는구나. 그래서 그 때부터 스크롤 연출을 시도했다. 스크롤에 맞춰서 이벤트가 자동으로 실행되게 만들자. 사용자가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기술들을 많이 시도해보고 있다.
현재로서는 ‘이건 된다’는 생각이 큰가 아니면 베타테스트를 한다는 마음이 더 큰가.
호랑: 후자 쪽이다. 다른 작가님들께 내 기술을 공개하기 전에 사용자들의 반응을 쭉 지켜본다. 웹툰 담당자한테도 혹시 이걸로 인해 서비스가 저해되는 부분이 없는지 물어보고, 작가님들 의견도 많이 반영한다. 가령 웹툰의 어느 부분에서 음악이 끊겼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셔서 그런 기능도 추가하고, 음악 끊기게 만들었더니 또 너무 확 끊긴다고 페이드아웃(fade-out) 효과를 넣어달라고 해서 그것도 추가했다. 그렇게 완성본을 만들고 난 후에 기술을 공유한다.
스토리를 구상하는 것만큼 연출적인 면에도 굉장히 공을 많이 들이는 것 같다.
호랑: 만약 이야기만 쓸 거면 만화를 왜 그리나, 그냥 소설을 쓰면 되지. 하하. 만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서 보여줄 것인가다. 만화의 절반은 연출이 먹고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부조리하고 역설적인 걸 정말 좋아한다” 아무래도 과거 게임회사에서 3D 작업을 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만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됐나.
호랑: 게임회사를 다닐 때 가장 만족스럽지 못했던 게 이건 내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 게임의 어떤 부분에 참여했다는 것뿐이다. 내 이름을 걸고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프로젝트가 무산되는 바람에 속 편하게 회사를 그만두고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창작을 하면서 생계까지 보장되는 삶을 꿈꿨던 건가.
호랑: 그렇다. 고등학교 때부터 계속 창작을 하고 싶었는데, 직장을 다니다보니까 확 뛰어들지 못했다. 다행히 그만둘 기회가 생겼고 마침 다음에서 신인 작가를 발굴하는 공모전을 진행했다. 타이밍도 운도 좋았다.
당시 공모전 주제 중 하나가 ‘전래동화의 현대적인 재해석’이었다. 원래 이런 주제에 관심이 있었던 건가 아니면 공모전 주제를 보고 그 때부터 구상에 들어갔나.
호랑: 공모전 주제를 보고 그 때부터 시작했다. 나는 현대적으로 각색하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알아듣고 정말 현대적인 배경에 전래동화 이야기를 넣어버렸다. 그 때 냈던 작품이 이었는데, 가장 현대적으로 각색하기 수월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여자 친구의 누드사진을 약점삼아 공개하는 사건이 많았는데, 그 누드사진이 왠지 날개옷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걸 모티브로 스토리를 구상했다. 원고를 보내고 다른 분들 작품을 보니까 막 조선시대 배경에 로봇이 등장하는 식이었다. 내가 ‘재해석’이라는 부분을 잘못 받아들였구나. 내가 당선될 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덜컥 당선이 됐다. 나중에 들어보니 다음 쪽에서는 이런 무거운 주제를 원하셨다고 하더라.
공모전에 당선되고 나서 연재했던 는 전체적으로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였고, 의 주인공들도 굉장히 가혹한 시련을 견디며 밴드활동을 이어나갔다. 덕분에 ‘해피엔딩을 안 좋아하는 작가’라는 이미지까지 생겼는데, 유독 해피엔딩을 피하는 이유가 있나.
호랑: 난 사이코, 부조리하고 역설적인 걸 정말 좋아한다. 영화도 나 같은 거 좋아하고. 일반인들과는 다른 사람을 다루는 걸 좋아하다보니까 이야기가 막 해피하진 않은 것 같다. 독자들은 해피엔딩을 좋아하시지만. (웃음)
물론 창작이라는 건 본인의 취향을 드러내는 작업이지만 동시에 연재를 하기 위해서는 독자들의 입맛도 고려해야 되지 않나.
호랑: 사실 난 독자들을 별로 고려하지 않는 편이다. 만약 그랬다면 의 모든 에피소드는 다 해피엔딩으로 갔어야 했다. 처음에 ‘견우직녀전’ 편을 끝내고 나니까 ‘다음 편은 분명 해피엔딩일거야’라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 그래, ‘우렁각시전’ 편은 해피엔딩으로 가자. 그런데 막상 해피엔딩이 안 떠오르는거다. 에잇, 갈 데까지 가보자! 결국 주인공이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사랑을 되찾는, 겉으로는 해피엔딩인 척 하지만 결코 해피엔딩이 아닌 걸로 마무리했다. 한 번은 영화 가 배드엔딩으로 끝나서 정말 좋아했는데, 평론가들은 ‘구성은 좋았는데 마지막이 찝찝했다’면서 별점을 막 깎더라. 배드엔딩이 왜 이렇게 천대받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리면서까지 배드엔딩을 고집하는 건, 사람들이 본인의 작품을 보고 뭔가를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인가.
호랑: 기적을 미화시키고 싶진 않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되, 그 삶에서 어떻게 살아야 더 행복한지를 보여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를 연재할 때 정신병 관련 논문이나 서적을 찾아봤는데, 정신병을 고칠 수 있는 확률이 거의 없다고 하더라. 가벼운 질환을 제외하고는 평생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나와있었다. 근데 만화라고 해서 정신병을 고치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우렁각시전’ 편에서 주인공이 기억상실증이 걸리는데, 이것도 조사해보니까 기억상실증 환자가 기억을 되찾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하더라. 그러면 만화에서도 찾아주면 안 되지! 난 굉장히 사실적인 작가다. 하하.
