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KBS <개그콘서트> ‘슈퍼스타 KBS’ 코너에서 이희경과 함께 장로님으로 출연했을 때만 해도 관찰력이 좋은 개그맨인 줄로만 알았다. ‘생활의 발견’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등장해 송준근과 신보라 사이를 기웃거릴 때만 해도 1이 주어져도 10을 만들어내는 노력파 개그맨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불편한 진실’에서 김지민과 온갖 오글거리는 멜로 연기를 할 때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김기리는 관찰력이 좋은 노력파 개그맨일 뿐만 아니라 ‘갖고 싶은 남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 <개그콘서트>에 입성했을 땐 잘하는 게 없는 어떻게 해야 되나 걱정이 많았어요. 그때만 해도 솔직히 잘생기고 멋있는 역할을 하게 될 줄은 몰랐죠. 제가 송병철, 허경환 선배처럼 잘생긴 것도 아니고 참 애매하잖아요. 그런데 ‘불편한 진실’은 나름의 웃기는 캐릭터가 있었기 때문에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저도 몰랐던 무기가 나름 훈남 이미지였던 거죠.”
하지만 훈남 이미지는 김기리에게 득인 동시에 독이다. 과거 ‘불편한 진실’에서 후배 개그맨 서태훈과 과한 우정 드라마를 찍을 당시 진행한 인터뷰에서도 “전 절대 잘생기지 않았어요. 기사에 꼭 좀 써주세요”라고 신신당부했던 김기리는 훈남 이미지로 고정된 것을 요즘 가장 큰 고민으로 꼽았다. “<개그콘서트> 설 특집 방송 녹화를 할 때 ‘전국구’ 코너에서 핑크레이디 옷에 갸루상 분장, 꽃거지 재킷까지 입고 나왔는데 감독님이 녹화 끝나고 ‘기리는 그래도 좀 멋있게 나와야 된다’고 하셨어요. 사실 저는 그런 분장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멋있는 사람도 아닌데 너무 이미지가 그렇게 나오니까. 근데 이걸 역효과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제가 그렇게 나오는 걸 원치 않을 수도 있구나 라는 걸 깨달았어요.” ‘전국구’, ‘생활의 발견’, ‘불편한 진실’까지 세 개의 코너를 병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김기리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 듣는 노래들을 추천했다. “볼일 볼 때랑 샤워할 때는 가장 자기만의 시간이잖아요. 그때 주로 노래를 많이 듣는 편이에요.”
1. 포미닛 투윤(2YOON)의 < Harvest Moon >
얼마 전 첫 소속사가 생긴 김기리는 소속사 식구인 포미닛 투윤(2YOON)의 곡을 첫 번째 추천 곡으로 선택했다. “투윤의 타이틀 곡 ‘24/7’은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그래도 추천하고 싶어요. 앨범에 있는 곡 중에서는 ‘쎄쎄쎄 (Feat. Kikaflo)’도 추천하고 싶고요. 오히려 타이틀곡보다 ‘쎄쎄쎄 (Feat. Kikaflo)’가 더 좋은 것 같아요. 지윤이가 작곡한 노래거든요. 지윤아, 고마운 줄 알아라. (웃음) 한두 번 들어봤는데도 정말 좋아서 ‘이거 누구 곡이에요?’라고 물었더니 투윤 노래라고 하더라고요.” 인피니트의 동우와 호야로 구성된 인피니트H, 씨스타의 효린과 보라로 구성된 씨스타19에 이어 포미닛도 지윤과 가윤을 내세운 유닛 투윤을 결성했다.
