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무대의 퀄리티가 록페스티벌의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허접한 공연이 즐거운 페스티벌로 이어지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올해 지산밸리 록페스티벌(이하 지산)이 준 즐거움을 가늠하기 위해 몇 몇 무대에 대한 평가를 남기는 건 그래서다. 3일 동안의 헤드라이너를 비롯해 중요 뮤지션 10팀의 무대를 맥주잔 다섯 개 만점의 방식으로 평가해본다. 만점으로도 부족한 어메이징한 순간에 대해서는 치킨 한 마리를 더한다. 다만 이 평가는 객관적인 점수라기보다는, 각기 다른 관점에 따라 공연에 대한 호불호가 어떻게 갈리는지 보여주는 지표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위근우: 페스티벌의 첫날, 낮 무대는 말하자면 일종의 예열 시간이다. 그리고 9mm Parabellum Bullet은 첫 곡 ‘Discommunication’부터 말했다. 이래도 뛰지 않을 거예요? 점핑과 함께 헤비 리프를 쏟아내던 기타와 관객이 동화되는데 걸린 시간 1분?
김희주: 심장을 예열시킬 틈도 없이 첫 곡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헤비한 골격에 블루지한 옷을 입은 음악은 겨누어진 총구처럼 두렵지만 어딘가 설레는 마음을 닮았다. ‘Black Market Blues로 너를 미치게 만들고 싶어’라고 했나? 충분히 미쳤다.
위근우: 지산에 온 건 케미컬 브라더스의 이름이지 케미컬 브라더스가 아니었다. 엄청난 물량을 들인 영상과 사운드로 거대 댄스 플로어가 된 빅탑 스테이지야 장관이지만 컴컴한 부스에 쿡 박혀있는데 MR인지 아닌지, 본인인지 아닌지 알게 뭐람.
황효진: 화면 속에서 끊임없이 달리는 말과 불꽃놀이 하듯 팡팡 터지는 비트. 옆 사람과의 땀내 나는 부딪힘도 짜릿하던 그 순간, ‘DON`T THINK!’라니.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오늘부터 그냥 즐겨! 첫날밤의 헤드라이너가 전해줄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메시지.
김희주: 귀여우니까 참았다. 염불을 외듯 고저 없이 이어진 몬구의 보컬은 히치하이커가 DJ로 가세한 댄서블한 사운드와 따로 놀았다. 하지만 ‘지산의 바~아~암’이라고 노래하는 몬구는 여전히 말도 안 되게 귀여웠으니까, 그거면 된 건가?
윤희성: 기타도 있고, DJ도 있고, 영상물도 있다. 이 밤의 몽구스는 몽환의 은하수를 건너지 않았지만, 관객과의 완벽한 호흡을 통해 이들이 이제는 명실상부한 팝밴드 임을 증명했다. 섭섭한 뿌듯함이 공존했던 지산의 밤, 청춘의 밤.
위근우: 스튜디오 버전과 비교해서 눈에 띄는 ‘삑사리’는 없었다. 거대 스피커에서 나오는 악틱 몽키즈의 ‘Brick By Brick’은 누구나 춤추게 할 만하다. 허나 헤드라이너에게 기대하는 게 단지 실수 없는 무대일까. 불혹을 넘긴 브렛의 격정적 허리 놀림을 보고 반성하도록.
장경진: 밴드이름? 인터뷰에서 처음 알았다. ‘락맹’이니 욕해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땀에 젖어 무심하게 흘러내린 앞머리의 섹시한 움직임, 순간이라 더없이 소중한 찰나에 보이는 깊은 눈은 절대 잊지 못한다. 보컬 알렉스 얘기다. 입문은 역시 미모다.
위근우: 헤드라이너가 예년에 비해 약하다는 이야기가 떠돌 때, 유세윤과 뮤지는 코웃음을 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완벽한 메탈 넘버로 탈바꿈한 ‘인천대공원’부터 모두를 미치게 한 앙코르 넘버까지, 우리는 한 편의 완성된 록 오페라를 보았다.