“즐거운 로봇만화인…척 하다가! 뒤통수를 좀 때릴 것 같다” 타협을 못하는 성격인 것 같은데, 실제로 본인도 그렇게 살아온 것 같나.
호랑: 하고 싶은 일은 어떻게든 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진학할 때 어머니와 누나들은 그림 그리는 걸 반대하셔서 인문계를 가길 원하셨고, 나는 인문계에 가면 야간자율학습 때문에 시간을 많이 뺏기니까 상고를 가고 싶어했다. 유일하게 아버지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라면서 대학진학을 조건으로 상고입학을 허락해주셨다. 회사 다닐 때도 뭔가 아니다 싶으면 다 말하고 어떻게든 설득했다. 그것 때문에 힘든 것도 있었다.
그런 성격과 웹툰 작가라는 직업이 잘 맞는 것 같나.
호랑: 웹툰 작가는 상사가 있는 게 아니니까 누구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책에 얽매일 필요도 없고 정말 하고 싶은 대로 하니까 마음이 편하다. 특히 네이버 웹툰은 담당자가 작가한테 모든 걸 맡기는 타입이라 그런 부분이 내 성격과 잘 맞는 것 같다. 물론 신인 작가라는 점에서는 안 좋은 것도 있지만.
어떤 점에서?
호랑: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힌 작가님들은 담당자의 입김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으니까 좋지만, 나를 포함한 신인 작가들은 누가 인솔해주지 않으면 성장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그런 상태에서는 몇 년을 그려도 신인작가 티를 못 벗어난다.
아직 웹툰이라는 장르가 정착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인솔 시스템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 같다.
호랑: 웹툰 자체가 아직 갈 길이 멀다. 이게 경쟁업체도 많이 생기고 전반적으로 수익모델이 있어야 사업이 발전하는데 그런 게 없다보니 성장 속도가 느리다. 웹툰 조회수는 엄청나게 올라가지만 어떻게 보면 껍데기 뿐이다. 정작 그 안에서 돈이 돌지 않으니까.
결국 수익모델 확립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하나.
호랑: 처음부터 웹툰이 다 무료였으니까 애초에 이걸 돈 주고 본다는 생각을 안 한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유료화하면 누가 보겠나. 그런데 웹툰 페이지에는 광고효과도 낮아서 광고주들이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다른 웹페이지에서는 흥미 있는 배너광고가 있으면 클릭해보게 되는데, 여기서는 만화에 집중하다보니까 밑에 광고가 있어도 그냥 스킵하고 다음 편을 클릭한다. 그러다보니까 수익이 안 난다. 광고웹툰 같은 것도 에세이툰 작가님들에게 많이 가지, 극화 작가님들한테는 안 간다. 극화 작가님들이 제일 불쌍한 것 같다.
그래서 극화 작가들에게는 영화나 애니메이션 같은 2차 판권이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 같다. 혹시 웹툰을 그릴 때 그런 부분도 염두에 두는 편인가.
호랑: 전혀 생각 안 하고 만든다. 이걸 영화화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만화를 그리면, 이런 장면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건 영화로 구현될 수 없으니까 안 되겠다, 이렇게 스스로 제약을 하게 된다. 그러면 이게 영화 콘티지 만화가 안 된다. (고)영훈이 형이 그린 가 영화로 제작되는데, 영훈이 형도 영화 생각을 아예 안하고 만들었다. 초능력자 이야기고 완전 영화 같은 스타일인데, 누가 이 웹툰이 영화화되겠다고 생각했겠나. 굳이 2차 판권을 생각하지 않고 만들어도 좋은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지게 되어있다. 요즘 정필원 작가님의 을 재밌게 보고 있는데, 이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도 재밌을 것 같다. 정 작가님은 예전부터 좋아했던 분이다. 왠지 크게 되실 것 같다. 진짜로 모든 부분이 다 마음에 든다. 예쁜 여자들 많이 나오는 것도 좋고. 하하하.
차기작으로 로봇만화를 준비한다고 들었다.
호랑: 요즘에는 첫 화에서 흥미를 끌지 못하면 아무리 작품성이 좋아도 버려진다는 얘기가 있다. 출판만화도 그렇지만 웹툰 같은 경우는 더 심하다. 한 번 보고 재미없으면 더 이상 클릭을 안 하니까. 처음에 로봇만화를 준비했을 땐, 로봇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는지 그 시초부터 쭉 다루고 싶었다. 그러면 이야기가 탄탄해지고 흐름도 자연스러워지는데 그렇게 되면 재미가 없다. 첫 화에는 무조건 로봇들이 화려하게 활동하는 것부터 나올 거다.
이번에도 전작들처럼 어둡고 씁쓸한 이야기인가?
호랑: 좀 더 명랑만화 느낌으로 갈 예정이다. 무거운 이야기는 과거 회상장면에만 넣고 캐릭터들이 반짝반짝 거리면서 즐거운 로봇만화인…척 하다가! (웃음) 뒤통수를 좀 때릴 것 같다.
글, 인터뷰. 이가온 thirteen@
인터뷰. 위근우 기자 eight@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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