2. 프라이머리(Primary)의 < Primary And The Messengers Part 2 >
김기리의 두 번째 추천 곡은 프로듀서 프라이머리의 시리즈 앨범 수록곡 중 신인 ZION.T가 피쳐링한 곡 ‘만나 (Feat. ZION.T)’다. “처음 ‘만나 (Feat. ZION.T)’를 듣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와, 노래를 어떻게 저렇게 하지? 집중하지 않으면 가사를 듣기 힘든데 들을수록 재밌고 신기한 곡이에요. 막연히 프라이머리가 외국에 오래 살다 온 뮤지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도입부부터 브라스 연주로 곡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드는 ‘만나 (Feat. ZION.T)’는 ‘금요일 밤에 뭐해? 여자 둘이 / 심심해 솔직해지자고 우리 / 쎄쎄쎄하게? 얼음땡하게? / 다 큰 여자들이 뭐야 그게’와 같은 솔직하면서도 톡톡 튀는 가사가 인상적인 곡이다.
3. 윤하의 <2집 SOMEDAY>
비 오는 날 거리를 걷는 것은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빗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는 아침은 누구에게나 기분 좋은 경험일 것이다. 윤하의 ‘빗소리’는 그런 기분 좋은 감정을 일깨우는 곡이다. “제목은 ‘빗소리’지만 비 올 때 들어도 좋고 날씨가 맑을 때 들어도 좋은 노래에요. 그래서 제 모닝콜로 쓰고 있어요. 들으면 안 일어날 수가 없거든요. (웃음)” ‘창문을 두드리는 수많은 빗방울’이라는 가사처럼, 때로는 귀를 따갑게 만드는 알람보다 빗방울처럼 싱그러운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깰 때가 있다. 김기리가 ‘빗소리’를 모닝콜로 정해놓은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4. 조PD의 <5집 Great Expectation 조PD Pt 2: Love And Life>
KBS <개그콘서트>의 ‘전국구’에서 랩을 맡고 있는 김기리는 평소 노래방에서 조PD나 MC스나이퍼의 랩을 즐겨 부른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조PD의 ‘파라다이스 (Feat. Soy)’를 네 번째 추천 곡으로 선택한 김기리는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느낌이 몽롱해져요”라고 말했다. 그는 직접 휴대폰에서 가사를 검색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가사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나와 함께라면 서울도 paradise’라는 가사나 ‘이따 만나자 어제 자리로 와’ 같은 가사가 참 신기해요. ‘사랑의 상처는 주고받는 것인데, 이별을 생각한다면 사랑은 왜 해’라는 구절도 꼭 한 번 들어보세요. 와, 정말 좋은 것 같아요.”
5. 김기열의 <다른사람이 불렀으면 잘 될수도 있었을 노래>
유세윤의 UV, 정형돈의 형돈이와 대준이, <개그콘서트>의 ‘용감한 녀석들’ 팀. 모두가 뮤지션 혹은 동료 개그맨과 손을 잡고 앨범을 낼 때, 개그맨 김기열은 혼자 밤마다 꿈틀대는 위장을 주인공으로 한 노래 ‘내 위장은 꿈틀대요’를 발표했다. 앨범을 내고 가수로 데뷔했는데도 사람들이 잘 모르자 김기열은 자신이 출연하는 코너 ‘네가지’에서 앨범을 홍보하는 것은 물론 방송 후 뮤직비디오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김기리가 농담 삼아 “김기열이 협박해서 추천한 노래”라고 웃으며 얘기할 만하다.
스무 살 때부터 꾸준히 대학로 소극장 무대에 서왔던 김기리는 약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무대 공포증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2년 가까이 평일에 세 번, 주말에 다섯 번씩 공연을 했는데도 새로운 무대에 가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요즘 ‘전국구’ 무대에 설 때도 그래요. 녹화 들어가기 몇 분 전부터 심장이 쿵쾅쿵쾅. 앞에서 세 명이 노래를 부르고 있고 전 의자에 뒤돌아 앉아있을 때도 정말 떨려요.” 하지만 심장이 쿵쾅거리는 건 비단 김기리뿐만이 아닐 것이다. 온갖 촌스러운 패션 아이템을 온몸에 주렁주렁 매달고 나와도 멋있어 보이는 김기리를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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