김희주: 구슬 일곱 개를 모아 소원을 빌 수 있다면, 돈도 명예도 애인도 필요 없다. 그 밤 그 무대로 다시 데려가 주세요. 편곡, 연주, 연기, 패션, 무대 매너, 심지어 가창력까지, 흠 아니 티끌 하나 잡을 것이 없다. 올해 지산은 UV에게 빚을 졌다.
김명현: 즐거운만큼 강행군이기도 한 일정 속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다시 쿵짝쿵짝 일으켜 세워 준 킹스턴 루디스카의 무대는 마치 명랑 만화 같았다. 특히 첫 공개한 신곡 ‘너 때문이야’를 듣고 이석률에게 간절히 묻고 싶은 질문. 귀욤귀욤 열매는 어디서 산건가요?
장경진: ‘스캥킹’은 사랑이었다. 우비를 벗어던지게 만드는 힘이 있었고, 축 늘어진 삭신을 추스리게 했고, “요즘은 다들 음악을 혼자 듣지만, 오늘만큼은 이 자연이 오디오입니다”라는 오글거리던 멘트마저도 포용할 수 있었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김희주: 비는 축제에 반갑지 않은 손님이지만 이 무대에는 최고의 친구였다. 굵어지는 빗줄기는 머리를 때리고, 단단하게 앙칼진 하현우의 목소리는 심장을 때렸다. 저 산 너머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나쁘지만 달콤한 마법사의 거부할 수 없는 꼬드김.
김명현: 빗속에서 국카스텐의 주술에 걸려버린 사람들은 집단 최면에 걸린 듯 광란했다. 몽롱한 드럼과 베이스, 그 소리가 하늘을 찢어 비가 오는가 싶던 기타, 그리고 하현우. “우리도 우리 라이브를 보고 싶네요”라고 말하던 순간, 우리는 그들의 신도가 되었다.
김희주: ‘우리는 나아졌습니다’라고 당당한 출사표를 던졌고, 확실히 그랬다. “씨X, X나게 신나고 강력하게”라고 외친 ‘밴드’의 무대는 돗자리족도 춤추게 만들었다. 다만 한창 흥이 난 관객들에게 굳이 다음 율동을 가르친 장기하의 호흡이 아쉬울 뿐.
황효진: ‘장교주’가 너희를 노래하고 춤추게 하리니. ‘달이 차오른다, 가자’를 부르던 장기하가 조용히 두 팔을 올리면 관객들은 노래하고, ‘박자에 맞춰 천천히 뛰어라’ 하면 뛰었다. 안경 벗고 분 발라서 미모만 업그레이드된 줄 알았더니, 조련도 수준급이다.
위근우: 기선제압용 넘버는 페스티벌 최고의 무기 중 하나다. 인큐버스의 ‘Megalomaniac’이 그렇다. 원숙해진 미모의 브랜든이 ‘Hey megalomaniac’을 외치는 순간 쇼는 그들의 뜻대로 흘러갔다. 심지어 ‘Drive’라는 최종 병기까지 장전되어 있지 않았나!
김명현: 눈도 뜰 수 없는 폭우 속에서도 뇌리에 각인되는 브랜든의 섹시함은 등급 외. 하지만 음향 상태는 아쉽기 그지없었다. 폭우 속에서 ‘Drive’를 따라 불렀던 엄청난 떼창이 인큐버스가 한 번 더 내한 공연을 하자고 결심할 주문으로 작용하길 바랄 뿐이다.
위근우: 솔직히 인정하자. 시간 대충 때우다가 막판에 ‘Beautiful Ones’만 제대로 불러도 맥주 세 잔, 조금 성의 있게 하다 부르면 네 잔짜리 무대다. 하지만 미중년 ‘끝판왕’ 브렛은 심지어 내내 뛰고 흔들며 무대를 지배했다. 이것이 헤드라이너다.
황효진: 연출인지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살짝 열린 셔츠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한 복근은 과연 ‘미중년’ 브렛이라 할 만 했다. 하지만 나이는 속일 수 없는 것. 첫 곡 ‘She’부터 조금은 힘들게 들렸던 보컬과 어설픈 마이크 퍼포먼스가 그의 섹시함을 반감시켰다.
일러스트레이션. 그루브모기
사진제공.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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